파키스탄의 민주주의는 어디로?

2016-05-30     아스라프 칸

2013년 6월, 파키스탄은 독립 후 68년 만에 처음으로 선거를 통해 정권을 교체했다. 이때까지 민주정권은 모두 군사 쿠데타로 인한 중단을 겪었다. 불행하게도 최근 투표로 선출된 나와즈 샤리프 총리도 그런 경험이 있다. 그는 과거 두 번이나 중도에 총리직에서 물러나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또 다시 권력에 의해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점차 현실이 되는 듯하다. 크리켓 영웅 선수 출신이자 강압적 정치인인 이므란 칸이 이끄는 파키스탄 정의 운동당(PTI)이 총선에서 눈부신 쾌거를 거두며 의회에 등장하자마자, 샤리프 총리의 선거 결과를 인정하길 거부했다. 그가 총리의 사임을 요구하며, 여러 차례 대법원에 제소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의 독립기념일인 2014년 8월 14일, 라호르에서 온 수천 명의 시위자들이 정부에 저항하기 위해 수도 이슬라마바드에 모였다. 전직 운동선수인 이므란 칸과 군 장성들이 결탁했다는 소문이 무성한데도 불구하고, 이므란 칸과 그의 당원들은 수도 중심부에 자리를 잡고 연좌데모를 했다. 이 시위는 126일간 지속됐다. 2014년 12월 어느 추운 아침, 한 테러단이 파키스탄 북서부 페샤와르의 한 군사학교를 공격해 130명의 아이들과 10여 명의 교직원을 잔혹하게 살해할 때까지 말이다. 이 테러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감정으로 인해, 이들은 일시적으로 정치적 대립을 중단하고, ‘테러와의 전쟁’을 만장일치로 선언한다. 또한 나와즈 샤리프 총리와 파키스탄 육군 총장인 라힐 샤리프 장군 사이에 유례없는 화해가 이루어진다. 이로써 군과 정부는 새로운 전략을 실시할 수 있었다. 바로 국가 액션 플랜(NAP)이다. 이들은 국내에 뿌리 내린 폭력적 종교 단체들을 박멸하고자 하는 야심을 표명했다. 액션플랜은 무엇보다도 권력의 양극 사이에 분쟁을 가라앉힐 수 있을 것이다. 카라치 공립대학의 파키스탄 교육 부장인 사이드 자파르 아메드는 “2014년 사건 이후, 정계와 군 고위직 사이에 새로운 신뢰가 형성됐다. 모든 상황으로 볼 때 그들의 의견은 놀랍게도 서로 일치한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이 다정한 합의는 다소 강요된 것일 수 있다. 수많은 관찰자들은 군이 정부로 하여금 군의 신탁통치에서 벗어나려는 모든 시도를 방해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정치학자 토시프 아메드 칸은 “샤리프 총리는 외교 권한조차 온전히 다 갖고 있지 못하다. 군은 인접국뿐만 아니라 지역강국이나 미국과의 모든 외교 관계를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샤리프 정부는 끊임없는 테러 위협에 대항해야 한다. 국가 액션 플랜(NAP)의 일환으로, 군대는 탈레반과 다른 무장 단체들이 피신했던 부족지역에 대한 대규모 군사 작전 수를 증대시켰다. 총리의 측근인 초드리 니사르 알리 칸 내무부 장관에 따르면, 국가 안보는 ‘현저히’ 발전했다. 기동부대에 대항한 자살공격, 납치, 테러행위가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 빈도는 2001년 이래 처음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내무부 장관은 “테러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점 또한 인정했다.(1)  
대학교수와 전문가들은 테러를 발본색원하지 못하는 정책에 대해 주의를 당부했다. “이슬람교 고등교육 시설인 마드라사(코란 학습소)로만 대상을 한정 짓는 것은 오늘날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제 더 이상 마드라사는 근본주의의 전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사이드 자파르 아메드가 강조했다. 그는 ‘교육수준이 높은 집단에서 종교적 극단주의가 확대되는 것’을 우려한다. 일례로, 2015년 5월에 발생한 참혹한 테러 공격 사건을 들어 본다. 시아파 교도 아랍인 남녀 45명으로 이루어진 한 단체가 버스에서 끌어 내려져, 목덜미에 총을 맞고 살해되는 사건이 있었다. 몇 주 후 체포된 살인자 대부분이 파키스탄 최상의 산업공학학교를 졸업했거나, 명망 높은 학위 소유자이며 이슬람 국가조직(IS)에 의해 계시를 받아 권리를 주장하는,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청년들이었다. 
사이드 자파르 아메드는 “파키스탄은 지난 40년간 많이 변화했고 그 동안 근본주의 영향이 상당히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1977년에 무함마드 지아 울 하크 장성이 저지른 쿠데타가 결정적 전환점이 됐다. 2년 후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난 소비에트 전쟁의 직접적 인접국이 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따라서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국경 반대편의 ‘이교도’들에 대항해 지하드에 합류하기 위한 군사훈련을 받게 됐다. “이 전쟁에 참가했던 학생들이 이제는 대학교수가 돼 젊은이들을 교육하고 있다”라고 토시프 아메드 칸이 설명했다. 그는 “이는 현 정부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과제 중 하나다. 사고방식을 바꿔야 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극단주의를 장려하는 교육에 종지부를 찍어야하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파키스탄이 유례없이 심각한 에너지 위기를 겪고 있는 시기에, 경제적 불황과 영토 행정의 어려움은 정부의 또 다른 주요 쟁점이다. 나와즈 샤리프 총리는 국민들에게 12개월 이내로 매일 몇 시간, 때로는 종일 지속되기도 하는 단전문제 해결을 약속했다. 2년 반 후, 지속되는 시간이 줄어들긴 했으나 단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예산적자를 메우기 위해,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서 66억 달러(59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신청해야만 했다. IMF는 구제금융에 대한 조건으로 에너지와 국세 분야 재정비 계획의 채택 요구를 놓치지 않았다. 정부의 규제완화 및 투자중단 정책은 수만 명의 파키스탄 국민들을 빈곤한계선 이하의 삶으로 몰아넣었다. 이들은 이제 국민 중 35~45%를 차지한다.(2) 타리크 유수프 경제학자는,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10년간 연 6%의 성장을 해야 한다”고 계산한다. 하지만, IMF는 2015-2016년 회계연도에 4.5%의 성장률을 예상하고 있다. 이는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에서 석유가격이 하락하고 에너지 공급량이 증가하는 것을 토대로 한 예측이다. 문맹퇴치율은 하락 추세에 있다. 이는 가장 취약한 분야 중 하나다(인구의 54.7%). 우사툴라 칸 논설기자는 “우리는 초등교육을 다시 시작하기에 충분한 자원이 없다”며 유감스러워 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나와즈 샤리프 총리는 그의 임기를 채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미 정부 수장으로서 3번째 해를 넘기려 한다. 총리로서 가장 오랜 기간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글·아스라프 칸 Ashraf Khan
기자, 카라치 주재

글·김세미 sem2100@naver.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2015년 12월 30일 의회 연설
(2) 지속가능 발전 정책 위원회(Sustainable Development Policy Institute, SDPI), 이슬라마바드의 싱크탱크에 따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