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형사재판소의 편향된 그바그보 재판

2016-05-30     프란체스카 마리아 벤베누토

2016년 3월 21일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장-피에르 벰바 전 콩고민주공화국 부통령에 대해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발생한 전쟁 범죄와 반인도적 범죄를 지시한 책임을 물어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이번 선고는 ICC 출범 14년 만에 내려진 4번째 유죄판결에 불과하다. 게다가 올해 초 시작된 코트디부아르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여러 논란에 휩싸이면서, 이미 흔들리고 있는 ICC의 신뢰도에 빨간불이 켜졌다.


2016년 1월 28일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새로운 재판을 시작했다. 로랑 그바그보의 재판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것이다. 코트디부아르의 전 대통령인 로랑 그바그보는 2010-2011년 선거 후 발생한 내전 중에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청년부 장관을 지낸 샤를르 블레 구데와 함께 ICC에 출두했다. 코트디부아르 내전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은 3천 명이 넘는다.(1) ICC에게는 ‘대형 사건’인 셈이다.(2) 그바그보는 ICC 법정에 선 최초의 전직 국가수반이 됐다.
그러나 재판이 열린 지 3일이 되자 변호사들은 의뢰인 변호를 중단했다. 이어 변호사들은 현재 ICC가 편파적으로 재판을 진행하고 있으며,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감추고 있다고 주장했다. 코트디부아르 선거 후 내전에서, 그바그보의 정적이자 코트디부아르의 현 대통령인 알라산 와타라의 군대가 저지른 범죄를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감비아 출신의 파투 벤수다 검사는 이 부분을 전혀 지적하지 않고, 그바그보의 4가지 주요 혐의에만 집중했다. 2010년 12월 16일 코트디부아르 국영 방송국(RTI) 앞에서 진행된 평화행진의 무력진압, 2010년 3월 3일 아비장 북부에서 시위를 벌이던 여성 시위대에 대한 무장공격, 2011년 3월 17일 아보보 시장의 폭탄 테러, 그리고 2011년 4월 12일 아비장의 요푸공 지역에서 그바그보 지지자들이 저지른 폭력 행위가 그것이다. 
사실 이 재판의 진정한 피고인은 출범 14년을 맞는 ICC다. 코트디부아르 전 대통령의 소송 건은, 큰 희망과 기대감 속에 창설됐던 ICC의 타락한 현주소를 보여주는 확대경과 같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치인, 군사 고위층, 국가수반의 ‘비처벌에 맞선 투쟁’이라는, ICC 설립 당시의 희망은 정녕 사라질 것인가?(3) 
ICC는 각 국가의 재판소 역할을 보완하는 개념으로, 해당 국가의 정부가 재판을 거부하거나 해당 국가의 시스템이 취약해 재판을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없는 경우 등 관련국에서 재판을 할 수 없는 상황에 한해 개입한다. ICC의 이러한 보완적 특성은 종종 차별적인 요인으로도 지적된다. 결국 국제재판을 받게 되는 것은 최빈국들, 정치가 불안정한 국가들, 특히 아프리카 국가들이기 때문이다. 2015년까지 ICC의 기소대상은 모두 아프리카인들이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2016년 1월 31일 개최된 아프리카 연합 정상회의에서는 ICC 회원국의 집단 탈퇴가 논의되기도 했다. 게다가 ICC 소속 검사는 수사와 소송을 비밀리에, 그것도 주관적인 기준에 의거해 진행할 수 있다. 기소대상의 선택 과정에는 의심스러운 점들이 많다. 우선, 직간접적으로 강대국들이 연루된 국제범죄는 이제껏 단 한 번도 조사 대상에 오른 적이 없다. 
2015년 4월 1일 ICC의 회원국이 된 팔레스타인은 ICC 검사 측에 요르단 강 서안 지구의 이스라엘 점령, 2014년 가자지구 공격, 팔레스타인 포로들의 상황에 관한 문서들을 전달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들 중 어떠한 ‘상황(Situation: 사건을 뜻하는 ICC 내 은어)’도 조사되고 있지 않다. ICC 소속 국가들, 특히 영국 출신의 군인들이 2003년 이라크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 러시아, 중국은 여전히 ICC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는 범죄가 일어난 국가가 ICC 회원국이거나 범죄자가 ICC 회원국 국적이기만 해도 처벌은 가능하다.
코트디부아르 관련 재판을 계기로 ICC의 편파성을 비난하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2013년 국제사면위원회는 ‘정복자들의 법’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4) 최근에는 국제인권감시기구가 ‘와타라 측근들의 도움으로 조사를 진행 중인’ ICC를 주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5) 그렇다면 변호사 엠마뉘엘 알티가 말했듯 ‘모두가 알고 있는’ 와타라 지지자들의 범죄들에 대해 ICC 검사는 왜 침묵하는 것일까? 벤수다 검사는 특히, 그바그보를 하야시키고 당시 프랑스의 대통령이던 니콜라 사르코지와 친분이 있는 와타라를 대통령 자리에 앉히는데 프랑스군이 관여했다는 사실을 묵과했다. 결국 프랑스 군인이나 민간인 중 어느 누구도 증언대에 서지 않았다.(6) 2013년 봄, ICC의 예비 조사실에서는 그바그보 혐의에 관한 문서가 너무 부실한 것에 대해, 벤수다 검사에게 ‘추가적인 증거들’을 요청했다. 그리고 기각당하지 않으려면 서둘러 재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리기까지 했다. 변호사 알티가 이 재판을 ‘정치적 재판’이라 평하는 이유다.

그바그보의 하야에 
프랑스는 어떤 역할을?

그바그보의 하야에 대해 프랑스가 한 역할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의문점이 남아 있다. 2016년 2월 2일, 프랑스의 예심판사인 사빈 케리는 전 장관이었던 도미니크 드 빌팽, 미쉘 알리오-마리, 미쉘 바르니에의 해임 요청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이들은 법원이 2004년 부아케 수용소 테러사건 용의자인 벨라루스 출신의 외국인 용병들을 체포하려는 것에 반대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9명의 프랑스 군인이 사망했다. 그리고 프랑스 정부는 이들을 애도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이용해, ‘반격’이라는 미명 하에 코트디부아르 공군 부대를 격파했다. 그바그보 지지자들은 당시 프랑스가 그바그보를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내릴 구실을 찾고 있었다고 주장한다.(7)
벤수다 검사는 앞으로 다른 조사들도 진행될 예정이라며,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달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이 문제에 대해 ICC의 인력부족을 이유로 들었다. 조사관이 60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사실, 애매하고 모순되는 증거들이나 간접적인 경로로 입수한 정보 문서들(협회 보고서 등) 때문에 소송이 기각되는 경우가 잦다. 케냐의 프란시스 무타우라와 콩고 민병대원 마티유 느구드졸로 추이 역시 증거 불충분으로 국제재판소에 회부되지 못했다.
ICC는 본래 ‘안보 재판소’로 설립됐기 때문에 사법적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평화 유지의 임무도 있다.(8) ICC가 개입하는 사건들은 ‘인류의 평화, 안보, 복지’를 위협한다고 여겨지는 범죄들이다(ICC의 근거가 된 로마 조약의 서문). 그러나 국제인권감시기구는 지적한다. “편파적인 재판을 통해 어떻게 진정한 화해와 조정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9) 만약 그바그보가 빈약한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유죄 판결을 받는다면, 혹은 무죄 판결을 받고 아비장으로 당당하게 입성한다면, 코트디부아르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10) 여전히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남아 있다. 소송은 보통 4년이 걸린다. 이제 검사 측 증인들을 심문하는 첫 번째 단계에 와있을 뿐이다.
그러나 코트디부아르 재판 건은 ICC의 또 다른 허점을 보여준다. 바로 해당 국가들의 협조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바그보 전 대통령의 부인인 시몬 그바그보도 반인도적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2012년 2월 29일 ICC로부터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 그러나 코트디부아르 정부는 시몬 그바그보를 ICC 법정에 넘기기를 거부했다. 2016년 2월 4일 파리를 방문한 와타라 대통령은, “이제 더 이상 ICC 재판을 받는 코트디부아르 국민은 없을 것”이라 단언했다. 그러나 코트디부아르 사법기관이 그바그보 전 대통령은 처벌하지 않고 그의 부인만 처벌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전 ‘퍼스트 레이디’인 시몬 그바그보는 2015년 3월 10일 아비장 법원으로부터 ‘대정부 테러, 반란 가담, 공공질서 저해’를 이유로 징역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재판이 열리려면 피고인의 출석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ICC는 국제경찰을 동원해 피고인을 소환할 수 없다. 현재 ICC에는 관련국의 협조 부재로 인해 보류 중에 있는 ‘상황’들이 몇 가지 있다.(11) 관련국이 결정적인 문서들을 넘겨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종결될 수밖에 없었던 사건들도 있다. 반인도적 범죄로 기소된 우간다 출신의 민병대원 조세프 코니도 2004년부터 ‘행방이 묘연한 상태’이다. 케냐의 대통령 우후루 케냐타에 대한 소송은 케냐 정부가 일부 중요문서를 ICC에 제출하기를 끝까지 거부하는 바람에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되고 말았다. 수단의 대통령 오마르 알-바시르는 ICC로부터 체포영장을 두 번이나 받았지만 여전히 국정을 운영하면서 자유롭게 해외 순방을 다닌다. 2016년 3월 15일 남아공 대법원이 2015년 남아프리카를 방문한 알-바시르 대통령을 체포하지 않았다며 정부를 비난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과는 별개로, 그바그보 재판은 ICC의 전문성 부족을 드러냈다. 2016년 2월 5일, 보호 중에 있던 증인들 일부의 신원이 법원 공식채널을 통해 공개된 것이다.
기자인 스테파니 모파는 그바그보 재판이 형사재판의 정치적 도구화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각국의 정치인이나 국제적 지도자들이 ICC를 마치 조커처럼 활용한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이득이 있을 때만 내미는 외교적 카드인 셈입니다. 그바그보 사건이 그랬고, 다른 사건들도 그랬습니다. 결국, 자신이 설립되기를 바라고 자신이 후원한 기관이 힘을 잃게 되는 결과가 초래될 것입니다.”(12) 코트디부아르 재판을 통해 ICC는 이미 신용을 상당히 잃은 상태이다. 국제형사재판소의 가장 중요한 기능들 중 하나는, 범죄를 처벌하는 것을 넘어서서 범죄를 억제하고 예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목표는 국제 재판기관을 믿고 신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달성될 수 있다. 1764년 이탈리아의 법학자 체사레 베카리아는, 처벌의 확실성이야말로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썼다.
이처럼 ICC에는 단점들이 명백하게 존재한다. 하지만 작은 성과들도 분명히 있기 때문에, ICC의 미래에 대한 낙관론도 없지는 않다. 2016년 1월 26일 국제형사재판소장은 소속 검사에게 “2008년 7월 1일부터 10월 10일 사이에 남 오세티야와 조지아 인근에서 일어난 범죄들에 대해 조사할 것”을 지시했다. 아프리카 연합으로부터 ‘인종차별적 재판’을 주도하고 ‘아프리카 법원’ 역할을 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ICC가 드디어 활동범위를 아프리카 외 지역으로 확대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초기 단계일 뿐이고, 아직 어떠한 용의자도 확인되지 않았다.
설립 14년이 된 ICC는 더 이상 ‘경험 부족’이라는 방패 뒤에 숨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러나 2002년 이래 판결은 고작 3차례 있었고, 그나마도 1건은 무죄판결이었다. 법정에 출두한 18명의 용의자 가운데 6명은 면소판결을 받았다. 이처럼 초라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ICC가 매년 회원국들로부터 지원받는 금액은 1억에서 1억 3천만 유로에 달한다. 
ICC가 공정성과 신뢰도를 회복하려면, 재판과 판결에 대한 소극적 자세를 벗어던지는 방법밖에 없다. 와타라 지지자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계속 귀를 닫고 이들을 끝내 법정에 세우지 않는다면, ICC는 상징적인 국제재판소의 위치에만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글·프란체스카 마리아 벤베누토 Francesca Maria Benvenuto
비교형사법과 국제형사법 박사. 파리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번역·김소연 dec2323@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블라디미르 카놀라리, ‘코트디부아르의 성장에 드리워진 그림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5년 12월
(2) 스테파니 모파, ‘ICC에게 중요한 로랑 그바그보 재판’, <르몽드>, 2016년 1월 28일
(3) ‘국제 정의 시험대에 오른 국제형사재판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4년 2월 
(4) ‘코트디부아르, 정복자들의 법. 선거 후 내전 2년 뒤의 인권 상황’, 국제사면위원회, 2013년 2월 26일
(5) ‘정의가 힘을 발휘하려면. ICC의 코트디부아르 재판을 통해 얻은 교훈’, 국제인권감시기구, 2015년 8월 4일
(6) Cf. 로랑 그바그보&프랑수아 마테이, 진실과 정의를 위해. 코드디부아르: 프랑스 스캔들의 전말, Editions du Moment, 파리, 2014
(7) Cf. 베르나르 우댕, 와타라 지지자들. 코트디부아르의 위선, Editions du Moment, 파리, 2015
(8) Jens Ohilin, <Peace, security and prosecutorial discretion>, The Emerging Practice of the Internatinal Criminal Court, Martinus Nijhoff Publishers, 보스턴, 2009
(9) ‘우리의 평화를 공고히 하는 것. 코트디부아르 인권을 위한 아젠다’, 국제인권감시기구, 2015년 12월 8일
(10) Cf. 장-밥티스트 빌메르, 정의 없는 평화는 없는 것인가? 무력 충돌 이후 평화와 정의 간의 딜레마, Presses de Sciences Po, 파리, 2011
(11) Cf. <국제형사재판소. 정치권의 노리개인가? 국제형사재판소의 재판관 한스-페터 카울의 견해>, 2013년 11월 5일, https://www.fes.de
(12) L'Opinion.fr, 2016년 2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