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제프 로트, 성스러운 술꾼

2016-05-30     앙토니 뷔를로

오스트리아의 소설가 요제프 로트(1894~1939)는 파리 투르농 거리의 한 호텔에서 생을 마쳤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미치도록 좋아하던 두 가지, 즉 술과 글쓰기에 몰두했다. 사실 이 호텔은 거처가 없는 로트가 방황하는 가운데 머무는 곳 중 하나에 불과했다. 최근 레른(L’Herne) 출판사의 ‘카이에 시리즈’(1)는 이처럼 방랑자 같은 로트의 생애를 그린 책을 소개했다. 
로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끝부분에 위치한 갈리치아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고향을 떠나 빈으로 유학을 갔다. 그리고 군복무를 위해 빈을 떠나야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제국의 몰락이 가속화되면서 로트는 진정한 조국을 잃게 됐다. 제국이 해체돼 분리된 오스트리아에 적응할 수 없었던 로트는 점점 자신을 뿌리 잃은 존재로 느끼며, 옛 세상에 대한 그리움을 키워갔다. 이러한 상실감과 방황은 결혼생활의 파경과 정치망명 경험으로 더욱 깊어졌고, 로트는 끝없이 피폐해져 갔다.
그러나 로트는 작가로서의 본분, 즉 글쓰기에 있어서는 충실했다. 로트의 작품 속에는 도망자, 망명가, 방향을 잃어버린 병사, 과거의 추억만을 안고 사는 부적응자, 방황하는 유태인이 종종 등장한다. 특히 사라진 제국에 대한 기억이 로트에게 영감을 주어 대작 <라데츠키 행진>(1932년)을 탄생시켰다.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합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로트는 잃어버린 조국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를 다룬 <황실 묘지>(1938년)를 집필했다.
뿌리를 잃어버린 로트는 사랑, 정치, 종교 그 무엇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노마드였다. 직업 역시 노마드답게, 소설가가 되기 전에는 독일어 정기간행물의 저명한 기자로 활동해 유럽 전역을 다녔다. <여행 스케치>(2)라는 제목으로 정리된 기사들은 로트의 재능을 보여준다. 근대 르포라기보다는, 집필자의 주관적인 의견이 마음껏 담긴 자유로운 평론식의 연재소설에 가깝다. 로트는 산업화를 이룬 독일, 프랑스 중부의 ‘화이트 시티’, 1920년대 소비에트 연방의 러시아를 방문했다. 그리고 발칸반도를 지나 베니토 무솔리니가 집권하는 이탈리아에서 살다가 이제는 폴란드의 지방이 돼버린 고향 갈리치아로 돌아왔다. 로트는 장소들을 자세히 묘사하고, 이름 없는 사람들의 초상을 그리고 그들의 일상을 관찰했다. 로트는 세심한 부분에 관심을 가졌다(‘인생에서 작은 것만이 중요하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장소에 깃든 정신, 시대 분위기의 특징을 잡아 재구성했다.
소비에트 연방에서 로트는 새로운 체제가 가져다 준 발전을 본 동시에, 혁명의 침체도 파악했다. 그리고 새로운 부르주아층과 출세지향적인 관료층의 등장을 간파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역 플랫폼에서 일어난 우연한 만남을 가지고도, 파시즘의 잔혹한 광기를 생생하게 담아내는 재능을 보여주기도 했다. 로트는 어느 장소에 친근함을 느끼게 되면 감탄하고 찬양했다. 그럼에도 로트의 시선은 근심, 환멸, 조소로 가득할 때가 많았다. 로트는 ‘불안정한 세상’을 예리하게 파악했고 ‘기술’, ‘미국적인 것’, ‘키치’로 뒤덮인 새로운 세상에 안타까워했다.
친구인 슈테판 츠바이크와 마찬가지로 로트는 ‘어제의 세상’(3)을 그리워하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츠바이크가 도시의 부르주아 집안 태생으로 빈의 상류 문화를 그리워했다면 로트는 사라진 제국을 그리며 예찬했다. 우선 로트는 오리엔탈적인 감성, 슈테틀(과거 동유럽에 있던 소규모의 유대인 촌-역주)의 투박하지만 다채로운 세계에 집착했다. <빈으로 와, 기다릴게>(4)에서 나온, 물을 배달하는 늙은 유태인이 떠난 곳이 바로 이러한 세계다. 로트가 자전적인 작품 <프레즈>(5)에서 되찾으려 한 것도 바로 이러한 세계다. 하지만 문학 집필만으로는 어제의 세상을 되살려낼 수 없었다.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돼 버렸다. 그리고 등장인물 프레즈는 결국 상실감을 확인하게 된다. 이 상실감은 로스의 작품 전체에 상징적으로 사용되게 된다. ‘나의 조국은(…) 더 이상 없다(…). 이제 나는 더 이상 태어난 곳이 없고 그 어느 곳도 내 집 같은 곳이 없다.’ 


글·앙토니 뷔를로 Antony Burlaud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역서로 <술레이만 시대의 오스만 제국>(2016) 등이 있다. 


(1) Carole Ksiazenicer-Matheron, Stéphane Pesnel, <Joseph Roth>(요제프 로트), L’Herne, 파리, 2015년
(2) Joseph Roth, <Croquis de voyage>(여행 스케치), Seuil, 파리, 2016년
(3) Stefan Zweig, <Le Monde d’hier>(어제의 세계), Gallimard, 파리, 2016년
(4) Joseph Roth, <Viens à Vienne, je t’attends>(빈으로 와, 기다릴게), L’Herne, 2015년 
(5) Joseph Roth, <Fraises>(프레즈), L’Herne, 20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