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페이론의 귀환, ‘Infinite’와 ‘Indefinite’

이정우교수의 철학노트(4)

2016-05-30     이정우
 
때로 단 하나의 개념이, 한 문화의 성격과 그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곤 한다. ‘아페이론’이 그 좋은 예다. ‘아페이론’은 서양철학의 역사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했고, 오늘날까지도 많은 함축을 던져주고 있는 개념이다. 서양 철학사를 공부해 본 사람은 그 첫 대목에서 자연철학자들을 접했을 것이고, 그때 이 개념을 접했을 것이다. 아마도 ‘아페이론’은 철학사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 본 사람들이 맨 처음 부딪치는 난해한 개념이 아닐까 싶다. 이 개념은 헬라스 철학사의 도처에서 등장하거니와 특히 아낙시만드로스의 철학과 유명한 ‘제논의 역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규정된 것, 
무-한정적인 것으로서의 아페이론
 
“만물의 근원(‘아르케’)은 물”이라는 탈레스의 주장에 아낙시만드로스는 의혹을 품었다. “물이 근원이라고? 물과 불은 쌍벽을 이루는데? 그리고 공기, 흙도 그 위상이 만만치 않지 않은가? 이것들은 거의 대등한 존재론적 위상(Ontological status)을 가지는데, 왜 물만 만물의 근원일까?”
여기에서 우리는 이후 수천 년의 세월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될, 존재론적 사유들이 격돌하는 최초의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만물의 근원’이라는 엄청난 존재론적 위상을 가지려면, 우리가 현상세계에서 확인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만물의 근원이 바로 저렇게 눈에 보이는 것일 리는 없다. 더구나 그것과 위상이 거의 대등한 것들이 존재한다면, 그 중 하나가 만물의 근원이라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따라서 만물의 근원은 지금 우리가 경험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들보다 더 심층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물, 불, 공기, 흙 등은 바로 이 심층적 존재의 현실태일 뿐이어야 할 것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이런 추론을 통해서 아페이론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아페이론’은 ‘페라스가 없는 것’이라는 뜻이며, ‘페라스’란 ‘경계(Boundary)’를 뜻한다. 따라서 아낙시만드로스의 생각은 만물의 근원은 페라스가 없는 어떤 것, 즉 아페이론이며, 만물은 바로 이 아페이론이 일정한 한계 및 경계를 가짐으로써 성립한다는 것이었다. 집이라든가 마을, 도시 등은 공간이라는 아페이론에 일정한 경계를 도입함으로써 ‘하나의’ 집, 마을, 도시 등이 된다. 하나의 멜로디는 소리-연속체로서의 아페이론에 일정한 경계들 즉 음정을 도입함으로써 멜로디로서 성립한다. 기타 줄의 특정 부분들을 눌러, 즉 페라스들을 부여해 화음을 만들어내는 것을 예로 생각할 수 있다.
하나의 옷은 천이라는 아페이론을 일정하게 마름질함으로써 옷이 된다. 이런 생각을 존재론적 지평으로 확대해서 생각해 보자. 이 세계는 바로 근원으로서의 아페이론에 숱한 일정한 경계들/한계들이 부여됨으로써, 달리 말해(‘부여된다’는 표현은 어떤 외적인 작인을 연상시키므로) 이 아페이론이 자발적으로 일정한 경계들/한계들을 가짐으로써 생겨난 것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서 이후 사유의 역사를 지속적으로 이끌 핵심적인 하나의 철학소(哲學素)가 등장하게 된다. “이 세계의 질서는 한정되지 않은 바탕에 일정한 한정이 가해짐으로써 생겨난다”는 것이 그것이다. 즉, 미-규정(Un-determination)이 규정(Determination)에 의해 극복돼야 비로소 질서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이 한정하는 것을 바로 ‘수(數)’라고 보았다. 질료형상설 역시 질료라는 터에 형상이 질서를 부여하는 구도로 돼 있다(이런 경우들에서는 근원의 위치가 반대로 돼 있지만). 동북아에서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 역시 이런 구도로 돼 있음을 간파해낼 수 있을 것이다.
아페이론은 또한 제논의 파라-독사에서도 핵심적이다. 제논의 논리에서 아킬레우스가 먼저 떠난 거북을 추월하지 못하는 이유는 제논이 이 과정을 공간 속에 투영해서 하나의 선분 상에 놓고서 논리를 전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분을 놓고서 논리를 전개하는 순간, 거기에서 작동하게 되는 것은 곧 연속성의 논리이다. 선분이 연속적이기에(‘실수의 연속성’을 상기하자) ‘무한 분할’이 등장하게 된다. 이때의 무한은 즉자적인(단적으로 주어진) ‘현실적 무한’이 아니라(이 개념은 중세 철학의 고안물이다), 어떤 과정이 끝이 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의 ‘잠재적 무한’이다. 이 잠재적 무한은 ‘Infinite(무한)’의 뉘앙스보다는 오히려 ‘Indefinite(무한정)’의 뉘앙스를 띤다고 할 수 있고, 이때의 ‘페라스 없음’은 ‘Unlimited’(‘끝’으로서의 ‘Limit’가 없음)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아페이론은 ‘미-규정의’, ‘(잠재적으로) 무한한’, ‘무한정한’, ‘끝이 없는’의 뜻으로 이해됐다. 그리고 아낙시만드로스의 경우 이 개념에는 ‘만물의 근원’이라는 의미가 부여됐지만, 그 후 대개의 경우는 어떤 부정적인 것, 페라스가 부여돼 극복돼야 하는 것, 질서와 조화로써 다스려져야 하는 것, 파괴적인 것, 혼돈스러운 것, 당황스러운 것이라는 뉘앙스가 부여된다. 결국 아페이론과 페라스 개념 쌍은 혼돈과 질서라는 일상어가 철학의 전문 용어로 승화된 것이라 이해할 수 있겠다. 서양 철학사에서 아페이론은 늘 페라스를 가짐으로써 극복돼야 할 무엇이었다. 
 
아페이론의 여정
 
그리스인들은 대체적으로 아페이론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이후 이 개념은 매우 복잡한 여정을 거치면서 여러 새로운 뉘앙스들을 부여받는다. 이 개념의 두 가지 뜻인 ‘Infinite’와 ‘Indefinite’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고, ‘Infinite’는 ‘무-한정’의 뜻과 ‘비-한정’의 뜻으로 분화된다. 무한정은 끝이 없이 이어진다는 ‘Unlimited’를 뜻하고, 비한정은 정해지지 않았다,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는 ‘Undetermined’를 뜻한다. 공간과 시간은 무한정하고(어떤 사람들은 한정돼 있다고 보기도 하지만), 지구에서의 생명체들의 수는 무한정하지는 않지만 비한정적이다(늘기도 하고 줄기도 하는 등 계속 변하고 있으므로).
아페이론이 이후 걸어간 역사는 무한보다는 무한정/비한정을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 그리스 철학에서 아페이론은 무한정의 뉘앙스를 띠었고, ‘무한’을 논한다 해도 그것은 잠재적 무한(사실상 무한정)의 개념이었다. 무한을 무한 자체로서 중시하기 시작한 것은 서양 중세 철학의 전통이었다. 중세에 이르러 무한 자체, 즉자적 무한, 현실적 무한의 개념이 등장하기에 이른다. 짐작이 가겠지만, 그 계기는 신의 개념에 있었다. 신은 무한한 존재, 단지 끝나지 않는 과정의 무한 즉 무-한정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주어진, 즉자적인 무한이다. 그리고 신이 창조해낸 이 세계는 유한이다. 이로써 ‘유한과 무한’이라는 문제-틀이 만들어지며, 이런 구도는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를 비롯한 17세기 형이상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지속된다. 17세기 유럽의 형이상학은 흔히 ‘무한의 형이상학’이라 불린다.
그러나 이후 무한 개념은 철학에서 점차 희미해진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는 18세기 이래 형이상학이 거부되고 경험주의 인식론이 철학의 중심에 들어서게 되기 때문이다. 20세기에 들어와 베르그송과 하이데거에 의해 새로운 형태의 형이상학/존재론이 시작된 이후에도 무한 개념은 그다지 적극적인 사유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경험주의 전통은 점차 세련화된다. 근현대 철학의 흐름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유의미한 성과들 중 하나가 바로 경험주의의 세련화라 할 것이다. 경험을 ‘지각’으로 이해했던 영국 경험론과 칸트로부터 헤겔, 마르크스, 딜타이 등의 역사적 경험의 개념화, 현상학의 경험/의미 분석, 베르그송·제임스·화이트헤드·니시다 기타로의 경험적 사유 등을 거쳐 들뢰즈 이래의 ‘성숙한 경험론’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이 과정에서, 악무한과 진무한에 대한 헤겔의 사유라든가 레비나스의 무한론 등 일부 경우들을 예외로 한다면, 무한의 문제가 철학의 변두리로 밀려난 것 또한 사실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수학에서는 무한이 근대 철학사 내내 주인공의 역할을 했다. 사실 근현대수학사에서 아페이론은 무한으로서도 또 무한정으로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우선 근대수학을 발전시킨 원동력들 중 하나는, 무한정으로서의 아페이론에 대한 사유이다. √2의 존재가 (전설적인 이야기이지만) 한 수학자를 죽음으로까지 몰아갔던 고대, 아페이론이 매우 두려운 무엇이었던 고대 ― 그래서 이 수에는 ‘무리수(이치에 닿지 않는, 즉 ‘로고스’가 없는 수)’라는 이름이 붙었다 ― 와는 천양지차다. 근대에 이르러, 특히 라이프니츠 이래 무한정으로서의 아페이론의 사유, 즉 연속성의 사유는 궤도에 오르게 된다.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라이프니츠는 철학의 맥락에서 ‘연속성의 원리’를 정립했다. 그의 형이상학의 근저에는 늘 이 연속성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다. 수학자로서는 무한소미분(Calcul infinitésimal)을 발명했다. 
그리고 이 두 얼굴은 심층에서 연결돼 있다. 이후 이 사유는 급수, 수열, 극한, … 의 개념들을 통해서 점차 발전했다. 그리고 오늘날 청소년들이 ‘미적분’이라는 이름 하에서 공부하고 있는, 더 넓게는 ‘해석학(analysis)’이라는 이름을 가진 현대수학의 핵심 분야로서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의 심층에서 무한정 개념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무한으로서의 아페이론 역시 중요한, 아니 ‘말썽 많은’ 역할을 하게 된다. 집합론의 창시자인 칸토어는 무한 개념에 매료됐으며, 무한에 대한 거의 광기어린 형이상학을 전개했다.
그러나 수학에서도 무한/무한정은 꼭 달가운 대상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해석학과 집합론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었으나 명석·판명함을 생명으로 하는 수학에서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의 대상이었다. 예컨대 오일러 이래 수학자들(볼차노, 코시, 바이어스트라스 등)의 노력은 연속성의 엄밀한 정의에 쏟아졌다. 그 궁극의 목표는 무한/무한정 개념을 제거한 수준에서의 연속성의 정의였다. 칸토어의 무한론 역시 경계의 대상이었다. 어떤 수학자들은 “리만, 데데킨트, 칸토어가 수학을 망쳤다”고 했는데(여기에 디리클레를 첨가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맥락들이 있다. 그리고 이 세 인물 모두 무한/무한정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진 인물들이었다는 점은 시사적이다. 결국 수학에서도, 오늘날 이른바 ‘비주류 해석학’ 등 예외적인 경우들도 있지만, 아페이론은 궁극적으로는 제거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아페이론의 귀환
 
그러나 적어도 무한정 또는 비-한정으로서의 아페이론은 현대 사상, 아니 현대 문명 전반에서 심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예술의 영역에서 이 점을 찾아보자.
미술의 경우,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경우라 할 인상파 회화를 떠올려 보자. 만일 르네상스 화가들을 비롯한 고전적인 화가들에게 인상파 그림들을 보여준다면 그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아마 “이 그림은 왜 마무리를 하지 않았지?”하고 의문을 표하지 않을까? <파라솔을 든 여인>(1886)을 비롯한 인상파 회화들이 보여주는 가장 현상적인 특징은 대상들의 윤곽이 뚜렷하지가 않다는 점이다. 예전의 화가들에게 이 그림들은 ‘아직 마무리를 하지 않은 그림’들로 보이지 않을까? 다시 말해, 이 그림들에 등장하는 대상들은 ‘한정된(Definite)’ 대상들이 아니라 비-한정된(Indefinite) 대상들이라 할 수 있다. 이 비-한정성은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이 공간의 그림이 아니라 시간의 그림이기 때문이다. 회화란 공간의 예술이지만, 역설적으로 인상파의 그림들은 시간을 그리고 있다. 그 결과 이 그림들의 화면은 공간적으로 매끈하게 한정된 대상들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흐름으로써 비-한정적으로 나타나는 대상들을 보여주고 있다.
미술사는 인상파 회화에 이르러 특히 연작(連作)들을 양산해냈다. 왜 인상파 회화는 연작이라는 구도를 필요로 했을까? 왜 모네는 루앙성당을 두고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그림들을 그려야 했을까? 인상파가 그리고자 했던 것은 사물들의 본질이 아니라 그 생성이었고, 때문에 모네는 시간 속에서 계속 변해 가는 루앙성당의 모습들을 그린 것이다. 이 점에서 인상파 회화에 있어 연작들의 구도 그 자체도 비-한정적이라 할 수 있다. 하나의 모범답안은 존재하지 않고 여러 시간에서의 답안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만일 어떤 화가가 한 대상을 거의 매순간 초인적인 속도로 그릴 수 있다면, 마치 실수의 선분을 자연수에서 출발해 점차 메워나가듯이, 그는 무한정한 그림들을 그려야 할 것이다. 이때 그 연작은 연속적 변화의 재현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유사한 변화를 음악에서도 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음악에서 중요했던 것은 의미 있는 소리와 의미 없는 소리의 구분이었다. 수에 비유할 경우, 자연수만 의미 있는 수였고 다른 수들(1과 2 사이의 수들, 2와 3 사이의 수들)은 의미가 없었던 것과 같았다. 이 ‘의미 없는 부분들’이 바로 아페이론이었다. 그러나 수론이 발달하면서 자연수는 분수로 확대되고, 다시 정수로, 유리수로 확대됐으며, 마침내 이치에 닿지 않아서 ‘무리(無理)’하다고 했던 수들로까지 확대됐다. 아페이론이 정복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음악에도 ‘의미 있는 소리’의 영역은 점차 확대됐다. 쇤베르크 이래의 ‘무조(無調)’ 음악은 과거에 ‘조(調)’가 없는 것으로 취급됐던 소리들을 음악의 영역으로 끌어들였으며, 이후 메시앙, 불레즈, 케이지 등을 거치면서 이른바 반(反)음악에 이르기까지 음악의 영역은 끝없이 넓혀졌다. 과거에 의미 있는 소리들 사이의 공백은 아페이론에 불과했으나, 이제 오히려 모든 의미 있는 소리들은 무의미한(그러나 잠재적으로 의미 있는) 소리들의 바다 ― 소리의 아페이론 ― 에 떠있는 섬들과 같은 것들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소리는 비-소리(그러나 잠재적인 소리)의 장에서 펴내어진 것이 된 것이다. 미술에서나 음악에서나 우리는 아페이론의 귀환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두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문화예술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는 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만일 현대 예술의 거의 무한정한 다양성을 ‘일이관지’할 수 있는 어떤 존재론적 원리가 있다면, 그것은 곧 아페이론의 원리일 것이다.
아페이론의 귀환은 예술 영역에서만 확인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의 영역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과거의 사회는 ‘사농공상’으로 분절돼 있었다. 음악에서 의미 있는 소리와 의미 없는 소리가 구분됐듯이, 이 분절체계 즉 ‘한정된’ 체계는 그 한정에 속하는 것들과 속하지 않는 것들을 구분했다. 후자는 물리적으로는 사회 안에 존재했지만 사회적으로는 그것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정치는 사회 ― 근대 이전에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사회’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 라는 아페이론을 어떤 주물로 찍어서 일정한 모양새로 구성하는 것이었다. 정치는 굵직한 분절선들과 집단들을 통해서 움직였으며, 그것들 사이의 무정형한(Amorphous) 흐름들은 무시됐다. 현대 대중사회의 도래는 정치의 세계를 대중 각인(各人)의 욕망의 흐름으로 만들었다. 정치적 힘이 행사되는 단위가 (사회적 맥락에서는 최하의 단위인) 개인으로까지 내려감으로써, 마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모자이크로의 이행처럼, 정치적 힘이 세분된 입자들의 와류로 화한 것이다. 정치적 틀은 이런 대중의 ‘욕망의 모자이크’가 만들어내는 결과로서 구성되기에 이른다. 이런 구성은 어떤 틀에 의한 구성이 아니라, 복잡계 과학에서의 창발처럼 아래로부터 자연발생적으로(Spontaneously) 형성되는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상향적 구성의 결과가 물론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쨌든 현대에 이르러 좋은 정치의 존재론적 조건이 마련됐다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아페이론은 현대 사회와 정치의 근저에서도 활기차게 작동하고 있다. 
 
아페이론의 존재론
 
현대 사유에서 우리가 ‘아페이론의 존재론’이라고 불러 볼 만한 사유를 확고하게 정립한 인물은 앙리 베르그송이다. 그러나 이 사유의 기초 형태는 라이프니츠에 의해 잡혔다고 해야 할 것이다.
라이프니츠의 수학(무한소미분)과 형이상학(모나드론)은 서로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둘 모두 기본적으로 ‘연속체(continuum)’를 다룬다고 할 수 있다. 전자는 “연속(적 변화)의 수학”인 해석학의 시조가 됐고, 후자는 연속성의 철학의 시조가 됐다. 
라이프니츠의 모나드 개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각 모나드는 연속체이되 ‘질적 연속체’라는 점이다. 즉, 매순간 질적 변화를 겪는 연속체라는 뜻이다. 이 점에서 수학적 연속체와 형이상학적 연속체는 전혀 다르다. 제갈량의 모나드는 ‘융중에서 유비를 만나다’, ‘적벽대전에서 빛나는 외교적 성과를 거두다’, ‘백제성에서 유비의 탁고(託孤)를 받다’, ‘오장원에서 숨을 거두다’ 등의 사건들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융중에서 유비를 만나다’와 ‘적벽대전에서 빛나는 외교적 성과를 거두다’라는 두 사건 사이에도 다시 많은 사건들이 존재한다. 이렇게 계속 생각해 본다면 하나의 모나드는 무한정한 사건들로 구성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제논의 역설을 생각해 보면, 우리가 밥을 떠서 입에 넣는 하나의 사건을 행할 때조차도, 그 사이에서 무한정한 사건들을 분절해 볼 수 있다. 결국 하나의 모나드는 무한정한 질적 차이들로 구성돼 있다고 할 수 있다. 라이프니츠의 세계는 이런 질적 연속체들 즉 모나드들의 총체이다.
베르그송의 존재론은 라이프니츠의 연속체에 운동성과 창조성을 가미함으로써 성립한다. 베르그송이 세계의 실재로 본 ‘지속’은 연속적 시간, 즉 분할되고 계산되는 물리적인 시간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연속적인/흐르는 시간이다. 베르그송의 연속성/지속은 공간에 투사돼 분석되는 ‘공간화된 시간’이 아니라 절대적 흐름으로서의 시간, 공간에 투사될 수도 없고 수학적/논리적으로 분석될 수도 없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라이프니츠의 연속체의 경우, 여기에서도 시간은 일차적인 것이 아니다. 연속체는 빈위들(Attributes)/사건들로 분석되고, 시간이란 각각의 빈위들/사건들에 붙는 일종의 지표에 불과하다. 라이프니츠에게 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히려 빈위들/사건들의 순서(또는 이웃관계)이다. 그러나 베르그송에게 근본 실재는 사물도 사건도 아니다. 지속으로서의 시간이야말로 실재이다.
나아가 지속은 질적 연속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질적 연속체(베르그송의 표현으로는 다양체)는 라이프니츠에게서처럼 분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질들은 상호 침투의 방식으로 연속돼 있고, 그 어디에서 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라이프니츠의 경우에도 질들(빈위들, 사건들)은 분할될 수 없는 연속체를 형성하지만, 라이프니츠는 이 연속체에 ‘논리적 분석’이라는 합리주의적 방식으로 접근한다. 반면 베르그송은 질적 연속체의 흐름은 결코 분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분석할 수 있지만 분석되는 순간 그 본성이 변해버리며), 공간에 투사해서 분절하고 기호화할 수 없는 것임을 역설한다. 우리는 지속을 오로지 ‘직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베르그송과 라이프니츠의 결정적인 차이는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는 애초에 결정돼 있는데 비해 베르그송의 지속은 절대적 창조를 머금은 절대 생성이라는 점이다. 베르그송은 세계가 결정돼 있다는 신념을 한평생 다각도로 비판했으며, 세계의 본질은 창조 ― 어떤 초월자의 창조나 어떤 요소들의 새로운 조합이 아니라 절대적인 창조 ― 에 있다고, 과거의 새로운 조합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새로운 것들의 출현이 세계의 본질이라고 역설했다. 사실 이 대목에서 베르그송의 사유는 심각한 아포리아에 빠지는데, 세계가 근원적으로 연속적이라는 테제와 그 본질에서 절대적 창조를 담고 있는 존재라는 테제가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가 하는 아포리아이다. 
어쨌든 라이프니츠에서 베르그송에 이르기까지, 그 후에는 들뢰즈에 이르기까지(베르그송과 들뢰즈 사이에도 중요한 차이들이 있다) 전개된 존재론은 아페이론 개념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은 철학들이라고 할 수 있다. 들뢰즈의 철학적 유언이 “카오스에서 뇌로”라는 점은 시사적이다. 조심할 것은 이런 아페이론의 철학들이 개체들이나 합리적 분석/분할, 공간화 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무엇인가를 ‘부정’하는 철학에서는 어떤 창조적인 것도 나오지 않는다. 그것을 새롭게 정초해 주는 철학이 의미 있는 철학이다) 오히려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아페이론이라는 근원으로부터 마름질돼 나오는 것, 아페이론이라는 터에서 볼 때 이런 행위들도 더 잘 보인다는 점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글·이정우
1959년에 영동에서 태어나 서울대에서 공학, 미학, 철학을 공부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연구로 석사학위를, 미셸 푸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최초의 대안철학학교인 철학아카데미를 창설해 시민들을 위한 철학, 인문학 강좌를 열었다. 소운서원을 열어 연구와 후학 양성을 해오고 있으며, 최근에는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양학부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최초의 대학 내 대안공간인 파이데이아 홍릉을 창설해 대학의 시민교육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저서로는 <소운 이정우 저작집(전5권)>, <천 하나의 고원>, <진보의 새로운 조건들>, <세계철학사 1>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