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국익 앞에 무너지는 꿈과 원칙

[Spécial] 오바마 1년 대외정책

2010-01-06     마이클 클레어

 대화·설득 통한 평화·화해·공존 목표로 현실과 절충
“적은 투자로 큰 효과”…실용 노선 앞에 원칙 흔들

코펜하겐에서 돌아오자마자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환경문제에 관한 기후 정상회담의 결과를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그 성과란 각 참가국이, 아니 거의 모든 참가국이 합의했다고는 하지만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결과였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팔레스타인 영토 내 이스라엘 식민지 정착촌 건설, 온두라스의 상황 등과 같은 또 다른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백악관은 실천에 옮겨 설득력을 갖기보다는 새로운 대외정책을 장황하게 떠들기만 하는 듯하다. “우리는 수평적이고 다극화된 세계에서 어떻게 이끌고 나갈지 배워야 한다”고 몇 달 전 미국 국무부는 새로운 정책 기조를 설명했다. 오바마를 평가하기에는 아직 더 지켜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최근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에서 버락 오바마만큼 대외정책에 관해 야심찬 목표를 세우고 취임한 대통령은 드물다. 2009년 1월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평판이 땅에 떨어진 시점에 취임한 오바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 서방세계와 이슬람권 의 화해 등 광범위한 분야의 무수한 문제들을 타개해 미국의 위신을 회복하길 원했다. 그도 성에 차지 않는 듯 전임 조지 부시 행정부는 거의 무관심했던 빈곤과 기후변화 같은 문제들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원문 보기>>

오바마를 지지한 수많은 이들은 그가 임기 첫해에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상당한 진전을 이룰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리고 곧 크게 실망했다. 이는 지지자들이 그에게 다소 지나친 기대를 품기도 했지만 오바마의 기질과 그가 운신할 수 있는 여건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오바마는 요란한 행보를 절제하는 체계적이고 실용적인 지도자이다. 현재 미국이 가진 힘의 한계(최근의 역대 대통령들이 맞닥뜨린 한계보다 더욱 심각한)를 잘 알고 있기에 오바마는 이미 극도로 약해진 국력을 또다시 시험대에 올리는 시도를 피하려 한다.

 

큰 기조는 ‘미국의 쇠락 막기’
오바마 행정부의 첫해를 결산하려면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 누구도 취임하자마자 지금과 같은 미국의 쇠퇴와 직면한 적이 없었음을 상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8년 전 조지 부시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미국의 경제는 튼튼했고, 군사력은 외견상 압도적으로 강력했으며, 미국에 대적할 만한 경쟁자는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부러움을 샀던 조건들은 하나둘 사라졌다. 2001년 9·11 테러 후 미국이 전세계로부터 얻었던 폭발적인 동조는 조지 부시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으로 산산이 부서졌다. 더 나아가 미국의 개입이 장기화되면서 이들 전쟁은 비싼 대가를 치른 실패작이 되었고, 미국의 도덕성도 깎아내렸다. 이 와중에 미 행정부는 금융규제를 무시하고 불합리한 방식으로 대출을 급증시키면서 경제위기를 야기했다.

‘미국의 쇠락을 막는다.’ 이것이 오바마 행정부가 택한 대외정책의 기조다. 그것은 ‘좀더 적은 수단으로 좀더 많은 이익을 실현하는 것’을 의미하며, 대통령과 그의 내각팀은 반복적으로 이런 방침을 표방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 이들은 강요보다는 설득을, 대결보다는 대화를, 강경함보다는 타협을, 대대적인 변화보다는 점진적 변화를 지향해왔다.

이런 기조는 구체적으로, 핵무기 감축에 대한 러시아의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과 이란의 핵 개발에 더욱 급진적 태도를 표현하는 데서 엿볼 수 있다. 오바마는 부시가 취했던 접근 방식인 분노와 협박으로는 러시아 정부의 동의를 얻을 수 없음을 알고 폴란드 내 미사일 요격기 시설 설치 계획을 취소하라는 러시아의 오랜 요구를 수용했다. 시리아-이란 간 동맹을 약화시키고 이스라엘과 지역 평화협상을 재개하기 위해 시리아와 외교관계를 회복하려고 시도한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오바마는 오슬로에서 한 노벨평화상 수락 연설에서 (지금까지의 미국 대통령들처럼) 미국 이익의 근간이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언제든 군사력을 동원할 수 있다고 분명히 선포했다. 이는 한시적이라고 밝히긴 했지만 아프가니스탄에 군사를 추가 파병하고, 알카에다 조직을 추적하고 지휘자들을 살해하기 위해 파키스탄에 소형 무인정찰기 투입을 늘린 데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동시에 오바마는 “우리는 군사력에만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다. 미국은 단지 전쟁을 선포하는 것뿐 아니라 분쟁에 종지부를 찍고 이를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 미국의 힘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런 관점은 오바마가 백악관 입성 전부터 전략적 계획안 수립에 착수해 내각 초기 몇 달 동안 신중히 계획을 진행시켜왔음을 보여준다. 오바마는 전략을 수립하고 대외정책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할 때 이념보다는 ‘실용주의’와 ‘유연성’을 강조하는 저명인사들을 선택했다.(1) 이 조언자들은 미국의 이익을 최적화하면서도 국력의 한계를 고려한 전략을 대통령에게 주문했다.

 

유연성 강조하는 실용론자 중용
이런 접근 방식은 지난 4월 워싱턴에서 이틀간 열린 미국 전략의 새로운 관점에 대한 특별 심포지엄에서 완전한 틀을 갖추었다. 미국 국방대학교의 국가안보전략연구소(INSS)가 주관한 이 회의에서 국방부 정책차관 미셸 플러노이, 국무부 부장관 제임스 스타인버그, 국무부 정책기획국장 마리 슬로터 같은 참모진들의 발표가 이어졌다.(2) 회의를 통해 근본적인 개념이 도출되었다. 미국은 더 이상 예전처럼 확고부동한 우위를 점할 수 없는 국제 조류에 적응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근본적인 조류의 변화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행할 수 있는 것들과 우리가 적응해야만 하는 것들을 구분해야만 한다”고 어느 관록 있는 관료는 설명했다. 그는 예를 들어 중국과 인도의 부상에 대해 이렇게 고백했다. “우리는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 중국과 인도의 성장을 늦출 마땅한 방안은 없다.” 대신에 미 행정부는 저개발, 기후변화, 경제 위기 등 국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이 나라들을 규합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국익 앞에 너무나 실용적
미 국무장관인 힐러리 클린턴은 이러한 방식을 ‘스마트 파워’라고 설명한다. 즉 “경제력과 군사력, 실행하고 혁신하는 힘, 신임 대통령 및 내각팀의 능력과 신뢰성까지 포함해 우리가 보유한 모든 수단을 신중히 이용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3)

그러나 비핵화, 중동 평화, 빈곤 퇴치 등 오바마가 우려를 표한 분야에서 실제 진전을 이루기에는 오바마가 너무 실용적이다. 그는 미국의 근본적 ‘국익’을 무시할 수 없고 핵심 지지 기반을 잃지 않으려 한다.

사실 어느 때라도 아프가니스탄의 민주화 회복과 주민들의 삶의 질 개선을 거론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문제는 이제  미국의 영향력이 미치기 어려운 듯하고, 미국이 감당해야 할 몫도 아니다. 따라서 오바마는 미국의 선택은 둘 중 하나라는 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즉 가능성이 큰 탈레반의 승리를 좌시하느냐, 아니면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에게 만회할 기회를 다시 주느냐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승리한다면 파키스탄의 탈레반 무장 세력들을 더욱 고무시키게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는 파키스탄 내 혼란을 더욱 가중했을 것이다.

이란의 상황도 역시 험난한 도전이다. 오바마가 선호하는 방안은 명료하다. 협상을 통해 이란의 핵 개발 분쟁을 타개할 방안을 구상하는 것이며, 이는 대결이 아닌 대화의 효율성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확인시켜줄 것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그는 이란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려고 노력하면서 협상이 실패할 경우 제재가 필요하다고 러시아를 설득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협상이 진전을 이룰 때까지 모든 군사 행동을 자제하도록 이스라엘을 설득한 사실이다. 그러나 무력을 시험해볼 가능성도 있다.(4) 그렇게 되면 좀더 강경한 대이란 제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가 이란을 설득할 가능성은 낮기에 다시 군사력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반발 부딪히면 곧바로 포기
러시아와 관련해 오바마 대통령은 비핵화와 이란과의 싸움에 유리한 관계를 수립할 방안을 모색 중이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는 러시아 대통령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의 신뢰를 얻으려 노력했고, 전임자 블라디미르 푸틴을 ‘사안을 다루는 데 구시대적인 방식’을 고집한다고 폄하하면서(5) 메드베데프가 과거 냉전의 구습을 깬 것을 환영했다. 일련의 양자 회담을 통해 오바마는 양쪽 핵무기 보유량을 상당량 감축하는 데 메드베데프의 지지를 얻었으며, 필요시 대이란 제재를 실행한다는 약속도 받아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옛 소련 연방 국가들과 러시아의 관계 악화는 미국과도 마찰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과 관련해 오바마는 미국이 운신할 자유를 유지하면서도 신흥 초강대국 지위를 고려한 새로운 관계의 틀을 수립하고자 했다. 대만과 관련된 위기를 피하고 지구온난화와 이란 및 북한의 핵 확산과 같은 문제들에 대해 중국의 협조를 보장하려면 이러한 새로운 관계의 틀이 필요하다. 그러나 성장가도를 달리는 중국의 경제력에 대한 우려(미국 내에서 상당히 우려하는)를 생각해볼 때 이는 매우 도전적인 계획이다.

오바마의 접근법은 특히 2009년 11월 중국 방문 당시 뚜렷이 나타났다. 많은 미국인들이 실망을 표출했는데, 오바마가 티베트인의 인권유린과 인위적인 위안화 절하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과 그는 11월 17일 양국의 미래 관계에 대한 원칙을 선언했다. 이는 오바마가 희망한 장기적 협력관계의 틀을 제공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협력 기반은 점차 확대되고 있으며, 전세계의 안정 및 번영과 관련된 핵심적인 여러 사안들에 대한 공동의 책임도 점차 커지고 있다.”

오바마는 가능하다면 어느 곳에서든 국제관계 개선을 위해 그의 비전을 갖고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그에 대해 외국이나 자국 내에서 강한 반발이 일어날 때는 지체 없이 그 제안을 포기했다. 남미에서 그의 정책은 조지 부시의 정책과 하등 다를 바 없다.  이스라엘의 요르단 서안 신정착촌 건설을 중단시키려는 의지도 강경한 저항에 부딪히자 바로 접었다. <<원문 보기>>

글• 마이클 클레어 Michael Klare
미국의 군사·안보 전문가. 햄프셔대 교수로, 여러 대학에서 국제 안보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석유와 관련된 책을 여러 권 냈다. 주요 저서로 <자원전쟁들, 지구촌 분쟁의 새 지평>(2002), <피와 석유, 미국의 늘어나는 수입석유 의존도가 지닌 위험들>(2005) 등이 있다. 국내에 그의 저서 <자원의 지배>(김태유 옮김·세종연구원 펴냄·2002)가 소개된 바 있다.

번역• 박지현 sophile@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국제단체 남극보호연합(ASOC) 한국지부 담당관. 주요 역서로 <녹색희망>등이 있다.

<각주>
(1)이는 어쨌든 상대적이다. 힐러리 클린턴은 ‘남미’에 대한 조언자로 존 네그로폰테의 자문을 받고 있다. 이 사람은 니카라과에 대한 게릴라 전쟁 당시 주온두라스 대사로, 사담 후세인의 죽음 이후로는 주이라크 대사로 재직했다. 이어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되었다. 그는 최근 일어난 온두라스 내 쿠데타와 뒤이어 치러진 선거로 수립된 온두라스 괴뢰정부를 정당화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
(2)4월 7~8일 개최된 심포지엄 후 국가안보전략연구소(INSS)의 보고서 <세계 전략 평가 2009>가 발간되었다.
(3)힐러리 클린턴, ‘미국외교협회 대외정책 연설’, 워싱턴, 2009년 6월 15일, www.state.gov.
(4)Gareth Porter, ‘이란과의 협상 내막’,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12월호 참조.
(5) <뉴욕타임스> 2009년 6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