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개혁, 불타는 디트로이트

[Spécial] 오바마 1년 경제

2010-01-06     알랑 포플라르•폴 바니에

세계 자동차의 메카였던 디트로이트가 쇠퇴를 거듭하고 있다. 일자리가 급감하면서  주민들은 떠나고, 여기저기 집들이 덩그러니 흉가로 변해 있다. 그럼에도 이곳에 사는 대부분의 흑인 거주자들은 자신이 뽑은 시장에게 신뢰를 보내면서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보험금 받으려 집 방화…인구 절반 떠나
블랙파워 간데 없고 자동차와 함께 추락

“냄새가 나죠? 이 냄새 느껴지세요?” 데이브, 나이는 30대. 디트로이트의 빈민촌 한가운데에 살고 있다. 세븐마일스 로드. 이 빈민촌은 빌딩들이 솟아 있는 ‘다운타운’과 시 경계를 따라 형성된 부유한 ‘교외지역’ 사이를 너비 10km 정도의 긴 띠 모양으로 가로지르고 있다. 데이브의 집 건너편에 화재로 소실된 집 다섯 채의 흔적이 보인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사람이 살고 있던 집이다. <<원문 보기>>

“오늘 밤에도 집 한 채가 또 불탔어요. 요즘 일주일에 거의 한 채씩 집이 불타 없어집니다. 보험료를 받아 부유한 변두리로 이사가려고 일부러 불을 지르는 거예요. 이제 이 동네에서 아무도 살려고 하지 않아요.”
 
흑인 빈민촌, 거대한 황무지로
디트로이트의 게토는 이렇게 조금씩 불타 없어지고 있다. 동네가 조각조각 해체되고 있다. 몇몇 블록(1)에는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 두세 채밖에 남지 않았다. 동네 전체가 무너지고 있다. 불타서 뼈대만 남은 건물, 버려진 주차장, 폐쇄된 공장들. 동네 전체가 거대한 황무지처럼 보인다. 폐허만 남은 지평선 너머로 풀과 나무들이 무너진 집의 형해를 뒤덮고 있다. 도시가 해체되면서 인구밀도도 시골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 들판에 닭들이 뛰어다니고 귀뚜라미가 끊임없이 울어대는 게 마치 시골에 와 있는 것 같다. 디트로이트에서는 이제 도시 속에서도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반세기 만에 디트로이트시 면적의 35%가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 되었다.(2) 세계 도시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다. 도시 축소로 인해 시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100만 명이 이곳을 떠났다.(3) 대학 근처나 하교 시간의 학교 주변을 빼면, 시 주요 도로인 우드워드가, 미시간가, 그레셧가에는 몇몇 행인만 어슬렁거릴 뿐이다.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디트로이트를 떠나는 사람의 수가 더 늘어났다.

미시간주에서 가장 큰 도시인 디트로이트는 변동금리형 주택담보대출로 큰 피해를 본 곳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자본주의 소비사회에 편입할 수 있는 최상의 모델로 선전하던 이 시스템은 처음엔 극빈자에게 내 집 마련의 희망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수천 명의 대출자가 파산하고 대출이자가 오르자 서둘러 집을 팔아버렸다. 시 당국 통계에 따르면 2005~2008년에 6만7천 명이 재산을 압류당했다.

최근의 자본주의 시스템의 위기는 디트로이트에 더 큰 시련을 안겨주었다. 금융계의 몰락이 부분적으로 생산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소비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은행 시스템의 붕괴로 신용 접근이 악화되면서 미국 자동차 빅3가 직격탄을 맞았다(GM, 포드, 크라이슬러 모두 디트로이트시나 근교에 본사를 두고 있다). 미국의 자동차 판매 대수가 급격히 감소했다. 누적된 부채와 자금 부족, 일본 자동차들과의 경쟁에 직면한 세 기업은 연방정부의 구제책에 기대어 연명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분실업이나 정리해고를 막는 데 역부족이었다. 
 

실업률 두 배 뛰어 30% 육박
2008년 1월에서 2009년 7월 사이 디트로이트의 실업률은 14.8%에서 28.9%로 거의 두 배나 높아졌다. 지역 인구통계연구소장 커트 메츠거는 실제 실업률이 40%를 웃돌 것이라고 분석한다.(4) 데이브가 푸념한다. “예전보다 더 살기 힘들어졌어요. 이건 생존의 문제입니다. 저는 곧 고향을 떠날 거예요. 지금은 이런저런 일로 연명하고 있지요. 간신히 먹고살 만큼 겨우 벌어요. 제 아내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어요. GM과 크라이슬러는 거의 파산 직전입니다. 포드는 간신히 버티고 있고요. 공장에 일자리가 있을 턱이 없죠.”

시내 중심가의 황량한 마천루와 깃발 없는 깃대가 폐허가 되어가는 도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기능적으로 특성화된 도시라는 이유 때문에, 디트로이트는 경기 주기 변동이나 자본주의 시스템의 진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5) 유명한 공장 건축가 앨버트 칸이 1908년 디트로이트에 세운 ‘크리스털 팰리스’(Crystal Palace)는 포드주의의 상징이다. 포드주의의 위력은 자동차 빅3의 도시인 디트로이트를 세계 산업자본주의의 중심으로 우뚝 설 수 있게 했다. 20세기 전반기, 대량생산에 따른 노동 수요 급증과 자동차 공장 노동자의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 때문에 노동자들이 이 도시로 몰려들었다. 이들 중에는 남부의 인종차별을 피해 온 흑인, 그리스나 폴란드 같은 나라에서 온 이민자도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디트로이트는 ‘민주주의의 병기창’으로서, 전쟁 중이던 미국에 가장 중요한 도시가 되었다. 가히 전성기라고 부를 만했다.

그러나 1945년부터 디트로이트의 인구와 산업생산은 감소 추세로 접어든다. 이 시기는 미국 자본주의가 포스트 포드주의 단계로 접어드는 시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미국 자본주의는 새로운 모델, 새로운 자본 축적 공간을 찾기 시작한다. 미국은 북동부와 중서부에 집중된  산업시설을 노조의 힘이 약해 생산비가 더 싼 남부로 이전시키면서 산업생산의 탈집중화를 추진한다. 자동차가 대중화되고 생산 시스템이 변화하자 대도시에 집중돼 있던 각종 생산·서비스 시설이 시 외곽으로 분산되었다. 시 경계를 따라 형성된 고용·서비스 거점을 중심으로 다중도심 모델이 점차 모습을 드러낸다. 새로운 일자리와 내 집 마련이라는 아메리칸드림을 품고 백인 중산층과 일부 부유층이 교외 지역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미국식 아파르트헤이트
백인 중산층의 이동은 두려움과 인종차별주의로도 설명할 수 있다. 이들의 첫 이동은 1950년대 탈산업화의 영향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대다수 백인 이주자들은 1967년 흑인 폭동(이로 인해 43명이 사망했고, 연방정부군의 탱크까지 출동했다)을 이유로 꼽았다. 디트로이트를 무대로 한 온갖 종말론적 이미지들은 이 도시를 ‘살인도시’ 혹은 ‘악의 도시’로 불리게 했으며, 종말론적 예언을 스스로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했다.(6)

두려움과 인종차별주의는 경제적 분리·차별의 요소로 기능하고 있다. 디트로이트가 미국의 대도시 중 유일하게 도심의 중산계급화나 다문화화가 이루어지지 못한 도시라는 사실은 상상적 공포와 언어의 수행적 기능이 가지는 힘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가령 디트로이트를 무대로 한 영화 <로보캅>을 생각해보라. 인구의 3분의 1이 극빈 상태로 살아가는 디트로이트는 미국에서 가난한 대도시 가운데 하나이며, 가장 인종분리가 심한 곳이기도 하다. 주민 10명 중 9명이 흑인이다. 디트로이트의 이런 ‘미국식 아파르트헤이트’는 대부분의 미국 도시와는 다르게 지역별로 구분되지 않는다. 디트로이트의 유색인종들은 대부분 도심과 부유한 교외 사이에 걸쳐진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디트로이트시 북쪽 경계 구실을 한 8마일 길이의 긴 중앙분리대가 두 세계를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한쪽에는 고급 주택과 잘 정돈된 잔디로 표상되는 안락한 삶이 있는 반면, 다른 한쪽에는 실업으로 고통받고 의료보험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사는 누추한 가옥이 줄지어 있다.

시내 중심가에는 다리를 절뚝거리는 사람이나 노숙자들이 급한 걸음으로 차도를 건너는 모습이 눈에 띈다. 마치 사뮈엘 베케트의 소설 <몰로이>에서 묘사된 인물을 보는 듯하다. 지팡이를 짚거나 자전거를 타고 ‘걷기를 계속해야 하는’ 사람들. 자동차의 도시 디트로이트는 쇼핑카트를 밀고 가는 사람과 전동휠체어를 탄 사람이 대로변을 줄지어 가는 광경을 쉽게 목격할 수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디트로이트 주민의 건강지표는 현재 개발도상국 수준밖에 안 된다. 유아 사망률이 1천 명당 17명으로 미국의 다른 지역보다 3배나 높다. 거의 스리랑카 수준이다.

데이브가 말을 계속한다. “일자리를 잃으면 의료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어요. 실업자들은 더 이상 병원에 갈 수 없게 되죠. 진료비 20달러만 내면 동네 병원에서 검진을 받을 순 있어요. 대신 가족 중 누군가 돈을 벌어야 하고 보증인도 있어야 합니다. 어쨌든 일상적인 진료 이상은 단념해야 해요. 아니면 진료 대기실에서 마지막으로 이름이 호명되는 걸 감수해야 합니다.” 급격히 치솟는 실업률이 공공보건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예측이 현실화되고 있다.

넷 중 셋이 차 없는 자동차 도시
경제위기에 더해, 원형 띠 모양으로 구성된 도시 구조 자체가 품고 있는 문제가 현 상황을 개선하는 데 장애물로 작용한다. 가령 고용의 86%가 시 외곽에 집중된 반면 전체 시 인구의 4분의 1만이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다(메츠거는 상당수 운전자들이 자동차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실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는 33% 정도가 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자동차에 의해, 자동차를 위해 형성된 도시 디트로이트는 고속도로가 관통하고 큰 도로들이 그물망처럼 깔려 있다. 이런 도시에서 자동차 없이 이동하기는 쉽지 않다. 이동의 용이성이라는 문제는 사회적 문제다. 가난한 사람들은 지인의 차를 얻어 타거나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가령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버스가 필요하다. 그러나 거의 파산 직전에 있는 디트로이트(7)의 시장 데이비드 빙(최근 차기 시장이 선출되었다)은 대중교통 관련 예산을 가차 없이 삭감했다. 버스 운전사 103명이 해고됐고 상대적으로 승객이 적은 몇몇 버스 노선이 사라졌다.(8) 디트로이트의 도시 구조가 도시 프롤레타리아의 일부를 시와 시 외곽 사이에 고립시킴으로써 사회적 불평등을 재생산한다고 볼 수 있다.

의료 서비스 접근 문제도 같은 관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상당수 의사들은 돈이 되지 않는 가난한 환자가 사는 지역보다는 부유한 교외에서 개원하기를 원한다. 디트로이트는 의료 연구가 활발하며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의료 시설을 갖춘 도시다. 그러나 교외에 사는 부유한 주민들만이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공약인 의료보험 개혁은 이 지역 주민에게 생사가 걸린 문제다. 황폐화된 흑인 밀집 지역인 이스트사이드에서 시청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루이즈를 만났다. “제 나이가 74살입니다. 의료보험 관련 문제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는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시겠죠? 저는 오바마가 의료보험 제도를 만들 수 있다고 믿고 그를 찍었습니다. 저한테는 절실한 문제입니다. 얼마 전 의사가 저에게 CT 촬영을 권유했어요. 메디케어(Medicare·65살 이상에게 적용되는 공공의료보험) 덕분에 의료비의 80%까지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20%는 제가 내야 합니다. 그것도 제게는 부담이에요. 지금 가진 돈으로는 간신히 약값 정도밖에 낼 수 없는 형편입니다. 한마디로, 약과 CT 촬영 중 한 가지는 포기해야 한다는 거죠. 저는 29년 동안 일했습니다. 세금도 꼬박꼬박 냈고요. 이건 부당하다고 생각해요.”
 
생사가 걸린 의보개혁 문제
민주당의 표밭인 이 지역에서는 97%의 유권자가 오바마에게 표를 던졌다. 오바마의 당선은 이 지역에 희망의 바람을 몰고 왔다. 빈민에게 무상 교육·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어라이즈라는 단체의 루터 케이스 회장은 1년 전 그때, 디트로이트의 흑인들이 얼마나 가슴 벅차했는지를 회상한다. “여기저기서 파티가 열렸어요. 굉장했죠. 마치 가족 중 누군가에게 엄청나게 멋진 일이 생긴 듯한 분위기였어요.”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인다. “1938년 조 루이스가 막스 슈멜링을 이겼을 때와 비슷했어요!” 흑인 복서 조 루이스는 독일 나치의 영웅 막스 슈멜링을 이긴 후 양차 대전 사이 미국 흑인운동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디트로이트에는 그를 기리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디트로이트는 온건한 흑인운동과 시민권 쟁취운동이 동시에 활발했던 대표적 도시지만 시민은 오바마가 흑인이어서 표를 던진 것이 아니었다. 민주당 후보인 그가 제시한 사회·경제 프로그램에 지지를 보낸 것이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오바마가 흑인이어서 표를 던진 게 아니다. 그가 제시한 정책, 특히 의료보험제도 개혁에 대한 그의 의지에 한 표를 던진 것이다.” 미국에 대한 정치학적 연구의 표본이 될 만한 매콤 선거구의 예를 보면, 디트로이트 지역에서 어떤 경제·사회적 요인이 대선에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할 수 있다(상자 기사 참조).

디트로이트 시민은 오바마 대통령 앞에 놓인 수많은 장애물에도 그에게 진심 어린 기대를 품고 있다. 루터 케이스는 말한다. “모든 일에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죠. 오바마는 지난 몇 달 동안 역대 어느 대통령도 하지 못한 일들을 해냈습니다.” 그러고는 다음과 같이 덧붙이는 걸 잊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어요.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모든 게 잘 되어가고 있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아요.” 디트로이트의 시민은 오바마가 각종 로비와 공화당원, 민주당 내의 반대파들과 협상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희망을 안고 오바마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들은 참을성 있게 침묵하고 있다. 루터 케이스는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만약 오바마가 실패하면, 실망감은 말할 수 없이 클 겁니다.”
 
노조도 무릎 꿇어 파업 없는 도시
디트로이트에는 연방정부가 마지막 구세주다. 시 정부는 더 이상 여력이 없다. 중산층 인구와 자본의 유출로 세원이 고갈된 디트로이트는 거의 파산 직전이다. 민주당이 장악한 시 의회는 빈곤의 악순환 앞에 무력하다. 디트로이트 광역권의 통합도 벽에 부딪혔다. 교외지역 부유층 주민들은 자신의 부를 나누고 싶어하지 않는다. 디트로이트시에 사는 흑인들은 과거 강력한 투쟁으로 정치적 주권을 획득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시 정부는 지금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재앙에 가까운 이런 상황에서도 공장 파업이나 거리 시위는 발생하지 않는다. ‘카지노 경제’의 쓴맛을 본 빈곤층은 1990년대 말 디트로이트의 세금 면제를 통한 건설경기 부양책이라는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 현재 디트로이트에서는 급진적이던 과거의 전통을 찾아볼 수 없다. 1937년과 1945년의 대규모 노동자 파업, 1973년 최초의 흑인 시장 콜먼 영 당선(9), 격렬했던 노예 폐지 운동과 시민권 쟁취 운동인 블랙파워(Black Power) 결성과 1833년·1918년·1943년·1967년에 일어난 아프리칸아메리칸들의 폭동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미국의 강력한 노조 중 하나인 전미자동차노조(UAW)마저 무릎을 꿇었다. UAW는 GM과 크라이슬러 사장들에게 경제위기 때는 파업을 자제하겠다고 약속했다. 미국에서 가장 앞선 생산 거점 도시인 디트로이트에서 체제에 대항해 들고일어서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루터 케이스가 설명한다. “자본주의는 미국과 동의어입니다. 자본주의가 이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디트로이트시의 대표적 음반회사인 모타운 레코드의 음악들, 사람들이 몰고 다니는 자동차들, 이 모든 게 자본주의죠. 자본주의는 모든 것입니다. 당신이 가진 모든 것, 거꾸로 말하면 당신이 가지지 못한 모든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당신이 숨쉬는 공기와도 같습니다. 그걸 쉽게 바꿀 수는 없습니다.”

기업들이 엄청난 예산을 쏟아붓는 이곳 ‘테크타운’(Techtown)의 경영자들은 지역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녹색경제에 새로운 기대를 품고 있다. 엘리트들은 항상 낙관적인 내일을 믿고 싶어한다. 이노베이션, 새로운 경기 사이클, ‘창조적 파괴를 반복하는 폭풍우’ 같은 것 말이다. 이 ‘르네상스 도시’는 매번 시련에 부딪힐 때마다 자유주의자들의 낙관주의에 의해 다스려졌으며, 슘페터 같은 경제학자가 제공하는 ‘영원한 청춘의 샘물’ 같은 이론에서 부활의 힘을 얻어왔다. 헨리 포드 2세가 1967년 폭동이 일어난 지 불과 4년 후 도시 한복판에 세운 ‘르네상스 센터’가 그러한 역사를 상징한다. 경영자들은 1995년부터 GM 본사가 입주해 있는 고층 빌딩의 73층 레스토랑에서 안락한 의자에 앉아 점심을 먹는다. 창밖으로는 폭력의 흔적이 퇴적된 유물과도 같은 황량한 풍경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도시의 붕괴와 천천히 다가오는 재앙을 예감하게 하는 풍경이다.
 
‘그라운드제로’ 끝은 어딘가
루터 케이스가 말한다. “상당수 미국인이 디트로이트를 ‘그라운드제로’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런 명명은 얼마 안 있어 다시 높게 솟아오를 실제의 그라운드제로, 테러 당시 사람들이 느꼈던 큰 공포와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디트로이트는 천천히 제로를 향해 추락하는 도시다. 제로를 향한 카운트다운은 마치 무한히 종말을 연기하려는 듯 한없이 이어진다. 디트로이트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명령에 자발적으로 적응하도록 강요하는 시스템이 만든 산물이다. 이것은 피지배자들의 맹목인가, 아니면 지배자들의 냉소인가? 루터 케이스는 미소를 지으며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낙관주의만이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원문 보기>>

글•알랑 포플라르 Allan Popelard
폴 바니에 Paul Vannier
지리학자. 파리8대학 프랑스지정학연구소 연구원.

번역•정기헌 guyheony@ilemonde.com

<각주>
(1) 북미 지역의 주택 배열 형식. 한 블록에 보통 3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한다.
(2) <Detroit Free Press>, 2009년 9월 7일자.
(3) 통계 자료에 따르면, 1950년 180만 명을 헤아리던 인구는 현재 77만7493~91만2062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통계 추정치 사이의 간극은 미국의 특이한 상황에서 비롯되었으며, 현재 많은 논란을 낳고 있다. 각 도시가 가지는 정치적 힘과 연방정부 보조금 요구액에 따라 통계 수치가 달라질 수 있다.
(4) 이 통계에는 고용청에 꾸준히 구직 신청을 한 사람수만 포함돼 있다.
(5) Andre Kaspi, <미국인들>(Seuil, Paris·1999)에 따르면, 1929년 경제위기로 포드사는 전 직원의 71%를 해고했다.
(6) Jean-Francois Staszak, <디트로이트 파괴하기. 문화상품으로서의 도시 위기>, Annales de geographie, Paris, 607호, 1999, 5~6월호.
(7) 2009년 현재 디트로이트시의 부채는 3억 달러, 적자는 8천만 달러에 달한다. <Detroit Free Press>, 2009년 9월 11일자.
(8) <Detroit Free Press>, 2009년 9월 11일자 참조.
(9) 민주당 소속의 디트로이트 최초 흑인 시장(1973~93년 역임)은 길 이름에 해리엇 터브먼 같은 흑인 운동사에 남은 위대한 인물의 이름을 붙이고 기념물을 세움으로써 흑인의 정체성을 확인했다.  


달라진 표심, 매콤과 오클랜드

2004년 조지 W. 부시의 재선 직전, 미국의 기자 토머스 프랭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왜 가난한 자들은 우파에게 표를 던지는가?”(1) 1980년부터 꾸준히 제기되었던 질문이다. 1980년은 생산직 백인 노동자와 민주당을 지지하던 (하부) 중산층의 일부 표가 공화당 지지로 돌아섬으로써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된 해다. 이런 표심의 이동은 그들 유권자 대부분이 노조 가입자라는 사실 때문에 더 큰 충격을 주었다. 반면 이들이 경기침체의 첫 번째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 자문위원인 그린버그는 디트로이트 북부에 위치한 매콤 선거구에 대한 정치적·사회학적 분석 자료를 바탕으로 이런 현상을 설명하려 한다. 1960년 대부분의 주민이 백인 중산층과 생산직 노동자로 구성된 매콤 선거구에서 존 F. 케네디는 리처드 닉슨과 겨뤄 63%를 득표한다. 그러나 25년 후, 이들 중 3분의 2가 로널드 레이건에게 표를 던졌다. 그린버그는 사반세기 만에 ‘전통적 가치’를 수호해야 한다는 구호가 계급의 이익을 압도해버렸다고 분석한다.

반면 2008년에는 같은 선거구에서 버락 오바마의 득표율이 53%에 달했다. 그린버그는 선거 일주일 뒤 <뉴욕타임스>에 발표한 ‘레이건 지지 민주당원들이여 안녕’이라는 글에서, 자신이 투표 당일 연구·분석한 결과를 소개했다. 설문조사에 응한 매콤 선거구 유권자의 60%는 오바마를 ‘편하게 받아들인다’고 응답했으며 오바마와 ‘같은 가치를 공유한다’고 했다. 매콤 선거구는 다시 원상태로 돌아온 것일까?

그린버그가 보기에 진짜 이변은 매콤 선거구가 아니라 그곳과 인접한 오클랜드 선거구에서 발생했다. 오클랜드 선거구는 미국에서 부유한 지역 중 하나다. 전통적으로 미시간주의 공화당 표밭 노릇을 하던 이곳에서 오바마는 54%를 득표했다. 고등교육을 받은 중산층의 대규모 유입- 그들 중에는 상당수의 인종적 소수자가 포함돼 있다- 과 심각한 경제위기가 민주당 승리의 주요인으로 보인다.

그린버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이제 매콤 선거구 때문에 골머리 썩을 일이 없으니 좋다. 앞으로는 후보자들이 새로운 미국을 관찰하기 위해 오클랜드 선거구로 몰려가 전당대회를 개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말로 ‘새로운 미국’이 도래한 걸까? 그러나 지난 미국 대선 때 유권자들의 변화만 보고 지방선거에서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결정 요인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주변 지역을 포함한 디트로이트 지역의 선거 결과를 보면, 여전히 두려움과 인종차별주의, 님비 현상에 영향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매콤과 오클랜드 선거구의 공화당 소속 의원들(민주당도 마찬가지다)은 자기 지역의 부를 디트로이트시 주민과 나눠갖는 것에 격렬히 반대하고 있다.

<각주>
(1) Thomas Frank, <왜 가난한 자들은 우파에게 표를 던지는가? 보수주의자들은 어떻게 미국의 중심을 장악했는가? (그 밖의 선진국 포함)>, Agone, Marseille, 2008. 


월가와 워싱턴의 끈끈한 밀애

10년간 <뉴욕타임스>의 ‘인수·합병’ 칼럼을 맡아온 앤드루 로스 소킨은 출입기자 신분을 이용해 오랫동안 월가와 워싱턴에서 자료를 수집해왔다. 소킨은 그동안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2007~2008년 금융위기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라 할 만한 책을 펴냈다. 이 책 속에는 금융계 주요 인사 200명에 대한 인터뷰 자료뿐 아니라 전자우편, 노트, 개인 서류까지 실려 있다.(1)

소킨은 금융위기 과정에 상세한 해설을 붙여 멋진 스릴러물을 완성했다. 그 스릴러의 결말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그대로다. 그의 저서는 폭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령 긴급하게 결정된 계획으로 알려진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이 실은 5년 전부터 미 재무부에 의해 준비되었다는 사실에서부터, 2008년 여름 모스크바에서 골드만삭스의 이사들이 전 골드만삭스 사장 행크 폴슨 재무부 장관과 우연히 만나 나눈 대화까지. 소킨은 금융계에서 횡행하는 수많은 책략과 계산을 치밀하게 재구성함으로써 월가의 ‘문화’를 재조명하고 있다.

또한 보험회사 AIG 구제를 구실로 은행들의 신용파생상품(2) 손실액을 전액 보상해준 예는 금융계 인사와 정치인들이 어떤 이데올로기와 가치를 공유하며 어떻게 서로를 묵인해주는지 보여준다. 이들의 스타일은 한마디로 건전하지 못한 사고에서 비롯되었다. 가령 쉽게 욕설을 내뱉는다든지, 진부한 대책을 내놓고는 권위적으로 밀어붙인다든지, 끊임없이 직장을 옮겨다닌다든지 하는 행태가 만연해 있다. 시스템 내부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은 보수와 상여금에 대한 집착으로 가득 차 있다. 미 재무장관은 구제자금 제공을 대가로 한 기업들의 부분적 국유화 조치를 협의하기 위해 9명의 금융계 거물을 소집했다. 이 중요한 회의석상에서, 메릴린치를 벼랑까지 몰고 간 장본인 존 테인 사장은 재무부 직원들에게 “그 대가로 당신들은 우리 사장들에게 뭘 제공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금융의 귀재들이 제한된 리스크로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으며 미국식 금융기법이 전세계의 보편적 모델로 기능하게 되었다”는 식의 생각은 금융위기로 인해 그 생명을 다했다고 소킨은 말한다. 그러나 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규제 시스템의 정비가 늦어지고 있다. 많은 수당과 함께 배당금을 챙기는 사람들도 있다. 위기를 초래한 장본인들은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소설 <치타>(Il gattopardo)에서 판크레디가 한 말처럼, 현 상태를 바꾸지 않으려면 모든 걸 바꿀 필요가 있었는지 모른다.

글•이브라임 와르드 Ibrahim Ward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경제담담 기자

번역•정기헌 guyheony@ilemonde.com

<각주>
(1) Andrew Ross Sorkin, <Too big to fail: the inside story of how Wall street and Washington fought to save the financial system from crisis - and themselves>, Viking, New York, 2009, 600 pages, 32.95 dollars.
(2) 신용파생상품은 신용 관련 리스크의 일부 혹은 전부를 이전시킬 수 있는 수단 중 하나로 서브프라임 위기의 주원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