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들어야 하는 유럽
2016-07-01 세르주 알리미
도날드 투스크 유럽연합(EU) 상임의장은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 결과가 “유럽 연합의 붕괴뿐만 아니라 유럽 문명의 붕괴가 시작됐다는 증거”라고 했던 것을 후회해야 할 것이다.(1) 그러나 브렉시트의 승리가 유럽 전역에 크나큰 충격을 안겨준 것은 분명하다. 이번에는, 6월 23일 국민투표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일부 정치인들의 의견을 근거로 투표결과를 무시하기에는 너무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2005년 5월과 6월에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국민투표에서 유럽헌법이 거부됐던 것보다 더 명백한 ‘민주적 거부’가 영국에서 나타나리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유럽에 잔류하기 위해 자국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초강력 긴축정책을 받아들여야 했던 그리스처럼 영국도 경멸의 대상이 될지는 미지수다.(2)
1967년 드골 장군은 영국의 유럽경제공동체(EEC) 참여를 반대했다. “영국이 서유럽에 자유무역지대를 조성하는 것은, 영국만의 개성을 앗아가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독일, 프랑스, 로마, 스페인 등도 비슷한 입장이었기 때문에, EEC의 세력 약화를 오로지 영국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사실 유럽연합만 해도 정확히 어떠한 개성과 특수성을 가지고 있는지 확실하지 않으니 말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EU가 브렉시트를 방지하기 위해 영국이 다른 유럽 국가 출신의 근로자들에게 사회 부담금을 지급하지 않게끔 하는 조항과 금융시장 보호를 강화하는 조항에 합의했다는 점이다.
냉전으로 분열된 세계 속에서 탄생한 지적 엘리트들의 프로젝트였던 EU는, 25년 전 하나의 거대한 역사적 흐름인 ‘또 다른 가능성’을 놓쳐버렸다. 소련의 붕괴는 유럽에게 있어 사회적 정의와 평화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을 만족시켜줄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유럽연합은 각 국가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자라고 있던 관료주의적 체제를 해체했고, 재건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자유무역의 진로를 변경했다. 동시에 유럽연합은 지구적인 자유경쟁의 질주노선 위에서 지역적 협력, 사회적 보호, 동구권 국가들과의 통합을 내쫓았다.
유럽은 공동체가 아닌 거대한 시장을 만들었다. 수많은 집행위원들을 두고 국가들을 위한 규칙과 유럽인들을 위한 처벌규정을 만들었다. 그러나 근로자들이 겪어야 하는 불공정한 경쟁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기득권 세력과 금융계 및 대도시의 화려한 인맥을 자랑하는 이들의 비위를 맞추는 데만 급급했다.(3) 유럽연합에게는 이제 차악선택 논리로 정당화되는 긴축정책의 허상만이 남았다.
우리는 포퓰리즘과 외국인 혐오증을 들먹이며 영국 국민투표의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유럽연합에 남기 위해 반드시 국가의 주권을 희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신뢰를 잃어버린 자폐적인 엘리트 정치인들이 현재 영국과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시민들의 분노에 대응해주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글·세르주 알리미Serge Halimi
번역·김소연 dec2323@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Brexit could threaten western political civilization, says EU's Tusk>, BBC World, 2016년 6월 13일.
(2) <우리가 더 이상 원하지 않는 유럽>,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5년 8월호.
(3) 투표결과가 사회계층에 따라 뚜렷하게 갈리다. Cf. <EU referendum results in full>, www.theguard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