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혁명적이거나 아니거나
2016-07-01 모나 숄레
다보스 경제포럼, 프랑스의 밤샘 시위, 그리고 실리콘 밸리까지 전 세계가 몇 달 전부터 기본소득 논의로 떠들썩하다. 핀란드는 기본소득을 도입하려는 의지를 밝혔고, 스위스는 지난 6월에 국민투표를 시행했다. 같은 하늘 아래, 누군가는 노동으로부터 해방되는 유토피아를 꿈꾸고, 누군가는 제한적 개혁을 원한다.
“개념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기본소득을 논하는 것은, 입양하려는 동물이 고양이인지 아기 호랑이인지 모른다는 것과 같다.” 올리 캉가스 핀란드사회보험공단(KELA) 소장은 이렇게 지적했다.(1) 기본소득 논의가 수개월 전부터 유럽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활기를 띠고 있다. 그런데 기본소득 옹호자들은 고양이와 아기 호랑이, 심지어 두 종이 뒤섞인 동물이 뛰어다니는 것을 멍하니 보고 있는 듯하다.
기본소득, 고양이인가 아기 호랑이인가
협의의 기본소득에는 모두 동의한다. 그것은 모든 개인이 국가로부터 일정 금액을 출생 시부터 사망 시까지 조건 없이 받고, 근로소득을 포함한 기타 소득과 병행해서 혜택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담는다. 좌파가 생각하는 적절한 기본소득의 금액은 최저임금에 준한다.(2) 매월 1,000유로(약 128만 원)의 기본소득으로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해지면, 일자리를 선택할 때 훨씬 여유가 생긴다.(3) 무·유급노동, 교육(사회 진출 이전의 교육, 직종변환 교육), 가족부양, 비영리 단체에 대한 투자, 창조활동 등 개인이 사회에 기여하는 다양한 방식이 모두 인정된다. 이러한 좌파적 해석을 지지하는 프랑스인(4) 중 한 명인 밥티스트 밀롱도는 기본소득 원리에 강력한 ‘불평등 해소책’을 결합시킨다. 가파른 누진소득세, 재산세, 최고소득제(최대 소득 격차를 1:4로 제한하는 제도) 등이 그것이다.(5)
좌파 버전의 정반대 지점에는 자유주의 버전이 자리한다.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이 ‘마이너스 소득세’(6)와 함께 이론화한 버전이다. 여기서 제시하는 기본소득 금액은 너무 낮아, 일을 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수준이다. 여기서 기본소득은 노동자의 연봉협상력을 높이는 역할보다, 임금을 낮추기를 원하는 고용주를 위한 보조금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또한, 일종의 ‘임금지불 완료증’처럼 여겨져, 기존의 사회보장제도(질병, 노령, 실업, 가족부양에 대한 보험)를 대체해버린다. 요컨대 기본소득은 세계의 다양한(경제·정치적)전망 뿐 아니라, 그와 정반대편에 있는 사회정책에도 활용될 수 있다. 프랑스기본소득운동(MFRB) 소속 니콜 테케(NicoleTeke)와 위에인(Yué Yin)은 “사람들은 우리를 자유주의자로 취급하기도 하고, 공산주의자로 취급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2013년에 창설된 MFRB는 900여 명의 가입자를 거느리고 있다.
한편, 현재 여론은 둘 중 어느 쪽에 기울어 있을까? 묘하게도 양측의 해석이 엇갈린다. 한 쪽은 고양이로만 보고, 다른 한 쪽은 호랑이로만 보기 때문이다. 우파 측은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정당 대상으로 2년 연속 실시한 두 가지 조사 결과, 기본소득 정책이 점점 좌파적 성향을 띠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우 우려되는 현상이다. 기본소득이 좌파가 만들어낸 엉뚱한 생각처럼 취급되면, 일을 전개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라고 저명한 프랑스 기본소득 이론가, 마크 드 바스키아는 지적했다. 밤샘 집회에서 기본소득과 베르나르 프리오가 주장한 생활임금(7)을 비교해 기본소득의 장점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졌지만, 결론을 낼 순 없었다.
좌파가 볼 때도 문제는 같지만, 이유는 전혀 다르다. 프랑스 좌파당(PG) 사무국 소속의 코린 모렐 달루는 밀롱도와 함께 약 8년 전, 녹색당과 좌파당을 아우르는 ‘유토피아운동(MU)’ 안에서 기본소득을 처음 접했다. 달루는 말했다. “기본소득은 정치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이론이고, 오늘날 여기저기서 거론되지만, 속은 비고 형태만 남아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네덜란드와 핀란드에서 떠들썩하게 여러 시범정책을 추진했지만, 이렇다 할 변화는 전혀 없었다. 20여 개의 네덜란드 도시에서 이를 검토 중이지만, “기본소득 원리의 일부에서만 영감을 얻은 복지제도 개혁에 불과하다”고 경제학자 시르 후에이마커스는 지적한다.
2015년 4월, 제1당으로 올라선 핀란드 중앙당(중도우파)은 기본소득을 하나의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기본소득이 긴축재정 속에서도 사회보장제도의 효율성을 개선시키고, 복지제도 수혜자를 노동시장으로 유인해 경제활동을 활성화시키는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핀란드 국민은 물론 녹색당과 좌파연합까지도 기본소득 정책을 적극 지지했다. 취업을 해도 여전히 기본소득이 지급되므로 ‘비경제활동의 덫’에 빠질 염려도 없다. 이제까지는 유급노동을 하면 복지대상에서 제외돼 오히려 소득이 감소했다. 최종보고서를 바탕으로 2017년부터 2년간 시범정책이 시행될 예정이지만, 발표내용을 살펴보면 목표가 하향조정된 것을 알 수 있다. 기본소득액이 겨우 550유로(약 70만 원)로 책정된 것이다. 이는 주택보조금과 병행수급이 가능하며, 총 1만 명에게 지급될 예정이다. “핀란드의 기본소득 국민투표는 스위스의 국민투표와는 매우 다르다. 빈곤퇴치와 소득권 보장이 목표가 아니며,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은 더더욱 아니다.”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 핀란드 지부 소속 경제학자 오토 레토가 설명한다.
프랑스의 경우, 기본소득 옹호세력은 여전히 소수이며, 소속 집단이나 정당에서 고립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들은 대동단결 중이고, 자신들을 분열시키는 요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바스키아는 “밥티스트 밀롱도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는 이상주의자다. 소득격차를 1:4의 비율로 제한하자는 것도 자유주의자들에게는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과거 니콜라 사르코지의 측근이었으며, 2017년 공화당 대선후보인 프레데릭 르페브르 의원은 줄리앙 바유 유럽생태녹색당(EELV) 대변인의 주재로, ‘검은 목요일(Jeudi noir; 장기간 비어 있는 공간을 점거해 의미 있게 활용하는 점거운동단체)’에서 유숙하는 노숙자와 벌인 기본소득 관련 토론을 언급하기도 했다.
기본소득은 당파를 초월한 아이디어인가
2016년 1월, 르페브르 의원은 사회주의자인 델핀 바토와 함께 ‘디지털 공화국법’의 일환으로, 정부가 기본소득 타당성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하원회의에서 주장했다. 델핀 바토는 말했다.
“당파를 초월하는, 이 과정에 담긴 내용은 온전히 받아들였다. 정당이 단독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시대는 지났다. 핵심적 아이디어는 당파를 초월한다. 기본소득은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무는 주제다. 우리는 모든 부분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기본소득을 옹호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편,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 중 아무도 사회보장제도의 해체를 대놓고 주장하지 않았다. 르페브르 의원, 자유주의의 싱크탱크인 ‘제네라시옹 리브르’의 설립자인 가스파드 코니그도 마찬가지였다. 스스로 좌파도, 우파도 아니길 바라는 MFRB의 내규에서는 기본소득 정책에 대해 “사회보장제도를 문제 삼아서는 안 되며, 기존의 복지제도를 보완 및 개선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기본소득이 활동연대수당(RSA) 등 세금으로 충당되는 연대성 수당을 일부 대체할 수는 있다. 그러나 퇴직연금, 고용보험, 의료보험 등 납입금으로 충당되는 보험성 수당은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 기본소득이 대체할만한 보험성 수당은 가족수당 정도이다. 성인보다 금액은 적지만, 미성년자에게도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예외도 있다. 사회당(PS) 측근인 장-조레스 재단은 5월에 발표한 보고서(8)에서 재원마련을 위한 3가지 시나리오를 제안했다. “재정부담을 늘리지 않겠다”는 발상에서 시작된 이 제안은, 사회보장제도를 과감히 들어낸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첫째, 모든 성인에게 매달 500유로(약 64만 원)를 지급하되, 의료보험과 고용보험을 폐지한다. 둘째, 퇴직연금 등 기존수당을 ‘재활용’해 매달 750유로(약 96만 원)을 지급한다. 이것이 재단에서 가장 신빙성 있게 보는 시나리오다. 셋째, 1,000유로(약 128만 원)를 지급한다. 세 가지 중 유일하게 추가 세금이 발생하는 시나리오다.
MFRB 소속 장-에릭 이아필은 크게 놀라며 해당 보고서의 ‘심각한 결함’을 지적했다. 2016년 5월 26일, 재단 소속의 제롬 에리쿠르 노동분쟁조정자와 파리의 한 커피숍에서 토론하는 자리였다. 기본소득 경제논문을 준비 중인 이아필은 “기본소득도 강력한 사회보장제도와 공공지출과 완벽하게 양립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그러자 제롬 에리쿠르는 당혹스러워하며 재단은 “기본소득에서 21세기 문제의 좋은 해결책을 찾지 못했는데, 이 사실을 중립적 입장에서 작성한 보고서에 넣지 않길 바랐다”고 해명했다. 모든 언론이 시나리오를 권고사항처럼 보도한 것도 보고서가 ‘중립적’으로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지급조건을 없애면, 비용도 없앨 수 있다
기본소득은 개인별 상황과 무관하게 모두에게 같은 금액을 지급한다. 기본소득 옹호자들은 소득수준, 가족관계 등 조건별로 수당을 지급하는 시스템으로 인한 사생활 침해를 끝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바스키아는 지적한다. “RSA 수혜자 욕실의 칫솔 개수를 세기 위해 돈을 주고 사람을 고용한다. 동거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단지 먹고 살려는 것 뿐인데 지나친 처사다!”(9) 코니그도 같은 생각이다. “빈곤퇴치의 효율성은 높이되, 간섭은 줄여야 한다. 개인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제공하되, 사생활을 간섭하거나 노동에 대한 애착을 확인하려 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급에 있어 조건을 없애면, 행정비용이 절감된다. 이를 통해 기본소득 재원의 확보가 일부 가능하다. 르페브르 의원은 현재 구조(지급기준 마련, 지급대상 방문, 확인 및 승인)는 행정비용을 발생시킨다고 강조한다. 반면, 기본소득은 ‘선순환 구조(범죄율 하락, 의료비 절감, 교육수준 개선 등)’를 만들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주장하는 금액은 800~1,000유로(103만~128만 원)로, 다른 우파 인사들에 비해 꽤 높다.
1980년대 초, 유럽에서 ‘보편적 수당’이라는 명명 하에 기본소득 논의에 다시 불이 붙은 것은, 벨기에 철학자 필립 판 파레이스 덕택이다. 벨기에 녹색당 소속이던 그는 개인에게 주어진, 삶과 일에 대한 주도권이 좌파와 우파의 사고체계를 바꿔놓았다고 말했다.
“벨기에 자유당 앞에서 발언하는 자리였다. 자유가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손을 들라고 하니, 모두 손을 들었다. 이어, 부자에게만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리스 시리자 정당, 스페인 포메도스 정당, 이탈리아 공산주의재건당과의 만남이 역으로 좌파에게 자문하는 기회가 됐다. 국가와 평등 수호에 전념한 나머지, 자유라는 가치를 우파에게 떠넘겨버린 것이 과연 옳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말이다.”
물론 근본적 차이는 그대로 남아있다. 코니그와 바스키아가 공동 프로젝트(10)를 통해 해소하려는 것은 빈곤이지, 불평등이 아니다. 이들은 성인 1명 당 450유로(약 58만 원), 미성년자 1명 당 225유로(약 29만 원)를 지급하는 마이너스 소득세를 주장했다. 재원은 모든 소득에 23%의 단일세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마련한다.(11) 바스키아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기본소득이 현재 프랑스의 재분배 구조를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부유층은 전보다 조금 덜 벌고, 빈곤층은 조금 더 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시스템의 정당성을 찾을 수 있다. 낙인찍기와 간섭이 중단되고, 문턱효과와 악순환의 덫이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심각한 빈곤상태가 효율적으로 해소될 것이다.”
이들은 ‘상대적’ 빈곤이 아닌, ‘절대적’ 빈곤을 전제로 한다. 코니그에게 상대적 빈곤은 ‘질투’와 동일한 개념이다. “당신 스스로가 잘 살고 있다고 느낀다면, 다른 사람이 엄청난 부자가 됐다는 것에 신경 쓸 것은 없다.”
기본소득을 정당화할 또 다른 주장은 무엇이 있을까? 모두가 주장하는 것으로 자동화와 디지털화로 인한 일자리 감소가 있다. 스위스에서는 ‘무조건적인 기본소득’ 발의안의 주동자들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려는 로봇으로 변장한 채 거리로 나섰다. OECD의 이전 보고서들은 대규모 ‘기술적 실업’을 예상했지만, 최근 보고서에서는 그 결론이 전보다 완화된 것을 볼 수 있다. “자동화될 위험이 높은 일자리는 9%에 불과하며, 저학력 노동자가 가장 위태롭다”고 경고했다.(12) 이아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현 실업률을 고려하면, 9%는 충분히 높은 수치다. 그렇다고 ‘노동의 종말’이 온다는 말은 믿지 않는다. 생태학적 변화가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지 않았는가. 경제학자 장 가드레도 말했듯, 성장률 하락이 반드시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일자리의 수가 아니라 질이다. 완전고용 상태에서도 기본소득은 필요하다. 원치 않는 일에 생계를 위해 내몰리지 않고, 일에 대한 선택권을 가지기 위해서도 기본소득이 필요한 것이다.”
미국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도 ‘월스트리트 점령(Occupy Wall Street)’ 운동에 참여해, ‘일하는 보람도, 사회적 효용도 없는 나쁜 일자리(Bullshit job)’에 반대했다. 이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13) 또 다른 기본소득 옹호자인 야니스 바루파키스 전 그리스 재무장관도 “일을 거절할 수 있는 기회는, 시민사회는 물론 제대로 기능하는 노동시장에도 반드시 필요하다”(14)고 주장한다.
불안정성이 만연한 현 시대에 삶을 안정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창출된 부가 임금과 수익 사이에서 불균형하게 재분배되는 상태를 그대로 수용해버릴 위험도 뒤따른다. 르페브르가 예시한 ‘근로소득장려세제(Earned Income Tax Credit)’를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미국 정부는 근로소득장려세제를 빈곤노동자의 소득을 보완하는 장치로 이용했다. 또 다른 위험이 있다. 우버(Uber)와 같은 어플리케이션이 생겨나면서 노동법과 근로소득이 침해받기 시작했는데, 기본소득은 이 현상을 그대로 내버려둔다는 점이다.(15) 바토는 “해방 이후부터 이어져온 사회적 타협이 아닌, 현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사회적 타협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고 기본소득이 ‘우버화’의 발판이 되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것은 기본소득으로 얻어지는 노동자의 협상력에 달렸다. 징세 및 부의 재분배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중요하다. 이 문제에 있어, 수많은 기본소득 옹호자들의 소심한 태도는 이 주장의 대범함과 대조적이다. 필립 판 빠레이스는 낮은 금액에서 시작해서 점차 금액을 늘리는 점진적 도입방식을 지지했다. 하지만 밀롱도는 “낮은 금액이 후에 오를 것이라는 보장이 전혀 없다”며 이에 반대했다. MFRB는 기본소득 정책이 가져올 ‘패러다임의 변화’를 통해 기존의 것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이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RSA 수준만큼 낮게 책정된 금액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MFRB는 극보수주의 성향의 크리스틴 부탱 기독민주당 대표와도 함께 일했었는데, 당시 제안했던 기본소득액은 400유로(약 51만 원)였다. MFRB이 주장한 비정치성이 유지된 의견이었지만, 도저히 이를 용납할 수 없던 밀롱도는 “금액이 낮은 기본소득은 없느니만 못하다”며 동의하지 않았다. “무조건적인 소득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모렐 달루 역시 “맹목적인 옹호”를 경계했다.
재원확보에 대한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주장은 사회·정치적 세력관계에 직면한 운명론으로 표현된다. MFRB는 ‘국민을 위한 양적완화’ 캠페인에 참여해 유럽중앙은행이 민간은행을 거치지 않고, 국민에게 직접 화폐를 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럽중앙은행은 모두에게 현금을 지급해 수요를 늘리는, ‘헬리콥터 머니’ 정책을 포기하지 않았다. 큰 피해를 초래할 디플레이션을 막는데 실패한 탓이다.
목표를 향한 여정도
목표 달성만큼 중요하다
한편, MFRB는 불평등 문제에 관해 훨씬 신중한 태도를 취한다. 이아필은 “조세회피가 늘어날 위험이 있는데도 최고 부유층을 건드리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라고 말한다. 그는 사람들을 단결시킬 ‘합의적’이고 ‘중도주의적’인 접근을 요구한다. 기본소득 시범정책을 준비 중인 마르틴 알코르타 아키텐 지방의회 EELV 부대표는 “해방 시기, 고용주들은 협력을 약속했기에 저자세를 취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바스키아는 좌파 버전의 기본소득 옹호세력이 다수가 되려면, 한두 번은 전쟁을 겪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본소득 옹호자들이 바라는, 효율적인 탈세방지대책에 대해, 그는 “끝장을 내겠다는 의지만 있었다면 이미 오래 전에 끝났을 일”이라며 쓴웃음을 짓는다.(16)
모든 진보주의적 정책이 그러하듯, 좌파 버전의 기본소득도 이를 시행할 권력이 없다면 좌초될 수밖에 없다. 또한, 기본소득 여론이 확산될수록 변질될 위험도 높아진다. 기본소득 여론이 무관심으로 일축되거나 지탄을 받기도 했지만, 어떤 이에게는 다가오는 2017년 총·대선에 필요한 최후의 수단이기도 하다. 정치활동을 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고갈되거나 인기가 떨어진 상황에서 말이다. 노동법 투쟁이 한창이던 올 봄, 귀욤 마틀리에 앙빌리(오트사부아 지역) 시장은 장 크리스토프 캄바델리 사회당 제1서기가 당 내에서 “이 주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맡았다고 밝혔다. 정작 캄바델리 자신은 기본소득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마틀리에 시장은 사회주의자로 보편적 기본소득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었다. 마뉘엘 발스 총리는 4월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보편적 기본소득에 대한 작업을 시작하고 싶다. 그러나 모두에게 지급되는 수당은 아니다. 비용이 많이 들고 아무 의미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라고 올렸다. 요컨대, 보편적 소득이긴 한데 보편적이지가 않다.
여하튼 긴축재정으로 사회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재정원조’에 대한 우울한 뉴스가 반복되며, 마틀리에의 말처럼 ‘원죄의 신화’가 노동 전망을 지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기본소득에 대한 정당성이 확립되길 바라겠는가? 모렐 달루는 급급해 하지 말 것을 당부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대책이 위급한 상황이었다면, 기본소득 도입보다는 최저임금제(SMIC) 개정이나 임시공무원 임용을 고집했을 것이다. 이는 재정복하면 되는 문제지만, 기본소득은 새롭게 정복해야 하는 문제다. 기본소득에 대해 논쟁하는 것은 정책을 시행하는 것만큼 흥미롭다. 목표를 향한 여정도 목표 달성만큼 중요한 것이다. 우리사회를 구성하는 일에 대해, 살면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아이디어를 내고 열띤 토론을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
시간을 들여 정치·문화적 투쟁을 이어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집에 들인 고양이가 주인을 잡아먹는 호랑이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글·모나 숄레 Mona Cholle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이보미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파리 주재 핀란드 대사관에서 2016년 3월 3일에 열린 토론
(2) 2016년 프랑스 월 최저임금(SMIC)은 약 1,141유로(약 147만 원)다.
(3) ‘Revenu garanti, une utopie à portée de main’,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3년 6월호
(4) 밥티스트 밀롱도 Baptiste Mylondo, ‘Un revenu pour tous. Précis d’utopie réaliste’, <Utopia>, 파리, 2010년
(5) 샘 피지가티 Sam Pizzigati, ‘Plafonner les revenus, une idée américain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2년 2월호
(6) 밀턴 프리드먼 Milton Friedman, ‘Capitalisme et liberté’, <Leduc.s Éditions>, coll. ‘À contre-courant’, 파리, 2010년(초판: 1962년)
(7) 베르나르 프리오Bernard Friot, ‘À partir des retraites, imaginer un salaire à vi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블로그(http://blog.mondediplo.net), 2010년 9월 8일
(8) ‘Le revenu de base, de l’utopie à la réalité?’, <장-조레스 재단>, 파리, 2016년 5월 22일
(9) RSA 기본수당은 독신일 경우 524.68유로(약 67만 원), 커플일 경우 787.02유로(약 101만 원)이다.
(10) 마크 드 바스키아 & 가스파트 코니그, ‘Liber, un revenu de liberté pour tous’, <Éditions de l’Onde> & <Génération libre>, 파리, 2014년
(11) 이들에 의하면, 주택 보조금은 개인의 상황에 따라 별도의 수당으로 취급돼야 한다.
(12) ‘Automatisation et travail indépendant dans une économie numérique’, Synthèses sur l’avenir du travail, <OECD>, 파리, 2016년 5월
(13) 데이비드 그레이버 David Graeber, ‘On the phenomenon of bullshit jobs’, <Strike!>, 2013년 8월 17일, http://strikemag.org
(14) ‘Technical change turns basic income into a necessit’, ‘The Future of Work' 컨퍼런스, <Institut Gottlieb Duttweiler>, 취리히, 2016년 5월 5일
(15) 에브게니 모로조프 Evgeny Morozov, ‘Résister à l’uberisation du mond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5년 9월호; ‘L’utopie du revenu garanti récupérée par la Silicon Valley’,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블로그, 2016년 2월 29일
(16) 에바 졸리 Eva Joly, ‘En finir avec l’impunité fiscal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6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