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기본소득, 전례 없는 토론의 시작

2016-07-01     모나 숄레

피자와 맥주캔이 널브러져 있고, 얼룩진 티셔츠를 입은 뚱뚱한 남성이 소파에 무기력하게 누워있다. 그 유명한 ‘무조건적 기본소득’에 대한 국민투표 발의안 반대자들이 만든 포스터로, 무위도식하는 빈곤층에 대한 환상을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다. 포스터 속 인물은 금색 종이왕관을 쓰고 으스대며 기본소득 옹호자를 조롱한다. 발의안 주동자들이 “기본소득을 통해 삶의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뜻으로 역 앞에서 사람들에게 나눠주던 바로 그 종이왕관이다. 그러나 6월 7일, 이들이 꿈꾼 유토피아는 77%의 반대표(투표율 46.4%)로 좌절된다. 그래도 바젤슈타트 주, 제네바 주, 쥐라 주에서는 좀 더 많은 찬성표(약 35%)가 나왔으며, 취리히 주와 제네바 주의 몇몇 구역에서는 발의안이 가결되기도 했다. 

유권자들은 기본소득 발의안에서 구체적인 금액과 재원확보 방안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저 근로소득과 별도로 모두에게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전 국민의 품위 있는 생활 유지 및 공적생활 참여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만 적혀있었다. 기본소득 캠페인 초기에 거론된 금액은 성인 1명 당 2,500스위스프랑(약 296만 원), 미성년자 1명 당 625스위스프랑(약 74만 원)이었다. 물가가 상당히 높은 스위스에서 빈곤 한계선(2,200스위스프랑)을 살짝 웃도는 수준이다. 따라서 작은 마을에서 합숙하는 학생에게는 충분할 수 있겠지만, “취리히나 제네바에서 혼자 사는데 아프기까지 한 사람에게는 부족한 금액”이라고 베니토 페레즈 <르쿠리에>(좌파 일간지) 공동편집장은 지적한다. 위의 두 도시는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이 뽑은 세계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5대 도시에 속하며, 전면 민영화된 의료보험(1)만으로도 예산이 대폭 올라가는 실정이다(스위스 근로자는 고용보험과 연금보험만 가입한다).
기본소득 캠페인은 2012년에 스위스 독일어권 지역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에노 슈미트와 다니엘 하니 감독이 인터넷에 올리면서 큰 성공을 거둔 영화, ‘기본소득. 문화적 추진력’이 발단이 됐다.(2) “2005년 독일 하르츠 개혁 이후 불안정성이 확산된 것도 한 몫 했다”고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 스위스지부 소속 줄리앙 뒤부쉐 코르테는 말한다. 스위스 연방내각은 비용과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이유로 기본소득을 반대했다.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정당은 녹색당 밖에 없었다. 그래도 각 주가 자율적인 연방구조 특성 덕에 몇몇 주에서는 투표가 가결되기도 했다. 특히 트로츠키파 사회주의자인 제네바 주의 모든 좌파 정당들이 이에 찬성표를 던졌다. 
정부 밖에서 시작된 기본소득 캠페인은 요란스럽게 진행됐다. 2013년 10월 5일, 기본소득 옹호자들은 국민투표 요건인 10만 명의 주민 투표를 받아 정부에 제출하면서, 베른의 분데스 광장에 5센트짜리 노란동전 800만 개를 쏟아 부었다. 스위스 인구 800만 명 당 동전 1개를 의미한다. 2016년 5월 14일, 이들은 제네바에 모여 또 다른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번에는 8천 제곱미터 크기의 포스터였는데, “세상에서 가장 중대한 질문”이 적혀있었다. 바로 “소득이 보장된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라는 문구였다. 이날 퍼포먼스는 기네스북에 올랐다. 뒤부쉐 코르테는 기네스북에 오른 것을 민망해하면서도, 주변 사람들 중에 이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회당 소속이자 기본소득 경제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던 그는, 사람들이 혼란과 흥미가 뒤섞인 채 기본소득 찬성 쪽으로 돌아서는 것을 목격했다.
“이들에겐 정치문화란 것이 없다. 대부분 아예 무관심하거나, 혹은 음모론자인 경우도 있다. 반자본주의적 프로젝트의 기반 확대를 위해 노력하지만, 별 소득을 거두지 못하는 좌파 정당들의 입장에서 이들에게서 보이는 열정과 동원력은 거절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한편, “모든 금융거래에 매우 낮게라도 세율을 부과하자”는 안들이 기본소득 재원확보 방안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드부쉐 코르테는 이에 회의적이다. 그가 만족하는 방안은 기업의 생산물을 임금 및 소득으로 분배되기 이전에 원천징수하는 것이다. 기본소득 옹호자들이 투쟁가로서의 역할을 거부하고, 안전을 추구하는 소심함을 보이는 것에 그는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한다. 이에 대해 랄프 쿤디그 BIEN 스위스 지부장은 “스위스 투표층은 주로 쉽게 불안감을 느끼는 노인들이다. 과격한 캠페인이 최상의 결과를 가져오진 않았을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기본소득에는 처음부터 기회가 없었다. 2013년 스위스는 ‘과도한 임금 반대’ 발의안을 68%의 찬성표로 가결시켰다. 그러나 이 건을 제외하고는 지난 몇 년간 사회진보주의적인 면모를 보여준 적이 없다. 2012년, 유급휴가를 4주에서 6주로 늘리자는 발의안도 66.5%의 반대표로 부결됐다. 2014년, 월 최저임금 4,000스위스프랑(약 473만 원) 도입안도 73%의 반대표로 무산됐다. 페레즈 공동편집장은 설명했다.
“국가와 고용주들의 관심사가 합치됐으며, 스위스 비밀은행의 종말과 유럽 경제위기에 휩쓸릴 위험에서 스위스를 구제하려면 자유주의를 좀 더 강화시켜야 한다는 신념이 생겨났다.”
그래도 여론을 부추기는 데는 성공했다. 신문, 방송, 토론회, 공공집회에서 기본소득 논의가 활기를 띠었다. 일간지 <르 탕>이 5월 25일에 쿤디그 BIEN 스위스 지부장과 독자 간의 대화의 장을 마련했을 때, 홈페이지 접속자 수는 최고치를 기록했다. 1989년에 64%의 반대표로 부결된 ‘군대 없는 스위스’ 발의안이 그러했듯, 기본소득 발의안도 사회토론을 점화시키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였다. 결국 이 목표는 달성된 셈이다.  


글·모나 숄레 Mona Cholle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이보미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미카엘 로드리게즈Michaël Rodriguez, ‘En Suisse, la santé aux bons soins des assurance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1년 2월호
(2) http://le-revenu-de-base.blogspot.f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