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법의 중심에 놓인 남중국해 분쟁

2016-07-01     디디에 코르모랑
남중국해에 위치한 미스치프 환초가 해당 해역분쟁의 지표 역할을 하게 됐다. 1791년 헨리 스프래틀리 선장에 의해 발견된 이 해양지형물은(1) 수년 전 촬영된 위성사진을 통해 말굽 모양을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스치프(Mischief)’라는 단어는 영어로 장난, 피해 등의 뜻을 지닌다. 이 이름은 선박들이 이곳을 안전히 항해하기 쉽지 않다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남중국해에 위치한 섬, 암초, 암석 등 해양지형물들은 오랜 세월동안 항해의 방해물이었다. 그리고 이 해양지형물들의 이름도 근방을 항해하다가 좌초된 선박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 많다. 모험을 강행한 것은 몇몇 어선에 불과하다. 또한 면적이 넓지 않기 때문에, 어떤 인공시설도 건설된 적이 없었다. 실제로 파라셀 군도에서 가장 큰 섬인 우디 섬의 면적은 200㎢이며, 스프래틀리 군도의 이투아바 섬도 45헥타르(0.45㎢)에 그칠 뿐이다. 

분쟁의 두 가지 측면, 영토분쟁과 영해분쟁

미스치프 환초에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한 것은 1995년으로, 중국이 필리핀 해안으로부터 100해리(185km) 정도 떨어진 곳에 수상 구조물들을 세우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필리핀이 이에 반대하고 나섰으나, 중국은 일종의 대규모 ‘간척화’ 과정을 강행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4년 말에는 거대한 항만 및 공항 인프라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 분쟁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해양지형물의 영토에 대한 분쟁이며, 다른 하나는 영해에 대한 분쟁이다. 그리고 바로 이 영해분쟁으로 인해 국제법 준수의 문제와 전략지역의 항해 자유권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영토분쟁은 오래 전부터 지속돼왔지만 여전히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중국은 2천여 년 전 자신들이 이곳의 해양지형물을 발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본래 하이난 섬에 살던 중국인 어부들이 그곳을 자주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기록한 문헌자료들로 이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 파라셀 군도와 스프래틀리 군도의 실질적인 통치권을 행사했던 것은 아니다. 이후 제국주의 강국들이 이곳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프래틀리 군도 내 섬들과 암보이나 암초는 공식적으로 1877년 당시 영국 왕실의 영토였다. 그러나 1930년대부터는 일본의 구아노(Guano: 바다새의 배설물의 퇴적돼 형성되는 천연비료) 자원개발 활동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프랑스가 파라셀 군도와 스프래틀리 군도의 영유권을 손에 넣었다.(2) 하지만 이내 1939년에는 일본군이 군도 전체를 점령했다.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판세는 또 한 번 뒤집혔다. 그러나 상황은 여전히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다. 중화민국(3)군이 일본군을 쫓아내고 파라셀 군도의 우디 섬과 스프래틀리 군도의 이투아바 섬을 점령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1947년, 중국 국민당 정부(이후 대만이 됨)는 남중국해의 군도 대부분을 둘러싸는 11개의 단선(점선)을 표기한 지도를 발표했다. 이후 1950년 중국 공산당이 하이난 섬을 장악하면서 국민당은 군도를 떠나게 됐지만, 그러나 곧 이투아바 섬을 재점령했다.
한편 중화인민공화국은 1956년 우디 섬을 시작으로 파라셀 군도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파라셀 군도의 패틀 섬에는 남베트남의 파견대가 프랑스 주둔군의 뒤를 이었다. 1951년 일본과 연합군이 전쟁 종결을 약속하며 샌프란시스코 조약(4)을 맺었다. 하지만, 누가 이 해역의 주권을 행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명시하고 있지 않다.(5) 해당 회담에 참가하지 않았던 중국과 대만 정부도 계속해서 주권을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영토의 주권에 관한 문제는 해결이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인 까닭에, 실제 쟁점이라기보다는 부차적인 문제로 간주됐다. 1970년대 이후 해당 섬들에 대한 소유 및 점거는 대부분 평화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현재 남중국해의 섬과 암초들은 베트남과 필리핀, 말레이시아, 중국이 점유하고 있으며, 이투아바 섬의 영유권은 대만이 가지고 있다. 브루나이는 그 어떤 지형물도 영유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인도네시아는 해당 수역의 남쪽 부근에 대한 배타적경제수역(EEZ)만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1974년 중국이 우디 섬을 점령하면서 중국과 남베트남 사이에 무력 충돌이 빚어졌다. 이후 1988년에는 스프래틀리 군도의 존슨 산호초를 둘러싸고 중국과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다시 한 번 충돌했다. 이처럼 가장 심각하게 갈등을 빚고 있는 두 국가는 단연 중국과 베트남이다. 필리핀이나 말레이시나, 브루나이 등은 일부 섬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지만, 이와 달리 중국과 베트남은 파라셀 군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동시에 양국 모두 스프래틀리 군도 전체에 대한 영유권 주장으로 맞붙고 있는 상황이다.
영유권 문제를 해결하는 한 가지 해결책은 중재에 맡기는 것이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이미 이와 유사한 작은 섬이나 암초에 대해 중재적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페드라브랑카 섬을 둘러싼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사이의 분쟁이 이에 해당한다. 국제사법재판소는 당시 페드라브랑카 섬에 대한 주권이 부재한 상황임을 확인하고, ‘실효성’에 대해 검토를 시행했다. 즉, 해당 지역에서 실제적으로 일종의 관할권을 행사하고 있는 국가가 어느 쪽인지를 확인한 것이다. 
물론 남중국해 문제에도 이러한 방식을 적용할 수는 있으나, 중국은 이 문제를 놓고 중재는 물론 그 어떤 형태로도 국제화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마침내 필리핀의 요청에 따라 중재재판소가 구성됐으나, 여기서는 특정 해양지형물에 대한 주권 문제를 제외하고 영해권 설정 문제에 대해서만 다룰 예정이다. (박스기사 참조)

국제법을 걸고넘어지는 중국의 영유권 주장

최근 남중국해 인접국들이 보이고 있는 분쟁의 원인은, 1982년 채택돼 각국에 ‘배타적경제수역’이라는 이름으로 최대 200해리(370.4km)까지의 해역을 활용할 수 있게 규정한 유엔해양법협약(UNCLOS)과, 점점 더 깊은 곳을 개발할 수 있게 된 해저시추기술 발전과 관련해 생각해볼 수 있다. 남중국해는 다양한 자원을 갖추고 있다. 어로자원의 경우 전 세계 어획량의 10%를 차지한다. 이는 수억 명을 먹일 수 있는 양이다.
또한 탄화수소 보유량도 상당하다. 그 추산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미 개발되거나 확인된 탄화수소 자원들의 경우 대부분 비분쟁 지역의 해안가를 따라 매장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해상교통의 측면에서도 중요도가 높다. 남중국해는 컨테이너선을 위한 국제적인 주요 운송로다. 뿐만 아니라, 호르무즈 해협에 버금가는 석유 운송로이기도 하다. 중국은 물론 특히 일본과 한국도 이곳을 통해 석유를 수입하고 있다. 또한 중국이 대규모로 수입하는 석탄 또한 이곳을 통해 운송되고 있다.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 주장은 국제법을 걸고넘어지는 듯하다. 2009년에는 유엔에 관련 구상서를 제출하면서 오래 전부터 지속돼 온 그들의 영유권 주장을 형식화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이 구상서와 함께 자신들이 주장하고 있는 영유권 범위를 명시한 지도를 첨부했다. 이는 1947년 국민당 정부가 작성했던 11단선을 베트남과의 통킹 만 내 영해 경계 획정 이후 9단선으로 수정한 것이었다. 이 자료에 의하면, 중국은 “남중국해와 인접해역의 섬들에 대해 명백한 주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해당 해역의 해상, 해저, 하층토에 대해 주권적 권리와 관할권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남중국해 해상 일부에 대한 주장은 해당 해역의 모든 해양지형물에 대해 주권이 인정되는 경우에만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런데 이 경우는 그렇지 않다. 중국은 이에 그치지 않고, 다시 한 번 “남중국해에 대한 주권과 관할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모호한 주장을 펼친다. 나아가 “역사적 권원”을 가지고 있다는 더욱 막연한 표현으로 주장을 이어갔다.(6)
국제법은 ‘주권’과 ‘관할권’을 철저히 구분하고 있다. 주권은 한 국가가 최대 12해리(22.22km)까지의 영해에 대해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관할권은 인접국과의 거리가 400해리를 넘는 경우 자국 연안으로부터 200해리까지를 배타적경제수역으로 보고 이에 대해 인정받는 권리를 가리킨다. 두 국가 사이의 거리가 400해리 이하일 때는 해당국들이 경계 획정 작업을 별도로 진행해야 한다. 그러나 중국이 주장하는 9단선은 각 섬으로부터의 거리가 200해리를 넘고 있어, 타국의 배타적경제수역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해역의 주권과 관할권은 항해에 대한 규정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인다. 배타적경제수역에서는 모든 선박의 자유로운 항해가 가능하다. 그러나 한 국가의 영해 내에서의 항해는 경우에 따라 제한될 수 있다. 특히 전함의 경우 빠른 속도로 지체 없이 항진하는 ‘무해통항(Innocent passage)’의 경우에만 영해 내 항해가 가능하다. 국제법에서는 무해통항의 범위를 연안 주변 최대 22km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남해구단선상에 포함된 해역의 주권을 주장하면서 이를 약 2,000km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중국은 유엔해양법협약의 비준 과정에서 자국 영해 내에서 전함에 대한 무해통항권 자체를 거부하고, 대신 사전 허가제를 주장했다. 결국 세계적인 주요 항로로 손꼽히는 이곳의 항해자유권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중국은 전함을 제외한 상업용 선박에 대해서는 규제를 가하고 있지 않다.
한편 ‘역사적 권원’이라는 개념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유엔해양법협약 제10조에서 ‘역사적 만’이라는 유사한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관습법을 통해 인정돼 온 역사적 수역에 대한 개념은 사용하고 있지 않다. 다만 국제사법재판소가 이러한 관습법적 개념을 판결에 사용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이는 1992년 9월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 등 세 인접국이 폰세카 만 해역에 대해 대립했던 경우였다. 이때는 대상 해역의 면적이 3,200㎢로 훨씬 작았는데, 국제사법재판소는 결국 세 국가 모두 역사적 주권을 공동으로 행사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남중국해의 경우 관련 논의가 지속되고 있는 유일한 토론의 장은 1997년 시작된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중국 간 회의밖에 없다.(7) 그나마도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아세안 10개 국은 중국에 관련 행동규칙에 대한 협의를 요구했다. 현재까지 이들이 성취한 것은 ‘행동규칙 선언’에 서명을 받은 것뿐이다. 
그런데 이 선언은 국가들에 신중할 것을 권고하고(특히 분쟁의 대상이 되는 해양지형물에 주민을 거주시키지 않도록), 가언적 규정 범위를 명시하며(국제법, 특히 유엔해양법조약의 준수), 당사국이 해양환경보호를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장려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2002년 11월 이 선언에 협의한 이후에도 기존의 결정을 번복했다. 그리고 2013년에 이르러 해당 행동규칙의 결의를 위해 협의를 재개하기로 수락했다. 그러나 당사국들은 중국이 과연 합의에 도달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한편으로 공동개발구역을 설정해 해저 및 하층토에 대한 공동개발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내용에 대해 찬성을 표명했다. 타이 만의 경우처럼 공동개발이 이루어지는 실제 사례들도 존재한다.(8) 중국과 베트남은 2011년 공동개발구역에 대한 대책과 함께 국제법, 특히 유엔해양법협약을 준수하도록 권장하는 ‘해상문제에 대한 기본원칙’에 협의했다. 
하지만 이 협의는 사실상 사문(死文)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여러 인접국들은 신중을 기하고 있는 상태다. 실제로 분쟁 해역에 대한 공평성은 자원 분배 기준 뿐만 아니라 각국 해안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중국과 베트남, 필리핀은 지난 2005년 가스층이 묻혀있는 리드 뱅크를 포함해 남중국해 지역 일부 구역에서 지진 연구를 시행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 합의는 해당 구역이 필리핀 연안으로부터 지나치게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는 필리핀 국내의 반대 여론 때문에 무산됐고 결국 필리핀 대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기도 했다.
공동개발구역이라는 개념은 해저 하층토 자원뿐만 아니라 상부수역에 대해서도 적용해볼 수 있을 것이다.(9) 특히 어로자원에 대해서는 공동의 긴급한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대부분의 지역이 타국 어선에 대한 일방적이고 불리한 중국 지도부의 조치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법과 각국의 실제 관습에 따라, 수많은 해양지역에 대한 공동개발은 물론 특별민감해역(PSSA)과 같은 공동보호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상부수역 내 항해의 자유는 보장하면서도, 중국과 같은 신흥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들에게 각국의 자원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남중국해 역시 이러한 형태를 취하도록 함이 관건이다.  


글·디디에 코르모랑 Didier Cormorand
해양 전문가

번역·김보희 sltkimbh@gmail.com
고려대 불어불문과 졸업.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역서로 <경제 성장이라는 괴물>등이 있다.


(1) 섬, 암초, 암석 등의 분류가 명확하지 않으며, 명칭에 따라 해당 지형물이 지니는 권리가 달라지므로 여기서는 ‘해양지형물’로 통칭한다.
(2) 프랑스 관보(Journal officiel), 1933년 7월 26일자
(3) 1949년까지의 중국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이후 현재의 대만이 됐다.
(4)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일본과 연합군이 서명한 평화조약으로, 러시아와 중국은 제외돼 있다.
(5) Quang Trung, ‘Jeux d'influence à Yalta(얄타에서의 파워게임)’, <마니에르 드 부아>, 제139호, 2015년 2-3월
(6) 2011년 4월 14일 유엔에 제출된 구상서 중.
(7) 아세안의 가입국으로는 미얀마, 브루나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타이, 베트남 등이 있다.
(8) 타이-말레이시아, 베트남-말레이시아 간 공동개발
(9) 상부수역은 해저 및 하층토 위의 수역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