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TV에 등장한 범법자들의 ‘고해성사’

2016-07-01     장 주린

2012년 말에 중국 공산당의 최고 권력자가 된 이후, 시진핑 주석은 끊임없이 권력을 강화했다. 시진핑 주석은 ‘비리 척결’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공산당의 권위에 누를 끼치는 사람이라면, 모두 ‘공개 자아비판’을 통해 숙청하고 있다. 공개 자아비판이라는 구시대의 방식이 문화혁명을 거쳐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탄생되고 있다. 현대판 자아비판은 카메라 앞에서 이루어진다.


중국 최고 부자 중 한 명으로 소개된 쉬친은 평범한 사기꾼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버나드 매도프와 마찬가지로 쉬친도 재산의 상당 부분을 ‘폰지 피라미드’라 불리는 다단계 금융사기를 통해 벌어들였다고 하니 말이다.(1) 쉬친은 이 사실을 2016년 5월 16일에 ‘고백’했다. 그 고백은 판사나 경찰 앞이 아니라, 민간 채널인 드래곤TV에서 이뤄졌다. 2013년 이후 이러한 형태의 ‘TV자아비판’이 일상이 됐다. 배우, 기자, 사업가, 변호사 등 내·외국인 유명인사 10여 명이 중국 중앙TV(CCTV, 정부 소유의 채널 그룹)에 출연해 1시간 동안 당과 국가에게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이한 주인공은 홍콩의 유명서점 ‘코즈웨이베이 북스’의 오너로, 베이징 중앙정부의 정치관련 도서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중국계 스웨덴 국적의 구이민하이다. 3개월 간 행방불명됐던 그는 2016년 1월 17일, CCTV의 저녁 7시 뉴스에 돌연 등장했다. 그리고 11년 전, 어느 십대 소녀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일을 무척 후회한다고, 그리고 중국으로 되돌아오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그의 동료 4명 역시 2015년 10월 17일부터 12월 30일까지 행방불명됐기 때문이다.
2013년 8월 29일에는 쉐만즈(샤를 쉐)라는 가명으로 더욱 알려진 중국계 미국인 쉐비췬이 매춘, 그리고 해외생활에서 배운 섹스파티를 즐겼다고 고백했다.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에 팔로워 1,200만 명 이상을 거느린 온라인 스타 쉐비췬은 며칠 전, 매춘부를 동반한 채 베이징 경찰에게 체포됐다. 물론,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8개월 후인 2014년 4월 16일, 쉐비췬은 다시 한 번 CCTV에 모습을 드러내고는 말했다.
“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과거를 잊고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정부가 기회를 한 번 주셨으면 합니다. 사죄하며,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같은 날, 쉐비췬은 보석으로 풀려났고 CCTV의 악몽에서 해방됐다. 그러나  천융저우, 가오위, 선하오 세 명의 기자에게는 악몽의 시작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길 원했다.”

CCTV에서 활동하는 한 기자는 이러한 방식이 놀라울 게 없다는 말을 익명으로 전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인터뷰는 거절할 수 있지만, 협력해야 할 의무도 있습니다.” 심지어 중국에서 익숙한 표현을 예로 들며 합의에 대해 설명한다. “한 손으로 박수를 칠 수는 없죠.” 이 말에, 베이징의 변호사 류지엔쥔은 분노했다. 류지엔쥔은 웨이팡(산둥성)의 법정 앞에서 “인민은 법정을 감시할 권리가 있다”라고 쓰여진 플래카드를 든 이들과 함께 집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2015년 6월 15일에서 7월 15일까지 수감됐다. 비리 사건에 연루돼 10년 형을 받은 공무원 고객을 변호하는 집회였다. “자유가 없는데, 그런 인터뷰를 무슨 수로 거부합니까?” 그는 분개하며 말했다. 그리고 6월 22일, CCTV에 방영된 자신의 자아비판을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본 그는 너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경찰은 인터뷰에 응하면 내 이름이 기사에 나오지 않을 것이고, 내 얼굴도 모자이크 처리된다고 세 번이나 말했었습니다.” 류지엔쥔은 말했다. 수감생활이 너무나 힘들었던 그는 경찰에 협력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수감자들에게 주어진 산책시간은 단 20분이었다. 중국 법에는 아침 1시간, 오후에 한 번 더 산책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지만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단순한 용의자들은 “공포스러운 분위기에 주눅 든 채 출소 후에는 고분고분해진다”고 한다. 이런 잔인한 방식이 왜 사용되는지 류지엔쥔 변호사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제겐 정치적인 야심도, 중국 공산당의 권력을 뒤엎을 능력도 없습니다.”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문맹인 어머니가 걱정하실 것이 마음에 걸렸던 그는 ‘시골로 돌아가 농부가 되는 한이 있어도 여기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2015년 6월 18일, 그는 익명이 보장된다는 조건으로 CCTV와의 인터뷰에 응했다. 그리고 7월 13일, 기자 10여 명의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보석금으로 풀려나고 10개월 후, 류 변호사는 정부를 자극할 위험이 있음에도 계속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저는 그 어떤 죄도, 불법행위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모욕도 이런 모욕이 없습니다.”
<난팡두스바오> 신문의 편집장을 지냈고, 2004년에 체포된 청이중은 공식 미디어의 기자들이 어떻게 인터뷰를 연출하고 수감자들에게 함정을 놓는지를 들려준다. 필립 판 기자는 저서 <마오의 제국>(2)을 통해 TV자아비판 장면을 묘사한다. 사복 차림의 검사실 직원들이 청이중을 찾아와 검사 사무실로 데리고 간다. 그곳에 있던 대학생들이 청이중을 존경한다고 하고, 학생 중 한 명은 그의 시 한 편을 낭독한다. 점심 때 검사는 고향요리를 준비해달라고 말해 놓았다. 이어서 여성 한 명이 큰 케이크를 갖고 모습을 드러낸다. “청, 오늘 39번째 생일이죠.” 검사가 말한다. “40번째 생일은 어디서 맞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 길이 순탄하길 바랍니다.” 검사는 기자들 앞에서, 그에게 케이크를 자르기 전에 소원을 말하라고 한다. 청이중은 가족을 떠올렸고, 눈물을 쏟을 뻔했다. 
훗날 그는 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노리는 것이 자신의 눈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 사람들은 그가 털썩 쓰러지는 모습을 사진으로 포착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TV는 이 장면을 계속 방영한다. 비리범들이 죄를 고백하며 비통하게 울음을 터뜨린다. 그로부터 12년이 흘렀지만, 그 날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청이중은 정확히 기억한다. “2004년 4월 3일, 오전 11시와 오후 5시 사이. 광동 인민 검사국.”
외국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2013년 8월, 제약회사 글락소 스미스 클라인의 감독관인 영국인 피터 험프레이는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된 채 CCTV에 나왔다. 그는 글락소가 공무원들에게 지불한 뇌물과 관련해 당국에 정보를 제공한 사람들의 신원을 알아보고자, 중국인 시민들에게 돈을 건넸다고 자아비판 했다. 2016년 1월 22일, 이번에는 스웨덴에서 온 피터 다흘린 차례였다. 한 NGO의 설립자였던 그는 인권전문 변호사들을 돕고 있다. 다흘린은 국가안전을 위기로 몰아넣었다고 자아비판을 한 후 추방됐다.
“아직 재판도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자아비판을 강요한 CCTV의 방식은 분명 중국법과 인권을 무시한 행위입니다.” 중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법학자 중 한 명이자 베이징대학의 교수로 있는 허웨이팡이 비난한다.
“미디어가 공산당의 기관이고 CCTV가 권력의 대변인인데 ‘죄를 뉘우쳐야’하는 자아비판 의무는 훨씬 끔찍하죠. 자아비판만으로도 정의를 짓누르는 참을 수 없는 압력입니다. 사법기구들은 결국 미디어가 내린 결론을 따라가게 되니까요.” 
유명 기자(3) 원타오도 TV자아비판 관행을 비난한다. “CCTV는 법정이 됐으나 각자 자기변호를 할 수 있는 법정이 아니라 군말 없이 시인해야 하는 법정입니다.” 그는 현 사회가 후진타오 주석이 집권하던 시기(2002~2012)보다는 투명하다고 한다. “후 주석시대에는 이러한 사건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알게 됐죠. 다만 정부 홍보에 도움이 되는 사건만 알려진다는 것이 문제죠.” 아마도 원타오는 그가 겪은 일 때문에, 이러한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1년, 원타오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83일 동안 세상과 단절된 채 독방에 갇혔다. 그가 당한 피해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케이블 뉴스 네트워크(CNN)의 편집 코디네이터를 지낸 황톈보 같은 인물들은 정부의 의도가 반드시 악의만은 아니라며 정부의 활동을 상대적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정부는 이러한 방식을 정보전달 채널로 생각합니다. 직접적으로 본보기를 세워 공포심을 주려고 하죠. 하지만 결과가 아무리 모욕적이고 파괴적어도, 반박할 수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황톈보는 공공 채널이 쉐만즈의 사건을 다루었던 방식을 천박하다고 평가한다. “식탁에 앉아 아이들과 함께 쉐만즈의 매춘사건을 본 가정이 얼마나 됐을지 상상해 보십시오. 어쨌든 누군가를 모욕하기 위해 미디어를 이용하는 것은 야비합니다.” 중국에서는 기자와 검사직을 겸하는 인사들의 역할에 대해 반박하지 못하고, 국가의 정치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변호사이자 인권운동가이며 미국 하버드대 초빙 연구원인 텅뱌오는 이 같은 생각에 단호하게 반박한다. “이러한 기자들은 시스템의 희생자가 아닙니다. 자발적인 권력의 협조자입니다.”
TV자아비판은 중국 현대사 중 가장 아픈 기억 중 하나인 문화혁명 10년(1966~1976)을 연상시킨다. 문화혁명 때 공개적인 자아비판이 강제됐고, 모욕적으로 거리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플래카드를 들고 있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 보수적인 성향이거나, 공산당에 반대하는 활동을 한 혐의가 있는 지식인들은 머리를 깎였다. 류샤오치도 이를 피할 수는 없었다. 중국 국가주석(1959~1968)을 지낸 그는, “공산당에 자본주의를 침투시킨 우두머리”라는 죄목으로 1967년 8월 5일, 1백만 명이 지켜보는 톈안먼 광장에서 아내와 함께 끌려나와 죽을 정도로 고문을 받았다. 
무소불위의 시진핑이 이끄는 정부 하에서 이러한 악몽이 다시 시작될까? 궁금해진다. 더구나 시진핑 주석 자신도 학생 때 몇 년 동안 오지로 쫓겨난 문화혁명의 피해자이기에, 더욱 놀라운 일이다. 그의 아버지 시중쉰은 전국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과 부총리를 지냈으나, 1962년에 숙청을 당했던 것이다. 시중쉰은 자신의 이름과 ‘당에 반대하는 폭도’(4)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목에 건 채 거리에 세워졌고, 15년 간 투옥됐다.
모욕을 주는 처벌은 중국문화의 일부다. 하지만 문화혁명 시기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다른 전통과도 연결돼 있다. 허웨이팡 교수는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이러한 공개적인 자아비판은 아주 오랫동안 기독교 신자들 사이에서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중국만의 특이한 점이라면 공개적인 자아비판이 신이 아닌, 세속적인 정부 앞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또 하나의 차이점은 각자 도덕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유교적 사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모욕은 일종의 교육이며, 변화시키기 힘든 사람들에 대한 처벌입니다.” 

결과 없는 미디어 폭풍

TV자아비판에 반대하는 의견들이 있지만, 많지는 않다. SNS를 이용하는 네티즌들은 눈에 띄지 않으려 하고 자기검열을 하는 성향이 좀 더 강하다. 민감한 주제에 대해 말할 때, “아시잖아요!”라는 문구가 전국에 퍼진 것이 좋은 예다. 이 모호한 표현은 2014년 3월 2일, 루신화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CCPCC)의 대변인이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홍콩)의 기자로부터 부패은닉, 권력남용, 국가기밀누설 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전직 보안부 대표, 저우융캉의 운명에 대해 질문을 받자 대답한 말이다.
지난 3월, 주정푸 역시 CCPCC의 의원이자 중국 변호사 협회의 부회장으로서 TV자아비판을 중단해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하지만 그가 일으킨 미디어 폭풍은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 주간지 <차이신>의 홈페이지에 실린 여러 기사도 검열을 받았다. <차이신>은 트위터 영어 계정에 이런 글을 올렸다. “CCPCC의 국가 위원회 회원들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코멘트가 당국 소속 감시자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차이신>은 금지 명령을 받은 기사들을 언급했다. 
허웨이팡은 중국 헌법 제38조의 내용을 상기시켜준다. “중국인민공화국의 시민 개개인에 대한 존엄성은 불가침이다. 시민들을 모욕하고 비방하거나 시민들을 대상으로 누명을 씌우는 모든 방법은 금지돼 있다.” 형사 소송법 제12조의 내용은 이렇다. ‘인민재판이 없으면 그 누구도 범인으로 인정될 수 없다.’ 중국의 법들은 이미 필요한 모든 내용을 명시했다. 그럼에도 법을 실제로 적용시키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요원한 듯하다.  



글·장 주린 Zhang Zhulin
프랑스 시사지 <쿠리에 앵테르나시오날>, 홍콩 영자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중국·대만 신문사 <리엔허 자오빠오(Lianhe Zaobao)>에서 기자로 활동 중이다.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번역서로는 <술레이만 시대의 오스만 제국>(2016, 공역) 등이 있다.   
 
 
(1)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9년 8월호에 실린 이브라임 와르드의 기사 ‘폰지, 피라미드의 비밀’을 참조할 것.
(2) 필립 판 기자가 취합한 자아비판 사례를 엮은 책, <Out of Mao's Shadow. The struggle for the Soul of a New China>(한국에서는 <마오의 제국>이라는 제목으로 출간), Simon&Schuster, 뉴욕, 2009년
(3) 중국 영어매체 <글로벌 타임즈>, 포에닉스 차이니즈 뉴스&엔터테인먼트 채널인 ‘난두 주칸’, 홍콩의 디지털 미디어 ‘이니시움 미디어’와 협력관계에 있다.
(4) 밍징 뉴스, 2014년 7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