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신규고용법’은 렌치 총리의 사기극

2016-07-01     안드레아 푸마갈리 | 파비아 대학 경제학 교수

5성 운동(기성 정치권에 반대하는 신규 정당)에 밀려 로마와 토리노에서 고배를 마신 집권 여당은, 6월 19일 지방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신규고용법(Jobs Act)’을 내세운 렌치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이 언론이나 기업, 유럽 자유주의 사회당 진영의 마음은 홀렸을지언정 유권자의 마음은 사지 못한 듯하다.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는 스스로를 현대적이고 혁신적인 지도자로 소개하길 좋아한다. 그렇다면 그의 노동시장 개혁안은 실업률을 낮추고 이탈리아의 후진적인 노동 시장 여건을 개선할 수 있었어야 한다. 하지만 렌치 정부에서 고용 촉진을 위해 채택한 신규고용법은 낡은 자유주의식 대안만 양산하며 자유주의 논리를 더욱 강화시키는 꼴이 됐다.
이탈리아에서 처음 노동시장 유연화의 움직임이 나타난 것은 1983년이다. 노동부와 기업, 노조 연합 등 노사정 3주체가 ‘스코티’ 협약을 체결한 시기였다.(1) 이 협약은 임금-물가 연동제를 제한했을 뿐만 아니라 청년들을 대상으로 ‘근로실습 계약’이라고 하는 특이한 형태의 최초 근로계약을 도입한다. 이후 정부의 모든 수단들을 동원하여 근로계약을 잡다하게 남발한 나머지, 현재 이탈리아에는 40여 개의 근로계약들이 존재한다. 1997년 제정된 트레우 법에서는 임시직을 합법화했으며, 이후 2003년에는 비아지-마로니 개혁으로 하도급 계약이 신설됐다. 2008년에는 시간당 10유로 선의 노동 바우처 제도를 만들었는데, 이는 주로 비숙련 부문에서 활용된다. 근로계약의 형태만 다양해진 것이 아니다. 정부는 이와 함께 고용주의 권한도 늘려줬다. 최근에 도입된 관련 조치는 2010년에 표결된 ‘연계 노동법’인데, 이 법에 따라 사용자의 직권 남용에 대해 노동자가 법원에 제소할 수 있는 권리가 제한됐다. 또한 2012년에 채택된 포르네로 법은 재정난을 이유로 한 노동자의 해고를 보다 용이하게 해준다.
2014년과 2015년에 렌치 총리가 시행한 개혁들도 이 같은 노동 유연화 정책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으며, 심지어 기존 정책들의 완성판 같은 느낌이다. 노동 불안정성을 포괄적으로 제도화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2015년에 시행된 ‘보호 지향적’ 정규직 개혁안은 노동의 영속성을 보장해주지 못한 것은 물론 노동자의 권리도 보호해주지 못했다. 근로계약 수립 직후 3년간은 고용주가 뚜렷한 명분 없이 언제든 근로계약을 철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용주의 유일한 의무 사항은 해고 노동자에게 재직 기간에 비례하는 해고 수당을 지급하는 것뿐이다. 이탈리아 노동법에는 노동자 해고 시 (업무상의 중대한 실수나 절도, 잦은 결근 등) 반드시 정당한 사유를 제시하도록 하는 대표 조항 18조가 있지만, 렌치 정부의 개혁안에 따라 동 조항의 적용은 36개월 간 유예된다.(2) 2006년 프랑스 도미니크 드 빌팽 전 총리가 구상했던 ‘최초근로계약(CPE)’과도 비슷한 느낌인데,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탈리아에서는 26세 미만의 노동자가 아닌 노동 인구 전체가 그 적용 대상이라는 점이다. 
렌치 정부는 비정규직 계약과 관련한 규제도 풀어줬다. 2014년 3월 이후 (노동부 장관 지울리아노 폴레티의 이름을 딴) 폴레티 법에 따라 고용주는 뚜렷한 사유 없이 비정규직 계약을 체결할 수 있게 됐으며, 조정 기간도 갖지 않은 채 계약 기간을 5회 갱신할 수 있다. 게다가 이 조치는 서류상의 적용을 기반으로 한다. 즉, 개인에 대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직위에 적용되는 것이다. 따라서 서류상의 보직만 수정하면 노동자를 평생 고용 불안에 시달리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업 측에서 이렇게 ‘편리한’ 비정규직 계약을 연장하는 대신 ‘보호 지향적’ 정규직 계약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정규직 계약 쪽이 더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렌치 정부는 정규직 계약을 체결하는 기업에 대해 조세 혜택을 지원해주고 있다. 이에 따라 2015년에 체결된 모든 정규직 계약은 비정규직 계약에 비해 연간 8,000유로의 비용 절감 효과를 얻었다. 재정 긴축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워낙 정부 측 비용 부담이 큰 조치였기 때문에 2016년 안정화 법에 따라 이제는 고용주의 비용 절감액이 3,300유로로 축소됐다. 결과적으로 렌치 정부가 도입한 신규고용법은 기업 입장에선 뜻밖의 횡재였다. 유명무실한 ‘보호 지향적’ 정규직 계약을 체결한 뒤, 이후 뚜렷한 명분 없이 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하면 비정규직 노동자를 채용하는 것보다 더 이득이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통계상의 허점도 생긴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됨에 따라 소위 ‘안정적’이라고 하는 고용 수치는 인위적으로 높아졌지만, 실제로는 고용 불안정성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렌치 정부의 개혁은, 프랑스의 엘 콤리 법 제정에 대한 사회적 반발에 비할 만큼 대대적인 시위나 파업을 불러오지는 않았다. 일단 프랑스와는 다르게 이탈리아에서는 단체 협약의 보호를 받는 직업군 이외엔 최저임금이 보장되지 않는다. (참고로 이에 해당하는 직종도 전체 노동자의 50% 미만이다.) 게다가 이탈리아에는 노동자에게 ‘유리한 조건 우선의 원칙’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측은 부문 협약에서 정한 것보다 노동자에게 더 유리한 근로 조건을 제안해야 할 그 어떤 의무도 지지 않으며, 부문 협정이라고 해서 반드시 노동법보다 더 유리하리란 법도 없다.(3) 따라서 노동자들은 사측의 협박에 매우 취약하다. 이탈리아에는 프랑스의 RSA 제도 같이 최저소득보장제도에 준하는 법적 장치도 없을 뿐더러, 재취업을 전제로 한 지원도 없다. 특히 노사 양측을 조율해줄 만한 완충 장치는 정규직 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하며, 수많은 임시직 노동자들은 여기에서 제외된다. 그럼에도 신규고용법에 대한 노동자의 저항이 크지 않은 이유는 워낙에 이탈리아가 경제 위기 및 소득 정체를 겪고 있는 데다 노조도 취약하고 사측의 통제 권한도 강화되었기 때문이다(신규고용법에서는 노동자를 원격통제할 수 있는 일부 기술의 사용을 허용해주고 있는데, 이에 따라 노동자의 사생활 침해까지 우려되고 있다).
렌치 총리 및 장관들은 이 같은 개혁안을 지지하기 위해 전임자들이나 독일 보수당 정권 및 프랑스 사회당 정권과 같은 논거를 내세웠다. 현대적인 경제 구조를 마련하고 청년 실업을 비롯한 실업 문제 해소를 위해서는 노동법의 ‘유연화’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테오 렌치 총리는 “노동법 18조는 1970년대에 만들어진 규정이다. 심지어 그 당시 좌파조차도 표결에 반대했던 법인데, 지금은 2014년이다. 따라서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법이다”라고 주장했다.(4)
정부와 언론에서는 신규고용법이 논란의 여지가 없는 성공적인 대안이라고 소개한다. “(국립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5년에 신규 창출된 정규직 일자리만 50만 개에 달한다. 이는 곧 신규고용법에 대한 논란이 말도 안 되는 것임을 방증한다.” 2016년 1월 19일 트위터를 통해 이와 같이 떠벌린 렌치 총리는 3월 2일에도 “현 정부 출범과 더불어 세금은 줄어들고 일자리는 늘어났다”는 글을 썼다. 사실 일자리 100만 개가 사라진 경제 위기 이후 2015년에 처음으로 실업률이 1.8% 하락하며 감소 곡선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실업률이 줄어든 이유는 ‘보호 지향적’ 정규직 계약 신설과 더불어 제공되는 세제 혜택 때문이었다. 시행 후 관찰 기간이 앞으로 3년이므로 신규 근로계약 제도의 도입에 따른 제대로 된 평가는 2018년이 돼야 나올 수 있다. 다만 재정 지원 삭감에 따른 신규 고용 창출 효과의 감소는 이미 확인되고 있는데, 2016년 일사분기 중 체결된 정규직 계약 건수가 전년도 동기 대비 77% 추락했기 때문이다.(5)
 
청년층 40%이상이 실업자 
 
게다가 2015년 실업률 감소에도 허수가 많다. 쉬운 해고와 대체가 가능한, 비숙련직을 중심으로 한 바우처 제도의 사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2008년에는 2만 5천 명 정도만 이 제도를 활용했으나, 2015년에는 138만 명이 바우처 제도를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1천만 시간 규모였던 2010년과 달리) 그것을 활용해 1억 1,500만 시간의 노동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6) 이에 따라 불안정 고용인구 비율도 자연히 높아진다. OECD 자료에 따르면 2011년에는 이탈리아 청년 인구 중 43%가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지 못했지만, 2015년이 되면 이 비율은 55%로 증가한다. 같은 시기 15세~24세 사이의 실업률은 10% 증가해, 40%선을 넘어섰다. 그럼에도 이탈리아는 현대적인 경제 기준에 부합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가늠하는 OECD 고용지표 ‘고용보호 수준’이 10년 만에 1/3 가량 감소했음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렌치 총리는 이탈리아 정부의 수장이 되고 난 후에 공급중심정책에 사활을 걸었다. 2015년과 2016년의 안정화 법은 재산세 감면 및 기업의 세금 인하, 지자체 경비 축소, 교통, 에너지, 우편 등 일부 공공부문의 민영화 추진 등을 주요 골자로 한다. 이 같은 정책의 기저에는 비용절감과 수익증대가 곧 투자의 증가를 가져오며, 나아가 생산 및 고용 증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7) 하지만 이러한 논리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이탈리아의 실업 문제는 노동시장 내부의 구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수요의 부족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확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생산을 늘릴 기업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도 렌치 정부는 구조적으로 수요를 늘리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다. 최저임금제도도 수립하지 않고 저소득 인구를 위한 사회보장 개혁도 진행하지 않았으며, 소득 보장 정책도 실시하지 않았다. 그 결과, 2014년 이후 GDP는 계속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GDP 대비 부채 비율도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전체적인 파이가 커지지 않기 때문이다. 
신규고용법은 노동시장을 크게 세 가지 그룹으로 갈라놓았는데, 세 가지 그룹 모두에서 고용의 불안정성이 보편화되고 있는 상태다. 우선 첫 번째 그룹은 대졸 미만 청년 노동자 집단이다. 이들은 대개 (보장성이 별로 없는) 인턴 계약으로 노동 시장에 진입한다. 그리고 (보호 수준이 보다 낮은) 바우처 계약을 맺는 경우도 점점 늘어난다. 두 번째 그룹은 (학사 이상의) 중상급 숙련직 청년 노동자 집단이다. 이들의 사회 진출을 활성화하기 위해 정부는 ‘청년 직업교육 보장제도’에 의존하고 있는데, 고실업국가를 대상으로 EU가 재정을 지원해주는 이 제도의 주된 목표는 청년들의 ‘고용 가능성’을 개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역 기반의 기업 플랫폼을 제공하며, 이들 기업의 수요에 맞는 ‘입사 코스 과정’을 제안한다. 시민 서비스는 무상으로 제공되고, 실습 기회도 거의 무상으로 지원되며, 자원 근로도 가능하다. 우선 (자원봉사자 1만 8,500명이 동원된) 밀라노 세계 박람회를 위해 2013년 700명의 인력을 고용하면서 시범 도입이 이루어진 이 제도는 이후 전국으로 확대 실시된다.(8) 이를 통해 청년 60만 명이 일자리를 찾았으며, 정부는 최저의 비용으로 청년 실업 통계 수치를 낮추는 데에 성공했다. 나머지 세 번째 그룹에는 그 외 모든 노동자들이 속하는데, 30세 이상의 모든 경제활동 인구가 여기에 들어간다. 대개는 비정규직 계약을 무기한 갱신하거나 ‘보호 지향적’ 정규직 계약을 체결하며, 이 같은 상황은 정년 때까지 계속된다. 오직 사내 업무 수행에 꼭 필요한 능력 있는 노동자만이 계속해서 신임을 받으며 안정적으로 고용 계약을 맺는다. 
‘청년 직업교육 보장제도’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공약 경제’(9)에서 자금을 받는 ‘무상 노동’ 구조는 정상적인 임금을 받는 안정적인 취업을 더욱 늦추면서 이탈리아 노동시장 규제 완화의 또 한 가지 영역을 개척한다. 이렇듯 렌치 총리의 개혁은 고용의 불안정성을 가중시켰으며, 불안정 고용의 일반화와 제도화를 초래했다. 고용 불안정성의 증대는 이탈리아의 경제가 정체된 주요 원인 중 하나인데,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경기 침체는 노동의 불안정성을 가중시키는 정부 정책의 정당성을 입증해주는 요인이 된다.  
 
 
글·안드레아 푸마갈리 Andrea Fumagalli
파비아 대학 산업경제학부 경제학 교수. <일하기 위한 삶: 인지 자본주의의 새로운 형태La Vie mise au travail. Nouvelles formes du capitalisme cognitif> 등의 저서가 있다.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역대학원 졸업. <22세기 세계> 등의 역서가 있다.
 
 
(1) 빈센초 스코티Vincenzo Scotti 기독민주 노동부 장관이 입안한 1983년 1월 22일 협약. 뿐만 아니라 동 협약의 체결로 연간 단위 노동 시간제도 도입됐다.
(2) 1970년 3월 20일에 채택된 이 ‘노동자의 지위’ 관련 조항은 이탈리아 노동법의 몇 가지 기준을 정해주는 조항이다.  
(3) 소피 베루, ‘사용자를 위한 프랑스 노동개악’,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6년 6월호. 
(4) 2014년 10월 26일 민주당 전당 대회에서의 연설
(5) ‘Lavoro, Inps: “Nei primi tre mesi nuovi posti stabili giù del 77% dopo il dimezzamento degli sgravi”’, <Il Fatto Quotidiano>, Roma, 2016년 3월 18일.
(6) Valentina Conte, ‘Boom di voucher: 277 milioni di ticket venduti in 8 anni’, <La Repubblica>, Roma, 2016년 5월 16일.
(7) ‘헬무트 슈미트(Helmut Schmidt, 1918-2015, 서독 전 총리)의 정리’에 따르면 “현재의 수익이 곧 내일의 투자로 이어지고, 그 다음 날의 고용으로 이어진다.” 프레데리크 로르동 Frédéric Lordon, ‘임금 배분의 역설 Le Paradoxe de la part salarial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블로그, 2009년 2월 25일. http://blog.mondediplo.net
(8) Lorenzo Bagnoli & Lorenzo Bodrero, ‘Expo, i contratti di lavoro nell’occhio del ciclone’, Wired.it, 2015년 4월 27일.
(9) Marco Bascetta, <Economica politica della promessa. Un libro contro il lavoro gratis>, Manifestolibri, Roma,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