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난도 데 소토, 라틴 아메리카의 반(反)피케티 경제학자
2016-07-01 라파엘 콜리오
에르난도 데 소토는 한창 선거철인 페루에서 인기 있는 인물이다. 화려한 수상 경력을 지닌 경제학자인 그는 1990년대에는 독재 대통령 알베르토 후지모리의 최측근 고문이었다. 그리고 2011년에는 그의 딸인 게이코 후지모리의 선거 진영에서 활동했다.(1) 프랑스에서 그는 주간지 <르푸앙(Le Point)>이 선호하는 ‘반(反)피케티’ 경제학자로 알려져 있다.(2) 그가 내놓은 논문들은 미국 국제개발처(USAID)와 세계은행에서 귀중한 자료로 쓰인다.
그렇다면 에르난도 데 소토의 대표적인 이론은 무엇일까? 바로 ‘비공식적’ 경제에서의 사유재산과 투자 간의 관계다. 그에 따르면, 라틴 아메리카 노동자의 50~75%가 합법적인 테두리 밖에서 경제활동을 한다.(3) 이들이 벌어들이는 돈에는 그 어떠한 타이틀도 붙지 않기 때문에, 또 다른 이익을 생산하지 못하는 ‘비생산적 자본’이 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첫 번째 이유는, 법적 소재지 없이는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거나 계약을 체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투자와 업무의 생산성이 크게 낮아지기 때문이다. 법의 영역 밖에 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추가 경비를 필요로 하고 각종 범죄와 부당한 토지 점유에 노출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남쪽 국가들에서 비공식적 경제의 비율이 높은 것은 불완전한 법적·행정적 시스템이 그 원인이다.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하지 못하거나 혹은 재산권 보장에 막대한 비용을 필요로 하는 이 국가들은, 빈곤층을 법의 영역 밖에 두고 그들의 투자의지를 차단한다. 즉 빈곤의 원인은 부의 불평등한 재분배보다는 재산을 보호하는 법적 규제의 부재와 더 연관이 깊다.
이에 에르난도 데 소토는 개인권리 보호에 뿌리 깊게 기반한 경제적 자유주의를 주장한다. “악습을 개혁하는 좋은 법”을 주장한 콩고르세의 발언과도 맥을 같이 한다.(4) 제도와 기관에 대한 그의 애착은, 공공개입에 대해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대부분의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과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또한 시장경제를 불신하는 좌파 세력들도 유독 그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태도를 견지하는 이유다.(5)
몇몇 부분에 있어서는 ‘저개발’에 관한 그의 분석이 옳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법적 및 행정적 결함은 빈곤층의 권리 행사를 상당부분 제한한다. 또한 기득권층의 독점을 유지시키며, 민주주의 발전을 근본적으로 저해한다. 무능한 정부 하에서 국민들은 불법적인 방법을 취하기가 쉽다. 이는 현재 게이코 후지모리의 지지자들이 주장하는 바이다. 오얀타 우말라 대통령 집권기보다 오히려 부패와 클리엔텔리즘이 일상적으로 행해지던 알베르토 후지모리의 집권기 때 오히려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임이 더 높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에르난도 데 소토는 단순히 ‘저개발’ 사상가나 토마 피케티의 반대자에 머물지 않는다. 아마존 지역 원주민 공동체의 법적지위에 대한 그의 입장은 페루 내 원주민들에게 큰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1920년 헌법이 제정되면서 페루는 안데스 지역 원주민 공동체들의 존재를 법적으로 인정하고 공동체(대부분은 가족과 유사한 형태의 그룹들)에 속한 주민들에게 영토와 자원에 대한 공동소유권을 보장했다. 1974년 법은 아마존 지역 원주민 공동체들에게 이와 유사한 권한을 부여했고, 이 시기를 기점으로 1,200개 이상의 아마존 지역 원주민 공동체들이 영토에 대한 공동소유권을 갖게 됐다.
에르난도 데 소토는 이 부분에 주목했다. 2009년에는 페루 북부의 바구아(Bagua) 시에서 대규모 원주민 시위가 일어났다. 아마존 지역 원주민들의 영토보전을 위협하는 법령들이 잇따라 제정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위로 인해 시민과 경찰 33명이 사망하고 20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정부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고, 아마존 원주민 연합은 역사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에르난도 데 소토는 이 비극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 “바구아에서 일어난 폭력시위는 금밭을 깔고 앉아있으면서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원주민들의 욕구불만이 표출된 결과”라고 그는 지적한다. 그는 페루의 법규 역시 원주민들에 대해 ‘차별적’이라고 주장한다. 시장경제에 편입되기 위한 필수조건인 사유재산에 접근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부자가 될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의 시각에서 원주민들에게 허락된 공동소유권은 아무런 법적효력도 없는 ‘한낱 종잇조각’에 불과하고, 불법적인 광물 채취와 다를 바 없이 법의 영역 바깥에 존재한다.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법규와 시대에 뒤떨어진 행정 때문에 원주민 공동체들의 영토 소유권이 허술하고 불완전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도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에르난도 데 소토의 예상과는 달리 비공식적 경제와 직접적인 연관성도 없다. 이 권한들은 헌법상으로 인정될 뿐만 아니라 국제노동기구(ILO)의 규약 제169조에 의한 국제적 비준 대상이다.
또한 “오늘날의 인디오들이 개별적으로 자신의 구역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원주민들의 공동체 제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그의 주장 역시 절반은 옳고 절반은 틀렸다. 왜냐하면 이러한 집산주의(collectivism)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혹 공동작업이 있을 수 있지만, 농업, 사냥, 낚시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활동이고 이로 인해 얻어지는 수익도 개인에게 귀속된다. 실제로는, 재산은 공동체의 소유이되 자원의 사용은 가족 또는 개인 단위로 이루어진다.(6)
원주민들은 왜 영토를 팔지 않는가?
에르난도 데 소토가 말한 인디오들의 ‘자연적 사회주의’는 매우 유토피아적인 것이 맞다. 그러나그가 말한 이유에서가 아니라, 20세기 초에 원주민 친화적인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말한 이유에서 그렇다. 게다가, 페루 헌법은 영토점유방식과 자원개발방식을 명시하고 있지 않다. 원주민 공동체는 ‘조직, 공동체 단위의 작업, 영토의 사용 및 처분, 그리고 경제 및 행정에 있어서 독립적’이다.(제89조) 따라서 헌법이 공동소유권만을 인정한다는 이유로, “법이 인디오들을 차별한다”는 에르난도 데 소토의 주장은 틀렸다. 원주민들은 원하면 그들의 영토를 팔 수 있고, 실제로 판 사례들도 있다. 에르난도 데 소토가 던지지 않은, 그리고 여기서 던져야 하는 질문은 사실 이것이다. 바로 “왜 대다수의 원주민들이 영토를 팔지 않는가”하는 것이다.
그에 대한 답은 아마도, 몇몇 그룹들이 토지거래의 자유화가 가져올 역효과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종차별과 지배가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상황 속에서, 토지거래의 자유화는 더 나아가 기득권층에게 영토정복에의 기회를 제공한다. 경제적 자원을 필요한 만큼 사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들은 현지의 정치적·행정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특혜를 누릴 것이 분명하다. 이는 19세기 초의 상황과 정확히 일치한다. 당시 시몬 볼리바르(Simón Bolívar)는 인디오들의 자원개발을 막는다는 구실로 안데스 지역 원주민 공동체들의 영토를 주민 개개인에게 분배했다.(7) 그러나 주민들의 토지는 곧 몇몇 지주들이 이끄는 대규모의 농업 독점기업에게 흡수됐다. 이러한 구조는 1969년 페루 농지 개혁 전까지 그대로 유지됐다.
아마존 지역의 원주민 공동체가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는 이유는, 이들이 생계를 공동체 주민들 간의 경쟁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권한으로 인식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공동체는 공동의 자산이고, 각 주민들은 공동체 관리 업무의 일부를 맡는 조건으로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정당하게 가져갈 수 있다. 인디오들은 오늘날 각 원주민들의 다양성을 아우르는 ‘통합적’ 거버넌스의 구축을 지향한다.(8) 자연은 우리가 일방적으로 영향을 주는 고정된 대상이 아니라, 우리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복합적인 총체이기 때문이다.(9)
자연과 문화를 대립적 개념이 아닌 연속적 개념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은, 오늘날 특별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자연과 문화에 대한 시각의 변화는 사실 몇몇 인류학자들이 인디오 세계의 개념을 가져와 전 세계에 전파하면서 일반화된 것이다.(10) 현대 사회의 환경 운동 역시 이 변화의 흐름에서 비롯됐다. 에르난도 데 소토의 정치경제학에 포함된 가치들과 ‘웰리빙(Well-living)’ 방식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토지 공동 관리에 대한 에르난도 데 소토의 불신은 아마도 그가 ‘공공재의 비극’이라 불리는 논리에 동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11) 공공재의 비극에 의하면, 한 집단이 희귀한 자원을 이성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개개인의 욕심에 의해 필연적으로 과도한 자원개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가 인디오 지도자들이 부패했다고 주장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에르난도 데 소토의 시각에서는 특수한 법규의 지배를 받는 사유재산권만이 환경적인 측면에서 존속가능하다.
아마존 지역과 로레토 주에 위치한 30여 개 공동체들에게 천연자원을 사유화했을 때, 어떠한 환경적인 효용이 있을지도 생각해볼만 하다. 로레토 주는 2016년 2월부터 비상사태가 선포된 지역이다. 페트로페루(Petroperú)의 사업 도중 4,500배럴에 가까운 원유누출 사고가 발생해 사상최악의 인재이자 환경재해로 기록됐다. 이 사건은 인디오 연합에게 영토보호에 있어서 원주민 공동체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 계기가 됐다.(12)
이 공동체들이 현재 점유하고 있는 구역은, 과거 인디오들이 점유했던 방대한 영토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1974년 법에 따라, 원주민 공동체들의 영토는 식민주체들에 의해 결정된 구획에 기반해 작은 구역들로 나뉘어졌다. 인디오 연합이 주장하는 전통적 영토의 ‘통합적’ 회복과는 거리가 멀지만, 에르난도 데 소토는 이미 아마존 지역의 80% 이상에서 벌목, 가스 및 석유개발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이 정도면 과분한 수준이라고 말한다.
정치권은 에르난도 데 소토에게 더없이 호의적이다. 대선결과와 무관하게, 그는 새 정부가 자신을 데려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과거에 모셨던 대통령이자 “정치적 패기가 있는 인물”이라고 여전히 칭송하고 다니는 알베르토 후지모리에 대한 충성심을 바탕으로, 대선 1차 투표 이후 게이코 후지모리의 선거진영에 공식합류했다. 한편, 그는 “승리의 여신이 쿠친스키의 손을 들어준다면 그와 함께 일할 준비가 돼있다”고 밝힌 바 있다.(13) 이는 에르난도 데 소토가 월스트리트 은행가 출신인 쿠친스키에게 보낸 메시지로, 쿠친스키는 에르난도 데 소토와의 협업 가능성에 대해 큰 기대감을 내비쳤다고 한다.
글·라파엘 콜리오 Raphaël Colliaux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사회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진보매체에 중남미 관련 글을 주로 기고하고 있다.
번역·김소연 dec2323@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주요 수상 기록으로는 밀턴-프리드먼상, 아담스미스상, 템플턴자유상이 있다.
(2) 에르난도 데 소토에 의하면, 빈곤층은 자본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을 추구한다. Cf. 뤽 드 바로쉐즈, <에르난도 데 소토, 반(反)피케티>, 르푸앙(Le Point), 파리, 2016년 1월 14일
(3) 에르난도 데 소토, <빈곤층의 부가 또 다른 이익을 만들어내도록 해야 한다>, 르몽드, 2008년 11월 7일. 이 비율은 국가마다 큰 차이가 있다.
(4) 에르난도 데 소토의 저서인 <또 다른 길, 제3세계에서의 비공식적 개혁>에 대한 질 드니(Gilles Denis)의 서평, 잡지 Politique étrangère, vol.59, n°2, 파리, 1994
(5) 파블로 파레드, <반체제적 전쟁에 대항하는 지하 경제(Economie souterraines contre guerre subversiv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1994년 4월호
(6) Cf. 알베르토 시리프, <La mermelada de De Soto>, La Mula(블로그), 2015년 6월
(7) 법은 그 뒤로도 몇 번 더 개정됐다. Cf. Alicia del Aguila, La Ciudadanía corporativa, Instituto de Estudios Peruanos(IEP), 리마, 2013
(8) 원주민 친화적인 NGO들이 즐겨 사용하면서 알려진 용어로, 후에 원주민들에 의해 더 적합한 방식으로 바뀌었다.
(9) 식물, 동물, 기타 요소들도 충분히 훌륭한 대화 상대가 될 수 있다. Cf. Alexandre Surrallés, <Entre derecho y realidad: antropología y territorios indígenas amazónicos en un futuro próximo», Bulletin de l’Institut français d’études andines, vol.38, n°1, 리마, 2009
(10) Cf. 필립 데스콜라, 자연과 문화 그 너머, Gallimard, 파리, 2005
(11) Cf. 제롬 스가르, <사유재산과 자본주의 법. 에르난도 데 소토의 주장은 무엇인가?>, L'Économie politique, vol.2, n°26, 파리, 2005. Cf. Garrett Hardin, <The tragedy of the commons>, Science, vol.162. no3859, 워싱턴 D.C., 1968년 12월
(12) Cf. 에밀리 뒤퓌, <아마존 지역의 해양오염>, 르쿠리에(Le Courrier), 제네바, 2016년 4월 11일
(13) 페루에서 6월 5일 치러진 대통령 결선투표에서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가 득표율 50.12%로, 게이코 후지모리(49.88%득표)를 이기고 당선됐다. 쿠친스키는 세계은행 경제학자 등을 거친 '경제통'으로 중도우파 성향의 친시장주의자다. 쿠친스키는 7월 28일 대통령에 취임해 2021년까지 5년간 페루를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