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탄을 자처하는 에르도안의 권력욕

2016-07-01     셀라하틴 데미르타시

시리아 내 반(反)지하드 전투에는 나서지 않던 터키 대통령이, 자신의 권력욕을 비난하는 이들을 상대로 마녀 사냥에 나섰다. 쿠르디스탄의 전쟁 재개를 비난했다는 이유로 대학교수와 기자, 국회위원이 기소됐다. 주요 좌파 정치인에 속하는 셀라하틴 데미르타시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독단적 만행을 말한다.


2016년 5월 20일 헌법 임시개정안 통과로 국회의원 수십여 명의 면책특권이 폐지되면서, 터키의 정치권은 나락의 수렁으로 한 발 더 다가갔다. 이 개정안은 헌법에 위배될 뿐 아니라, 국민의 권리와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원칙에 위배된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명령으로 상정된 헌법 개정안은 인민민주당(HDP)(1)을 겨냥한 것으로, HDP는 국회 제1야당이다. HDP 소속 국회의원 중 53명이 공적인 모임에서 발언한 내용과 관련해 417개에 달하는 혐의로 기소됐다. 다시 말해, 그들은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것이다. 이로써 에르도안 대통령은 HDP를 국회에서 축출하려는 목표에 한 발 더 나아갔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우리 당이 그의 전제 권력 구축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 정당이 터키 전체의 국민과 민주주의를 위한 세력, 특히 쿠르드 정치 세력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의 입을 틀어막으려 한다.(2) 그는 쿠르드족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에서 자행되는 반인도적 범죄를 규탄하려는 국회의원의 입을 막고 모든 반대 세력을 억압하려고 한다. 
우리는 정의개발당(AKP)의 매수로 인해 전쟁 병기로 전락한 법원이, 우리 당 의원을 소환하려는 음모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당 소속 국회의원을 표적으로 삼은 사법기관의 공소와 지역의원 체포에 맞서 싸울 것이다.(3) 터키의 모든 민주주의 세력과 힘을 합쳐 정의와 평등을 위한 전투를 계속할 것이다. 얼마 전까지 형식적으로라도 민주주의에 관한 기준을 조율하기 위해 유럽연합(EU)과 협상을 진행하던 터키는, 이제 쿠르드족이 거주하는 도시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장갑차와 대포 소리, 관저에서 목소리만 높이면 정당성을 강화할 수 있으리라 굳게 믿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폭정으로 얼룩져 있다.

터키 정부의 만행에 침묵하는 국제기구

암울한 결과를 가져올 전쟁이 쿠르드족이 거주하는 도시에서 다시 거세지면서 터키 정부는 터키 사회의 구성원인 그들을 말살시키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이번 전쟁에는 중화기와 전차가 등장해 민간인이 사는 집을 향해 포탄을 쏘아댔다. 터키 전체를 파멸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을 각오로 부족한 지지표를 확보해, 대통령제를 도입하려는 에르도안 대통령과 여당의 만행은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2015년 7월부터 수백 명의 민간인과 또 수백 명의 터키 안보군, 그리고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쿠르드 민병대원이 죽어갔다.
대통령의 물불 가리지 않는 음모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1990년에서 2000년까지의 암흑기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벌어지는 일들은 우리가 겪었던 어떤 사건보다 몇 배 더 잔혹하다. 지즈레에서 청년 백여 명이 지하실에서 산 채로 불태워졌다. 디야르바키르 쉬르 지구는 불도저로 밀어버린 듯 도시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또한 일상의 안전이 위협받는 사회에 두려움과 비감이 확산됐다. 반대세력의 목소리를 억압할수록 민주주의를 위한 자리는 소멸된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그들의 범죄를 숨기고, 통제의 고삐를 죄고 영원히 군림하기 위해 한층 더 전제적인 체제를 구축한다. 오늘날 터키 상황이 바로 그렇다. 
그 동안 유럽기구는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여전히 유럽기구가 조금이라도 단호하고 강한 규탄의 목소리를 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유럽기구는 현재 자행되는 폭력행위를 묵인했다. 게다가, 현 터키 정부의 권력남용을 저지할지도 모르는 협의에 착수하는 것을 공개적으로 거부했다. 국제기구도 별반 나을 것이 없다. 석 달을 미적거리던 국제연합 인권 고등판무관은 지즈레 학살에 대한 독립적인 진상조사위원회를 마련하라고 터키 정부에 요청했다. 그렇지만 터키가 자신들이 서명한 국제조약(4)을 준수하도록 강제하는 어떤 구체적인 조치도 없었다.
터키에서 민주주의, 인권 같은 보편적인 가치가 퇴색하고 있는데 유럽은 다른 곳만 바라보고 있다. 유럽은 난민문제로 머리가 아프고, 미국은 IS조직과 벌이는 전쟁으로 정신이 없다. 물론 그것도 중요한 사안이다. 그러나 그들과 긴밀하게 연결된 터키의 쿠르드족 문제를 외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시리아에서 일어난 전쟁을 피해 온 난민들을 협박도구로 사용하는(5) 에르도안 대통령과 AKP가 자행하는 반인도적 범죄를 묵인하는 현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2012년 말에 시작된 평화협상은 모두에게 숨통을 터주었다.(6) 갈 길은 아직 멀지만 터키 민족과 쿠르드족 사이의 지속적인 평화를 위한 위대한 한 걸음이었다. 그런데 2015년 4월 터키 정부가 갑자기 쿠르드노동자당(PKK)의 역사적인 지도자이자 평화 프로세스의 설계자인 압둘라 오칼란의 수감 조건을 강화하기로 결정하면서 그의 외부 접견과 연락이 느닷없이 금지됐다. 터키의 긴장강화 전략은 2015년 여름 터키령 쿠르디스탄에 대한 군사 공격 개시로 이어졌다. 
터키 대통령은 대화 재개를 전혀 바라지 않는다. 그는 협상 테이블로 돌아가거나 권좌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전쟁을 끝낼 생각이 없다. 이제 터키에서는 평화를 옹호하기만 해도 범죄로 간주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남동부 도시에서 벌어지는 군사작전을 종료하라고 주장하는 청원서를 대중 앞에서 낭독했다는 사유로 직위 해제되고, ‘테러리즘 프로파간다’ 혐의로 기소된 대학교수 4명의 사례가 이를 방증한다.(7)
에르도안 대통령은 용맹하게 IS를 격퇴하고 연합군의 지원을 받아 눈에 띄는 속도로 영토를 수복한 시리아 내 쿠르드족까지 겨냥하고 있다. 터키 정부는 자국 방향으로 총 한 발도 발포하지 않은 쿠르드민주동맹당(PYD, PKK의 자매당)의 전투원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모든 국경을 막았다. 
우리는 더 늦기 전에, 또 터키의 폭력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기 전에 쿠르드족 거주 도시에 선포한 계엄령을 철회할 것을 요청한다. 우리는 양측이 전쟁을 종식시킬 것을 촉구한다. 무력의 언어가 이어지는 동안 민주주의의 입지는 계속 좁아지고 있다. 그러다가는 결국 에르도안 대통령이 국가적 안정을 위한 유일한 대안으로 남을 것이다. 한 세기 전 냅킨 한 구석에 끄적인 낙서를 바탕으로 국경이 세워진(8) 근동지역에서 IS조직과 독재정권이 번갈아 지배하는 죽음의 수렁을 빠져나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다양한 민족과 종파를 동등하게 놓고 좀 더 독자적이고 강한 지역 행정부와, 보다 포괄적이고 확고한 집단적‧개인적 권리를 통해서 구축한 세속적이고 다원적인 민주주의 모델만이 유일한 탈출구다.
2015년 6월 총선에서 우리 당은 터키와 근동 국가를 위해 이와 같은 이상을 제시하면서 득표율 13% 달성에 성공했다. 우리 당은 아르메니아인, 야지디족, 아랍인, 아시리아족은 물론 노동자와 대학교수, 청년층과 여성, 알레비파와 수니파, 터키인과 쿠르드족을 대변했다. 다시 말해 국회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다양성을 바탕으로 모든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고 평화의 노래를 부르는 나라를 꿈꿨다. 6백만 명의 유권자가 우리가 그리는 미래에 표를 던졌다. HDP는 평화를 기원하는 소망이 구체화되는 구심점이 됐다. 터키의 모든 민족은 HDP와 함께한다면, 고통 받는 터키의 민주주의를 구할 수 있다는 신념을 되찾았다. 

독재자에 맞서는 
쿠르드족과 터키 민주주의

그렇다. 우리는 터키의 미래였다. 그렇지만 다른 분파도 있었다. 압제가 횡행하던 과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들, 한 세기 전부터 국민에게 어떤 이득도 주지 못한 이들이다. 2015년 6월 7일 총선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며, 우리는 민족주의적이고 당파적인 AKP의 일당 체제를 무너뜨렸다.(9) 술탄을 자처하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통치 장치에 누가 될 법한 작은 모래알 하나를 던져 넣었다. 대통령은 무슨 근거로 우리 당을 ‘테러리스트’라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무너뜨려야 하는 적으로 규정하는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평화 프로세스 중단 및 파기를 선언하고, 국민을 1990년대와 같은 내란으로 몰아넣는 것인가. 
‘주도권을 가진 남성’을 앞세우는 당파적 성향인 AKP의 대척점에 서서 민족과 성별 사이의 평등을 주창하는 우리의 입장도 그의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다. 우리와 그들의 좁혀지지 않는 입장 차이는 평화회담 자리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정부 대표단은 우리의 모든 요청을 단칼에 거절하면서 “여성 문제가 쿠르드 평화 프로세스와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 거요?”라고 물었다. 그들에게는 사고방식이 자신들과 전혀 다르고, 단지 쿠르드족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 투쟁하는 우리가 이상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아마 서방세계는 여전히 에르도안 대통령과 협상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토사구팽된 아흐메트 다부토글루를 보라.(10) 아직 터키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는 정의나 민주주의나 인권에 대해서 무개념한 사람이다. 오로지 자신의 안위와 전지전능성만 생각하는 그는, 자기 자신만이 터키와 근동의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헌법을 무시한 채 ‘터키식’ 대통령제를 구축하고 있다. 현재 정치 상황을 법으로 성문화할 야심을 품고 있다. 그래서 우리 당 국회의원의 면책권을 폐지한 것이다. 그렇지만 쉽게 목표를 달성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국회 안에서나 외부에서 민주적 반대파는 그의 실력 행사에 굴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글·셀라하틴 데미르타시 Selahattin Demirtas
터키 인민민주당(HDP)의 공동대표로 대국민의회(TBMM)의 HDP 원내대표이며 2015년 6월부터 이스탄불 주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디야르바키르(2007~2011)와 하카리(2011~2015) 주의원을 지냈다.

번역·서희정 mysthj@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인민민주당은 2013년부터 좌파와 환경정당을 결집했다. 그 중에는 친 쿠르드계도 있다. 당 소속 국회의원 중 2명이 2015년 9월 수립된 임시정부에서 잠시 일했다. 익명으로 진행된 투표에서 헌법 개정안은 총 550표 중 376표를 얻어 통과됐다. 이론적으로 국회의원 138명에 대한 기소 가능성이 열렸지만 현실적으로는 좌파 국회의원이 주요 기소 대상이다. 
(2) 2015년 11월 1일에 있었던 총선에서 인민민주당은 10.7%의 표를 얻어 59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정의개발당(AKP, 이슬람보수주의, 49.5%, 317석), 공화인민당(CHP,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를 추종하는 중도좌파, 25.3%, 134석),  민족주의운동당(MHP, 범터키주의를 표방하는 극단적인 민족주의 성향, 11.9%, 41석)의 뒤를 이은 네 번째 정당이다. 
(3) ‘쿠르드 여성 운동의 국제대표단(IRKWM)’에 의하면 인민민주당 소속 지역대표와 지역의원 4,500명이 체포됐고, 2016년 4월말 현재 950명이 아직 구금된 상태다. 
(4) 터키는 1954년에 유럽인권조약을, 2003년에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을 비준했다. 
(5) 유럽연합과 터키는 2016년 3월 18일에 터키가 유럽연합으로 향하는 이민자, 특히 시리아 난민 행렬을 제한하기로 약속하는 협약을 맺었다. 
(6) 에르도안 정부는 2012년 12월에 쿠르드노동자당(PKK)과 직접 협상을 시작해, 수감된 PKK 지도자 압둘라 오칼란과 쿠르드 유력인사를 만났다. 이 중 일부는 현재 HDP 소속 의원이다. 2013년 휴전이 결정됐고, 2014년에는 양측 모두 조만간 전반적인 합의를 도출할 것을 기대했었다.
(7) 법정에 선 대학교수 4명은 무자페르 카야, 키반크 에르소이, 메랄 캄시, 에스라 먼간 구르소이.
(8) 사이크스피코협정을 빗댄 표현이다. 앙리 로랑스, ‘오스만 제국은 어떻게 분할됐는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3년 4월호 참조. 
(9) 인민민주당은 2015년 6월 7일 총선에서 12.9%의 득표율로 80석을 차지하며, 현행 내각제를 대통령제로 전환하려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야심을 좌절시켰다. 국회의원 수의 3/5(330석)에 해당하는 지지표를 확보하지 못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헌법개정 투표를 실시하지 못했다. 2015년 11월 조기총선을 실시해 정의대표당이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했다. 그러나 여전히 가중다수결 정족수는 채우지 못했다. 
(10) 에르도안 대통령의 외교자문(2003~2009)과 외교부장관(2009~2014)을 거쳐 총리직에 오른 아흐메트 다부토글루는 2016년 5월 사직을 종용 당했고 총리직에는 대통령의 심복이 임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