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리의 ‘페르소나’를 망가뜨리나

한나 아렌트 탄생 110주년

2016-07-01     홍원표 l 한국외국어대 LD학부 교수

 

   
 

‘나와 당신, 우리는 대체 누구인가? 그리고 우리가 영위하는 공동체는 대체 무엇인가?’ 한국 사회에 살면서, 한번쯤 이렇게 자문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우리 삶의 공간이 거대한 연극무대라면, 각기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다할 때 우리의 삶은 감동적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곧잘 배역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그것도 일시적이나마 연극무대의 ‘주역’에 오른 이들이 시나리오를 제멋대로 뜯어고치고, 당대 뿐 아니라 대를 이어 ‘주역’을 독점하려 한다. 어차피 그들이 집착하는 ‘주역’이라는 배역도 그들의 진짜 모습이 아니거늘···.

 
한나 아렌트가 떠난 1975년과 현재 사이에 41년이란 시간적 간극이 있지만, 그가 남긴 ‘페르소나’라는 화두는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아렌트가 살던 권위주의적 냉전 시대에선 국가 이데올로기의 폭력에 의해 페르소나가 훼손되고 굴절됐다면, 권력과 자본이 은밀하게 연결된 현 시대에는 소수 권력 간의 야합과 독점, 부패가 만연하고 이로 인해 대다수의 사람들이 배제와 빈곤과 굴종의 페르소나를 강요당하고 있다. 전자가 권위주의시대의 국가 권력에 의한 개인적 페르소나의 훼손이라면, 후자는 민주화 이후 유사 민주주의 시대에 가진 자의 ‘탐욕’과 빼앗긴 자의 ‘생존’을 위한 사회적 페르소나의 변절 또는 변신을 의미한다.  
 
시민들은 왜 공공장소에서 가면을 쓴 채 시위를 하는가? 권력의 꾸지람처럼, 철없고 생각이 짧은 이들의 만용인가? 여기에는 아렌트의 지적대로 ‘사유의 불능’을 거부한 채, 자발적 참여를 통해 공동의 선을 추구하고, 개인의 자아를 실현하려는 소망이 내면에 자리한다. 시위자들은 시민으로서의 배역을 충실히 실행하기 위해 스스로 ‘진실 가면’을 쓴 채, 배덕자들의 ‘위선 가면’을 벗기려고 한다. 여기에서 가면 벗기기의 역설이 나타난다. “1% 대 99%.” 1%의 사람들이 권력과 자본을 움켜쥐었으나, 여기에 만족하지 못한 채 더 많이 가지려고 탐욕을 부린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고, 이를 수호해야 할 사람들이 탈법과 불법을 자행하고서도 부끄러움을 전혀 모른다. 
 
경제성과 효율성, 극단적인 이윤을 일컫는 이른바 경제적 신자유주의는 이들의 지칠 줄 모르는 탐욕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정치·경제적 난관에 직면한 사회적 약자들은 배덕자들의 위선적 가면을 벗기고자 일어난다. 역설적인 것은, 배덕자들의 가면을 벗기고 민낯을 드러내기 위해 시위에 나선 시민들 자신이 가면을 써야 한다는 현실이다. 권력과 자본은 배덕자들의 위선에 가려진 민낯을 지켜내기 위해 시위대의 민낯을 카메라로 체증하고 분석하고 가려낸다. 급기야 시위대의 시위와 경찰의 진압과정에서 발생한 ‘폭력’을 문제 삼아, 경찰의 얼굴체증이 쉽지 않은 복면시위를 금지하는 법안을 상정하기에 이른다. 이제 화질 좋은 카메라의 줌업으로 시위대의 민낯을 제대로 체증하겠다는 의도일 테다.
 
 권력은 시위과정에서 발생하는 폭력 문제 때문에 복면시위를 금지하는 법안을 만들어, 시민들의 가면을 벗긴다면, 표현의 자유 같은 보편적인 기본권을 제약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왜 생각지 못한 걸까? 시민들의 민낯은 권력의 민낯처럼 두텁지도, 뻔뻔스럽지도 않다. 
 
 아렌트에 의하면 권력은 공동활동의 능력으로서 언어행위를 매개로 해 형성된다. 그러나 물리적 강제성을 지닌 ‘폭력’은 언어행위가 중단된 상황에서 나타나는 한계적인 정치현상이다. 이는 정치영역을 손상시키거나 붕괴시킨다. 권력은 정당하지만, 폭력은 사후적으로 정당화될 뿐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권력이 폭력을 주도하고, 또 조장한다면? 국가 권력에 의해 특정한 역사적 국면에서 발생한 비극적 사건은 과거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현재의 우리 삶을 보이지 않게 옭아맨다. “과거는 결코 소멸되지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우리가 특정한 시기에 삶을 영위하는 세계는 과거의 세계이기 때문이다.”(1) 아렌트는 포크너의 경구를 인용하며, 국가가 주도하는 폭력성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잊지 않는다.  
 
우리는 전 세계 시위현장의 ‘가면무도회’가 테러단체의 폭력의 장으로 전락되는 양상을 종종 목격한다. 특히 IS 무장단체의 검은 두건 때문에 ‘가면’이 수난을 당하고 있다. 정치영역이 연극무대로 비유되듯이, 극중 가면은 정치적 정체성뿐만 아니라 법적 보호의 기능을 담당한다. ‘복면시위금지법’이 헌법정신을 넘어설 때, 법적 인격은 법에 의해 손상되고 침해될 것이다. 아렌트는 저서 <혁명론>에서 ‘가면’의 은유적 의미의 확장을 언급하면서 가면이 갖는 공적 역할과 정체성 형성에 주목했다.(2) 
 
“페르소나는 원래 고대의 배우들이 연기할 때 쓰는 가면을 의미했으나, 가면(탈) 자체는 분명히 두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배우 자신의 얼굴과 표정을 은폐 또는 대체하는 동시에, 배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여하튼, 목소리가 울려나오는 가면에 대한 이러한 이중적 이해에서 페르소나라는 용어는 은유가 됐으며 극장 언어에서 법률 용어로 이전됐다.”(3) 
 
   
▲ 2015년 민주노총 부산지역보부원들이 '복면방지법'에 대해 불복종의 의미로 복면을 쓰고 집회를 하고있다.
 
우선, 아렌트에 의하면 가면은 연극배우의 정체를 은폐하되 극중 인물의 정체를 드러내는 기능을 하지만, 연극배우가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또한 권리와 이에 수반하는 의무를 지닌 시민인 페르소나의 가면은 정치영역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도록 허용돼야 한다. 즉, “가면은 말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공적 역할을 창조하며 사적 자아에게 안정된 공적 대표성을 제공하는 것”이다.(4) 그러므로 시위 현장에서 행위자들이 쓰는 가면은, 그들의 정치적 정체성을 해체시키기보다 오히려 형성하는 데 기여하는 셈이다. 가면은 행위자의 민낯을 가리거나 오히려 대체하기도 하지만, 자연적인 목소리를 들리게 하기에 ‘참여’와 ‘보호’ 기능을 동시에 담당한다. 
 
둘째로, 연극배우가 사회영역의 모순을 대변하고자 배역에 맞는 가면을 쓰고 연기하듯, 정치 행위자도 “진리의 공명판과 정치적 게임 요구의 규칙”을 준수하는 한 무대의 배우와 같이 가면을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게임의 규칙을 준수한다는 것은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가면을 쓰다’라는 말은 위선과 연관된다. “그리스어로 위선자는 배우 자신을 지칭했고, 연극적 의미의 페르소나는 배우가 불가피한 사정 때문에 얼굴을 가리는 가면이었다.”(5) 반면에 가면을 위선과 동일시하려는 시도는 정치적 사유 능력의 부재를 의미한다. 권력이 정치행위자들의 ‘위선의 가면’을 벗기려는 유혹을 갖는 것은 법적 인격의 제약이나 폭력의 사용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시민은 말과 동작(또는 몸짓)으로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드러낼 수 있듯이, 가면을 통해 울려 퍼지는 말은 행위의 한 유형이며, 또한 말을 수반하지 않는 활동인 가면 쓰기도 정치행위의 한 유형이라는 것이다. 가면의 재료는 다양하다. 나무・종이・흙・헝겊 등으로 만든 가면은 정치행위의 효과를 증진시키고 촉진시킬 수 있다. 이와 관련, 아렌트는 “Persona(가면)의 로마적 어원은 Pre-sonare, 즉 ‘소리가 울려 퍼지다’라는 동사다. 로마법에서 페르소나는 호모(Homo)와 명백히 구분되며 시민권을 지닌 사람이었다”고 언급했다.(6)
 
마지막으로, 정치행위자가 참여 과정에서 가면을 착용함으로써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지만, 실명으로 행위를 할 때보다 더 큰 목적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표현의 행위에 참여하는 시민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정치적으로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 사적인 목적으로 쓴 가면이 공적인 기능을 하는 것이다. 복면시위 금지 입안자들은 독일・프랑스・오스트리아・스위스・미국 등 인권선진국에서도 공공장소에서 복면착용을 금지한다는 것을 근거로 들고 있다. 하지만, 그들과 우리와는 처한 환경이 다르다. 독일은 일찍이 1983년부터 복면시위 금지규정을 마련했다. 이는 극우 나치 세력의 폭동과 이슬람주의자들의 보복 테러의 위협이 상존한 탓이다. 하지만, 테러 위협이 가시적이지 않은 우리의 현실에서 과격 시위대의 일부가 가면을 착용한다는 이유로 폭력과 가면을 동일시해 복면착용을 금지하려는 입법 활동은 시민의 정치행위를 억압할 수 있다. 가면 벗기기의 열정이 정치영역을 폭력의 공간으로 타락시킨 대표적인 역사적 예는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를 들 수 있다. 그는 순수한 도덕적 열정으로 위선의 가면을 폭력으로 벗기고자 했다. “프랑스 혁명 참가자들은 ‘페르소나’를 전혀 몰랐으며, 정치체가 부여하고 보장하는 법적 인격도 존중하지 않았다.”(7)  
 
그러나 시민은 법에 의해 의무와 권리를 수행하는 역할을 부여받았고, 그렇기에 법적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다. 시위현장에 있는 시민의 가면은, 위선이 아니라 저항의 상징이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민주화운동은 저항 정치의 대표적인 예다. 4・19혁명 당시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은 가면을 쓰지 않은 채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행동으로 드러냈다.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의 교복은 일종의 가면이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 때에도 학생들과 시민들은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민낯을 드러내며 저항했다. 1989년 국회 광주 청문회에서 당시 동아일보 광주주재 기자였던 김영택 증인은 “학생들과 복면부대에 대해서”라는 당시 조찬형 국회의원의 질문에 “5월 18일 이후 시위대에는 복면한 사람이 없었다”고 답변했다.(8) 최루탄에 맞아 피를 흘리던 이한열 군을 감싸 안은 동료의 수건 ‘가면’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려는 것보다, 최루가스를 차단하려는 목적에서 쓴 가면 아닌 가면일 것이다. 아니 그것은 시위에 더 적극 참여하기 위한 수단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려진 부분 위로 무엇인가를 주시하는 시선에서 정치적 저항의 표현적 행위를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시위현장의 참여자들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가면을 쓰기 시작했는가? 한국에서 ‘복면시위금지법’에 대한 논쟁은 2006년 17대 국회 때부터 복면 시위자들의 폭력이 사회 문제로 제기되면서 시작됐다. 민주화의 시대가 아닌 신자유주의 시대의 시위현장에 복면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한미 FTA 협상이 진행되던 시기에 즈음해 복면시위 금지법이 상정된 점을 고려하면, 복면시위는 정치적 자유보다 시민적 자유의 획득과 연계된다. 
 
 반면, 역사가는 과거의 비극적 사건을 잊지 말고, 이야기와 실천으로 재현해야 한다. 역사의 현재화는 과거청산의 출발점이다. 따라서 역사가들의 역할이 중대한 만큼, 역사 교과서 집필과 관련한 논쟁이 그만큼 세간의 관심사가 됐다. 집필자들은 “가면을 통해 무정형의 사적이며 알려지지 않은 자아가 진리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9)  집필자들은 사상가와 마찬가지로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공정한 심판(관찰자)의 입장에 서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개인의 민낯을 감추지만 행위자의 정체를 드러낼 수 있도록 가면을 만든다. 즉, 행위자는 자신의 ‘자연적인’ 목소리로 정체를 드러낼 때 비로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복면가왕>의 무대에 등장한 연기자들을 보라. 그들은 가면을 통해 예술적 재능을 드러내는 멋진 목소리로 청중들로부터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그러나 집필 작업에 참여하기까지 실명으로 활동했던 집필자들은, 학문적 양심을 드러내는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려주지 않고 있다. ‘현상’ 공간은 다양한 시각이 충돌하는 장이다. 현상 자체는 드러남을 의미하지만, 현상 가운데 일부는 드러나기도 하고 은폐되기도 한다. 드러나지 않는 현상의 일부가 다른 수단을 통해 드러나듯, 집필자들의 행위는 드러날 것이다.
 
이제 아렌트를 통해 한국사회의 한 단면을 읽어보기로 한다. ‘아렌트의 페르소나’라는 표현은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아렌트라는 ‘인물’이고, 다른 하나는 아렌트의 역할을 대신하는 ‘필자’다. 필자는 여기에서 아렌트의 시선으로 한국 사회의 다양한 현상들 가운데 하나인 ‘어둠’을 압축해 언급한다. 아래 인용문은 아렌트가 말하는 ‘어두운 시대’라는 은유를 잘 드러내고 있다. 
 
“공공영역은 좋든 나쁘든 행위와 말로 자신들이 누구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줄 수 있는 현상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인간사에 빛을 밝힐 수 있는 기능을 담당한다. 그러나 공공영역이 ‘신뢰성 상실’과 ‘눈에 보이지 않는 규제,’ 그리고 존재하는 것을 노출시키지 않고 은폐하는 언어, 오래된 진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모든 진실을 의미 없는 사소한 것으로 폄하하는 (도덕적인 또는 다른 형태의) 권고 때문에 그 빛을 잃어갈 때, 어둠은 찾아왔다.”(10)
 
세계 역사 속의 어두운 시대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 왔지만, 한국 근현대사에서도 어두운 시대는 지속됐다. 조소앙의 표현대로 식민화된 조선을 거쳐 공포・굶주림・살육 등으로 점철된 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 이후 국가폭력이 정당화되던 권위주의 정치의 연속이었다. 이러한 칠흙 같은 어둠은 우리의 눈에 ‘명백하게 드러난다.’ 어둠과 연계된 사건들이 공개적으로 발생할 경우, 명백하게 드러남은 현실적인 것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권위주의 시대의 희미한 어둠을 거친 한국 사회는 민주화 이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있기도 하다. 한국은 1987년 민주화 이후 민주정치의 토대를 마련했지만, 이명박 정부 이후 민주주의의 후퇴를 경험했다. 이러한 시대에 어둠은 마치 비가시광선과 같아서 시민들의 눈에는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대다수의 시민들은 빛을 발해야 할 공공영역이 실제로 어둠의 영역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사회적 순응주의를 강요하는 어둠은 우리의 눈에 드러나지 않는다.
 
아렌트는 사람들의 시선이 침투하지 않는 공간을 ‘어둠의 영역’으로 묘사했다. 외부인의 시선이 침투하지 못하는 사적 영역(가정)은 개개인이 공공영역이나 사회영역에서 입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며, 동시에 공공영역으로 나가기 위한 중요한 기반이다. 우리의 삶에서 어둠과 밝음은 공존한다. 인간은 마음의 어둠을 간직한 채 밝은 공공영역에서 시민으로서 행위를 하려면 일종의 ‘가면’을 쓴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개인의 삶을 은밀하게 들여다보는 게 어느 때보다도 용이해졌다. 이를 허용하는 상황은 공공영역을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인간다운 삶마저도 위축시킨다. 이런 의미에서 현재 시행되고 있는 개인정보보호법은 보다 엄격하게 보장돼야 한다. 
 
한국 가면극에는 현실주의와 비판정신이 깔려 있다. 양반에 대한 평민의 반항의식, 남녀차별에 대한 자각, 특권계급의 위선과 허구에 대한 일종의 반항정신이 깃들어 있다. 따라서 우리의 가면은 전통적으로 인간다운 삶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는 몸짓 행위의 매개체이다. 정치행위로서 가면 쓰기는 저항정신을 반영하고 있으며 우리 시대의 어둠을 빛으로 밝히는 행위이다. 폭력과 연계되지 않는 ‘가면’은 우리의 공적 자아이자, 정치적 삶의 일부다.   
 
 
 
글·홍원표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고전적 합리주의의 현대적 해석: 레오 스트라우스, 에릭 보에글린 그리고 한나 아렌트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국어대 LD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나아렌트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아렌트: 정치의 존재이유는 자유다>, <한나 아렌트 정치철학: 행위, 전통, 인물>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혁명론>,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 <정신의 삶: 사유> 등이 있다.  
 
 
(1) Arendt, Responsibility and Judgment(2003), p. 270.
(2) 한나 아렌트, 홍원표 역, <혁명론>(파주: 한길사, 2004), p.194. 
(3) Arendt(2003), p. 13.
(4) Norma Claire Moruzzi, Speaking Trough the Mask: Hannah Arendt and the Politics of Social Identity(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2000), p. 36. 
(5) 아렌트, <혁명론>(2004), p.195.
(6) Arendt, Responsibility and Judgment(2003), p.12.
(7) 아렌트, <혁명론>(2004), p.196.
(8) <동아일보>(1989년 1월 26일), '광주청문회 일문일답'(제4면).
(9) Norma Claire Moruzzi, Speaking Trough the Mask: Hannah Arendt and the Politics of Social Identity(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2000),  p. 45.
(10) 한나 아렌트, 홍원표 역,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일산: 인간사랑, 2010), p.9.
 
 
박스기사
 
‘악의 평범성’을 읽은 아렌트의 시선 
 
 
20세기는 제국주의의 종말, 전쟁과 혁명으로 막을 올린 폭력의 시대다. 반면에 21세기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로 냉전 시대의 종말을 알리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시작됐다. 한나 아렌트의 탄생 110주년이 된 지금, 그의 사상과 철학을 재조명하는 수많은 학술회의가 전 세계적으로 열린다. 우리는 영 브륄, 카노반, 크리스테바, 아감벤, 한병철 등 수많은 학자들의 ‘가면’을 통해서 흘러나오는 아렌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한국 학계에서도 다양한 분야 연구자들과 일반 독자들이 아렌트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해 아렌트의 저작 대부분이 한국어로 번역됐고, 수많은 연구 논문들이 출간됐다. 아울러, 아렌트의 시선으로 우리 사회의 단면, 특히 악의 평범성 등을 소개하는 기사들이 신문 지면에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한나아렌트학회가 한나 아렌트 탄생 110주년을 맞이해 ‘정신의 삶과 인간성’이란 주제로 10월 학술회의를 준비하고 있다. 
한나 아렌트는 어떤 인물인가? 그는 1906년 하노버 외곽 지역인 린덴에서 태어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질풍노도’를 경험했다. 로자 룩셈부르크를 존경한 어머니 마르타 아렌트의 정치에 대해서 특별히 감명을 받지는 않았다. 아렌트는 1924년 마부르크 대학에 입학해 하이데거로부터 철학 교육을 받았으며, 1926년 프라이부르크 대학으로 옮겨 야스퍼스의 지도 아래 1929년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랑 개념>이란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그는 <라헬 파른하겐: 한 유대인 여성의 삶>을 집필 중이던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하자 프랑스로 망명했다.  이러한 사건이 ‘정치적 전환’의 계기가 됐다. 아렌트는 유럽 방문 중 한국전쟁 소식을 듣고 집필을 완료한 <전체주의의 기원>(1951)을 비롯해 <인간의 조건>(1958), <혁명론>(1963), <정신의 삶: 사유/의지>(1978) 등 수많은 저서를 출간했다. 이 저작들은 모두 아렌트의 독특한 정치적 사유를 잘 드러내고 있으며, 혁명의 ‘새로운 시작’, 특히 미국 혁명을 칭송하는 <혁명론>에서 ‘페로소나’를 이론화하고 있다. 1950년 유럽 방문을 마치고 미국으로 귀국한 이후 1975년 12월 4일 서거하기 직전까지 기록한 노트인 유고작 <사유 일기>(2002) 중 1950년 6월 일기에서 페르소나를 ‘가면’・‘역할’・‘인물’로 정의하고 있다.(1) 아렌트는 1975년 4월 18일, 덴마크 정부가 유럽 문명에 기여한 공로로 수여하는 소닝상 시상식 수락 연설에서 마지막으로 가면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정신의 삶: 판단’을 집필하던 중 심근경색으로 사망한다. 
아렌트는 소닝상 수락 연설에서 ‘유명 인사’가 아닌 자신이 ‘공적인 명예’를 기리는 상을 받아야 하는가라는 특이한 질문을 제기했다. 그는 ‘세인의 시선’에 노출되기를 싫어하는 성향을 지닌 자신이 공적 시선에 드러내야 하는 명분을 제시한다. 즉 “세상이 우리에게 맡긴 가면이나 역할, 세계의 연기에 참여하고자 할 때 수락해야 하는 가면이나 역할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2) 이를 원용하자면, 공동의 특정한 목적을 실현하고자 공공장소에 참여한 시민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자 다양한 가면을 쓸 수 있다. ‘정치적 가면 벗기기’에 대한 열정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어지는 곳에서 가면 쓰기 또한 정치행위가 될 수 있다.  
 
 
(1) Hannah Arendt, Denktagebuch(München; Piper, 2002), p. 8.
(2) 정치(Politics)의 어원이 그리스어 'Polis'에서 유래하듯이, 사람 또는 인물(Person)이란 용어는 유럽 언어에서 공통으로 'Persona'에서 유래한다. Hannah Arendt, Responsibility and Judgment(New York: Schocken Books, 2003), p.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