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위성국가로 회귀 중인 우크라이나

반러시아 승부수 띄웠다 고립… 대선 후보들 “다시 러시아로”

2010-01-06     마틸드 고아네크|프리랜서,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는 일부 전문가들이 ‘또 다른 두바이’가 될 것으로 우려할 정도로 세계 경제위기의 타격을 크게 받았다. 급기야 2009년 12월 중순 국제통화기금(IMF)에 20억 유로 규모의 차관을 요청했다. 이 자금이 없이는 국민연금과 공무원 임금도 지급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러시아 가스 수입 대금도 결제할 수 없어 ‘가스 전쟁’ 재발이 우려된다. 러시아와의 관계는 1월 17일 대통령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관건이 됐다. 

2009년 8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크렘린궁 블로그를 통해 자국민과 이웃 우크라이나인에게 비디오 연설을 했다. 그의 뒤로 펼쳐진 우편엽서 그림 같은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과격한 메시지였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관계가 지금처럼 최악인 적은 없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러시아의 그루지야 공격 이후 공개적으로 반러시아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루지야에서는 우크라이나에서 생산된 무기들이 러시아 민간인과 군인을 죽이는 데 이용되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대통령 빅토르 유셴코를 이 사태의 주된 책임자로 명시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2008년 8월 러시아와 그루지야의 분쟁 때 그가 그루지야의 미하일 사카슈빌리 대통령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러시아 정권은 이제 거리낌 없이 유셴코를 공격할 수 있고, 서방세계에서도 더 이상 아무런 동요가 없다. 2004년 일부 우크라이나인과 유럽인의 희망이던 유셴코는 동구권을 배반한 동시에 서구권을 포섭하는 데도 실패한 죄로 우크라이나 정치의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이 때문에 그는 차기 대선에서 캠페인을 이끌 자금도 지지세도 없다. 그의 재선 가능성은 희박하다. 전임 대통령 레오니드 쿠츠마 내각의 외무부 장관이었던 아나톨리 즐렘코는 “오렌지혁명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유셴코 내각은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더 이상 우방이 아닌 실용주의에 기초한 새로운 철학을 제안했다”고 설명한다.

1997년 이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략적 협정’에 기초해 관계를 유지했다. 이 복잡한 양자 협정은 가능한 모든 분야를 망라한다(에너지·경제·군사·문화·인간 등). 그러나 때로는 협정의 취지에 어긋나는 각자의 정치적 목표를 세운다. 예를 들어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취임 이후로 소련 해체 이후의 국가들, 특히 우크라이나에 대한 자국의 영향력 강화를 주요 목표로 삼고 있다. 2008년 말, 키예프의 철학교수인 미로슬라브 포포비치는 이렇게 말했다. “폴란드나 발트 국가, 코카서스도 이 정도로 중요하지는 않다. 니콜라스 1세 차르조차 당시 우크라이나에 대해 절대 양보 불가를 선언했다. 우크라이나는 크렘린의 전통적 영향권에 속한다.” 2004년 대선 승리의 여세를 몰아 유셴코는 이런 패러다임에 문제를 제기하고 민감한 사안들을 공략하면서 끊임없이 러시아를 자극했다.

푸틴과 유셴코의 정면충돌
가장 심각한 것은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이었다. 그러나 NATO 편입은 여러 해 전부터 우크라이나 외교 정책의 방침이었고, 러시아는 이에 대해 과민하게 반응한 적이 없었다. 우크라이나 외무장관 출신의 즐렘코는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우리는 2002년 러시아에 우리의 최종 목적은 NATO 회원국 가입이라는 점을 언급했다. 수차례 의견을 나눈 러시아 대통령은 이에 동의했고 우리의 선택을 수용했다. 쿠츠마 대통령은 사실 푸틴과 좋은 관계였다. 그들은 1년에 14, 15차례나 만났을 정도다. 그 후 유셴코가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며 공개적으로 러시아를 비난하는 반면 미국과 열렬한 관계를 맺자, 러시아 정권은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돌이킬 수 없는 반격으로 받아들였다. 곧 두 나라 관계는 경직되었다. 2009년 5월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러시아는 NATO가 러시아 국경까지 군사연맹 조직을 확대하도록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자 그동안 크림반도(1)에 주둔하고 있던 러시아 흑해함대 문제가 불거졌다. 그루지야 사태 때 유셴코는 2017년까지 러시아 전함이 세바스토폴에 주둔하도록 허용한 계약을 재고하도록 했다. 이는 곧 러시아와의 정치적·전략적·이념적 대립을 명백히 드러낸 것이다.

가스관으로 목줄 죄는 러시아
이제 남은 문제는 가스다. 유럽이 가장 우려하는 문제이자 키예프와 모스크바 간의 끝없는 분쟁의 근원이다. 1990년대 두 국가가 체결한 조약은 5년 전부터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각각의 국영회사인 가즈프롬과 나프토가즈의 직접 체결이라는, 미래가 불투명한 계약으로 대치되었다. 이제 양국 사이에 수많은 중개자가 개입된 것이다. 유럽 가스 공급 중단 사태로 이어진 2006년과 2008년 위기 때, 우크라이나의 시스템은 가장 취약한 상태가 되었다. 러시아의 전략은 명약관화하다. 우크라이나를 무력하게 만들려면 우크라이나의 유일한 전략 수단인 가스 수송 체계를 잡으면 되는 것이다. 나프토가즈는 만성적 재정 적자에 허덕이고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의 약점은 확실히 가즈프롬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우크라이나 대선을 앞두고 양국의 외교관계는 거의 단절된 상태다. 러시아는 2009년 여름 우크라이나에 전임 러시아 대사 빅토르 체르노미르딘의 후임을 파견하지 않았다. 메드베데프 취임 이후로 지난 2008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독립국가연합(CIS) 정상회의를 제외하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 정상은 공식 회동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2009년 말 치지노에서 열린 같은 회의에서 러시아 대통령은 유셴코를 공개적으로 무시했다.

대선 이후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대선 후보들이 여러 카드를 던지면서 친러시아와 친서방 진영의 대립 양상은 복잡해졌다. 그야말로 2004년 오렌지혁명 이후 중요한 시점이다. 지지율 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는 빅토르 야누코비치는 친러시아 및 동구권에 기반을 둔 전통적 지지 세력을 넘어설 길을 찾고 있다. 그러려면 러시아에 매수된 꼭두각시 이미지를 타파해야 한다. 키예프의 국제정치연구소 전문가인 사샤 테시에 스탈은 “분명히 야누코비치의 생각이 변했다. 이전보다 친러시아 성향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유럽의 히스테리를 비난하면서도 우크라이나의 유럽 지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고 분석한다.

열쇠 쥔 친러시아 기업가들
사실 야누코비치는 이념가와는 거리가 멀다. 많은 전문가들이 야누코비치가 취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좁다고 본다. 그가 내세우는 대러시아 정책이 지지자들의 모순되는 동기에 영향을 받고 정당인 지역당 내의 내부 경쟁으로 중지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언론이 친러시아로 분류한 이 정당은 우크라이나 기업인들의 집합체로, 이들은 무엇보다 자신의 경제 이익이 우선이다. 그렇기 때문에 야누코비치는 너무 혁신적인 태도는 피하려 한다. “대부분의 우크라이나 시민은 어떤 나라보다 러시아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러시아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지난 5년간의 부정적 결과들을 지우고 싶다”고 설명한다.

그의 경쟁자는 현직 총리인 율리아 티모셴코로, 그녀 역시 다양한 방향으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2007년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스>(2)에 게재한 ‘러시아를 제지하다’의 글 내용과는 전혀 다른 외교 입장을 밝히고 있다. 과거 오렌지혁명의 조언자로 한때 유셴코 노선의 동지였던 그녀는 이제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러시아의 지지가 필수적임을 알고 있다. 따라서 노련한 모사가인 양, 그녀는 동과 서라는 양극을 오가고 있다. “티모셴코보다는 야누코비치가 의미론적으로 더욱 자유롭다. 티모셴코의 선거 기반은 동구권보다는 서방 진영에 더욱 가까운 중도적 입장이다. 그녀가 비록 친러시아 정책을 펼친다 해도 러시아에 대해서는 파트너로만 말할 수 있다”고 사샤 타시에 스탈은 분석한다. 지난 11월 얄타 회동 때 푸틴과 티모셴코의 동조는 이를 증명한다. 외면상 티모셴코는 협상을 통해 가스 분야의 지뢰를 제거하고 대선까지 질주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공약 내용과 상관없이, 선거 캠페인의 배후를 보면 이들의 대선 목표가 드러난다. 야누코비치는 미 공화당 편에 가까운 미국 출신 정책자문위원들에 둘러싸여 있다. 동시에 야권 수장인 그는 우크라이나의 최고 갑부인 과두재벌 리나트 아크메토프에게서 상당한 재정 지원을 받고 있다. 이 억만장자는 우크라이나 동쪽의 산업지역인 돈바스의 실력자로 비록 러시아의 경제적 영향력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어도 러시아에 대한 호의는 전혀 숨기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의 유력 기업인인 드미트리 피타츠도 러시아와 견고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인사로, 대선에 개입해 야누코비치와 야체니우크 양쪽 모두에 재정 지원을 할 것이다. 현재까지 눈부신 대외 캠페인을 이끌고 있는 티모셴코는 2008년 버락 오바마의 성공적 캠페인을 책임진 AKPD사를 선택했다. 그녀의 자금 지원은 전임 대통령 쿠츠마의 사위이자 지난 2004년 선거 때 야누코비치의 후원자였던 갑부 빅토르 핀축이 맡을 것이다. 러시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때의 이익이 크다는 것을 잘 아는 우크라이나의 여러 과두재벌은 결국 주요 대권 주자들을 순종시킬 것이다.

기준점을 서방에서 러시아로 옮긴 주요 후보자들은 옛 소련연방 영역 내의 리더로 다시 러시아를 인정하는 국제적 대세를 좇을 뿐이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미국 모두 이제는 러시아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의 외교 정책은 국제적 문제와 별개일 수 없다”고 즐렘코는 평가한다. 특히 우크라이나 정치권은 곧 유럽연합에 가입할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을 품지 않는다.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의 내부 개혁이 요원한 데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다.

이제 러시아의 행보는 신중하다. 그러나 방법의 차이는 있어도 크렘린의 전략은 근본적으로 변한 게 없다. “러시아는 안정적이고 견고한 우크라이나를 원한다. 그러나 러시아의 권위에 종속되어야 한다.” 러시아 국가전략연구소의 페트로 부르코프스키는 “우크라이나의 취약점이 드러나고, NATO 즉각 가입에 대한 위협이 약화되면서 러시아는 이번에 한결 완화된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글·마틸드 고아네크 Mathilde Goanec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등의 문제에 관한 글을 주로 기고해왔다. 

번역·박지현 sophile@gmail.com

<각주>
(1) 우크라이나 남쪽.
(2) 율리아 티모셴코 ‘러시아를 제지하다’, <포린어페어스>, New York, 2007년, 5~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