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 음모론 ‘Z계획’, 칠레 쿠데타 세력의 자작극

2010-01-06     조르주 마가시슈|역사학자

12월 13일 치러진 칠레 대통령 선거에서 우파 야당들의 모임인 ‘변화를 위한 연합’(코알리시온 포르 엘 캄비오) 소속 세바스티안 피녜라(60) 후보가 1위를 차지했으나 과반을 확보하지 못해 2위를 한 여당 후보 에두아르도 프레이(67) 전 대통령과 2010년 1월17일 결선투표를 치르게 됐다. 현재 칠레의 상당수 언론은 볼리비아, 에콰도르 그리고 베네수엘라에서 좌파 정권의 주도 아래 일어나는 사회적 변화에 거센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에서 우파가 정권을 다시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일까?

군사정권 “아옌데, 유혈 친위 쿠데타 준비했다”
논공행상 눈먼 우파 언론들 가담해 역사 날조

1973년 9월 11일 쿠데타가 일어나고 7일 뒤, 칠레 일간 <엘 메르쿠리오>는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했던 과거 정부(아옌데 정권), 국가적 차원의 친위 쿠데타를 준비했다!’라는 큼지막한 제목을 내걸었다. 얼마나 무서운 뉴스인가. 이 기사에 따르면, 사회주의인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이 군 관계자, 정치 지도자, 야당 쪽 기자 및 그들의 가족을 대상으로 대규모 암살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의 암호명은 ‘Z계획’. 당시 해군 정보부를 출입했던 줄리오 아로요 쿤 기자는 그의 기사에서 “이 사악한 아옌데 정부의 암살 작전에 수천 명이 연루돼 있다”고 기술하였다. 이보다 한 달 전 그는 좌파 정치 지도자들과 해군 쪽 인사들이 쿠데타 발발 가능성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는 비판 기사를 작성하며, 거짓 정보를 흘린 바 있었다.(1)

쿠데타가 일어난 뒤 군사정권의 비서관으로 새로 임명된 페드로 에윙 대령은 얼마 뒤인 9월 22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아옌데는 국군의 날인 9월 19일 최고사령관들을 대통령궁으로 초청해 점심 만찬을 하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시중 드는 사람처럼 위장한 그의 경호원들을 시켜 군 장교들을 암살하려 했습니다. 그는 또한 산티아고의 오이긴스공원에서 행진하기로 돼 있는 군 행렬과 야당 지도자들을 대량 학살하려 했습니다. 지방에서도 이같은 일들이 벌어질 예정이었습니다. 예정대로라면, 다음날 ‘칠레민주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을 겁니다.”

아옌데 계획의 마지막은 자살?
그는 “아옌데 정권에서 내무장관을 지낸 다니엘 베르가라의 금고에서 입수한 자료와 중앙은행에서 발견한 사본이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며 말을 끝맺었다.

정보기관은 증거 서류들을 하나씩 들춰냈고(어쨌든 그들은 그렇게 주장했다), 이런 새로운 사실들은 기자회견 때마다 에윙 대령의 입을 통해 알려졌다. 대령은 이 중대한 기자회견에서 “아옌데의 계획 제2단계는 아옌데 자신의 암살이었음”을 알렸다. 비록 현장에서는 이에 대한 어떠한 질문도 나올 수 없었으나, 외신기자들은 아옌데의 계획에 본인 자신의 죽음도 포함되었다는 사실에 놀랐다.(2)

어쨌든 외신기자들의 반응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언론은 여론을 잡기 위해 공세를 계속했다. 각 언론매체의 ‘특종’란은 날이 갈수록 이전 것보다 더 파문을 일으킬 만한 내용으로 채워졌다. 특종의 제목은 하나같이 ‘새로운 게릴라 양성 학교, 누에바 임페리알에서 암약’, ‘마르크스파들, 음산한 계획 사주’, ‘사회당(PS)과 혁명좌파운동(MIR), 600여 가족 암살 도모한 것으로 드러나’, ‘마르크스주의자들, 리마시 파괴 작전 획책 드러나’(3) 같은 것들이었다. 한편, 앞서 언급됐던 쿤 기자는 <라 에스트렐라> 10월 23일자에 ‘Z계획 주모자 4명 사살’이라는 제목으로, 통일인민당원들에 대한 사형 집행을 보도했다.

군사정권은 Z계획의 존재를 사람들이 믿게 하려고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Z계획은 1973년 10월 8일 제28회 유엔총회에서, 내무부 장관이던 이즈마엘 후에르타 사령관에 의해 다시 거론되었다. 당시 이에 관심을 가진 청중은 별로 없었다. 그 후 Z계획에 대한 내용은 1974년 프리아스 발렌주엘라가 편성한 칠레의 역사 교과서에 실렸고, 대다수 학교는 이 교과서를 채택했다.

Z계획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우파 당원과 기독민주당원들(4)의 연합 세력, 즉 과거에 통일인민정권의 반대 진영 쪽에 있던 거의 모든 지식인이 전면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Z계획은 군사정권이 <엘 메르쿠리오> 등의 언론들을 앞세운 신랄한 선전·선동의 하나일 뿐이었다. 칠레의 재벌 중 한 명인 아구스틴 이드워드의 소유로서, 1827년 발파레소에서 창간된 후 1900년부터는 산티아고에서도 발행돼온 극보수 일간지 <엘 메르쿠리오>는 우파 쿠데타 준비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 1975년 발표된 ‘1963~73년 미 상원 보고서’에 따르면, <엘 메르쿠리오>와 타 매체들은 미국의 골칫덩어리인 아옌데 정부와 맞서 싸웠다는 이유로 중앙정보국(CIA)으로부터 150만 달러를 받았다.

주간 <에르실라>의 에밀리오 필리피 발행인과 헤르난 밀라스 기자는 1974년 1월 공동 출간한 <칠레, 70~73 경험의 연대기>라는 책에서 Z계획의 공포를 더욱 부각시키며, 어떠한 방어 수단도 없던 좌파 지도자들에게 심한 비난을 가했다. 한술 더 떠, 이 잡지의 아브라함 산티바네즈 부대표와 루이스 알바레즈 편집장은 같은 해 3월 11일 출간한 <아옌데의 전성기와 추락>이라는 책에서 “대통령 관저는 역사적으로 불결한 장소였다. 그곳에서는 게릴라 훈련과 섹스, 술과 마르크스 강의가 혼재돼 있었다”(5)고 적었다.

1973년 10월 말, 군사정부는 <칠레 정부 변천사에 관한 백서>를 발행했다. 그리고 이 책은 스페인어와 영어로 여러 차례 재판돼, 왜 칠레공화국의 군 세력이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을 전복시켰는지 설명했다. 이 백서는 통일인민당을 향한 온갖 비방을 총망라하고 있는데, 특히 중점적으로 다룬 내용은 단연 Z계획에 관한 것이었다.

군사정권의 편에서 Z계획을 비난하는 자들이 순식간에 전국적으로 늘었다. 이 우파의 이웃들은 Z계획의 사살자 명단 자료의 출처를 알고 있다고 주장하며, 1등 소식통이 되기 위해 격렬하게 다투었다. 강제 수용된 농장을 되찾기 위해 교섭하던 한 농부는, 이 가상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기재되도록 하려고 10만 에스쿠도(약 2만5천 달러)를 쏟아부었다.(6)

뒤늦게 오리발 내미는 언론인들
Z계획은 쿠데타를 정당화하기 위해 꾸며낸 ‘그 무엇’ 이상으로 효력을 발휘했다. 이것은 ‘내부의 적’과 맞선 군인들의 심리를 이용하기 위한 중요한 각본이었다. 아무런 동정심 없이 진압작전을 전개하려면 군인이 처벌 대상자를 ‘사상이나 이념이 다를 수도 있는 시민들’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군인 자신과 가족을 죽이려 한 살인자’들로 인식하게 해야 했다.  이렇게 Z계획은 고문과 암살을 집행하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증오심을 군인에게 주입시켰다.

그렇다면 Z계획은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나왔을까? 이에 대한 답변으로 끊임없이 제기되는 곳은 바로 쿠데타의 근원지이기도 한 해군비밀국이다. Z계획을 처음으로 알린 이는 이미 위에서 언급한 바 있는 쿤 기자였는데, 그는 해군 비밀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로부터 거의 20년이 지난 후, 몇몇은 쿠데타 당시 그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음을 인정했다. 당시 <에르실라>의 기자이던 헤르난 밀라스는 1999년 “Z계획은 결코 존재한 적이 없으며, 군대와 관련해 꾸며낸 이야기들 중 가장 터무니없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저술한 1974년의 ‘불행한’ 서적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7) 산티바네즈 역시 1999년 “나는 쿠데타 당시 Z계획의 존재를 믿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이 크나큰 실수를 고백한다”고 말했다.(8) 군사정권의 언론고문이던 페데리코 윌루그비는 2003년 “Z계획은 쿠데타를 정당화하기 위한 심리전의 도구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독재정권 비밀국이 꾸며낸 것이었다”고 인정했다.(9)

Z계획을 누가 만들었는지는 아직까지 밝혀진 바가 없다. 그러나 백서를 편찬한 자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쿠데타가 발생한 지 거의 30년이 흐른 후, 역사학자 곤잘로 비알 코레아는 자신이 백서를 편찬한 이들 중 한 명이었음을 밝히며 “우리는 백서를 여러 번 편찬했는데, 이 작업은 나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10)고 말했다. 비알 코레아는 높은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칠레 역사서의 저자이지만,  극우파 정치가이기도 하다. 아옌데 정부하에서 그는 쿠데타와 관계된 <케 파사>의 대표였다. 그리고 1979년에는 피노체트 정권에서 교육부 장관을 맡았다. 이어 1990년, 아일윈 정권은 그를 ‘진실 규명과 화해 위원회’의 위원으로 임명했다.

조작된 회고록, 아직 군 권장도서
2002년 비알 코레아(2009년 10월 사망)는 쿠데타 이후 자신이 이끄는 <케 파사>의 편집부원들이 해군장교를 통해 군사정권과 연락을 취했다고 설명했다. 이 장교는 편집부에 가택수색 때 발견한 다양한 문서를 제공했는데, 이 자료 중에는 Z계획에 관한 것도 있었다. 완고한 비알 코레아는 Z계획이 실재했음을 계속 주장하는 몇 안 되는 인물들 중 하나였다. 그는 “아옌데 정부를 지지하는 수많은 이들 중 무모한 자 하나가 이 계획서를 작성하였고, 이를 복사해 동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 계획이 꾸며낸 이야기라고 말하는 이들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아무도 이것을 지어내지 않았다. 이것은 발견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발견된 계획서를 출간하기 위해 싸워야만 했다”(11)고 말했다.

비록 이 역사학자가 30년 전 ‘해군 쪽이 제공한 서류는 신원이 불확실한 어느 무모한 자의 것’이었음을 믿었다고 하더라도, 그가 백서의 내용으로 적은 글들은 이것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는 백서를 통해 “통일인민당과 아옌데 정부는 힘과 범죄에 기초한 절대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친위 쿠데타를 준비했다”(12)고 확신했다. 그와 그의 동료들의 책임은 실로 크다. 그의 동료, 즉 편집부원들 중에는 <엘 메르쿠리오>의 현재 대표인 크리스티안 제제르도 있었다. 바로 이들이 출처가 불명확한 몇몇 서류를 발행했던 것이다. 오늘날 이 서류들은 당시 해군 쪽 요원들에 의해 조작되었음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1990년 이후 권력을 장악한 칠레의 4개 정부 세력 중 어느 누구도 감히 ‘거짓 정보를 계획적으로 유출하는 데 가담한 쿠데타 조직세력, 특히 관련 지식인들’에 대해 조사하지 못했다. 민주주의가 재정립된 후 해군은 발파라이소에 조제 토리비오 메리노 사령관 기념비를 세웠는데, 그는 바로 1973년 쿠데타의 선봉에 섰던 인물이다. 그의 회고록(13)은 쿠데타를 진정으로 권장하는 도서로서 Z계획과 관련한 황당무계한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메리노가 예비 장교들에게 바람직한 인물상으로 여겨지는 해군학교에서는 오늘날에도 이 회고록을 권장도서로 지정하고 있다.

글·조르주 마가시슈 Jorge Magasich 
브뤼셀 사회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임강사. <Los que dijeron “No”. Historia del movimiento de los marinos antigolpistas de 1973>(2008)의 저자.

번역·이보경 leebk3611@ilemonde.com
파리8대학 언어학 박사. 역서로 <카인> <방법서설> <성의 역사> 등이 있다.

<각주>
(1) Jorge Magasich, <“아니요!”라고 말한 자들>, http://theses.ulb.ac.be/ETD-db/collection/available/ULBetd-11282007-102000.
(2) Hernan millas La familia militar, Planeta, Santiago, 1999, p.23∼28.
(3) Francisco Herreros, Prensa canalla y violacion de los derechos humanos, in El Siglo, 4 novembre 2005, www.purochile.fog/27.html.
(4) 기독민주당의 지도자 13명은 여기에서 제외된다. 베르나르도 레이톤을 중심으로 한 이들은 쿠데타를 비난하였다. 레이톤은 1975년 로마에서 독재정권의 비밀경찰에 의해 심한 중상을 입었다.
(5) Luis Alvarez, Francisco Castillo, Abraham Santibanez, Septiembre. Martes 11. Auge y caida de Allende, Ed. Triunfo, Santiago, 1973.
(6) Hernan Millas, op. cit, p.25∼26.
(7) Hernan Millas, op. cit, p.23∼30.
(8) Santibanez Abraham 1998. www2.metodista.br/unesco/PCLA/revista5/entrevista%201-1.htm, 1998.
(9) Wilfried Huismann과 Raul Sohr, <Pinochet Plan Z>, documentaire, Arte GEIE/WDR/Huismann, 2003.
(10) www.educarchile.cl/ntg/docente/1556/article-76921.html.
((11) La Tercera, Santiago, 2002년 3월 24일.
(12) Libro Blanco, 1973, 27.
(13) Merino Toribio, Bitacora de un Almirante, Ed. Andres Bello, Santiago,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