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즘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함정에 빠진 개념

2016-07-29     뱅상 시제르
   

 

7월 14일 프랑스 니스에서는 한 트럭 운전수가 인파 속으로 돌진해 84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다치는 비극이 발생했다. 이후 프랑스를 비롯한 독일의 해변, 음악축제, 패스트푸드 식당, 기차, 백화점까지 일반 시민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연쇄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 사건들은 ‘테러’에 의한 공격으로 명명됐고 사람들은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이러한 종류의 폭력에 맞서 싸우는데, 이 ‘테러’라는 용어의 남발이 과연 유용한 걸까? 

약 30여 년 전부터 동일한 장면이 반복된다. ‘테러리즘’이라 소개되는 모든 공격 행위 마다 현실주의 지지자라는 사람들은 위험의 심각성에 대응할 수 있는 해결책이라면서, 법치국가를 지속시킬 수 있는 조치들을 도입해야 한다고 우리를 압박해왔다. 니스 테러 이후에는 우파의 에릭 치오티 의원(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이 자신이 대표로 있던 프랑스 제1야당의 이름을 바꾼 '공화당‧Les Republicains’ 소속)이 가장 빨리 나섰다. 7월 15일 France Inter 방송에 나와 “어떤 사람들은 세상이 바뀌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고 지금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협이 가해지고 있는지 가늠하지 못한다. 전쟁에서 우리는 전쟁무기를 쓰지 않고 있다”고 말하며 안타까워했다. 치오티 의원이 권고하는 내용은 이렇다. 행정 유치 절차 허가, 국경에서의 체계적인 생체 인식 식별 등 “소프트웨어를 바꾸고”, “패러다임을 바꾸고”있지만, 결국 “지금은 전시 상황이니, 우리는 전쟁 무기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1986년 최초의 <반테러리스트>법이 도입된 이후 테러 진압을 위한 권리는 꾸준히 발전해왔다. 법 개정은 처음에는 10년을 주기로, 이후에는 5년마다, 그리고 이제는 24개월마다 이루어지고 있다.(1) 매번 쟁점은 ‘테러리즘’에 맞서 민주주의를 수호하자는 것인데, 가장 큰 승리는 아마도 우리가 공적 자유를 포기하게 되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매번 우리의 공적 자유가 점진적으로 쇠퇴하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19세기 말에 생겨난 ‘테러’라는 용어는 주로, 권력에 대한 다소 폭력적인 일부 저항의 형태에 대해 그 가치를 떨어뜨리고자 하는 목표로 사용된다. 따라서 범죄로 인정될 수 있는 행위의 저지름에 있어서, 사법적으로 정확한 정의가 가능한 정해진 행동보다는 특수하고 현실적인 또는 추상적인 동기에 대해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어제의 판결이 오늘의 판결과 꼭 일치하지는 않고, 테러리즘의 규정은 법해석 보다는 정치적 세력 관계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 
현재 어떠한 국제 협약에서도 테러리즘에 대한 진정한 정의를 내리지 못한다. 테러로 ‘간주되는’ 범법행위에 대한 처벌은 모든 형사소송 단계에서 강제적인 ‘폭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모호함이 더욱 안타깝다. 왜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 만족스럽지 못한 법적 카테고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인가.

전횡의 위험

민주주의 사회에서 입법부는 “사회에 해(害)가되는” 행위에(2) 대해서만 법적 책임을 지울 수 있다. 이 원칙은 관련 행동이 사회통합을 훼손하는 경우 그리고 다른 형태의 제어 수단으로는 제재가 충분치 않은 경우 등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될 경우에만 처벌이 가능하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관점에서 테러로 지정되는 사건들은 일반적으로 처벌의 정당성에 어떤 의혹도 제기되지 않은 만큼 사회 통합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 맞다.
하지만 꼭 필요한 이 원칙은 관련 사건들이 이미 적절한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된 상태라면, 범죄를 새로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법적 카테고리 안에 포함되지 않은 범죄는 범죄라고 간주되지 않기 때문에). 그런데, 30년 전 우리 법에 나타난 그대로의 테러리즘은 어떤 면에서는 “위협이나 공포를 통해 공공질서를 침해할 목적으로 개인 또는 집단이 기획한 것과 관련 있는”(3) 범법행위일 경우, 보통법의 범죄에 덧붙여진 부차적인 범죄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살인, 파괴 또는 감금 행위의 존재가 명확히 드러나야 테러 범죄가 행해졌는지 결정할 수 있다. 1986년 9월 9일 법 채택 당시, 입법부는 이러한 범죄가 특별 범주에 포함된다고 강조했다. 이 범죄들에는 법 절차적 관점에서, 상황에 맞는 형법적 해결책을 부르는 대규모 범죄의 조직이 포함된다. 단독 재판소(이 경우에, 파리지방법원(TGI)에 해당)에서 사건을 통합할 수 있어야 했고, 긴급하게 수사할 내용이 많은 사건들의 경우, 보호 유치 시간을 48시간 이상으로 늘리는 것을 허가해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특수성은, 1980년대에 시작되어 2014년 3월 9일 법과 함께 마무리된 절차를 통해, 우리 법이 조직범죄에 적합한 조사와 심리 체제를 갖추게 된 이후 사라졌다. 물론 새로운 체제가 비난을 면하기는 어렵지만, 이 조치들 덕분에 전문 재판소라든지 보통법에서는 저촉되는 방식의 수사를 시행한다든지 하여 이른바 테러 범죄행위의 특수성에 맞게 대응하는 것이 가능해졌다.(4) 그렇다면, 실제적으로 테러행위(습격, 납치 또는 이익 침해)나 무리가 조직한 범죄 또는 범법행위는 무엇인가(언론에서 칭하는 “외로운 늑대들”에 의한 범죄는 제외하겠다).  
누군가는 테러리즘의 특수성이 범죄 행위의 심각성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벌어진 상황이 가져오는 위협적이고 충격적인 영향에서 조금 거리를 두고 바라본다면 이런 주장은 분석이 불가능 하다. 무슨 근거로 테러라고 규정된 범죄가, 적어도 유사한 상황이라 할 수 있는, 법치국가의 근간에 대해 적의를 품고 있는 마피아 범죄보다 더 사회통합을 훼손한다고 할 수 있는가? 예를 들어, 정치적 광신이나 종교적 맹신에 의한 살인이 이해관계나 당파심 또는 온전한 사디즘에 의한 살인보다 더 “사회에 해가 된다”고 확언할 수 있을까?
대대적인 희생을 낳은 일부 테러 행위의 특성을 들어 우리에게 반박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2001년 뉴욕 테러, 2004년 마드리드 테러 아니면 좀 더 최근인 2015년 튀니스와 파리의 테러, 그리고 2016년 브뤼셀, 이스탄불, 바그다드, 니스에서 벌어진 테러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형법상 훨씬 더 명확하고 관련성이 높은 범죄가 존재한다는 것을 잊고 있다. 바로 반인류 범죄이다. ‘적’의 국가나 단체에 속해있다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수십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을 살해하는 것은, “보편화되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공격으로, 민간인 집단에 대해 계획한 범행”을(5) 통한 의도적인 생명 침해 행위로 쉽게 규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테러 범죄 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유일한 요소는, 범인의 실제 또는 추정 동기를 파악하는 데 있다. 즉, “위협이나 공포를 통해 공공질서를 현저히 교란시키려는” 의지가 있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범죄의 동기가(6) 범죄의 조성에는 별 상관이 없는 것으로 간주된 것은 법적 난센스라 할 수 있다. 범죄 동기는 ‘상대적인’ 범죄의 심각성을 측정해 어떤 처벌을 내릴지 결정하게 한다. 그런데 범죄를 정의할 때 동기를 포함시키는 것은, 당국의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으로 동기를 규정하게 한다는 뜻이다. (단, 범인이, 사람들이 자신의 범죄 동기를 확정하는 것에 대해 반대 없이 동의하는 경우는 제외다.) 
이때의 범죄 동기들은 사실 확인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추측을 통해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개인의 내면 깊숙한 의지를 규정하는 것은 일반적이고 유연한 개념 파악이 중요하다. 테러리즘과 관련해서는 더욱 그렇다. 범인에게서 비롯되는 위협이나 공포가 공공질서를 현저히 교란시키고 있다는 명백한 의도를 찾아서 내보여야 테러라는 규정이 가능할 것이다(여기서 주관적인 개념이 작용한다). 그런데 사람들에 대한 범죄나 파괴, 훼손 등 통상적인 보통법의 위반 행위들이 언제부터 위협적으로 공공질서를 교란시키는 성질의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는, 정부의 자의적인 결정에 따른 분석에 달렸다. 공공질서 교란의 상대적인 심각성만을 계량하는 것이 아니라, 범인이 사건행위의 의도를 드러냈는지까지 규정해야 하는 만큼, 판단의 폭은 훨씬 더 넓다. 실행에 옮기는 데는 실패했으나 공격 행위를 준비했기에 ‘테러 범죄인 단체’의 수장이라(7) 추적을 당할 경우에는, 이 위협 의도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결국, 테러리즘의 규정은 필연적으로, 세력 관계 그리고 정치적 판단에서 기인하여 정권이 다소 자의적인 방식으로, 다른 범죄보다도 어떤 특정한 범죄 행위에 대해서만 이를 적용하게 된다. 오로지 법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테러라는 명명이 화물 운전사들이 도로 위의 트럭 식별용 감시 장치를 파손하는 행위보다 지방 분권주의 운동에 의한 폭발물 공격에만 해당된다고 할 수 있는 근거는 아무 것도 없다. 이 두 행위 모두 공공질서를 해치며 공권력을 위협하려는 행동으로 분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식으로, 형벌 법규상, 자신의 민주주의적 정당성에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 정부가 ‘테러 범죄 집단’의 범죄를 특정 노조 운동이나 정치적 운동을 소추하는데 이용하는 것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이집트의 탄압을 정당화하다

범죄 행위자가 분명하게 기존 질서를 심각하게 해치려는 의도를 주장하는 경우라도 자의적인 판단은 존재한다. ‘테러리즘’이라는 이름표는 폭력 행위가 실재하든 아니든 정치적 반대 운동을 범죄로 치부해 버리기 위한 도구로도 이용되기 때문이다. 위협이나 공포를 이용해 공공질서를 교란시키려 했던 레지스탕스 활동가들이 방해공작을 펴고 사보타주를 하고 독일군이나 친독 의용대원들을 처형했던 것은 나치 독일의 점령을 끝내기 위해서였다. 비시 정권은 이들 레지스탕스 활동가들을 테러 행위로 고발했다.(8) 하지만 오늘날에는 더 이상 이를 테러로 규정하지도 생각하지도 않는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에 정당성이 부여됐기 때문이다. 
이슬람 국가조직(IS)이 저지른 범죄와 레지스탕스의 작전을 연관시키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반계몽주의 광신도 집단의 활동과 러시아나 터키에서의 전제적 정권에 대항하는 정치 반대자들의 행동을 지칭하기 위해 오늘날에도 동일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큰 문제가 될 수 있는지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어떤 면에서, 미국이나 유럽연합이 만들어 놓은 테러 조직 명부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이들 강대국들이 패배한 정권과 유지하고 있는 관계에 달려있다.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면, 시리아에서는 억압 행위가 범죄로 처벌을 받는 상황에서, 이집트 정권이 자행하는 반대파에 대한 탄압이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될 수 있다고 어떠한 법률 분석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물론, 프랑스에서는 더 이상 정치적 반대 운동을 범죄로 만들기 위해 테러 혐의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테러의 규정은, 몇몇 국가에서처럼 단순한 선동적 행동에 대해서가 아니라, 임의로 특별한 심각성을 부여하는 진정한 범죄 행위가 존재하는지 증명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9) 반면에 테러의 동기는 나폴레옹 시절부터 준수되어온 공화국 형법 모델의 효과적인 시행에 대한 옛날식 저항 형태에 속한다. ‘중대성’이라는 이유다. 
다시 말해, 어느 정도 중요성이 인정되는 처벌의 균형 즉, 사법적 보증이 점차 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범죄로 야기된 사회질서 침해의 중대성과 그로 인해 나타난 감정들이 강조되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30년간 우리가 인식하는 것보다 점점 훨씬 빠르게 지속되고 있는 법령 개정은 범죄 현상의 형법상 이해를 보다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테러 위기를 부각하여 형사 당국의 과도한 특권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나, 범죄 조직의 존재를 증명할 필요도 없는, 자유를 침해하는 수사 조치들로 나타나는데, 그 개인이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려는” 의도를 가졌다고 추정해 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경향은 사법적 관점에서나(10) 행정적 관점에서나(11) 더욱 강제적인 법 절차 시스템으로도 나타난다. 
 
  
▲ <첫 운동, 두 번째 운동>, 1967 - 후안 헤노베스
 
저속한 범죄 조직들

테러 범죄에 대한 오늘날의 형법적 해결이 효과가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형법적 해결이라는 길 위에 점점 더 심각해지는 매복에도 불구하고, 그 상대적 효과는 테러리즘이라는 개념 자체에(테러리즘에 대한 ‘자의적인’ 정의와 분류) 의해 구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테러 현상이 발생하는 범위를 무한히, 특히 조직범죄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사건으로까지 확대하면서, 동일한 해결책을 동원할 것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 해결법이 자신이 맞서 싸우는 대상을 상징적으로 강화시키기 때문이다. 테러리즘이라는 규정을 가능케 하는 것이 보통법의 범죄자가 공공질서를 강력하게 뒤흔들어 놓으려는 실제 혹은 추정 의지로 결정되는 만큼, 수많은 상황에 대해서도 테러리즘이라는 규정이 가능할 수도 있다. 사법당국이 정치적 혹은 언론의 압박에 노출된 분야에서는, 아주 미묘한 요소들에 의해 보통법 절차가 테러리즘에 대한 절차로 변화할 수 있다. 형법 제 421-1조에 나와 있는 범죄, 예를 들어 절도나 고의적 폭행을 저지른 어떤 사람이 테러로 간주되는 이념을 주장하거나 그 이념이 유래한 철학이나 종교를 주장했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그 사람은 예외적인 법규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가장 최근에 시행된 법 개정으로 이러한 경향이 더욱 심화되었다. 2014년 11월 13일 법은 “개인이 기획한 테러”범죄를 법조항에 추가했다. 홀로 테러 공격을 준비하는 개인의 독립된 행동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된 이 처벌 조항은 실제로는 이념적 광신에 대한 단순한 관심부터 실제 암살 준비에 이르기까지 매우 많은 종류의 행동들을 아우르게 된다. 여기서도 역시 범법 행위의 확장성은 준비 행위의 객관적인 정황보다는 범죄 행위자의 의도에서 유래하게 된다. 사실, 폭탄 테러 준비만으로도 범법 행위로 규정하여 형사 소송 절차나 수사, 정보 수집 단계에서의 강제 조치도 법적 근거가 충분했다. 그러나 입법부에서는 집단 조직범죄처럼, 폭발물을 찾는 것은 물론이고, “인터넷에서 습관적으로 하나 이상의 공공 통신 서비스를 확인하고, 테러 행위 실행을 직접적으로 선동하거나 그에 대한 예찬을 할 경우” 또는 “테러리스트 단체의 작전이 이루어지는 외국에 거주할 경우”에(12) 테러리스트로 간주하고자 했다.  
자의적인 해석 외에도, 이러한 테러의 범위 확대는 형법적 해결의 효용성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 형벌 정책이 무엇보다도 범법 행위를 그 준비 단계에서 소추하고 처벌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테러로 이어진 계획부터 아주 소소한 의도 발표에 이르기까지 아주 많은 수의 사건에 대해 법관이나 수사 기관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로 인해 가용 인적, 물적 자원이 고갈되어버리고 만다. 진짜로 모든 위법 행위가 잠재적 테러 행위라면 주의 깊은 관찰을 필요로 하는 사건을 구분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엄격한 사법적 규정이 필요한 사건들의 형법적 해결을 위한 ‘재정비’가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오늘날 조직범죄로서 테러로 규정된 행위들을 소추하는 과정에서, 보통법에는 저촉되는 법 절차 시스템이 과도하게 확대되는 위험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사건의 사실 확인이나 예심단계에서 전혀 필요가 없는 사건들에 대해서도 이런 법 절차 시스템이 적용돼 왔던 게 사실이다. 조직범죄에 의한 살인, 파괴, 무기 밀매, 감금이나 범죄인 집단에 의한 범죄 준비를 형법적 해결의 재정비를 통해 법적으로 규정한다면, 현재의 수사 방식과 동일한 방식들을 시행하면서도 ‘테러’ 행위 전체를 형법적으로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결국, 2006년에 채택된 보호유치 시간은-추가적으로 48시간까지 늘릴 수 있다는 조항은 실제 아무런 필요성이 없었고 채택된 이후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삭제될 것이다. 
영토 관할 문제에 관해서는, 지역 간 명령계통이 부적합하다고 판단될 경우, 범죄의 복합성이나 국가적 규모가 입증되는 범법 행위들에 대해 단일 사법 센터를 운영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독립된 개인들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는, 무기 유통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면서 테러 준비 행위에 대한 처벌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형법적 해결책을 재편하게 되면 공권력의 분산을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범죄 현상의 상징적인 강화에 기여하는 부분도 없앨 수 있게 될 것이다.  
다른 것보다도 ‘테러리즘’에 관련된 사항에 대해서는 항상 가상적으로 억제 효과라는 미명하에 과도한 처벌 조치를 정당화하는 목소리가 있기 마련이었다. 구체제의 형법적 철학에서 직접적으로 이어지며 늘 되풀이되는 말은 분석이 불가능하다. 어떤 경우에는, 범죄 행위 그 자체 보다는 범죄 행위에 대한 반응에서 ‘공포’가 더 많이 생겨나기도 한다. 그리고 이 ‘공포’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은 억압이 확대되는 것을 정당화하고자 한다. 대체로, 보통 이 ‘검인 찍기’를 동반하는 정치‧언론 공명상자를 매개로 하여 범법 행위가 테러로 규정되고 있고, 그래서 이 범법 행위는 위협 그리고 공포의 근원이 되어버린다. 예를 들어, 범죄 집단의 수장이 행위의 주동자로서 법적 절차를 밞을 경우에 더욱 그러하다. 가령, 테러 계획이 실행에 옮겨졌다 치자. 테러로 인한 것으로 추정되는 결과들을 대대적으로 포장하면서 테러 효과는 생겨난다. 
니스에서 일어난 대량학살과 같이 끔찍한 행동들은 오랫동안 그리고 심각하게 우리 마음을 어지럽힌다. 하지만 그 행동 자체에 공권력에 대한 잠재적인 위협이 포함되었다고 가정하면, 그 행위를 ‘테러’라고 규정하는 것은 범행의 상징적인 영향력만 키워주는 꼴이 된다. 이는 역학적으로, “예외적인 중대성을 지녔고 불법성이 사소하지 않은 행위”에 대한 프랑스에서의 억압과, 다른 국가들에서 동일한 법적 규정을 통해 정치적 반대자에 행하는 억압을 같은 선상에 놓는 효과가 있다. 상이한 두 사안을 이렇게 동일시하게 되면, 의미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수많은 문제가 생긴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목으로 진행되는 형법적 ‘협력’의 발전은, 다른 국가에서의 공적 자유 보호와 관련하여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사항들을 포기하게 만든다. 
유럽 인권재판소가 내놓은 판결을 보면 알 수 있다. 판결에서는 ‘테러’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라면, 일부 ‘파트너’국가에서 기소된 사람들이 비인간적인 처우나 고문의 위험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고려하지 않는 당국의 성향을 강조했다.(13) 이는 부패한 독재 정권들과 결탁한 서방 강대국들을 규탄하는 범죄자 집단이, 유럽에서나 관련 국가에서 조직원을 모으면서 자신들의 조직에 합류하라고 내세우는 내용을 더 그럴듯하게 만들어준다.
마지막으로, ‘테러리즘’이라는 단 하나의 법적규정 그 자체로도, 테러 집단들의 상징적인 명성과 조직원 모집 능력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는 특징을 가진 것으로 밝혀졌다. 다시 말해, 어떤 테러 행위를 법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행위 주동자들이 내세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을 하나의 철학과 종교, 정치 학설, 더 심한 경우 문명의 선구자로 탈바꿈 시키는데 기여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 범죄조직들의 이념적 동기가 독자적이지도 않고 패권주의 성격을 띠지 않는데도 이들에 대한 억압을 정치적 전쟁 나아가 문명 전쟁으로 여기는 것이 오히려 범죄조직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모를 수 있겠는가. IS의 경우만 해도, 그들의 행동 논리는 마피아 세력만큼이나 종교적 맹신에서 기인할 뿐이다. 테러 범죄라는 규정은 동시에, 범죄 조직들이 표방하는 동기를 ‘부각’시키는 데에도 기여하게 된다. 이런 식의 정당성 부여는 테러 집단으로 하여금 사회에서 뒤쳐진 젊은이들을 더 잘 매수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이를 예방하기를 바란다면, 가장 간단한 방법은 젊은이들에게 테러리스트의 감언이설을 허락하지 않고 그저 이들을 비열한 범죄조직으로만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즉, 자신들이 권력에 대한 맹목적 욕망이나 죽음에 대한 충동이 아닌 다른 것들을 대변하고 있다는 범죄 조직들의 자만심에 더 이상은 간접적으로라도 힘을 실어주지 말아야 한다. 
테러리즘의 법적 규정에 내재된 정부의 독단적 판단은 필요악이 아니고 테러리즘의 효과적인 진압에도 장애물로 작용한다. 이런 독단적 판단을 버린다 해도, 테러리즘이라는 법적 규정을 시민의 권리와 안전을 수호하는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이용(남용)한 이들만 슬퍼하게 될 것이다.  


글·뱅상 시제르 Vincent Sizaire
판사, 파리 10대학 조교수. 저서로 <안보의 위선에서 벗어나라(Sortir de l’imposture sécuritaire)>(La Dispute, Paris, 2016)가 있다. 

번역·김자연 jayoni.k@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역대학원 졸업. <22세기 세계> 등의 역서가 있다.
 
 
(1) 프랑스 법질서에 테러라는 범주를 포함시킨 1986년 9월 10일 법 이후, 법 내용이 1996년 7월 22일 법, 2001년 11월 15일 법, 2006년 1월 23일 법,  2012년 12월 21일 법, 2014년 11월 13일 법, 2015년 7월 25일 법을 통해 변경되었다. 
(2) 1789년 8월 26일 프랑스 인권 선언 5조
(3) 형법 제 421조
(4) 형사소송법 제 706-75조에서 제706-95조는, 예심 수사를 벗어난 통신 도청, 최대 4일에 이르는 보호유치, 개인 공간이나 공공장소에 대한 감청, 정보감시 등을 허용하고 있다. 
(5) 형법 제 212-1조 
(6) 형법에서는, 비난받아 마땅한 행동을 저지르는 동기에 대한 인식을 가리키는 ‘의도’와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복수, 이념 등등)를 나타내는 ‘동기’를 구분한다. 
(7) 형법 제 421-2조
(8) 프랑스 사법 역사 협회(AFHJ), 『1940-1944, 암흑기의 정의(正義)La Justice des années sombres. 1940-1944』, La Documentation française, Paris, 1996.
(9) 일명 <타르낙> 사건과 관련해, 법적 고발은 명확한 범법 행위를 기반으로 이루어졌다(이 경우에는 사보타주). 그러나 이들이 저지른 행위가 테러 범죄라는 규정은 심히 부당한 판단이었음이 드러났고, 2016년 6월 28일 파리 고등법원은 판결에서 이 혐의를 완전히 배제했다. 
(10) 배심원 없는 중죄재판소의 판결, 보호유치 기간을 최대 6일로 연장, 법적 절차에 개입하는 사법 경찰관들의 신원 비공개, 중범죄의 경우 30년, 경범죄의 경우 20년에 이르는 공소시효 등이 이에 해당된다.
(11) 테러 행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은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행정 감시 대상이 될 수 있다. 
(12) 형법 제 421-2-6조
(13) 유럽 인권재판소, <Saadi 대 이탈리아 사건>, Strasbourg, 2008.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