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적인 행동주의가 두려운 사람들

2016-07-29     애스트라 테일러

 

최근 미 대선 캠페인 기간 중 수만 명의 미국인들은 부유층과 기득권층을 비판하는 버니 샌더스의 집회에 몰려들었다. 그들은 실천에 기반한 선전을 통해 윤리적이며, 정치적인 인식을 추구하려 한다. 행위를 통한 선전은 개인적이면서도 매우 화려한 기술을 구사하지만, 초기의 기세를 유지하기는 힘들어진다. 유행이 지난 조직은 강한 집단성을 보이지만 재미가 부족하다. 그러나 강줄기는 흘러 결국 한 곳에 모이게 되어있다. 

10여 년 전 나는 뉴저지 대학에서 열린 ‘1968’이란 제목의 강연회에 참석했었다. 강연자는 1960년대 학생운동과 반문화의 선봉장에 섰던 마크 러드였다. 그는 빈민층을 위한 고등 교육기관에서 수학을 가르치다가 은퇴했다. 러드는 강연에서, 그가 20대 때 뉴욕 콜롬비아대학 점거사건에서 얻은 유명세에 대해 재미있게 이야기했다.
러드는 당시 언론에서 주목하던 급진단체 ‘웨더 언더그라운드(Weather Underground)'의 일원이었다. ‘행위를 통한 선전’을 추종하던 웨더 언더그라운드는 미 국회의사당과 국방부에 폭탄을 던지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단체다. 다행히 당시 희생자는 없었다. 청중은 대부분 학생들, 정치에 관심이 많은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수년 간 도망자로 지냈던 러드의 과거와 혁명가적인 측면에 열광했다. 그러나 그가 속했던 단체인 웨더 언더그라운드에 대한 평은 그리 좋지 않다. “성공하지도 못했고 지나치게 과격했다. 다만, 행동으로 보여주기는 했다”는 것이다. 러드는 우리의 이러한 감상주의를 뒤흔들었다. 러드의 옛 동료들 대부분은 나이가 들면서 보수화가 됐다. 하지만 그는 청년시절의 정치적 이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강연에서 청중들은 러드에게 명성을 안겨준 직접적인 대치 전략에 더 이상 찬성하지 않았다. 러드는 “마초들의 파반느, 투쟁에 대한 호소는 정신나간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러드와 동료들은 “세상의 민중을 위해 백인 병사의 힘을 이끌어 내기 위한 전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그들이 한 일은 남들이 피땀 흘려 여러 해 쌓아올린 운동기반의 의식을 약화시킨 것에 불과했다. 한편 러드는 혁명에 대한 우리의 환상을 지우려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당시에는 행동주의와 조직체 간의 차이, 이상의 구현과 운동의 구축 간의 차이에 대해 헤아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강조했다.
“나는 단 한 번, 50년 전 ‘행동주의자(Activist)’라고 불렸던 적이 있다. 우리의 적이었던 대학의 교직원들과 논설위원들이 우리에 대한 모욕으로 쓴 표현이다.”

좌파 인기의 하락 속에 등장한 행동주의

미국 좌파와 조합운동의 역사 속에 뿌리 내린 ‘조직자(Organizer)’(1)와는 달리, ‘행동주의자’는 유래가 불분명한 용어다. 이는 넓은 의미에서 정치와 개인의 쇄신을 위한 행동에 가담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사회운동가였던 좌파 역사가인 록산즈 던바-오르티스는 “우리는 혁명가, 급진주의자, 운동가,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조직자라고 연이어 스스로를 규정지었다”고 말했다. ‘행동주의자’란 단어는 좌파의 인기가 하락하는 가운데 등장한 용어다. 러드와 던바-오르티스의 동지들 중에는 공산주의 사상에 젖어있던 이들, 노동조합원, 남부 주에서 시민권리 향상을 위해 일하던 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교회, 지역조직과 협력하며 일하는 데 익숙해있었다. 그리고 승리할 확률은 낮더라도, 장기간 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조직자로부터 소정의 지원금을 받았다.
 1960년대 말부터 페미니즘, 동성애 해방, 장애인권 등을 위한 새로운 운동들이 등장했고, 이에 힘입어 행동주의자들이 급증했다. 1980년에서 1990년대에 걸쳐 ‘행동주의’란 용어가 자리 잡았다. 행동주의 운동들은 기존의 전통적인 투쟁방식을 발전시켜 단시간 높은 성과를 거뒀고, 개방적이고 민주적이며 반계급주의적인 절차를 만들어냈다. 전통적인 좌파유산으로 평가받기를 원치 않던 행동주의자들은, 유용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과 전략을 버렸다. 
행동주의자들은 보다 급진적이고 예리한 정치적 선택을 위해, 반체제 인사들이 낡아빠진 이데올로기에서 방향을 바꾸던 시기를 이용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가 암살당하거나(마틴 루터 킹), 동기를 잃거나(엘드리지 클리버),(2) 변절했을 때(제리 루빈)(3) 사회운동계가 받았던 충격에 대한 두려움으로, 1960년대부터는 카리스마적인 지도자 체제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동시에 소심하거나 부패한 관리들이 노조의 지도층에 들어오면서 침체기를 겪었다. 사회 변혁을 이끄는 직업에 대한 환멸이 가장 이상적인 순환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좌파가 조직체라는 뿌리에서 떨어져나가는 동안, 보수주의자들은 새로운 조직, 다국적 대기업의 돈에 취한 싱크탱크를 만들었다. 그들은 미국의 대표 윤리관인 복음주의적 보병을 활성화시켰고, 거대한 부에 대한 ‘세제 혁명’을 이끌었다. 따라서 좌파는 행동주의를 더욱 지속적이며 효과적으로 이끌기 위해, 그리고 거리에서 저항의 목소리가 작아졌을 때 이를 확장하고 지원하기 위해 조직화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만 한다. 다시 말해 정치적인 조직을 세우고 장기적인 전략을 가지고 투쟁하며, 카리스마가 아닌 신뢰를 토대로 선택한 지도자를 만들고 지원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지난 수십 년 간 행동주의가 발전한 것은 유익한 현상이다. 그러나 예전에 사회운동의 성공을 보장했던 조직화 방식이 행동주의처럼 발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오늘날 미국의 행동주의자들은 윗세대들과는 매우 다른 정치적 지표를 가지고 있다. 이제는 공산주의 사상에 젖은 당원도 없고, 노동조합은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배울 점이 많음에도 시민권리 운동들은 동화 같은 이미지로만 남아있다. 
‘행동주의자’라는 용어 자체가 본래의 의미에서 벗어나게 됐다. 앞으로 이 용어는 범위가 한정된 정치적 신조나 정치적 관행보다, 한층 관용적인 표현으로 쓰일 것이다. 다수의 행동주의자들은 고립이 노블리스 오블리주나 미덕을 증명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래서 소외를 즐기거나, 단지 운이 나빠 소외된 것이라 느끼는 것 같다. 따라서 이 시대의 행동주의는 상당 부분 개인주의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다. 그러나 조직체라는 것은 본래 협조적인 것이며, 그것은 권력의 공유를 이끌어내고, 구축하고, 발휘하기를 열망한다. 청년 사회학자이자 운동가인 조나단 스머커의 말처럼, 조직체의 임무는 사회집단을 정치적 권력으로 바꿔놓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누구든 행동주의자를 자처할 수 있다. 어떤 주제에 대해 이목을 끌려고 계속적으로 시도하거나, 홀로 행동하면서 타인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에 무책임한 자도 행동주의자임을 자처할 수 있다. 행동주의의 우선적인 목표로, 동료들이 문제를 자각하게 하는 것은 유용하다. 그러나 조직체는 교육과 다르다. 조직체는 단순히 메시지를 받은 개인을 계몽시킬 뿐 아니라, 공익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결집시켜 협동하게끔 한다. 힘들지만 긴 호흡으로 일을 해야 한다. 조직체는 인프라와 조직을 구축하고 상대의 방어 속에서 취약점을 찾아내며, 홀로 행동하는 개인들을 움직이게 해야 한다. 2011년 이후 세계의 사회운동 주도자 대부분은 마크 러드가 말한 함정에 빠져있다.
“행동주의는 우리의 깊숙한 내면의 감정을 표현한다. 하지만 운동을 구축하기 위한 한 요소에 불과하다. 행동주의는 전략의 부재로 인해 전략의 항렬에 줄이 세워진 전술이다. 대부분의 청년 운동가들은 조직화를 집회나 기금마련 콘서트 개최에 필요한 준비 정도로 생각한다.”
그 밖에 소셜 네트워크에 해시태그 붙이기, 온라인 청원서 작성, 네티즌 간 토론 활성화 정도가 있겠다. 조직체는 모든 조직, 방향, 권력 쟁취에 대해 깊은 의혹을 품고, 자발적 저항을 믿으며 생성된 운동체다. 이러한 점을 조직체는 실질적으로 상실했다. 집회, 기금마련 콘서트, 해시태그, 청원서, 온라인 토론이 매우 유용했던 적도 있었다. 이러한 관행이 정치참여의 궁극적인 지평처럼 여겨질 때 문제점이 발생했다. 직접적인 행동의 역사에 대해 집필한 카우프만은 “최근 새로운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뜻을 행동으로 옮기기 쉬워졌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라고 말했다. 
청원서에 서명하고, 집회에 참여하는 등 구체적인 작은 행위를 실천하는 것은 사실상 좀 더 광범위한 목적, 즉 기득권층에 반대하고, 그들을 비판하는 등의 행동을 부추긴다. 노동조합과 같은 옛 조직체들은 엄청난 노동량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로 인해 새로운 형태의 저항과 경제 권력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아질 수 있었다. 이 시대의 신자유주의와 포스트 포디즘의 과제는, 자본화와 사회적 불안정이라는 현재 조건에 부합하는 전략적인 노조운동 모델을 만드는 데 있다. 수백만 명의 실업자, 고용안정과 노조활동의 권리를 잃은 근로자들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 힘을 한 데 모아야 한다. 

온라인의 한계를 극복해야

 일례로 환경 운동 조직체들은 석유회사들이 공공토지 석탄 채굴권을 갖지 못하도록 미국 정부를 압박하는 등의 참신한 운동을 보여주었다. 2012년 대학 내에서 시작된 화석연료 반대 캠페인은 투자자들에게 3조 4천억 달러의 펀드를 회수하도록 압박했다. 대학 동아리를 넘어서 빠르게 확산된 이 운동에 전 세계 60여 개 도시가 가담했다. 운동의 주도자 중 한 명이자, 환경운동단체 ‘350.org’의 공동창설자 제이미 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운동의 가장 큰 성과는 화석연료 산업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 것이다. 좌파 미술대학은 물론 잉글랜드 은행, 노르웨이 부 펀드, 캘리포니아 연금 펀드 등 거대 투자기관도 화석연료의 위험성을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
 블랙라이브매터스 또한 좋은 성과를 거뒀다. 이 운동은 미국 내 흑인들이 겪는 고초를 공론화시켰다. 트레이본 마틴이 살해당한 이후 플로리다에서 만들어진 드림 디펜서는 인터넷에 기반을 둔 행동주의의 효과에 의구심을 표명하며 지도자의 존재를 수용하는 조직체 모델을 주장한다. 드림 디페너의 운영진은 “우리 지역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팔로워 뿐만 아니라 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세기 전 독일 철학자 루돌프 오이켄의 정신 속에서 ‘행동주의’라는 개념이 태어났을 때, 이 개념은 물질세계보다 정신세계를 우선시했다. 설혹 일관된 전략이 없을지라도, 행동이 마술처럼 사회에 구세주를 불러올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은 여전히 정신세계를 중요시한다. 다행히도 행동주의자들은 조직자 전부를 몰아내지는 않았다. 마크 러드는 ‘교육, 기반 구축, 동맹’ 3가지가 실행되는 다수의 공간이 존속 중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 3가지가 경제 권력의 분배와 동맹을 맺은 집단적인 정체성의 창조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은 화제성이 적고, 온라인에 새로운 잡음이 생기면 바로 묻혀버리곤 한다. 
 최근 몇 달간 수만 명의 미국인들은 부유층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듣고자 버니 샌더스의 집회에 몰려들었다. 효과적이고 영리한 조직체라면 이러한 좌파 감성의 재등장을 지지하고, 그가 정치판과 대통령 선거의 좁은 관례 너머로 진출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했다. 기득권층이 두려워하는 것은 그들의 권력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들이 아니다. 민중을 결집시켜 전략적으로 행동하게 하는 조직자가, 그들에게는 언제나 더욱 두려운 존재일 것이다.  


글·애스트라 테일러 Astra Taylor
작가, 급진적 지식인에 관한 다큐멘터리 감독, 월가 점령 시위운동가. 이 기사의 전문은 미국 계간지 <The Baffler>(Cambridge, Massachusetts) 최신 호에 게재됐다. 

번역·김영란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졸업. 공역서로는 <22세기 세계>가 있다.
 
 
(1) 여기서는 단체나 정치적인 조직을 만드는 사람을 의미한다.
(2) Eldridge Cleaver, (1935~1998.5.1) 1960년대 미국 흑인운동 단체 ‘블랙팬서(Black Panther)’의 지도자였던 클리버는 후에 공화당과 통일교에 가입했다.
(3) Jerry Rubin, (1938.7.4.~1994.11.28) 무정부주의자이자 히피였던 루빈은 후에 사업가로 변신하고, 로널드 레이건을 지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