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평양은 움직이고 있다

2016-07-29     마르틴 뷜라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부편집장

 북한하면 대부분 김 씨 왕조의 독재를 떠올린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을 세운 김일성, 1994년 그의 뒤를 이어 17년 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북한을 다스린 아들 김정일, 김일성의 손자 김정은. 특히 김정은에 대해서는 호전적인 발언, 핵실험, 미사일 발사 등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베일에 가려진 잔혹한 권력은 각종 풍자 대상이 되는 법이다.

특히 북한을 세세하게 분석한 필립 퐁스의 작업은 주목할 만하다.(1) 퐁스는 북한의 끔찍한 탄압 정책과 광기어린 이데올로기를 묘사하면서도 북한은 무너지지 않았다고 인정한다. “전체주의적인 시스템은 혹독한 구속과 인민의 지지가 어우러져 유지되고 있다.” 필립 퐁스가 곧바로 내놓은 진단이다. 심지어 권력층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점차 약해지고 있어도 북한 체제는 건재하다. 
프랑스어권에서 가장 저명한 북한전문가 퐁스는 역사, 인류학, 사회학, 경제학 정보를 동원해 북한의 사회와 시스템을 이루는 톱니바퀴를 분석한다. <르몽드> 도쿄 특파원이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필진인 퐁스는 복잡한 상황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주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는 일제강점기 이전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한반도의 역사를 다룬다. 철저한 계급사회였던 조선은 일본의 혹독한 지배 하에서 근대를 맞이했다. 그리고 항일운동이 꾸준히 일어났지만 이렇다 할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 이후, 한국인들은 당시의 두 ‘강대국’이던 소련과 미국에 의해 평화를 도둑맞았다. 소련은 항일운동을 상징하는 김일성이라는 지도급 인물을 양성하지만, 훗날 김일성은 지도자로 만족하지 않고 북한의 독재자가 된다. 한편 미국은 남한 지도자들의 과거에 개의치 않고 현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 독재자 박정희가 저지른 학살에 대해서도 완전히 눈을 감는다. 
퐁스는 한반도를 영구히 분단시킨 한국전쟁(1950-1953년)을 일으킨 내부 사정과 지정학적인 요인을 철저하게 분석한다. 퐁스의 말을 빌자면, “한반도의 땅에 심어진 소련의 씨앗이(…) 돌연변이 식물을 피웠고, 단일민족에 기반을 둔 국수주의를 발산해, 이를 여전히 지도층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퐁스는 북한 체제가 1995-1998년에 최악의 기근 사태를 몰고 왔으며, “완전히 실패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은 예상치 못한 생명력을 보여주며 나름의 생존 방식과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다. 현재의 사회 및 경제 변화는 북한 엘리트층이 바라는 것인 동시에 두려워하는 것이다. 
물론 지정학적인 쟁점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핵무기를 (헛된) 방패막이로 사용하는 북한 정권, 망설이는 남한의 태도, 완전히 실패한 미국의 전략, 곤경에 빠진 중국의 입장 등이 좋은 예다. 퐁스는 북한 체제의 미래를 섣불리 예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비난하고 증오의 대상으로 삼아 불량 국가로 낙인찍고 응징할수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즉 북한 체제는 특유의 게릴라 국가 본성으로 더욱 빠지게 된다.” 따라서 비록 미미하지만 북한에서 보이는 변화의 노력을 지지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북한의 변화에 대해, 북한을 잘 아는 작가들이 증언한 단편집 두 권이 있다.  한 권은 북한을 경험한 현대 작가들의 작품 모음집 <17인의 웃음>,(2) 다른 한 권은 어느 북한 작가의 작품 <고발>(3)로, 저자가 이 책을 한국에 보내왔다. 두 단편집의 전개방식은 상반되는 듯하나, 문체와 스토리는 비슷하다.
<17인의 웃음>에는 시(詩)도 수록돼 있지만, 전반적으로 순수 문학과는 거리가 있다. 인지도가 있고 인정을 받은 저자들은 소소한 부패, 엄청난 무게의 계급제도, 외제품(고급 술) 등을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 종종 끝부분에서 사회적인 교훈을 주지만, 작품에서 다뤄지는 일상의 단편을 통해 북한을 이해할 수 있다.
한편, <고발>은 <수용소 군도>에 비유되기도 한다.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은 두 작품의 공통점이지만 <고발>의 작가 반디는 <수용소 군도>의 작가 솔제니친은 아니다. 반디의 작품은 솔제니친의 작품과는 매우 다르다. <고발>은 일상 속 시스템의 문제, 위선, 불합리, 탄압과 북한 주민들의 생존 전략을 보여준다. 
 
 
글· 마르틴 뷜라르 Martine Bulard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부편집장으로 아시아 문제를 담당하고 있다. 경제학자이자 작가, 주요 저서로 『중국-인도, 용과 코끼리의 경주』(2008), 『서구에서의 병든 서구』(공저, 2009) 등이 있다.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역서로 <술레이만 시대의 오스만 제국>(2016) 등이 있다. 
 
(1) Philippe Pons, <Corée du Nord. Un État-guérilla en mutation(북한, 변화 중인 게릴라 국가)>, Gallimard, 파리, 2016년
(2) Patrick Maurus, Kim Kyung Sik, Benoît Berthelier, <Le Rire de 17 personnes. Anthologie de nouvelles contemporaines de République populaire démocratique de Corée(17인의 웃음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현대 단편선집)>, Actes Sud, 아를, 2016년
(3) Bandi, <La Dénonciation(고발)>, Philippe Picquier, 아를, 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