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잃어버린 20년’ 좇아가는 MB

2010-01-06     김종걸|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경제학

자민당, 토건에 돈 퍼붓고도 불황 극복못해 자멸
4대강은 판박이… 하토야마 ‘우애정신’에 시사점

2009년 8월 일본 정치가 크게 요동쳤다. 1955년 이후 장기 집권을 유지해온 자민당은 8월 30일 중의원 총선거에서 완벽히 참패했다. 자민당의 참패는 단순히 장기 집권에 대한 국민의 염증을 이야기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바로 1990년대 이후 장기 불황에 대응한 일본 위정자들의 실패에 대한 분노의 표출인 것이다.

특히 1990년대 후반 오부치 정부(1998년 7월~2000년 4월)의 공공투자 중심의 경제 대책, 그리고 2000년대 고이즈미 정부(2001년 4월~2006년 9월)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통해 일본 경제의 성장력이 회복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일본인을 빈곤과 불평등으로 몰고 갔으며 재정적자만 누적시켰다고 평가된다.

이제 일본은 새로운 ‘진보’의 실험을 하고 있다. 바로 올 9월에 성립한 하토야마 유키오의 민주당 정부다. 하토야마 정책의 전체상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기존 자민당의 고이즈미 구조개혁 노선과는 명확히 구분된다는 점은 확실하다.

고이즈미와 하토야마의 차이
첫째로 민주당의 선거공약집(Manifesto)에서 경제정책 성격을 보면 전체적으로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증대해 내수를 확대하고 이를 기반으로 경제성장을 이룩하려는 성향이 강하다.(1) 새로운 성장산업, 특히 정보기술(IT), 바이오, 나노테크, 환경 관련 산업을 중시하는 전략은 자민당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오히려 자민당과 비교했을 때 확실히 드러나는 것은 중학교 졸업 때까지 모든 자녀에 대해 일률적으로 월 2만6천엔의 자녀수당을 지급하는 것과 같은 서민들의 가처분소득 증대 정책에 있다고 봐야 한다.

둘째로는 ‘콘크리트에서 사람으로’라는 공약에서 잘 나타나듯이 불필요한 공공투자는 극력 억제하려 한다. 이것이 상징적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군마현에 건설 중이던 얀바댐의 건설을 중지한 일이다. 얀바댐은 건설을 시작한 지 이미 15년이 지났으며, 총 건설비 4600억엔 중 3210억엔이 투입된 상태였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얀바댐 주변 지역의 토반이 약해 댐 건설에 무리가 따른다는 점과 환경파괴 등을 이유로 건설 중단을 발표했다.

셋째로 연금·의료의 증대, 고용 보장, 육아 지원, 환경 및 농업 보호, 중소기업 지원 등에서 상당히 적극적이다. 구체적으로 연금·의료에서는 후기고령자의료제도를 폐지하고 모든 국민에게 최소 7만엔의 연금 지급을 약속한다. 고용에서도 직업훈련 기간 중 월 최대 10만엔을 지급하며, 2개월 미만의 파견노동 금지, 제조업 분야 파견의 원칙적 금지 등을 약속한다. 육아(출산보조금 55만엔 등), 환경(온실가스의 획기적 감축), 농업(주요 곡물의 완전 자급화 추진), 중소기업(예산의 3배 증액, 중소기업 법인세율의 7%포인트 인하) 등 실현하려는 정책이 자민당보다는 환경친화적이며 복지중심적이다. 또한 수치 목표로 구체화돼 있는 것이 눈에 띈다.

그러나 적어도 몇 가지 점에서 민주당의 정부 정책은 한계가 많다. 첫째로 하토야마의 모든 계획은 재원 마련에 대한 구체성을 결여하고 있다. 민주당의 <Manifesto 2009>의 내용대로라면 추가로 소요되는 비용은 2013년 16조8천억엔에 달한다. 이는 2008년 국가 예산인 83조1천억엔의 20.2%에 해당하는 액수다. 그만큼 재정 부담은 커진다. 그렇다면 소요되는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이에 대해 민주당의 <Manifesto>에서는 정부의 낭비 등을 절감해 총 16조8천억엔의 염출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증세 없는 세출 삭감의 노력은 자민당 정권하에서도 2000년대 내내 강조돼온 것이다. 민주당이라고 특별한 성과를 낼 것이라고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둘째로 재정 압박에 대응한 증세에 대한 결론도 거의 ‘유보’돼 있다. 적어도 자민당 정부에서는 이 부분이 더욱 구체적이었다. 자민당 정부는 2000년대 후반 개인소득세 감세 폐지, 소비세율 인상으로 정책의 가닥을 잡아가고 있었다.(2) 일본의 좌파 정당들도 일단 증세에 대해서는 적극적이었다. 일본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의 공약집에서도 군비축소 등에 의한 경비 삭감, 법인세 및 고소득자 소득세를 중심으로 한 증세가 주장되고 있었다.(3) 그러나 민주당의 <Manifesto>에서는 증세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셋째로 가장 큰 문제는 하토야마 정부의 안정성과 관련된 것이다. 국민 입장에서 본다면 지난 2006년 이래 총리가 매년 바뀐 불안정한 정국에 대한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연립여당을 구성하는 국민신당·사회민주당과의 정책적 차이점도 존재하며, 정책 조율 과정에서 일부 불협화음도 들려온다. 하토야마 개인의 정치자금 문제, 지도력에 대한 비판 등으로 초기 70%를 넘던 지지율도 50%로 급강하하고 있다.

아직은 불확실한 민주당의 미래
만약 하토야마 정부가 불안정하다면, 국민은 장래 예상되는 증세 및 복지 지출 축소에 대한 염려로, 단기적 가처분소득의 증가를 소비 촉진으로 연결시키지 않게 된다. 저축 증가로 인한 경제 정체와 재정적자 누증만 더욱 가속되는 것이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의 일관성과 정권 내부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에 따른 안심감이 국민의 호주머니를 열게 할 것이다. 1600조엔에 달하는 막대한 금융자산이 있음에도 그것이 소비와 투자로 연결되지 않은 것은 바로 국민 사이에 “100살까지 살지 모르는”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의 안심이 경제성장으로 연동되려면 정책체계를 좀더 논리화하고 정권의 안정성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일본이 변하려고 하는 것은 분명하다. 반면교사이든 벤치마킹 대상이든 간에 일본의 경험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많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능력을 귀중히 여기는 성장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4) 그것이 21세기 시대정신에 맞으며, 하토야마가 늘 강조하는 우애의 정신이기도 하다.

사람과 ‘진짜 녹색’에 투자해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사람의 능력이 최대화되는가? 먼저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능력이 최대화되지 않는다. ‘당근’과 ‘채찍’만이 아니라 사회 속의 동감과 감동이 곁들여져야 능력이 발휘된다. 직접 보조에 의한 국민 가처분소득 증대, 노동 규제 강화, 직업훈련 기간 중 최대 월 10만엔 지원금 지급 등과 같은 하토야마의 정책은 바로 사람에 대한 투자가 21세기 경쟁력의 기반이기에 나온 것이다.

둘째로 신성장 동력으로서 녹색산업에 대한 제대로 된 투자가 필요하다. 하토야마는 기존의 IT·바이오 같은 첨단산업과 함께 환경 관련의 녹색산업 속에서 일본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따라서 과감한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추진하려는 하토야마의 정책체계에 대해서는 향후 좀더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애초부터 녹색산업 혹은 그린뉴딜이라는 단어가 포함하는 국제적 문맥은 양극화 해소, 안정된 일자리 창출, 청정 에너지 경제 등 다양한 내용을 포함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국제적 문맥이 한국에서 번역되었을 때에는 4대강 개발이라는 토건경제로 탈바꿈했다. 두 번(2008년 6월19일, 2009년 6월29일)에 걸쳐 한반도 대운하를 포기하겠다고 약속했던 한국의 대통령은, 자신의 ‘토건입국’의 꿈을 4대강 개발이라는 형태로, 더구나 ‘그린뉴딜’이라는 당의정을 입혀 계속 진행하고 있다.(5)

셋째로 중소기업에 대한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 한국의 정책담당자들도 중소기업 정책이 중요하다고 모두 말한다. 지난 정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여전히 중소기업은 어렵다. 이유는 간단했다. 보호·육성되어야만 할 대상조차 시장 권력에 그대로 노출시켜 결과적으로 경쟁력의 총체적 약화를 가져온 것이다. 일본의 민주당과 같이 정부 전체의 힘을 중소기업 대책에 전력투구한다고 선언하며, 구체적으로는 중소기업청장의 장관급 승진, 중소기업 예산의 3배 증액, 중소기업 법인세율을 18%에서 11%로 인하, 중소기업 대출의 최대 3년간 유예 등 특단의 조치를 강구하지 않고는 현재와 같은 중소기업의 몰락 추세를 막을 수 없다.
넷째로 이번 일본 민주당 공약의 최대 포인트는 역시 ‘정당 및 정치 주도의 정책 실시’라는 점이었다. 특권화되고 보수화된 관료 집단의 정책 입안과 정책 실시 과정을 정치의 힘으로 제어하려는 의도다. 여기에 정치와 관료를 비정부기구(NGO) 육성을 통해 견제하려는 노력이 병행된다. 한국에서 특히 현 정부 들어 두드러지게 된 정당 정책 능력의 형해화, 국민과 유리된 정치 및 관료 집단, 비판적 NGO에 대한 압박과는 너무나 큰 차이가 난다. 야심차게 시작한 하토야마 민주당 정부의 정책 형성·결정·실시·평가 과정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한국·일본 모두 중장기적으로 재정 건전화의 방향성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해둔다. 양국 모두 중장기적 재정 수요의 상승 압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재정 건전화에 대한 구체안이 마련되지 않은 것은 큰 문제다. 현재의 정책이 자연히 세수 확대로 연결될 것이라는 일종의 ‘천수답’적 기대만 팽배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정책이 경제성장과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논리의 구축과 실행 과정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방안의 모색이다. 또한 중장기적인 정부 규모와 국민 부담률 수준을 결정하고 이에 대한 재원 조달 방식을 명확히 하는 정치적 합의 형성 과정이 중요하다. 그러나 양국 정부 모두 이러한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친다.

글•김종걸
일본 게이오대 경제학 박사. 일본장기신용은행 총합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한국형 개방전략>(공저·창비), 역서로 <동아시아 공동체> 등이 있다.

<각주>
(1) 일본 민주당, <Manifesto 2009>, <민주당 정책 INDEX 2009>.
(2) 정부세제조사회, <개인소득에 관한 논점 정리>, 2005년 6월. 정부세제조사회, <과감한 재정개혁을 위한 기본 사고방식>, 2007년 11월. 일본각의결정문, <경제 재정의 중장기 정책 및 10년 전망>, 2009년 1월.
(3) 일본 사회민주당 총선 대책 자료(www5.sdp.or.jp/policy/policy/election/manifesto01.htm), 일본 공산당의 총선 대책 자료(www.jcp.or.jp/down/bira/08/20080925_panf.pdf).
(4) 한국의 ‘사람 중심’의 경제발전 전략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졸고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도 잘 사는 사회’, <프레시안> 2009년 12월 24일 참조.
(5) 이에 대해서는 졸고 ‘오바마의 그린뉴딜 vs MB의 그레이뉴딜’, 코리아연구원 특별기획 제26-2호, 2009년 6월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