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이 지배하는 러시아의 예비선거

2016-09-01     클레망틴 푸코니에

푸틴의 이력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러시아의 정치 시스템은 아직 베일에 덮여 있다. 혹시 9월 18일 총선을 앞두고 러시아 여당이 예비선거를 개최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서구의 다른 정당들처럼, 통합러시아당도 개혁의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선거가 아귀다툼 판이 되는 것을 막고자 예비선거를 개최했지만 결과는 미온적이다. 

통합러시아당의 지도부는 “예비선거에 몰려든 수많은 인파에 깜짝 놀랐다”며 자평했다. 지난 5월 22일, 등록된 유권자의 약 10%에 해당하는 천만 명의 시민이 일명 ‘푸틴의 정당’이라고 불리는 통합러시아당의 예비선거에 참여했다. 미국에서 탄생한 이 예비선거의 결과에 따라 9월 18일 총선의 후보자가 정해진다. 민주주의가 일찍이 시작된 서구의 정당 대다수는 이미 예비선거를 실시하고 있지만, 선거 비리가 만연하고 야당인사나 언론인의 암살이 빈번한 나라에서 이런 관행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성공적인 예비선거의 개최는 러시아 정당과 러시아 정치 시스템이 민주화됐음을 보여주는 일례로 볼 수 있을까? 

푸틴을 지지하기 위해 태어난 
통합러시아당

통합러시아당은 2001년 12월 1일, 그 이전 10년간 러시아 국가두마(러시아 연방 의회 하원)가 지방정부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두 야당을 견제하고 중앙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됐다. 2000년 7월 푸틴은 연방의회에 “정권이 결단성이 없고, 정부의 힘이 약하면 개혁은 이루어질 수 없다. 정권은, 법은 물론 단일 행정부와 수직적인 관계에 근거를 둬야 한다”고 메시지를 던졌다. 2003년부터 통합러시아당은 국가두마의 제1당이 됐고, 2007년도 총선에서는 국가두마 의원직의 2/3를, 2011년에는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통합러시아당은 러시아 지역 전체에서도 다수 의석을 얻었다. 이렇게 모든 의원직에서 통합러시아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면서, 자연스럽게 의원들이 지명하는 입법부의 충성을 보장받게 됐다. 
그럼에도, 러시아 정치판에서 통합러시아당의 위치는 상당히 모순적이다. 1993년 10월 보리스 옐친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이후 러시아 대통령제에서 의회의 역할은 매우 한정적이다.(1) 대통령에게 임명받은 총리가 정부 각료를 임명하며, 각료들은 행정부나 대기업 출신으로 대부분 소속 정당이 없다. 푸틴을 지지하기 위해 태어난 통합러시아당과 푸틴의 관계는 비대칭적임에도 매우 끈끈하다. 푸틴이 통합러시아당에 가입한 적이 없음에도, 두 번의 대통령 임기 중이던 2008~2012년 푸틴이 총리 취임을 위해 당대표가 된 것에 반대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정치학자이자 통합러시아당의 지지자인 비탈리 이바노프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통합러시아당은 국가 지도자의 결정으로 만들어진 정당으로서 정부 정책을 실행하고, 국가 엘리트층을 공고히 하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정책을 동시에 실행하며 중앙집권화하고, 공식적인 정부 사상을 퍼트리는 사실상 정부 조직의 연장선이다.” 
이바노프는 또한 “언론인과 정치학자들은 여당과 지배 정당이라는 단어의 개념을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두 단어의 차이점은 매우 명백하다. 지배 정당은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독립된 정치적 주체다. 여당은 정권의 도구일 뿐”이라고 주장했다.(2) 통합러시아당은 정치적인 영향력도 없을뿐더러, 조직적으로도 취약하다. 때때로 ‘가상 정당’이라고 평가될 정도로 사회 안에 거의 뿌리 내리지 못한 정당이다. 통합러시아당은 공식적으로 러시아 인구의 1.4%에 해당하는 2백만 명의 당원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서구의 다른 정당들로부터 부러움을 사는 이 수많은 당원들의 대다수는 단체 등록자이며, 지지자들의 활동은 미미하다.
2000년대 중반부터 당 지도부는 실질적인 지지층을 조직체로 만들기 위한 제안을 몇 가지 내놓았다. 정치계에는 자신만의 발전방식이 있음을 주장하는 경향이 있지만, 러시아에서는 서구 정당들을 기준으로 삼는 것을 현대화의 중심 요소로 본다. 통합러시아당은 사상적으로는 보수주의 정당을 표방한다. <문명의 충돌>의 저자이자 미국 정치 이론가인 사무엘 헌팅턴에게 영감을 받은 당 지도부는 독일의 기독교민주연합당, 프랑스의 신공화동맹당, 공화민주동맹당, 일본의 자유민주당 등을 자주 참조해 전쟁 후 수 년 간 지배정당이 수행했던 국가 안정화 역할을 강조한다.

후보자를 지도부가 결정하는 
‘민주적 선거’
 
선거에 출마할 후보자를 투표로 선출하는 예비선거는 영어 ‘Primary’를 본떠 러시아로는 ‘Praïmeriz’라고 한다. 이는 서구의 기준에 부합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2007년도 총선에서 최초 실시된 예비선거는 2009년 11월부터는 각 정당의 상·하의원 및 지방의회 후보자 지명을 위한 의무과정이 됐다. 민주연맹 내부에서 재결성된 자유주의 야당도 2016년 5월 29일 예비선거를 실시했지만 엉망이었다.(3) 프랑스 사회당의 경우 예비선거를 처음 제안한 이들은 중진들의 출마를 저지하기를 원했던 젊은 지도자들이었다.(4) 통합러시아당은 정반대의 경우이다. 예비선거는 정부와의 막후 협력으로 지도부의 주도로 만들어졌으며 예비선거를 통해 현대적이고 개방적이며, 개혁적인 조직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통합러시아당의 예비선거 양상은 서구와는 확연히 다르다. 투표 결과는 최종 후보자 명단에 부분적으로만 반영되기 때문이다. 2009년 제정한 규율은 예비선거 투표가 후보자 지명 과정은 아니라고 명시하고 있다. 통합러시아당 지도부는 마지막 순간 원하는 후보를 포함시키거나, 투표에서 승리한 자를 빼거나, 승자의 순서를 바꿀 수 있다. 총리이자 통합러시아당 대표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는 대통령 행정 제1부실장 비아체슬라프 볼로디네, 2012년 푸틴의 대통령 선거 운동을 지휘했던 영화감독 스타니슬라프 고보로키네, 유명한 크림 공화국 검사장 나탈리야 포클론스카야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을 손수 후보자로 채택했다. 
게다가 5월 22일 예비선거 후 예비선거연방조직위원회는 모호한 이유를 빌미로 최다득표자 몇 명을 최종 후보자 명단에서 제외시켰다. 세르게이 네베네프 통합러시아당 총회 비서는 5월 27일 열린 예비선거연방조직위원회 회의에서 “칼리니그라드 지역의 한 후보자가 최근 드러난 사실로 인해 평판이 실추됐고, 울리야놉스크 지역의 한 후보는 고소를 당했다. 스베르들롭스크에서는 후보자가 자기 지위를 남용했다는 불만이 다수 있었다”면서, 명단 배제를 발표했다. 며칠 후 다른 두 명의 후보도 “명성이 실추될 위험성이 있다”는 이유로 배제됐다.
9월의 총선에서는 지역구제-정당명부제 혼합방식이 부활한다. 하원의원 중 절반은 각 정당의 득표비율에 따라 비례대표 정당명부제로, 나머지 절반은 지역구별 의원후보에게 직접 투표하는 지역구제로 뽑는다. 통합러시아당은 예비선거를 치렀음에도 18개의 선거구에 후보를 내지 않는다. 정치학자 이고리 부니네에 따르면 통합러시아당이 차지하지 않은 틈새시장에서 야당이 의원직을 얻는 경우는 동맹을 맺은 형제 정당을 위해 자리를 내주기 때문이라고 한다.(5) 그들은 의원직을 얻고 푸틴에 충성한다.
예비선거 투표 결과와 무관하게 최종 후보자 선정이 지도부의 손에 달려있다는 사실은, 통합러시아당식 민주주의의 한계점을 드러낸다. 예비선거와 함께 팔려버린 혁신의 약속은 과연 다른 곳에서는 지켜질까? 수뇌부의 거부권이 아니더라도 예비선거는 재선 후보자들의 정치력을 더욱 강화시켜주는 경향이 있다. 2011년 통합러시아당 의원의 재선비율이 50%를 넘어섰다. 역설적이게도 70%의 의원이 재선되는 서구에 근접한 수치다.(6)

후보자도, 유권자도 
예비선거를 원치 않는다

 그러나 정치권의 룰이 바뀌고 있다. 현역 후보자들은 단 한 명의 라이벌이 아니라 점점 커져가는 외부의 압력에 직면해있다. 올해부터 러시아의 예비선거는 이중으로 개방되기 때문이다. 모든 시민들이 투표에 참여할 수 있고, 후보로 등록도 가능하다. 다른 정당 소속이 아니며, 전과기록만 깨끗하면 된다. 통합러시아당은 2016년 2,781명의 신청자 중 43%가 외부 후보자였다. 정당에 소속된다는 것은 의원으로 당선되고, 양성되는 경로일 뿐, 그 가치가 떨어졌다.  
 2016년 예비선거는 토론에 초점이 맞춰졌다. 자격을 검증받기 위해 후보자들은 부패 퇴치, 교육, 보건 등 중앙 및 지역별 주제에 대한 토론에 참여해야만 했다. 특히 200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추세를 반영하는 토론 모임이 생기기 시작한 이래 각기 다른 선거 프로그램을 지닌 여러 노선이 생겨났다. 예를 들어 자유보수주의자들은 정부가 기업에 가하는 압력행사를 걱정하고, 사회보수주의자들은 사회 문제와 보수적 가치관(가족, 종교 등)을 지키고자 한다. 
 그러나 이데올로기가 다른 후보자들이 통합할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됐다. “우리 백곰은 날개가 필요 없다”라고 2005년 백곰을 상징으로 하는 통합러시아당의 대표 보리스 그리즐로프가 말했다. 그는 정당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강령에서 계파를 조직하는 안을 완전히 배제시켰다. 
 그 결과 온라인상에서 생중계한 토론 방송은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단상 뒤에 나란히 선 후보들은 주어진 질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2분 동안 답변했고, 방청객은 각 후보자의 지지자들로만 구성돼있었다. 후보자들의 말투는 정중했으며 서로에게 박수를 쳐주었다. 엄격한 틀 안에서만 토론이 이루어졌고, 논쟁을 벌이는 것은 오히려 불리했다. 참가자들은 상대 라이벌에게 투표하지 말라고 호소할 수도, 상대방의 단점을 말할 수도 없었다. 포스터, 전단지, 홍보영상 등의 홍보수단들은 지역조직위원회에 승인을 거쳐야만 한다. 
 따라서 설문조사에서 큰 인기를 얻은 후보만이 개인자격으로 후보 등록을 하고, 유권자들은 여러 후보자를 지지할 수 있다. 예비선거는 경쟁후보자들 사이에서 최종 후보자를 낙점하기보다는 총선에서 최대한 표를 받을 수 있는 이름을 찾아내고, 이를 통해 총선 이전에 정당에 대한 지지도를 높이는 효과를 갖기 위함이다.
 정치학자 그리고리 고로소프는 통합러시아당의 일체주의 문화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통합러시아당의 예비선거에서도 실질적인 정치적 경쟁의 특징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점점 이에 젖어든 러시아 주요 정치 인사들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적 대립은 없고, 지극히 개인적인 대립만 존재한다. 예를 들어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미성년자에게 동성애 선전을 금지시킨 법안’으로 유명한 비탈리 밀로노브 의원은 눈에 띄지는 않지만 꽤 영향력 있는 이우리 쵸바로브 전 하원언론위원장을 고발했다. 그는 개표 당시 개표장을 지키던 무장 청년들을 내보내고 무료로 음식을 제공했다는 혐의로 고발당했다.
 정치 거물들의 충격적인 소식은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5월 22일 단 하루 동안 426건의 부정 선거 고발장이 접수되며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2011년 시위에서 야당이 고발한 여당의 선거 비리는 대통령 측근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정부의 홍보담당자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현재 후보자도, 유권자도 통합러시아당의 지도부에 투명성 있는 예비선거를 요구하지 않는다. 또한 2018년 3월에 열릴 대선에서 통합러시아당 후보를 예비선거를 통해 선정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다.  



글·클레망틴 푸코니에 Clémentine Fauconnier
모스크바 프랑스 대학의 조교수, 모스크바 프랑스-러시아 연구소 연구원. ‘통합러시아당의 창단의 역설’에 관한 정치학 박사 논문을 국제연구센터에서 취득함. 

번역·김영란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졸업. 공역서로는 <22세기 세계>가 있다.
 
 
(1) 장 마리 쇼비에, ‘1993년 10월, 총포 소리를 따라 울리는 러시아 자유주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4년 10월호.
(2) 비탈리 이바노프, ‘푸틴의 정당, 통합러시아당의 역사’ Olma Media Group, Mouscou, 2008년
(3) 니나 바츠카토프, ‘산산히 부서진 러시아 야당’,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웹사이트 (www.monde-diplomatique.fr) 참조
(4) 레미 르페브르, ‘사회당 예비선거. 운동 정당의 종식’ Seuil, Paris, 2011년
(5) 미하일 루비네 인용 ‘통합러시아당은 야당에 보상 선물을 한다’,(러시아어) 2016년 6월 29일, www.rbc.ru
(6) 리처드 매틀랜, 돈리 스튜덜, ‘Determinants of legislative turnover : a cross-national analysis’ British Journal of Political Science, vol. 34, n˚1, Cambridge, 2004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