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폐지, 엑스-마르세유 대학의 세계 순위 집착증

2016-09-01     크리스텔 제랑

지식 전달과 탐구를 위해 설립된 프랑스 대학들이 변하고 있다. 2007년 개정법으로 자율성을 획득한 대학들이 세계 대학 순위에 진입하기 위한 통합을 이루고 있다. 관료주의가 활개를 치며 확산되는 가운데, 학문과 기본교육을 지키자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마르세유 구(舊)항구에 솟아오른 장엄한 건축물이 웅장한 매력을 발산하며 분위기를 압도한다. 2012년 1월 1일, 프로방스 대학과 메디테라네 대학, 폴-세잔 대학이 통합해 탄생한 엑스-마르세유 대학(AMU)이다. 예정보다 빨리 진행된 ‘메트로폴리탄’프로젝트의 결과물로, 학생 수가 7만 4천 명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프랑스 대학이다. 이곳에서는 엑상프로방스부터 마르세유까지 터키색과 노란색 문양의, 새하얀 대학 깃발이 휘날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세계 순위 진입을 위한 몸집불리기

 ‘세계로 나아가는 글로벌 대학’, AMU 홍보책자를 도배하고 있는 슬로건이다. AMU는 여러 대학교를 병합해 국가적 차원을 넘어선 규모로 성장했다. 프랑스 대학병합의 첫 시작은 2009년에 설립된 스트라스부르그 대학이었다. 피용 정권 시절 “68혁명의 피해 회복”을 맹세한 발레리 페크레스 고등교육부 장관(2007~2011년)이 지지한 프로젝트였다.(1) “중국 눈에는 우리가 오합지졸로 보일 것”(2)이라고 탄식했던 사회주의 성향의 쥬느비에브 피오라소 후임 장관은 2013년 7월 22일에 일명 ‘피오라소 법’을 제정한다. 1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대학들이 병합하거나 단체·협회 형태로 결속하게 만드는 법이다. 그 결과, AMU는 중국이 뽑은 ‘2015년 세계대학 학술순위’에 진입하게 된다. 
 크리스토프 샤를 역사학교수에 따르면, “사실상 대학의 순위를 매기는 것은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보다는, 대학과 교직원들이 상위목표를 따라 움직이고 스스로를 통제하는, 자율성과 혁신력 증진과는 완전히 모순된 행동을 하게 만든다.”(3) 대학순위의 선정기준은 졸업생의 노벨상·필즈상 수상실적, 네이처·사이언스 학술지 게재 실적 등이며, 이 중 5가지 기준이 교수진 규모와 관련이 있다. 따라서 프랑스는 순위 진입을 목표로 몸집 불리기 식의 대학통합을 추진했고, 그 결과 AMU를 100위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하버드, 스탠포드, MIT 등 최상위 대학의 학생 수는 1만~2만 명으로, AMU와는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적다. 
 자크 그로스페랑(공화당)과 도미니크 지요(사회당) 상원의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 ‘괴물’ 같은 대학통합 프로젝트는 지역통합과 거대도시권 형성을 목표로 한 계획적인 사업이지, 우발적인 것이 절대 아니다. 대학이 분산돼 있는 것은 세금낭비이므로, 이를 통합해 세계적으로 더욱 강력하고, 효율적이고, 경쟁력 있는 모습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각 대학의 역량을 합쳐 경비절감 효과를 내겠다는 것인데, 대학을 통합하는 사업 자체가 돈이 많이 든다. 상원 문화·교육·커뮤니케이션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가 2015년에 창출한 고등교육 부문 1천 개 일자리 중 348개가 대학통합으로 창설된 신규기관에 투입됐다.(4) 
 거대한 몸집의 통합대학은 말 그대로 여전히 작업 중에 있지만, 이본 베를랑 총장은 현재의 성과에 만족한 듯 보인다. 통합계획을 발표할 2004년 당시만 해도 직원 대다수가 반기를 들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반대자가 줄었기 때문이다. 탁 트인 바다가 보이는 넓은 사무실에 자리 잡은 베를랑 총장은 입을 열었다. “AMU의 인지도가 지역·국가·국제적으로 높아졌는데, 이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운영난에 시달리는 대학의 노동환경

그러나 대학이 통합된 지 4년이 지났는데도, 직원 8명을 태운 로드롤러는 여전히 운영·구조적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재계약 실패에 대한 우려로 익명을 요구한 한 임시 공무원은 2015년 보궐선거 당시 혼란스러웠던 상황을 떠올렸다. 당시 대학부서들 중에 장애인 학생을 위한 시험주제에 접근권한이 있는 부서가 한곳도 없었다. 따라서 그는 장애인 담당부서, 입학처와 함께 ‘어떻게든’ 해결책을 마련해야 했다. 그는 “이 방법이 합법적인지 아닌지도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그를 인터뷰한 장소는 다른 캠퍼스와 정반대에 있는, 엑상프로방스에 새로 지어진 연구소였다. 1960년대에 완공돼 장-마크 애로 총리가 장대한 준공식까지 치러주었지만, 현재는 벽에 낙서가 가득하고 천장조명은 떨어지기 직전인 상태이다. 다행히 정부의 대학지원사업 덕분에 이 낙후된 연구소는 새로운 건물로 대체되고, 구름다리와 테라스까지 설치될 예정이다. 프랑스 정부가 2008년에 발표한 대학지원사업에 10개 대학이 선정됐는데, AMU도 이에 포함돼 5억 유로를 지원받았다. 또한, 지자체로부터는 별도로 3억 유로를 지원받았다. 
 인터뷰에 응한 젊은 임시직 공무원은 건물이 완공되기 전까지 조립식 가건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박사과정인 그는 학생이자 직장인으로서 일도 할 수 있는 양면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2015년 입학 후 3개월이 지나도록 임시계약에 반드시 필요한 학생카드를 발급받지 못했다. 수업도 이미 시작된 상황이라서, 결국 ‘불법’으로 일할 수밖에 없었다. 학생할인 혜택에서도 제외됐으며, 특히 통학비를 할인해주는 ‘ZOU카드’도 발급받지 못했다. 그래도 급여 문제에 비하면 이러한 운영적 문제점은 일도 아니다. 대학이 그에게 미지급한 급여는 3천6백 유로에 달한다. 한 학기에 24시간짜리 수업을 3개나 진행하는데다, 수업준비와 채점시간까지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한 금액임에도 말이다.
 한 ‘행정직원’은 불투명한 일처리 방식을 지적한다(AMU 측에서는 ‘비서’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채용과정이 전혀 투명하지 않다. 우리가 요청했던 지원자가 계약서를 받았는지 알 길이 없는 상황에서 지원자들의 불평을 처리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급여문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보고를 올리면, 상사, 학부 인사팀장, 대학 인사팀장 순으로 보고가 올라간다. 결국 총장실이 모든 일을 관리하는 셈이다. 학부 인사팀장은 전달자일 뿐, 직원 신상정보를 열람할 권한도 없다. 과거에는 인력이 부족해서 급여가 늦게 지급됐다면, 지금은 왜 문제가 발생하는지 이유조차 알지 못한다.”
 또 다른 ‘행정직원’은 대학합병으로 전달체계가 복잡해졌다고 지적했다. “교무과를 예로 들어보자. AMU의 교무과가 대학본부에 어떤 정보를 알리면, 우리는 최소 5일이 지나서야 그 정보를 전달받는다. 만약 서류양식을 15일 이내에 작성해야 하는 경우라면, 시간적 압박은 더욱 심해진다. 차라리 예전처럼 직접 전달받는 방식이 더 효율적이었다.” 베를랑 총장은 현재 의무부총장직도 겸임하고 있어서, 직원들의 불만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도 병원 측에 절차가 너무 복잡하다고 자주 불평한다. 그러나 책임자로서 업무를 넘기기 전에 모든 사안을 파악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많은 행정직원들이 지리적 이동은 없었지만 업무변경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모두가 제대로 된 업무 인수인계를 받은 것도 아니다. 부서가 재구성되면서 업무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고, 새로운 절차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 설치됐다. 한 직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매번 정보를 찾아 헤매는 식이다. 절차가 변경돼도 절대 공지하는 법이 없었다. 바뀐 부분이 없는지 매번 체크하지 않으면, ‘양식이 변경됐다’는 메시지와 함께 제출한 서류를 되돌려 받기 일쑤다.”
 2015년 4월, AMU의 노동총동맹(CGT)은 직원들의 건강상태를 평가하기 위해 600명을 대상으로 설문지를 돌렸다. 설명에 응답한 100여 명의 직원들 대부분은 C급 공무원이었다. 이 중 70%가 대학통합 이후 노동조건이 악화됐고, 직장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68%는 업무가 너무 긴박하게 진행된다고 불평했다. 또한 응답자의 약 절반이 대학의 지침이 모순적이라고 답했다. 필립 블랑 CGT AMU지부장은 대학통합 이후 노조의 도움을 받은 직원이 100여 명에 달한다고 입을 떼었다.
“일이 힘들거나 업무변경을 원하는 직원이 있으면, 해당부서와 중재에 들어간다. 자신이 선택했던 부서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경우, 새로운 직책이 맞지 않을 수 있고, 새로운 상사와 부딪칠 수 있다. 그러면 경영진은 더욱 호전적이 될 수밖에 없다.”
필립 블랑 지부장 역시 대학통합 때문에 부서를 이동해야 했다. 그로 인해 혼란이 가중되면서 직장에서 겪는 지루함으로 모든 의욕을 상실하는 ‘보어 아웃(Bore-out)’ 증후군에 시달렸다. 그가 다른 부서로 떠난 뒤, 그가 있던 자리는 아예 없어졌다. “재편성 이후에 대학본부에 새로 뽑힌 보건·보안부 책임자가 협력업자였던 기술자에게 모든 업무를 넘겨버렸다.”

복사를 하려면 주문서를 작성해야 한다?

 대학통합과 함께 모든 권력이 대학본부에 집중되면서, 교원과 학생이 겪는 행정적 불편함은 더욱 커졌다. 캠퍼스에 학사일정 공지용 게시판을 설치해달라고 요청해도, 꼬박 3주를 기다려야 한다. 모든 직급에서 결재서류를 승인받는데 그만큼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학회에 한번 참석하고 싶어도 복잡한 결재단계를 거쳐 승인을 받아야하기 때문에 상당히 복잡하다. 심지어는 간단한 복사작업을 하는데도 주문서를 작성해야 하는 실정이다. 
 그래도 대학본부가 놀라우리만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한 건도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미래를 위한 투자’ 프로젝트이다. ‘세계 유수 대학과 경쟁 가능한 거점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인 정부 프로젝트는 지원금이 자그마치 220억 유로에 달한다. AMU를 포함한 총 8개의 대학이 프로젝트에 선정됐고, AMU는 2012년에 7억 5천만 유로를 지원받아 정부 대학육성정책의 최대 수혜자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필립 블라슈 ‘말과 언어’ 연구소장은 이러한 정부지원사업에 회의적인 입장이다. ‘후견주의’를 부추긴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정부사업을 따내는데 총장실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 외부전문가가 지원 자격이 충분하다고 평가한 대학이 20여 개 중 10개 대학만이 선정됐다면, 결국 최종선택은 내정돼 있었다는 말이다. “오늘날 주요 결정권은 총장실에 있다. 한곳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란 대학의 생존과도 같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간급 결정기관들의 자신감 부족이다. 단과대학, 교수회, 연구실들은 모두가 핵심적 위치에 올라야 한다는 비전에 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서류를 작성하고 지원서를 제출한다.” 그에 따르면, 매년 3개월이라는 시간이 행정서류를 작성하는데 소요된다.

‘사회진출’과 ‘노동인력’의 거래소, 대학

한편, 대학의 최우선 과제와 목표는 교원·연구원, 학생, 행정직원 협의회들이 결정한다.(5) 그러나 블라슈 연구소장의 말처럼 “100~150여 건을 한 번에 몰아서 다 같이 투표하는 식”이라서 그런지, 협의회 대표들은 일의 진행사항을 잘 알지 못한다. 베를랑 총장의 경우, 2016년 1월 5일에 이사회 투표를 통해 4년 임기의 총장직에 재선됐다. 찬성 27표, 반대 5표, 무효 4표였다. 최종결정권을 가진 이사회 내부에는 반대세력이 거의 없는 상황이니, 결국 다른 협의회들은 있으나 마나한 존재인 것이다. 사회학과에 재학 중인 톰 오로피노 프랑스대학생전국연합(UNEF) 대표는 “반대의견을 제시해도 아무소용이 없다”고 분개했다. AMU 학생들이 구성원 대부분을 차지하는 프랑스대학생총협회(FAGE)는 모든 분쟁을 피하고 싶다는 자포자기 상태이다. FAGE 대표위원 중 한 명인 르노 아르장스는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우리의 투표는 영향력이 없다. 우리는 투표 자체에 회의적인 입장이며, 반대표를 던지기보다는 구조 자체를 일부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반대해봤자 바뀌는 것은 없고, 오히려 이후 업무관계만 껄끄러워질 뿐이다.” 
 톰 오로피노는 총장실이 “학생들을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학생연합단체에 300유로의 운영기금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지출계획을 설명할 필요도 없다. 한때 의대생연합 소속이었던 르노 아르장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대학통합 이전에는 프로젝트 예산을 따기 매우 어려웠고, 금액도 지금보다 적었다. 웬만큼 큰 액수의 지원금을 따내려면 위원회를 세군데나 거쳐야 했는데, 지금은 한군데만 가면 된다.” 학생들은 자신이 속한 단체와 새로운 구조에 만족해하는 편이다. 하지만 미국 명문대처럼 AMU의 대학로고가 박힌 스웨트셔츠와 가방을 자랑스럽게 들고 다닐 날이 오려면 아직 먼 듯하다.
 대학 이사회 정원도 30~60명(‘사바리 법’에서 규정한 인원 수)에서 24~36명으로 축소됐다. 기업들이 이사회 사정을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도록” 피오라소 장관이 편의를 제공한 것이다.(6) 대학보다 “세상물정에 밝다”고 판단되는 외부인사가 7~8명 대학경영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지방의회, 지역사회, 마르세유 시청도 AMU 대학본부에 대리인을 둘 수 있게 된 것이다. 미쉘 보아 프랑스전력공사(EDF) 마르세유 지부 인사팀장과 프랑스경제인연합회(MEDEF)의 지부 격인 부쉬뒤론 지역 기업연합회의 조안 벤치벤가 회장도 2016년 1월부로 이사회 멤버가 됐다.
 크리스토프 그랑제 역사학교수는 대학과 기업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대학들은 기업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는 대신, 시장상황에 맞게, 즉 기업 인재상에 맞게 교육과정을 수정해야 한다. 바꿔 말하면, 구직능력이 보장된 미래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대학의 역할이 된 것이다.”(7) 기업들은 실리적인 교육방식을 주장한다. EDF의 경우, ‘원자력물질 실험 및 모델화’, ‘원자력 공정공학’ 등 회사기준에 맞는 학위를 만들기도 했다.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해, 연구원들은 이렇게 말한다.
“대학은 더 이상 ‘교육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학생이라는 고객의 사회진출을 보장한다고 주장한다. 대학은 더 이상 ‘지식을 전수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들은 노동시장에 인력을 내다 팔 뿐이다.”
 학과명을 알아보기 쉽게 만든다는 명목으로 자연과학대를 중심으로 학과를 통합했다. 그러나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델핀 티보 생명과학·지구과학 학부장은 “과거의 해양과학과는 마르세유 특징을 잘 살리면서도 학과명도 한눈에 이해하기 쉬웠다”며 명칭 변경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대학병합의 일환으로 여러 학과들이 병합됐고, 정부는 “지역·국가적 차원의 홍보절차가 복잡해진다”는 이유로 세분화된 학과명을 거부했다.
 다행히 반대세력이 가장 우려했던, 비용절감 때문에 교육과정이 축소되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미쉘 갈리 인문학 대학원 학과장은 그럼에도  일부 교육과정이 폐지된 것은 ‘반대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학병합에 대한 경계심은 여전히 존재한다. 사실 현재의 교육과정은 대학통합 이전인 2011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 점을 고려해, 다양한 캠퍼스에서 제공되던 커리큘럼(특히 자연과학대)이 폐지됐다. 그런데 2018년에 시작되는 새로운 교육과정의 슬로건은 ‘상호부조’와 ‘다학제성’이다. 미셀 갈리 학과장은 “가까운 미래에 먹구름이 껴있는 듯하다. 이러한 잘못된 통합방식과 상호부조는 모든 연구와 교육 분야에 있어서 난센스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다음 목표로 ‘빅 데이터’와 ‘도시간 연계’가 거론되고 있는데, 인문·사회과학 학과에서는 무용지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글·크리스텔 제랑 Christelle Gérand 
언론인

번역·이보미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Valérie Pécresse: “D’ici à 2012, j’aurai réparé les dégâts de Mai 68”’, <Les Échos>, 파리, 2010년 9월 27일
(2) ‘Le gouvernement regroupe les universités en 25 grands ensembles’, <Les Échos>, 2014년 7월 21일
(3) 크리스토프 샤를 & 샤를 술리에(eds.), ‘La Dérégulation universitaire. La construction étatisée des <marchés » des études supérieures dans le monde’, <Syllepse>, ‘La politique au scalpel’ 전집, 파리, 2015년
(4) 자크 그로스페랑 의원과 도미니크 지요 의원이 문화·교육·커뮤니케이션위원회 이름으로 제출한 2016년 재정법안 관련 의견서. 파리, 2015년 11월 19일
(5) 대학 이사회, 학업·학사심의회, 과학협의회 등 
(6) 주느비에브 피오라소, ‘Il faut ouvrir les universités aux entreprises’, <Les Échos>, 2012년 11월
(7) 크리스토프 그랑제, ‘La Destruction de l’université française’, <La Fabrique>, 파리, 2015년

박스기사
 
로또당첨만큼 힘든 정부지원사업

프랑스 정부가 추진하는 ‘미래를 위한 투자’ 프로젝트의 일환인 ‘인덱스(Index, 우수한 이니셔티브)’ 프로그램에 선정되면, ‘라벡스(Labex, 우수한 연구소)’와 ‘에퀴펙스(Equipex, 우수한 연구장비)’ 지원금을 따낼 수 있다. 수많은 대학후보 중 엑스-마르세유 대학(AMU)은 라벡스 22건과 에퀴펙스 11건을 따낸, 타의 추정을 불허하는 강력한 경쟁자다. 그러나 여기에는 심각한 양면성이 존재한다. 프랑스 정부가 원하는 대로 대학을 통합하려면 상당한 비용이 든다. AMU의 경우, 운영자금에서 1천만 유로를 떼어내어 급여예산 증가를 조정하고, 학과를 통합하고, 시설을 보수하고, 공통소프트웨어를 설치하는데 투자해야 했다.(1)
 그래도 덕분에 21명의 대학총장의 말처럼 “대학을 통합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하는”(2) 인덱스 지원금을 따낼 수 있었다. ‘세계적’ 수준의 대학을 만들기 위해 자금을 집중시키겠다는 의지가 확연히 드러난 선택이었다. 
 철학, 역사, 물리를 비롯해 환경 같은 횡단적 주제까지 아우르는 ‘과학 및 인문학’ 학과도 인덱스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게 됐다. 마티유 브뤼네 공동학과장은 “막대한 자금이 몇몇 대학에, 그 중에서도 몇몇 학과에만 투자됐다”고 말했다. 인덱스 혜택을 받지 못하는 학과도 함께 맡고 있는 그는 “모두가 먹을 파이가 부족한 상황에서, 막대한 돈을 60명의 학생에게만 주는 상황을 용인하기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한편 2012년부터 대학운영이 ‘자율화’됐지만, 사실상 대학들은 ‘늘어난 책임과 권한’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근속연수에 따라 자동적으로 증가하는 임금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부가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부분이다. 자크 그로스페랑과 도미니크 지요 상원의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대학들이 상환하지 못한 금액은 9,800만 유로에 달한다.(3)
 이러한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AMU를 비롯한 대학들은 상당수의 일자리를 임시 보조직(ATER)으로 전환시켰다. 계약기간 1년, 갱신횟수도 1회로 제한되는데다 급여도 더 적다.(4) 그러면 몇 자리나 만들었을까? 인사부는 ‘기밀사항’이라며 못을 박는다. 매년 초 연구소에 지급하는 ‘기본보조금’도 전국적으로 크게 줄어들었다(연구소들에겐 연구 이외에 전기세를 내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예산이다). 어려운 상황을 인지한 AMU는 기본보조금을 평균 30% 수준으로 늘렸다. 특히 사회과학 학과의 사정을 많이 고려했는데, 자금원 중 하나인 프랑스 국립연구청(ANR)의 기금이 2012년 7억 2,890만 유로에서 2016년 5억 5,510만 유로로 감소한 관계로 추가적인 보조금을 마련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필립 들라포르트 LP3(레이저, 플라즈마, 광자학) 연구소장의 경우, 프로젝트 선정은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그는 사무실 모니터로 2백만 유로에 달하는 장비가 설치된 연구실을 보여주며, “연간 레이저 비용이 기본보조금의 두 배”라고 강조했다. 사무실 창밖으로는 퓌제 산봉우리가 우뚝 솟은 칼랑크 국립공원이 보였다. 들라포르트 소장은 예비프로젝트 계획을 제출한지 1년이 지났는데도 지원금이 나오지 않은 것을 보면, 프로젝트에 선정될 가능성은 8%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고 애석해했다.
“연구원들은 먼저 5페이지의 보고서를 발표한 뒤 담당자에게 제출한다. 예비심사를 통과하면, 좀 더 자세한 내용이 담긴 30페이지의 보고서를 준비한다. 여기에는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 및 대학 행정부서와 함께(또는 두 기관이 독자적으로) 작성한 ‘프로젝트 예산과 지적재산권’도 들어간다. 복권처럼 당첨되기 어려운 일에 수많은 시간과 돈을 들이고 있다.”
 많은 대학교수들이 정부가 지원사업을 통해 연구의 방향을 결정짓는 방식은 처음에는 좋아보일지라도 나중에는 안 좋은 결과를 낳는다고 믿는다. 노벨상 수상자인 알베르 페르 물리학교수는 자신처럼 ‘유행하는 주제와는 상관없는 연구’를 하는 사람은 지원금을 받을 수 없는 구조라고 지적한다. 2007년 노벨상 수상소감으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성 다층구조 연구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하드디스크 용량을 키울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원래 시작할 때는 끝이 보이지 않는 법이다.”(5) 크리스토프 그레인저 역사학교수는 이 구조가 “과학의 기본 형태를 무너뜨린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연구정책은 의생명과학, 그 중에서도 대사체학적 접근법을 무시한 유전학과 항암연구를 중시한다. 또한, ‘신기술’과 환경과학을 중시한다. 특히 인문·사회과학적 측면에서의 신경과학과 응용분야(신경역사학, 신경법학 등) 연구를 강요한다. 인류의 과학적 지성의 원칙은 목표, 방법, 추론의 다양성이다. 현재의 연구정책은 이러한 다양성을 말살시키고 있다.”(6)  

(1) Compte sur lequel les universités doivent légalement garder l’équivalent d’un mois de fonctionnement.
(2) ‘Quel avenir pour l’enseignement supérieur et la recherche français?’, <Mediapart.fr>, 2015년 5월 29일
(3) Avis présenté par M. Jacques Grosperrin et Mme Dominique Gillot au nom de la commission de la culture, de l’éducation et de la communication sur le projet de loi de finances pour 2016, 상원, 파리, 2015년 11월 19일 
(4) Un ATER à plein temps (128 heures de cours ou 192 heures de travaux dirigés) est rémunéré environ 1,650 euros net. Pour une charge d’enseignement identique, un maître de conférences avec trois ans d’ancienneté perçoit près de 2,200 euros.
(5) Le Prix Nobel Albert Fert plaide pour une recherche libre’, <르몽드>, 2007년 10월 25일
(6) 크리스토프 그레이저 Christophe Granger, ‘La Destruction de l’université française’, <La Fabrique>, 파리, 20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