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변혁, 누가 이끌어야 하나?
2016-09-01 김세균
오늘날 한국의 대학들은, 더 이상 대학 본연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만큼 심각한 문제를 지닌 기구로 변질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그 동안 한국사회의 발전과정에서 야기된 문제들을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한국대학의 진보적 변혁이, 곧 한국사회 전반에 대한 변혁의 주요과제 중 일부가 됐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이런 한국대학의 질병을 치유하는, 변혁의 주체는 과연 누가 돼야 하는가?
과거 군부독재 시절, 한국의 대학은 ‘압축적 성장’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급속한 산업화과정에 필요한 전문인력의 대량공급을 주된 목적으로 설립 및 운영됐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대학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방기하고, 교육예산의 감축을 위해 사립대학들을 대거 설립했다. 따라서 한국에는 국공립대학보다 사립대학의 비중이 훨씬 높아지게 됐다. 이 과정에서 돈벌이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사립대학도 많이 생겨났다. 나아가 전임교원의 부족을 메우기 위해 비정규직 교수(시간강사)들이 대거 채용됐다.
또한, 군부독재 시절에는 학생 데모 방지와 비판적 학문 연구 금지가 정부의 대학 감시와 통제의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그러므로 정부정책을 비판하지 않는 한, 정규직 교수들은 연구업적 등이 부실하더라도 승진과 봉급 등에서 거의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 한편, 군부독재 시절 한국의 대학생들은 반독재민주화 투쟁을 선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를 배경으로 1980년 광주민중항쟁 이후에는 체제비판적인 학문연구자들이 다수 생겨났다. 지금도 대학에 이런 비판적인 학문연구자들이 존재한다면, 이들의 대부분은 광주민중항쟁 이후에 생겨난 학문연구자들이다.
그러나 한국의 대학교원 자리를 차지한 것은 미국유학파 기능적 전문지식인들이 대부분이며, 이러한 현상은 갈수록 두드러졌다. 이로 인해 대학 연구와 교육의 ‘미국화’가 대세를 이룬 지 이미 오래다. 즉, 한국에서는 미국화가 대학의 연구와 교육의 ‘지구화’ 그 자체가 된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1987년 6월 민주화를 위한 범국민적 투쟁 이후 한국의 대학들은 많은 변화를 겪는다. 대학에 대한 국가권력의 직접적인 통제와 감시가 사라지고, 대학운영에 대한 교원과 학생들의 발언권이 커지는 등 대부분의 대학에서 대학민주화가 진척됐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 이후 배출된 비판적인 학술연구자들 역시 대거 대학교원으로 임용됐는데, 이들은 이후 학생들과 더불어 대학민주화에 앞장서는 주역이 된다. 그러나 이후에는 이런 비판적인 학술연구자의 배출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으며, 이들이 대학교원이 되는 길도 극도로 좁아진다.
한국대학 ‘신자유주의화’의 6가지 양상
게다가, 대학민주화마저 거의 모든 대학에서 후퇴한다. 정부가 대학민주화의 진전을 막고, 대학을 ‘자본의 인력공장’ 역할을 하는 ‘신자유주의대학’으로 만들기 위한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결과였다. 김대중정부에서 시작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정부는 대학에 대한 직접적인 감시-통제 대신, 대학 재정지원을 미끼로 관료적인 신자유주의적 대학통제에 나서고 있다. 이런 정책이 불러일으킨 한국대학의 신자유주의 대학으로의 변모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6가지 양상을 띠고 전개 중이다.
첫째, 신자유주의화를 위한 대학민주화 저지.
이와 관련해, 김대중정부는 사립학교법 개정을 통해 사학재단에 대학운영의 전권을 부여함으로써 대학민주화에 역행하는, 교원과 학생들의 발언권 증대를 막는 정책을 시행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는 대학의 신자유주의적 개편을 폭넓게 추진하는 한편, 임기 말년에 지나치게 비대해진 사학재단의 권한을 일정 부분 축소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이 시도는 보수세력 및 사학재단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쳐 실패했다.
둘째, 국립대까지 확산된 응용학문 중심대학화.
사립대학의 경우 생존을 위해서라도 기초학문 분야를 줄이고, 응용학문 분야나 취업에 직접 도움을 주는 학문분야를 늘릴 수밖에 없다. 이런 사정에 비춰 대학에서 기초학문의 연구와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대학의 20%에 불과한 국립대학이라도 확고하게 기초학문 중심대학이 돼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국립대학조차 응용학문 중심대학으로 재편해 왔다. 따라서 지방 국립대학 중 물리학을 제대로 가르치는 대학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국립대학에서도 기초학문은 홀대받는 현실이다. 국립대학의 사정이 그러할진대, 사립대학의 경우는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나아가 오늘날 정부는 ‘산학협력선도대학사업’과, (인문대 정원을 줄이고 이공대 정원을 늘이는 대학에 대규모 재정지원을 하는) 이른바 ‘프라임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런 시도는 대학의 신자유주의 대학으로 만들기 위한 정책을 완성하기 위함이다.
셋째, 미국식 기준에 따른 연구업적 심사제 도입.
대학당국이 정부정책에 호응해 미국식 기준을 적용하는 연구업적 심사제를 도입함에 따라 대학교원들이 승진과 봉급 등에서 불이익 받지 않기 위해 연구프로젝트의 수행에만 매달리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며, 한 때 ‘신의 직장’이라 불렸던 정규직 교수도 매우 불안정한 직업이 됐다.
넷째, 등록금의 과도한 인상과 고용의 비정규화.
정부는 대학의 재정적 문제 해결을 위해 재정적 지원을 하지 않고, 대학 자체의 재정 확보 노력에 맡기고 있다. 그 결과, 오늘날 대부분의 대학이 이른바 ‘CEO형 총장’을 임용하는 가운데 정부와 기업의 지원 유치에 나서고 있다. 또한 교수와 교직원 채용에 있어서도 정규직 비중을 줄이고 비정규직을 늘려가고 있다.
또한, 대학의 늘어나는 재정적 수요는 대학들로 하여금 앞다퉈 등록금 인상에 나서게 했다. 그리고 이로 인한 과도한 대학 등록금 인상은 학생들로 하여금 ‘반값 등록금’ 쟁취라는, 대학등록금 인하를 위한 대대적인 투쟁에 나서도록 만들었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반값 등록금 실시’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동반하지 않은 반값등록금 정책은 많은 대학에 재정위기를 불러일으켰으며, 이는 다시 더 많은 교수들과 직원들을 비정규직으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다섯째, 이미 위험수위를 넘은 비정규직교수 문제.
김영삼정부가 첫 단추를 채우고 김대중정부가 본격적으로 시행한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으로 말미암아 이미 위험수위를 넘은 비정규직교수 문제는 오늘날 한국 대학이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구조적 문제가 됐다. 시간강사는 원래 정규교원으로 가는 전 단계였으나, 실상 시간강사가 정규교원이 될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하다. 2013년 기준, 4년제 대학의 전임교원비율 41.1%, 비전임교원비율 58.9%이며, 전문대학을 포함하면 전체 교원의 61.6%가 비정규직으로 집계된다. 대학교원의 2/3가 비정규직인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교육부가 대학평가의 주요지표로 도입한 전임교원 강의담당비율 지표의 영향으로, 최근 5년 간 전국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교수는 1만 명이 넘는다. 시행이 두 번 유예됐던 시간강사법이 유예기간을 지나 끝내 실행될 경우, 비정규직 교수들의 2/3가 그나마 하던 강의마저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압도적 다수의 고급 연구인력이 이젠 시간강사직조차 얻지 못하고, 실업상태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태 전개는 수많은 연구자들의 생존권 박탈은 물론, 나아가 학문연구역량 자체의 급속한 축소와 차세대 학문연구자의 고갈로 연결된다. 실업자가 된 연구자들은 학문연구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학문연구자의 길로 가려고 하겠는가?
여섯째, 대학격차 심화가 부른 입시경쟁 격화.
대학들 간의 전방위적인 무한경쟁은 특성화된 대학들의 출현을 촉진한다. 그와 동시에,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진척된 대학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다. 대학격차의 심화는 대학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이는 입시경쟁을 한층 격화시켜, 초중등교육의 정상화를 가로막은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
대학변혁 투쟁이 나아갈 방향
초중등교육이 학생들이 지닌 다양한 잠재력의 개발을 가로막는 입시위주 교육으로 전락하고, 대학에서 기초학문이 고사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한국의 교육이 학생들을 감성적, 창의적 능력을 지닌 인간으로, 사회의 진보적 변혁에 기여할 비판적 지성과 타인의 고통에 공감능력을 지닌 인간으로 키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오늘날에는 대학이 학생들을 자기이익만을 추구하는 냉혹한 이기주의적 괴물로 키우고 있는 현실이다. 또한 대학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체제에 맞춘 (갈수록 폐기 속도가 높아지는) ‘일회용 인력’의 양성소이자 공급처로 변질되고 있다.
내가 보기에, 한국대학의 이런 신자유주의대학화는 그 규모와 깊이에서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수준이다. 이는 그 동안 한국사회가 급속도로 휩쓸려온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편의 일환으로 추진돼 온 것이다. 그러므로 대학변혁은 신자유주의 경쟁사회를 탈신유주의적인 새로운 연대적 협동사회로 변모시키는 사회변혁의 일환으로 추진돼야만 한다.
그런데, 대체 누가 이런 사회변혁을 추진할 수 있을까? 먼저 확실히 해둘 점이 있다. 그것은 대한민국을 소위 ‘헬조선’으로 만든,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 구조개편의 가장 심각한 피해층은 20~30대 청년층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학변혁의 주체는 누구보다도 청년층, 학생이어야 한다. 그러나 학생투쟁은 대학변혁을 바라는 비정규직 교수와 직원들 및 소수의 정규교원들과 연대해야 하고, 한국사회의 변혁을 추구하는 대중투쟁의 일환이 돼야 한다.
그리고 대학변혁을 포함한 한국사회 전반의 진보적 변혁은 진보정당이 집권할 경우에 그나마 온전하게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 이 점에서 대학변혁을 위한 학생투쟁은 동시에 진보정당의 집권을 가능케 하는 투쟁이 돼야 할 것이다.
글·김세균
정의당 공동대표. 서울대 교수를 거쳐 <진보평론> 편집위원장, 사회진보연대 대표, 전국교수협의회 상임공동의장을 지냈으며, 주요 저서로 <한국 민주주의와 노동자 민중정치>(1997), <유럽의 제노포비아-세계화시대의 인종갈등>(공저·2006)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