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나무 도마처럼 기억의 칼금을 간직하자”
[서평]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 작가선언 6·9 엮음, 실천문학사, 1만6천원
용산 1인시위 작가들이 풀어낸 눈물과 분노
자본폭압 이겨내려는 문학적 감수성·상상력
소박한 실천, 상식의 외침
“경찰들이 서 있는데… 전철련 아주머니 한 분이 대야에 얼음을 잔뜩 들고 오시더니… 하나하나 경찰들 손에 쥐어주셨습니다. 더우니까 이거라도 들고 있으라고… 경찰들도 웃고 아주머니도 웃으셨는데, 짠하면서 슬펐습니다.”
서울 용산구 한강로 3가 63번지 일대 도시정비계획 4구역, 이곳에는 폐허 속에 오도카니 검은 동공을 내보이는 남일당 건물이 그때의 처참한 상황을 그대로 증언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것은 2009년 1월 20일 새벽 6시였다. 경찰특공대가 남일당 건물에 진입하는 무모한 작전을 감행했다. 모든 도심 재개발사업이 그렇듯이 용산 4지구 재개발사업도 세입자·재개발조합·시행사·용역업체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이었다. 절대 약자의 처지에 있는 세입자들은 생존권 사수를 위해 남일당 건물에 망루를 조립했고, 자신의 주장을 알리기 위해 농성에 들어갔다. 농성이 시작된 지 겨우 26시간 만에 테러 진압을 전담하는 경찰특공대가 작전을 시작했고, 결국 세입자 5명과 경찰특공대원 1명이 사망하는 참극이 발생했다. 그런데도 용산 참사에 대한 정부의 사과나 강경 진압 지휘자의 처벌, 심지어는 정확한 진상 규명조차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용산 참사는 전국철거민연합(전철련) 아주머니가 경찰에게 더위를 식히라고 얼음을 나눠주던 7월에 접어들도록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는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따뜻한 장갑을 나눠야 하는 계절이 돌아왔다. 더운 여름에 얼음을 쥐었던 의무경찰들 몇몇은 이미 전역을 했을 것이다. 그 와중에도 남일당 건물 주변은 여전히 경찰들에 둘러싸인 고립된 성이고, 망각에 저항하는 섬이 되었다. 다행히 진실을 규명하려는 사람들이 서로 보듬으며 ‘나눔 공동체’를 형성하고, 시민과 성직자들이 ‘위로의 도닥임’을 지속하고 있다. 매일 저녁 7시면 검은 상복을 입고 농성 중인 유가족의 고통을 나누려고 사람들이 모여 ‘촛불 미사와 추모대회’를 열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는 ‘용산 참사 이후의 한국 사회’를 품은 책이다. 사건 이후의 일상을 담는 일은 힘겨운 작업이다. 그것을 대면하는 일 또한 버거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어두운 곳에 시대의 진실이 숨어 있다. 우리네 일상은 ‘어둠을 직시하는 버거움’을 견디지 않으면, 고루한 것이 되고 만다. 예술가는 예민한 감각으로 어두운 곳에 시선을 던지는 자다. 그래서 상식이 되어버린 부조리를 후빈다. 때로는 쓸데없는 일이라는 핀잔을 받지만, 그 무용하다는 핀잔에는 ‘진실을 회피하려는 두려움’이 섞여 있다.
용산 참사는 한국 사회의 부조리한 권력이 ‘외면하고 은폐하려는 진실’이 응축된 응혈이다. 이 책은 용산 참사 이후에 한국 민주주의의 심각한 퇴행을 직시하게 된 작가들의 부끄러운 고백을 담고 있다. 이 책을 엮은 주체는 ‘작가선언 6·9’이다. ‘작가선언 6·9’는 192명의 문인이 자발적으로 연대해 만든 ‘민주주의적 문인 공동체’이다. 중심이 없는 네트워크적 연결을 추구하는 이 모임은 ‘근본적으로, 구체적으로, 지속적으로’라는 테제를 내걸고 한국 사회의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상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공감대를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 ‘용산 참사’에 릴레이 1인시위가 시작되었고, 각 매체에 용산 참사에 관한 릴레이 기고를 해왔으며, 드디어 이 책이 엮이게 되었다.
한 저자가 쓴 책이 아닌 79명이 참가한 일종의 엔솔로지인 만큼 각 필자의 시각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용산 참사’라는 단일한 주제로 어우러진 목소리들은 강한 울림의 코러스를 만들어내고 있다. 때로는 분노를 분노로 기록하고, 때로는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며 용산 참사를 되새김질한다. 사회적 사건과 예술이 만나 창조될 수 있는 문학적 언어가 이 책에 결집돼 있다.
제1부 ‘말하라, 어서 말하라’에는 백무산·신용목·송경동·이영광 등 16명의 시인이 쓴 시와 더불어 그 시에 얽힌 창작노트인 ‘시인의 말’이 실려 있다. 어떤 글은 시보다는 시인의 산문이 강한 감동을 자아내기도 하는데, 이는 비판이 이성적 언어인 산문에 기댈 때 힘을 발휘하기 때문인 듯하다. 제2부 ‘거리에 두고 온 시’에는 정희성·이시영·도종환·홍일선·안도현 등 오랜 시력(詩歷)을 자랑하는 시인들과 박후기·손택수·김사이·안현미 등 젊은 시인들의 시가 실려 있다. 1부와 2부만으로도 한 권의 ‘용산 테마시집’으로서 손색이 없다. 여기에 덧붙여 3부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와 4부 ‘우리는 달려간다 용산으로’에는 소설가·평론가·시인들의 산문이 담겨 있다. 5부 ‘용산에 가면 시대와 예술이 보인다’는 화가와 사진작가들의 작품이 수록돼 현장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접할 수 있다. 부록으로 실린 시사만화가들의 ‘용산 만화전’은 풍자정신이 돋보여, ‘비수를 머금은 웃음’의 묘미를 한껏 펼쳐 보인다.
분노의 언어가 연대의 외침으로
시가 격정을 토로하는 언어로 현장의 이미지를 포착했다면, 산문은 좀더 차분한 저음으로 실상을 이야기한다. 이 두 가지 톤이 어우러져 용산을 둘러싼 문인들의 인식 지형이 펼쳐져 있어 흥미롭다. 모든 글이 힘을 깃들여 쓴 것이지만, 그중 몇몇은 곱씹어 읽어볼 만한 가치가 돋보인다. 시에서는 백무산의 ‘‘그래도 그 덕택에’ 이데올로기’는 강한 언어로 쓰인 시가 어떤 면모를 보이는가를 알게 하고, 송경동의 ‘이 냉동고를 열어라’와 이시영의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는 분노의 언어가 토해내는 절규를 현장의 언어로 감지하게 한다. 이상국의 ‘틈’이나 신용목의 ‘용산의 당신에게’는 하나의 계기적 사건이 사람의 도리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는 여정을 보여주어 흥미롭다. 산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한지혜의 ‘누가 망루에 불을 질렀는가’와 이선우 ‘용산, 추방당한 자들의 나라’는 한때 ‘철거민의 딸’이었던 필자들이 용산 참사를 바라보는 복잡한 감정이 얽혀 있어 아린 감동을 자아낸다. 그런가 하면, 차미령의 ‘기다리는 능력, 잊지 않는 힘’과 진은영의 ‘용산 멜랑콜리아’는 각각 아룬다티 로이의 <생존의 비용>과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용산 참사와 빗대는 명민함을 발휘해, 숱한 사건의 이면에 존재하는 진실을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을 예시적으로 보여주었다.
망각을 이기는 희망에 대하여
이 책에 참여한 작가들은 부끄러움을 알 때, 비로소 모두가 인간다워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한국 사회에 팽배한 부동산에 대한 욕망, 소시민적 안존에 대한 희구가 불러일으킨 파국이 ‘용산 참사’이기에, 그 기억을 오롯이 간직하고 성찰할 수 있어야 비로소 미래의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 권여선이 “망각을 믿는 세력들에 맞설 수 있는 힘은, 우리가 오래된 나무 도마처럼 우리 가슴속에 수많은 기억의 칼금을 간직하는 데 있습니다”라고 했을 때, 그 칼금은 더 인간다워지기 위해 스스로의 가슴에 새기는 칼금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 수록된 이상국의 ‘틈’이라는 시는 깊이 음미할 만하다.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나무는/ 한겨울에 뿌리를 얼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바위에 틈을 낸다고 한다/ 바위도 물을 받아주거나/ 살을 파고드는 아픔을 견디며/ 몸을 내주었던 것이다/ 치열한 삶이다/ 아름다운 생이다// 나는 지난 겨울 한 무리의 철거민들이/ 용산에 언 뿌리를 내리려다가/ 불에 타 죽는 걸 보았다/ 바위도 나무에게 틈을 내주는데/ 사람은 사람에게 틈을 내주지 않는다”
시련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은 스스로 희망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만큼 강하다. 그 희망은 시련을 기억하고, 성찰하고 그리고 주변을 볼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라야 한다. 그렇게 나누어 가지는 희망일 때, 더불어 살고자 하는 주변의 도움과 어우러져 희망은 결실로 이어질 수 있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틈을 내줄 때, 삶의 숨통이 트이고, 더불어 인간다워진다.
용산 참사에 비춰보자면, 우리는 정말 “모두 난간 위에 살고 있으면서도 발 아래 세상을 보지 못”(박후기)하고 있는지 모른다. 발 아래 낮은 곳을 포함해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는 삶은 그저 갇힌 삶이다. “감옥 밖이 차라리 감옥인 세상”(정희성)에서 탈출하기 위해, 세상을 감옥이게 하는 ‘무관심의 장벽’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옆에 틈을 내줌으로써, 더불어 사는 삶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하리라.
돌이켜보면,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는 작가들이 자신을 성찰함으로써 독자에게 할 이야기를 발견하는 과정에 관한 기록으로도 읽을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작가들의 글을 통해 연대의 의미를 되새기게 될 것이다. 송경동 시인이 이야기하듯이 “연대하는 것이 무작정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인간다움을 확인해나가는 벅찬 과정이라는 인식”이라고 했을 때, 작가들은 ‘용산 참사’를 통해 ‘인간다움과 작가다움’을 동시에 사유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독자 또한 ‘연대의 가치’를 성찰하게 되리라 믿는다.
글•오창은 longcau@hanmail.net
문학평론가, 지행네트워크 연구위원,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비평 활동 시작. 평론집으로 <비평의 모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