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교통사고, 결코 우연이 아니다

2016-09-30     마티유 그로스테트

교통사고는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매년 바캉스 시즌마다, 교통사고 위험이 증가하는 동안에도 ‘운전 중 안전’이라는 주제는 현실로 돌아온다. 이 때 정부는 좋은 의미의 지시를 증가시킨다: 너무 빠르게 운전하지 말 것, 주기적으로 휴식을 취할 것, 안전벨트를 멜 것 등등. 운전자들의 개인적 행동방식에 초점을 맞추는 이 권장 사항들은 도로에서 일어나는 사망률의 심층적인 이유들을 간과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교통안전정책이 시행된 이후, 1972년 처음으로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연 1만 8천 명 이상을 기록했고, 연이어 2년 간 사망자 수의 감소는 일어나지 않았다. 2014년 교통사고 사망률이 3.5% 증가한 이후, 2015년에 사망자 수는 3,464명에 달하면서 사망률이 2.4% 늘었다. 또한 2016년 첫 월별 평가에 의하면 상황은 더욱 악화돼, 사망자 수가 전년 대비 2월 8.5%, 3월 3%, 5월 1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통사고, 순전히 개인의 책임이다?

행정당국은 교통사고 사망률 증가에 대해, 개인의 운전습관에 책임을 돌렸다. 마치 만인이 교통사고 앞에서 평등하다는 듯 말이다. 우리는 도로교통안전청(DSCR)이 소속된 내무부 인터넷 사이트에서 “우리 모두 시민으로서의 책임의식을 가지고 도로 위 희생자 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는 문구를 볼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운전 중 충동을 억제하고 음주운전을 금하며,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속도제한을 지키는 등의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상황이 사회 불평등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 교통사고 사망자 수의 증가가 서민층의 불안정한 상황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무도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교통사고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규칙적 통계와 집합적 추산을 따르는 ‘사고’는 개인의 자발적 행동만이 원인이 될 수 없는 일종의 사회 현상이다.
15세 이상 프랑스 인구 중 노동자는 13.8%에 불과하다. 그런데  2007년(1) 사망한 운전자 3,239명 중 22.1%, 부상을 당해 입원한 사람의 19%가 노동자였다.(2) 반면, 인구의 8.4%를 차지하는 고위간부와 자유직, 기업주는 교통사고 사상자 중 2.9%에 불과했다. 적어도 40년 전부터 행정전문가들은 ‘청년층’의 높은 교통사고 사망률의 원인이 ‘위험한 운전습관’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는 사회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며, 연령에서 비롯된다고 보기 어렵다. 2007년 프랑스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30세 미만 운전자 1,241명 중 28.5%가 노동자였다. 또한 사망한 노동자 중 약 절반(49.4%)이 30세 미만이었는데, 이 연령층은 전체 노동자의 28.5%에 불과했다. 사망자가 대개 청년인 이유는, 노동자 그룹이 상대적으로 젊기 때문이다.

위험한 운전이 아니라 위험한 상황이 문제
 
그렇다면 고위간부와 자유직, 기업주 등 소위 ‘특권층’이 더 안전운전을 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다. 교통사고 사망자 중 2/3이 노동자들로, 특권층보다 훨씬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즉, 노동자들이 더욱 위험하게 운전한다기 보다, 더욱 위험에 처해있다는 쪽이 사실에 가깝다. 한 주요 지방도시에서 교통사망사고로 인해 지방법원에 출두한 경우를 보면, 고위간부와 고학력 전문직 사람들이 노동자들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은 부유한 사람들이 소유한 자동차가 에어백과 고성능 제동장치, 안전이 강화된 실내 공간 등 고성능 안전설비를 갖추고 있다는 것으로 일부 설명이 가능하다.(3) 즉, 이들은 자신이 보유한 자동차의 안전성능 덕택에 교통사망사고 이후 잠재적 재판대상, 생존자가 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이들의 태도도 간과할 수 없다. 이 지방법원의 몇몇 판사들은 피의자의 부(富)와 자동차의 성능에서 비롯된 권력의식이 소형차 운전자와 자전거를 탄 사람, 보행자를 무시하는 태도로 이어진다는 점, 즉 권력의식과 운전 태도 간의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밝혀냈다. 판사들 중 한명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가 교통사망사고를 맡으면, 고성능의 자동차를 소유한 부유한 사람들을 주로 상대하게 된다. 그들은 대체로 사법제도에 의한 처벌을 받은 적이 없는 이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스쿠터나 보행자와 충돌해서 교통사고가 나면, 주변 사람들은 이들을 기꺼이 돕는다. 예를 들면, 당시 파리에서 급하게 비행기를 타야했던 어떤 엔지니어는 한 보행자와 충돌하면서 멈춰서야 했다. 그는 구조요청을 한 후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뒤처리를 맡기고 비행기를 타러 현장을 떠났다.”
법원에 더 많이 출석함에도 불구하고, 특권을 가진 피의자들은 어느 정도 관용의 혜택을 받는다. 반대로, 인적피해비용과 가중처벌요소가 비슷한 경우, 노동자들과 피고용인들은 10개월 금고형 등 중형 이상의 처벌을 받는다. 이러한 경우는 59.3%나 되며, 고학력 전문직이나 중개업자들이 이런 처벌을 받는 경우(31%)의 두 배에 달한다.
서민층 피의자의 금고형 기간이 더 긴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의 미혼 비중이 높은 것이다. 판사는 가정이 있는 사람들에게 좀 더  관용을 베푼다. 게다가 수감자로 소환된 경우도 노동자와 피고용자가 부유한 운전자의 2.5배나 됐다. 이는 소송결과에도 불리하게 작용한다. 우리는 경찰과 헌병이 시행하는 음주운전단속에서도 비슷한 불균형 현상이 존재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노동자는 단독 음주운전으로 소환된 피의자 중 1/4 이상을 차지하는데, 피고용자도 같은 수준이다. 반면, 조사지역에서 이 두 집단은 15세 이상 인구의 각각 16.3%와 10.7%에 불과하다.

가난할수록 죽거나 다치기 쉽다

자동차 안전성능의 차이를 넘어, 생활환경의 차이도 교통사고와 관련된 사회적 격차의 원인이다. 교통사고 사망률은 무엇보다 도시의 확산과 주택의 계층화로 인한, 예상치 못한 결과로 보인다. 교통사망사고 발생 장소의 약 80%가 지방이었다. 그런데, 도심이 중산계급화되면서 서민층은 직장이 밀집된 도심에서 더 멀리 밀려났다. 2007년 교통사고로 사망한 노동자의 28%와 피고용자의 31%가 출근길에 사망했는데, 전체 사망자 중 출근길 사망자 수는 16%에 불과했다. 서민층은 평소 더 위험한 보조도로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고속도로 등 통행료가 들고 비교적 안전한 도로시설을 주로 이용하는 부유층의 2012년 출근길 사망률은 4%에 불과했다. 
따라서 교통사고의 계층별 격차는 생활 속에서 위험에 불평등하게 노출된 결과다. 즉, 가난할수록 교통사고에 취약하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교통사고 사망률에서 청년층과 서민층의 비중이 높은 특징은 노동계층 출신의 지방 청년들이 겪는 위기를 여실히 보여준다. 
부르고뉴의 한 마을을 연구한 사회학자 니콜라 레나히가 이에 대해 잘 묘사하고 있다. 그는 학교와 직장, 문화와 결혼 등의 사회적 영역에 편입하려고 애쓰는 비활동 청년층이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운전을 한다고 밝혔다.(4) 탈공업화와 지역편중, 대량실업으로 인해 노동계는 더 이상 청년들에게 사회로의 편입을 위한 출입문도, 자기 파괴적 기제로부터의 보호막이 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욱 긴 ‘독신형’ 선고를 받은, 소외된 지방 청년들은 좌절감에 사로잡히고, 이에 대한 후퇴전략으로 자동차나 오토바이 동호회 활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는 자아존중감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남성성의 가치를 확인하는 최후수단 중 하나가 된다.(5) 이런 사회적 의미가 튜닝과 같은 취미로 긍정적인 성격을 띤다면, 자동차에 대한 서민층의 태도가 집단적이고 건설적이며 창조적이기까지 한 방법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6)
그러나 반대로 이런 사회적 의미가 속력이나 과도한 음주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도록 부추길 수도 있다. 따라서 교통사고는 우연이 아니다. 교통사망사고 조서를 100개 이상 면밀히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운전 중 사망한 노동자와 피고용자의 70%가 독신이나 이혼, 사별 등 감정적으로 고립된 상황에 처해 있었다. 또는 이혼소송 절차, 가까운 사람의 죽음, 장기실업, 직업이나 학교생활 또는 정서 등이 불안정해 개인적 위기를 겪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빈곤과 정서적 불안정으로 미래가 불확실해진 서민층은 미래와 삶에 대해 집착하게 된다. 따라서 빈곤과 불안정한 상황이 서민층의 교통사망사고의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 
많은 담당 공무원이 다소 직관적일지라도 교통사고 사망자 중 상당수가 불안정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행정당국은 여전히 이들의 위험상황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무관심에 좌절하여 몇몇은 결국 자리를 떠나기도 했다. 떠난 이들 중에서, 도청의 데이터 활용부서 직원이었던 로멘 T.의 경우가 이러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그는 상황에 대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나는 사회적 상황이 교통사고연구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교통사고 피해를 많이 입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가장 혜택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당시 우리는 이에 대해 함구해야 했다. 나는 교통사고연구와 사회관계에 대한 종합문서를 도청에 요구했다. 그러나 도지사가 이를 거절했다. 그는 이 사실을 덮길 바랐다”고 우리에게 설명했다. 아마도 이 ‘불편한 지식’은 무시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공공당국에 의해 부인될 것이다.(7)

네 목숨은 네가 알아서 지켜라?

이렇게 우연과 거리가 먼 사회적 문제를 침묵함으로써 공공문제 해결에 대한 현 상황이 여실히 드러난다. 도로안전 책임자였던 자크 S.의 경우가 이런 상황을 잘 보여준다. 그는 우리의 연구 결과를 보도하자고 제안한 뒤 적대적인 비난을 받았고, 결국 사직하게 됐다. 그는 우리에게 그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는 매년 교통안전과 관련된 문화적 요인을 밝힐 수 있는 전문가를 부탁했다. 당신의 책을 읽은 후, 나는 당신을 초청하자고 제안했다. 그 순간부터, 내게 격렬한 비난이 쏟아졌다. 사람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치적으로 부적절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초청할 수는 없다며, 내가 도청의 교통안전 정책의 존재를 위태롭게 한다고, 사회계층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오래된 공산주의 독재체제에서나 어울릴법한 뒤떨어진 견해라고 하면서 나를 설득하려 했다.”
교통사고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자동차 생산자, 주류 제조업자, 보험사, 국가 등 교통사고발생과 관련된 이들의 책임을 배제하고, 이들에게 교통안전문제를 쉽게 다스릴 수 있게 한다. 교통사고의 근본적 원인을 책임지지 않고, 운전자의 책임으로 돌릴 경우, 이들을 손쉽게 통제와 이해타산의 대상으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단 시간에 미디어로 전파하거나 공소를 평가하기에 적합하다. 결국 이 견해는 자유주의에 의해 휩쓸린 개인주의와 일치한다. “네 목숨은 네가 알아서 지켜라.” 
‘노동자들의 이중고’(8)에 대해 밝힘과 동시에, 교통 불평등에 대해 유연하게 인식해야만 공소를 위한 전략적 효과를 얻을 수 있고, 사고를 줄일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방출신의 젊은 서민층은 국가적 차원의 TV방송 교통사고예방캠페인과 동떨어져 있다. 예방캠페인은 주로 도시민과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사는 가구, 스쿠터 운전자, 중산층 보행자, 즉 교통사망사고에 매우 적게 노출된 계층을 주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글·마티유 그로스테트 Matthieu Grossetête 
파리 2대학, 미디어에 대한 학제간 연구 및 분석 센터의 박사학위취득 연구자. <도로교통사고와 사회적 불평등>, <사망자와 미디어, 국가>, Croquant 출판사, Bellecombe-en-Bauges, 2012.

번역·김세미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행정당국이 우리에게 국가 자료를 어렵지 않게 제공했던 유일한 해.
(2) 이 기사에서 언급된 수치의 면밀한 조사를 위해, 마티유 그로스테트, <도로교통사고와 사회적 불평등>, <사망자와 미디어, 국가> 참조, Croquant, Bellecombe-en-Bauges, 2012.
(3) 요안 데몰리, <탄소와 구겨진 철판, 자동차 모델의 사회적 공간>, 프랑스 사회학 잡지, 파리, 2015. 
(4) 니콜라 르나히, <코너에 몰린 청년, 지방 청년들에 대한 조사>, La Decouverte, 파리, 2005. 니콜라 르나히, <왜 젊은 노동자들이 운전 중 사망할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5년 9월호. 
(5) 스테판 보드와 미셸 피알루, <노동자 실태에 대한 회고>, Fayard, 파리, 1999.
(6) 자동차의 외관과 성능 등 자신의 기호에 맞게 바꾸는 활동. 에릭 다라스, <노동자 기억의 장소: 튜닝>, 예술의 사회학, 파리, 2012.
(7) 스티브 레이너, <Uncomfortable Knowledge : the social construction of ignorance in science and environmental policy discourses>, Economy and Society, 런던, 2012. 
(8) 엠마뉴엘 캉브와 및 캐롤라인 라보르드, 장 마리 로빈, <노동자들의 ‘이중고’, 더 짧은 삶 동안 더 긴 무능함>, Population & Sociétés, 국가 인구통계학 연구소, 파리,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