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민심을 사로잡은 해적당
2016-09-30 필립 데스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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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캬비크 정원에서 체스를 즐기는 두 사람>, 2015 - 게릭스 |
2008년, 금융위기와 은행 시스템 붕괴의 직격탄을 맞았던 아이슬란드는 오늘날 눈부신 발전상을 보이고 있다. 북유럽의 작은 나라 아이슬란드는 자유주의적인 교리와 반대되는 길을 걸으며 빠른 속도로 경제회복에 성공했다. 하지만, 사회개혁 측면에서는 여전히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 10월 29일 총선을 앞두고서, 현재 지지율 1위에 오른 ‘해적당’이 과연 총선에서 어떤 파급력을 보일지 관심거리다.
경찰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시위 참가자들 간에는 어떠한 욕설도 오가지 않았다. 9월 초, 북부 포럼(The Northern Forum)은 아이슬란드의 모든 정당들이 참여한 가운데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개최됐다. 10월 29일 총선을 앞두고 있는 만큼, 각 당의 대표들은 레이캬비크대학 앞에 세워진 소박한 천막 안에서 연설을 했다. 위도 64도의 레이캬비크에는 부드러운 햇살이 비추고 있었고, 간간히 시원한 바람도 불어왔다. 토론에서는 가장 중요한 헌법 개정을 비롯해 이민, 주거시설 건설, 세금 조정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개인정보 보호와 지구 온난화도 비중 있게 다뤄졌다. 그리고 위기도…. 아니 무슨 위기?
금융위기, 불평등을
함께 극복한 아이슬란드
화산섬 아이슬란드에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부터 빙하 아래로 뜨거운 용암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2016년 4월, 시그뮌뒤르 다비드 귄뢰이그손 총리는 ‘파나마 페이퍼스’로 분노가 폭발한 국민들에 의해 단 48시간 만에 해임됐다. 올라푸르 라그나르 그림손 대통령 역시 배우자가 조세피난처에 재산을 은닉했다는 의혹이 일면서 6월 선거 출마를 포기했고, 결국 20년 간 머물렀던 대통령직을 내려놓았다. 9월 중순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해적당이 지지율 1위로 돌풍을 일으키며 10월 총선에서 제1당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을 높였다.
북대서양 망망대해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인구 32만 명의 아이슬란드가 끔찍한 악몽을 겪은 지 8년이 지났다. 2008년 10월 초,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큰 은행 3개가 잇따라 파산을 선언했다. 이들 은행의 자산은 당시 아이슬란드 GDP의 9배에 달했다. 또한 주식이 폭락하면서 국민들도 빚더미에 앉게 됐다. 다행히 은행 국유화, 국민들의 예금 보장, 자본의 엄격한 통제를 골자로 하는 정부의 광범위한 개입 덕분에 사회적 혼란과 주요 기업들의 파산을 막을 수 있었다. 2016년 현재, 아이슬란드는 흑자 예산을 기록했고, 부채는 소폭 감소했으며, 경제성장률은 3%를 넘어섰고, 실업률은 2.7%에 머물렀다.(1) 1인당 국민소득으로는 전 세계 상위권에 올랐고, 경제활동인구의 84.7%가 고용된 상태로 나타나, 선진국들 중 가장 높은 고용률을 보였다(EU 지역 64.5%, 그리스 50.8%).(2)
게이르 하르데 당시 총리는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해 2011년까지 지원을 받았다. IMF의 경제학자들조차 아이슬란드의 ‘성공 스토리’는 반시장 정책들, 그리고 주주들보다 개인 투자자들을 우선시하고 은행들의 손실에 대해 국민들에게 책임을 지우지 않겠다는 정부의 방침 덕분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아일랜드의 위기 극복 방식과는 완전히 달랐다.(3) 집권당이던 독립당(보수파, 사회민주당과 연정 구성)을 끌어내린 ‘주방용품 혁명’이후, 2009년 4월 선거로 의회의 과반수를 차지하게 된 좌파(사회민주당, 좌파녹색당)는 긴축정책을 실시했다. 특히 개인의 부채를 줄이고자 노력했는데, 금융위기의 여파가 가계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복지 예산을 투입해 자산 가치를 초과하는 가계 부채를 탕감시켜 줬다.(4) 또한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혜택을 강화했고(소득재분배와 사회보장제도에 할당된 예산은 2008년 GDP의 15%에서 2009년 19.5%로 증가했다), 부유층의 세금 부담을 늘렸다(소득 상위 10%에 적용되는 세율은 2008년 24%에서 2010년 31.8%로 증가했다). 아이슬란드는 단기간에 경제회복을 이뤄내고 실업률도 낮췄다. 뿐만 아니라, 금융위기의 극복 과정 속에서 사회 불평등까지 줄이는데 성공했다(그래프 참조, 지니계수로 본 소득분배).
“우리는 해당 은행들의 국유화를 추진하고 실직자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과정을 마련했습니다.” 당시 교육부 장관이었던 카트린 야콥스도티르가 설명했다. 현재 좌파녹색당 대표인 야콥스도티르는, 아이슬란드가 자국 통화를 사용하는 덕에 통화를 쉽게 평가절하할 수 있었다는 점과 EU 회원국이 아니었다는 점을 신속한 금융위기 극복의 비결로 꼽았다.
“유럽중앙은행의 경제 정책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쳐 있습니다. 그러나 실업률이 높은 상황에서는,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시행됐던 긴축정책은 국민들의 불만과 분노를 초래하고 국가를 더 위험한 방향으로 끌고 갈 위험이 있습니다. 좀 더 케인즈주의적인 접근방식으로 경제정책을 재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의에의 갈증이 돈에 대한 열망을 이기다
부자가 되기를 원했던 아이슬란드 국민들은 규제완화와 은행 민영화를 내세우는 정당을 오랫동안 지지했지만, 이제는 돈이 주는 불안과 공포에 눈뜨게 됐다. 척박한 땅에서 자라난 야망과 개척정신은, 거짓행위에 대한 반감과 정의에의 갈증에 자리를 내줬다. 금융위기가 한창일 때 법무부 장관에 임명됐던 라그나 아르나도티르는 회상한다. “국민들의 기대가 상당했던 지라. 금융위기로 전 재산을 잃은 사람들은 소송 과정에 대해 불만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금융범죄의 소송은 다른 범죄들에 비해 훨씬 더 어렵습니다.” 아르나도티르는 당시 능력을 인정받아 현재는 국영전력회사의 부대표로 일하고 있다. “국민들이 시스템을 더 이상 믿지 못하게 되면, 그 시스템 안에서 국민들의 신뢰를 되찾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성공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사법관과 경찰로 구성된 특별팀의 조사에 따라, 일부 은행가들은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하르데 전 총리도 유죄판결을 받았다.(5) 그러나 유럽인권재판소는 하르데 전 총리의 운명에 대해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으며, 문제가 됐던 은행가들의 대부분은 이미 현업으로 복귀한 상태다. 다음 총선에서 의회(알팅그, Alþingi)의 과반수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아진 해적당 대표 비르기타 욘스도티르는 말한다. “정치권과 금융 시스템에서 제대로 기능하고 있지 못한 부분을 지적한 의회 보고서가 발표됐지만, 우리는 그 지적된 부분들을 바로잡는데 있어서 국민들이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6)
예술가이자 위키리크스와 한 환경협회의 열혈회원이기도 한 욘스도티르는, 2009년 ‘시민당’을 만들면서 정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시민당은 의회에 진출하는데 성공했고, 2012년 욘스도티르는 해적당을 창당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예금 은행과 ‘카지노 은행’을 구분해서 생각하지 않습니다. 헌법개정은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정치권과 금융권의 분리, 투명성, 책임에 관한 내용이 포함된 개정 초안은 매우 훌륭했지만, 국민투표에서 가결됐음에도 불구하고 2013년부터 계속해서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7)
2010년 6월에는 아이슬란드를 표현의 자유 천국과 불법행위 고발자들을 위한 피난처로 만들어 줄 ‘언론 선진화 이니셔티브’가 의원들의 만장일치로 결의됐다. “프로젝트는 여전히 미완성 상태입니다. 구체적인 적용안은 아직 의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술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지만, 법안 마련은 그렇게 빠르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2013년 4월 우파가 재집권하면서 정계개혁 과정은 꼬이기 시작했다. 좌파는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과 주거시설 부족 같은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해 해답을 제시할 능력이 없었다. 또한 유럽과의 관계 개선과 해외 예금주들의 원금 및 이자 상환을 주장하는 입장을 견지했다. 2000년부터 사회민주연합은 아이슬란드 노동연합과 함께 더 이상 통화변동을 겪지 않아도 되도록 유로존 편입을 추진해오고 있다. 크리스티얀 기 부르제스 서기관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2009년 EU 가입 절차에 착수하면서, 우리는 어업과 농업 보호와 같은 어려운 문제들이 존재하기는 해도 결국에는 좋은 합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용이한 자본 제어를 위한 통화 솔루션이 필요합니다. 크로나를 평가절하할 수 있었던 것은 금융위기 동안 그리고 그 이후에 분명 장점으로 작용했지만, 중앙은행이 조금만 관심을 소홀히 해도 환율이 급등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크로나의 불안정성은 위기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아이스세이브 사건,
진보당에게 기회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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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부는 아이스세이브(Icesave) 사건이 있을 때부터 국민들의 신뢰를 잃기 시작했다”고 현실을 인정했다. 한편, “정치적으로는 해외 예금주들의 원금과 이자를 상환해주는 것이 맞다. 하지만 동시에 국익도 생각했어야 했다”고 해명했다. 아이스세이브 은행(란즈방키(Landsbanki) 은행의 지점)이 파산하자 영국과 네덜란드는 자국 예금주들이 예치한 돈을 아이슬란드 정부가 상환해 줄 것을 요구했다. EU의 압박에 정부는 아이슬란드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해당금액을 상환하는 타협안에 동의했다.
이때 그림손 대통령은 자본주의적 시스템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영국과 네덜란드로 향하게끔 했다. 2010년 3월과 2011년 4월 두 차례, 아이슬란드 국민들은 의회가 승인한 사안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해 부결시켰다.(8) EU 집행위는 어떻게든 아이슬란드가 이 돈을 상환하게 할 생각에 본건을 유럽자유무역연합(EFTA)의 국제재판소에 제소했으나, 2013년 1월 28일 기각됐다.(9) 국제재판소는 해외 예금주들의 예금을 보장하지 않는 것이 유럽자유무역지역의 의무를 어기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 후, 아이슬란드 정부는 란즈방키의 자산매각 과정에서 발생한 수익으로 영국과 네덜란드 예금주들의 돈을 일부 상환해줬다. 가계 부채의 탕감을 약속하고 국민투표 결과를 지지하면서, 진보당(중도우파, 농민들)과 독립당은 순수성을 내세워 민심잡기에 나섰다. 독립당 대표 빌흐얄뮈르 비야르나손도 최근 자신들에게 행운이 찾아왔음을 인정한다.
“우리는 관광과 어업, 이 두 가지 분야에서 기회를 잡았습니다. 2010년 에이야피오를의 화산 폭발로 며칠 동안 항공운항이 중단되면서, 아이슬란드는 모험 가득한 여행지로 주목받게 됐고 관광객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박스기사 참조). 또한 바다의 수온이 올라가 엄청난 고등어떼가 북상하면서 아이슬란드 어민들의 조업량이 크게 늘었습니다.” ‘파나마 페이퍼스’ 사건으로 한동안 들끓었던 민심과 현 집권당에 대한 지지율 추락에도 불구하고, 그는 투표결과에 대해 낙관적이다. “시위 참가자들과 유권자들은 다르니까요.”
우리는 보수파 유권자들을, 지난 9월 3일 정당의 본부가 위치해 있는 현대적이고 휘황찬란한 건물에서 직접 만날 수 있었다. 당시 아이슬란드 정당들의 대부분은 1차 선거에 집중하고 있을 때라 63석의 의석수를 채울 후보자들을 선정하고 있었다. 밖에는 고급 세단과 SUV가 줄지어 서있었고, 여자들은 커다란 보석으로 치정하고 하이힐을 신고, 남자들은 조끼를 갖춰 입고 화려한 손목시계를 차고 있었다. 마치 캐리커처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의전실에 걸린 대형 초상화들은 이 정당이 아이슬란드의 독립시기인 1944년과 2009년에 집권당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파는, 그리스 사태와 유로화에 대해 환멸을 느낀 저소득층 유권자들이 부유층 감세를 주장하는 이들보다 EU 가입을 주장하는 이들(특히 사회민주당)에 대해 더 등을 돌렸음을 파악했다. 원래부터 EU에 반대하던 우파정당 대표들은 유권자들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미명하에 2015년 3월 EU 집행위에 ‘아이슬란드는 EU 가입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서신을 보냈다.
“권력을 재분배할 준비는 돼있다”
그러나 이는 또 다른 파장을 몰고 왔다. 아무리 국민 대부분이 EU 가입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해도, 여전히 국민들은 정부가 인정하는 국민투표를 통해 EU 가입 여부를 결정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런 유권자들의 배신은 보수파 내부의 분열을 가져왔고, 중도우파의 유럽친화적인 정당 ‘Viðreisn(개혁당)’이 창당돼 다음 선거의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본 사건은 직접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해적당의 지지율을 40%까지 끌어올렸다. 현재 해적당의 지지율은 이보다는 떨어진 20~30%이다.
해적당 본부의 분위기는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허허벌판 한가운데에 보라색 건물이 마치 바람에 부유하는 듯 자리잡고 있었고, 복층으로 된 좁은 사무실은 바다(그리고 고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작은 해적 깃발, 해적그림이 그려진 맥주잔, 해적선이 있는 어린이 공간, 진열장을 가득 채운 보드게임이 눈에 띄었다. 해적당 당원들의 평균 연령은 약 30세다. 이들은 과연 집권당이 될 준비가 돼 있을까? 이 질문에 공교육 부문의 IT 전문가 뵨 레비 구나르손이 “권력을 재분배할 준비는 돼있다”고 대답했다. 여기에 젊은 사회학 박사 빅토르 오리 발가르손은 “우리는 정치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국민들에게 심어주는, 국제적인 책임을 갖고 있다”고 덧붙인다.
이들은 좌파일까 우파일까? 이것은 잘못된 질문이다!
“우리는 인종차별에 반대하고, 국제주의에 찬성하며, 북유럽형 복지국가를 표방하고, 모든 국민들이 소득과 거주지에 상관없이 교육과 보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반대로 독점과 보호주의는 지양합니다. 또한 부정부패와 속임수를 근절하고자 하지만, 국가의 역할이 모든 사람들을 평등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합법적인 방식으로 부자가 됐다면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이러한 발언은 세간에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켰지만, 기업 경영에 있어서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자유지상주의’ 정당으로, 직접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측면에서 ‘의회의 공산주의’ 정당으로 평가되곤 하는 해적당 내부에서는 적어도 용인되는 분위기다. 해적당은 보편적 기본소득의 도입을 주요 프로젝트 중 하나로 꼽고 있는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은 욘스도티르 대표에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밀턴 프리드먼 버전의 프로젝트는 아닙니다. 좌파 버전의 프로젝트이지요.(10) 저는 우리가 다른 비전들에 대해 열린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해외출신 전문가들을 포함해 우리 주변에 다양한 전문가들이 존재하길 바랍니다. 예술가와 활동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기존의 기준을 변화시킴으로써 정치적 성향이 없는 일반인들이 이 사회의 주인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욘스도티르 대표는 인터넷의 중립성과 개인정보의 보호를 당의 중점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헌법에는 사생활 보호가 기본권으로 명시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왜 인터넷에는 적용이 안 되는 걸까요? 또한 일반적인 인터넷 정보에 대한 접근은 오늘날 훨씬 더 쉬워졌는데, 부정부패가 숨어있는 어두운 이면을 밝힐 수 있는 권리를 얻기는 왜 그렇게 힘든 걸까요?”
우파는 해적당과 함께 내각을 꾸리고 싶지는 않다고 이미 밝힌 바 있다. 반면 중도 성향의 신흥 정당인 개혁당, 사회민주당, 그리고 좌파녹색당과는 연정 구성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좌파녹색당의 대표이자 유력한 차기 총리후보인 카트린 야콥스도티르는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아이슬란드의 정치권 역시 변화무쌍합니다. 그러나 극우정당과 대립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 만으로도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적당은 그들만의 방식대로 시스템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바람직한 일입니다. 우리가 함께 일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물론 세금정책이나 공공지출에 관해서는 의견이 다릅니다. 그러나 난민 수용, 민주주의, 인권, 투명성에 대해서는 같은 입장입니다. 다만 우려되는 부분은, 우파나 좌파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국민들 간에 퍼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우파와 좌파 간의 거리가 지금처럼 멀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불평등 문제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유럽과의 관계, 부의 재분배, 보호주의, 그 밖에 입장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들은 연정 구성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지정학적 측면에서는, 좌파녹색당만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탈퇴를 통해 중립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슬란드처럼 군대도 없고 ‘첩보기관조차 없는’ 나라에서의 중립성이란 상대적인 개념이라고, 좌파녹색당 대표는 설명한다.
글·필립 데스캉 Philippe Descamp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김소연 dec2323@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아이슬란드 중앙은행의 통화위원회, 2016년 9월 7일
(2)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5년 자료, www.data.ocde.org
(3) <Iceland’s recovery. Lessons and challenges>, 레이캬비크, 2011년 10월 27일, www.imf.org
(4) Cf. Stefán Ólafsson, <Level of living consequences of Iceland’s financial crisis. What do the social indicators tell us?>, Harpa, 레이캬비크, 2011년 & <La sortie de crise de l'Islande>, 사회과학고등연구원, 파리, 2014년 5월 28일
(5) Eva Joly, ‘Pour en finir avec l’impunité fiscal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6년 6월호
(6) Rannsóknarnefnd Alþingis(의회 특별조사위원회의 보고서), 2010년 4월 12일, www.rna.is
(7) Silla Sigurgeirsdóttir & Robert Wade, <Une Constitution pour changer d’Islande?>, La valide diplomatique, 2012년 10월 18일, www.monde-diplomatique.fr
(8) 실라 시귀르게이르스도티르 & 로버트 웨이드, ‘아이슬란드 국민 투기금융 뒷감당을 거부하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1년 5월호
(9) Judgment of the Court, <Directive 94/19/EC on deposit-guarantee schemes. Obligation of result. European Commission vs Iceland>, 2013년 1월 28일, www.eftacourt.int
(10) 모나 숄레, ‘기본소득, 혁명적이거나 아니거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6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