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캬비크는 어떻게 매력적인 도시가 됐나?

2016-09-30     제라르 르마르키

2008년 경제 위기 직후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는 황폐한 도시 그 자체였다. 금융 거품 때 여기저기 비죽이 솟아 있던 크레인은 사라져버렸다. 공사가 중단된 건물들 시멘트 외벽에는 눈보라만 날릴 뿐이었다. 빚더미에 짓눌린 많은 사람들은 집을 잃거나 집을 지키기 위해 과도한 채무를 갚고 있었다. 낙담한 유권자들은 2010년 지방 선거 때 코미디언 욘 그나르를 시장으로 선출한다. 
트리스탄 차라,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이나 미하일 바쿠닌과 같은 철학자를 존경하며 심각한 난독증에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1) 펑크 숭배자인 욘 그나르 후보자는 처음에는 순전히 정치를 패러디했다. 그는 ‘쉼 없이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권력을 원하며 ‘측근들을 좋은 자리에 앉히기’위해 권력을 이용하겠다고 했다. 대부분 비요르크와 같은 음악가들과 배우 측근으로 구성된 욘 그나르의 지지자들은 자신들을 ‘초현실 무정부주의자들’이라고 일컬었다. 자신의 공약을 지키지 않겠다고 공언했는데 ‘최고당’의 선거 공약은 모든 채무 탕감, 노인들에게 깜짝 여행 선물, 남자들이 의무적으로 며칠간 집에 있도록 하는 것, 북극곰이나 다람쥐, 개구리를 동물원에 유치하는 등이었다. 
시장이 되자 그나르는 보수당인 독립당의 오랜 텃밭이자 아이슬란드 인구의 1/3이 거주하는 이 도시를 운영하기 위해 사회민주주의자들과 연대했다. 그는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무슨 상관이야’ 선동자가 무장해제될 수 밖에 없는 겸손한 인물로 탈바꿈했다. 레이캬비크 시민들은 그를 따라 투명한 행정과 참여 민주주의를 만들었다. 비정형적인 이 인물은 모순적으로 시대 상황을 반영한 인물이었다. 경기 침체에 허우적대던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더 이상 정치 공약을 믿지 않았고, 비주류에서, 삶의 질 추구에서 최선의 답을 얻을 수 있다고 느꼈다.
경제위기 덕에 그나르와 그의 측근들은 ‘꼰대 자동차’ 도시를 자전거 전용도로망을 갖춘 생태적이고 세련된 수도로 바꿀 수 있었다. 경제적 풍요에서 급작스럽게 침체를 맞게 된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세 번째 차, 두 번째 차마저 처분했고 도시 교통량은 줄어들었다. 자전거 전용 도로는 인도의 두 배로 늘어나며 확대됐고 오늘날 교통 체증을 유발하며 자동차 운전자들을 성가시게 하고 있다.

펑크와 아나키즘, 그리고 시장의 선택 

그나르 시장은 시민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기를 바랐다. 국수주의를 벗어던지고서 말이다. 두 명의 프로그래머는 ‘더 나은 마을’과 ‘더 나은 레이캬비크’라는 시민 참여 포럼을 만들었다. 소외와는 거리가 멀게 레이캬비크 시는 시민들의 참여를 권장했다. 그리하여 한 사람 한 사람의 시민들은 이 플랫폼에서 자발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자연스럽게 토론의 장이 열렸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참여한 사람들 사이에서 찬성과 반대의 토론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가장 많은 지지를 획득한 프로젝트 아이디어는 즉각 재정 지원을 받게 된다. 어떤 입장이든 설명하고 정당화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장난이나 적개심, 그럴 듯한 미화는 제외됐다.
2014년 지방 선거에서 정치계는 욘 그나르의 재출마를 기대했다. 권력을 맛보았으니 다시 연임하지 않을까? 늘 그렇듯 당연한 논리고 그도 그러한 사람들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설문조사에서 그의 인기가 정점에 이르렀을 때 그는 정치계를 떠난다고 발표한다. 그는 2016년 ‘파나마 페이퍼’ 사건 이후 그의 지지자 중 한 사람이 대통령 선거 출마를 요청하는 데도 불구하고 정계 복귀를 거절했다. 최고당의 모험은 계속되고 있고 현재는 밝은 미래당으로 바뀌었다. 이 당은 의회에 6명의 의원을 진출시켰고 사회민주주의당 및 좌파 생태주의자들 및 해적당과 연정해 도시 행정에 참여하고 있다. 
해가 지면 음울했던 도시인 레이캬비크는 관광업이 활성화되면서 다양한 문화 행사 등으로 활기차고 즐겁고 역동적인 도시로 변모했고 도시 치안에 대한 신뢰 효과도 확대됐다. 자연을 파괴하는 것으로 지목됐던 도시 관광객들은 그 전 레이캬비크 사람들은 하지 않던 걷는 관광으로 레이캬비크를 생태 도시로 바꾸어 놓았다. 관광객들로 인해 소비자 물가는 상승하게 됐지만 이들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이 식당과 바가 많이 생겨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 따른 부작용도 있다. 건설 경기 회복으로 크레인이 다시 등장했고 도시의 진보 행정은 고급 호텔 건설을 허가했다. 그로 인해 극빈층들은 살 거처를 빼앗기고 있다. 에어비앤비 사업이 빠르게 성공하면서 매년 거주 가능한 집이 멸실되고 있고 주거 비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과거 목재 고건물 철거에 호의적이었던 우파 반대 진영은 도심의 신축 열풍을 자연스레 비판하며 유리한 고지를 취할 수 있게 됐다. 
2010년 그나르는 가난해지는 수도 레이캬비크에 대해 큰 고민 없이 꿈을 약속했다. 차기 선거에서 다시 부유해진 시민들의 관심 여부는 지금까지 제한 없는 도시 확대로 격리된 주변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 교차로망 건설 문제가 될 것이다. 레이캬비크는 말 그대로 두 개의 다른 속도로 나아가는 중이다. 편히 걸을 수 있는 차 없는 매력적인 도심과 너무나 많은 차로 기어가는 흔한 외곽 지역 두 개로 말이다.  


글·제라르 르마르키 Gérard  Lemarquis 
주요 저서로 <아이슬란드 사람들(Les Islandais>)(HD, Paris, 2014), <레이캬비크(Reykjavik)>(Innercities Signal Books, London, 2013) 등이 있다. 

번역·박지현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그는 영어로 번역된 두 권의 자서전에서 자신의 인생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The Indian>(Deep Vellum, Dallas, 2015), <The Pirate>(Deep Vellum, Dallas,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