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대차대조표, 자본주의에 마이너스

[Spécial] 주주 돈벌이 위해 전 사회에 부담 전가
자본조달 기능 상실한 채 투기장 전락

2010-02-04     프레데리크 로르동

각국 정부가 납세자의 돈으로 은행들을 구제해준 지 1년이 조금 지났다. 덕분에 은행들은 파산을 면했다. 그러나 그 대가는 어땠는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 구제금융의 총액수를 11조4천억 달러로 추정한다. 납세자 한 명당 1676달러를 부담한 셈이다. 그러나 금융시장에 은행만 있는 게 아니다. 주주들도 있다. 만약 우리가 주식시장을 폐쇄하자고 주장한다면 주주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지난 2년간 전세계를 뒤흔든 경제위기를 겪으며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잊고 있었다. ‘시장금융’(어색하더라도 다른 용어와 구별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하기로 한다)은 폐쇄적인 공간에서 다른 경제 영역과 완전히 단절된 채 작동하고 있다. 생산수단 소유자에게 자금을 공급하는 ‘주식금융’은 기업에 모든 책임을 떠넘긴다. 더 깊이 생각해보면 결국 임금 노동자들이 책임을 떠안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 텔레콤에서 발생한 노동자들의 ‘자살’ 사건에 직면해서야 우리는 주식금융이 어떤 식으로 노동자의 일상을 황폐화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프랑스 텔레콤의 디디에 롱바르 사장은 ‘자살의 유행’이라는 참으로 세련된 언어로 그 사건을 진단한 바 있다. 주식금융이 기업에 수익성을 높일 것을 강요하면 기업은 갖은 수를 써서 임금을 낮추려고 한다. 집단행동은 조직적으로 탄압받는다. 노동자에게는 지나치게 높은 노동강도가 강요되고, 악화된 노동환경에서 노동자의 심신은 피폐해진다. <<원문 보기>>

사실을 은폐하려는 흥분한 목소리들에 맞서, 우리는 현재의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주식금융 권력이 어떤 인과관계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때로는 극단적인 방식까지 동원하면서 임금 노동자를 궁지로 몰아넣고 있는지를 밝혀야 한다. 이 인과관계 사슬의 양끝을 이어주는 중간매개가 인과관계 자체를 가려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사슬 한쪽 끝이 다른 한쪽 끝의 압박으로 고통받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사슬의 양끝 거리 자체가 현실을 부정하는 핑계로 이용되고 있다면? 적절한 순간에 미디어들이 이 사슬을 분리해서 제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면? 그러나 어떤 시도도 시스템 내부의 인과관계를 완전히 감출 수는 없다. 우리는 분석을 통해 이러한 인과관계를 분명하게 밝힐 수 있다.(1)

‘시장금융’의 완전한 개혁이라는 주제는 1년 전부터 쟁점 사항이다. 더는 손 놓고 바라보기만 해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각국 정부도 목소리 높여 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주식도 더 이상 개혁 요구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간 <리베라시옹>의 로랑 조프랭 사장은 좌파에는 아무런 아이디어도 없다고 지적하며, 이에 대한 대안을 전혀 찾으려 하지 않는 지적 태만을 꼬집고 있다.(2) 실제 좌파로 분류되는 <리베라시옹>과 사회당도 대안이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조프랭의 눈에는 띄지 않지만, 분명 좌파적 대안은 있다. 주식이익 한정인정제도(SLAM·Shareholder Limited Authorized Margin)(3)가 그중 하나다. 종일 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방식 대신 1개월에서 수개월 단위로 거래하는 제도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4) 전혀 다른 차원으로 이런 질문을 제기해볼 수도 있다. 증권시장을 폐쇄하는 건 어떨까?

멀리는 라디오 채널 <프랑스 앵포>에서 오랫동안 증권분석가로 활동하다 지금은 고인이 된 장피에르 가이아르의 시기에서부터 ‘CAC40-다우존스-닛케이’를 반복하는 뉴스들을 거쳐 주식 전문 채널이 등장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주식시장은 이제 사회제도가 아니라 자연적 현상이 되어가고 있다. 따라서 주식시장을 폐쇄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로 여겨진다. 지난 25년간 줄기차게 이어져온 언론의 집중 공세는 증권시장을 하나의 자연현상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현대’의 경제체제 속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금융시장, 그중에서도 특히 주식시장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주식시장이라는 제도를 평가하자면 단순히 주주 권력이 야기하는 폐해를 나열하는 것보다 주주가 얻는 이익과 주식시장에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을 비교해보는 것이 유용하다. 주주의 수익성에 대한 압박은 끝없는 임금 삭감 요구로 이어지고 거시경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경제적 이익 분배와 사회적 비용 분담이라는 주식시장의 기능이 약화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비롯되는 만성적 내수 부진을 해결하기 위해 금융계의 전략가들은 가계들이 담보대출을 하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결과를 잘 알고 있다. 밝은 면만 보라. 그럼 대차대조표가 훨씬 쉽게 느껴질 것이다. 코미디언 페에르 다크가 한 농담이다. 그러나 그 밝은 면조차 문제가 심각할진대 전체는 어떻겠는가?

이익과 거래를 제한한다면…

주식시장이 약속하는 긍정적 미래가 의심스럽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주식시장이 없다면 자금 조달도 불가능하고 채무변제 불능 상태에 빠진 기업이 자기자본을 확보하는 것도 불가능해지며, 벤처기업이 기술혁신을 주도하는 것도 힘들어질 것이다.

주식시장이 제시하는 청사진은 그럴싸해 보인다. 한쪽에는 잉여자금을 투자할 곳을 찾는 경제주체(예금자)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자본을 필요로 하는 경제주체(기업)가 있다. 주식시장은 자금을 조달할 능력이 있는 경제주체와 자본이 필요한 경제주체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이상적 형태의 매개 기관처럼 보인다. 나아가 지속적으로 자본을 제공함으로써 적은 비용으로 안정적 자금 조달을 보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부채와 달리 ‘자기자본’은 주식 상장을 통해 조달된 것으로 상환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약속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기업은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가? 현재의 상황에서라면, 기업이 주식시장에 자금을 대고 있다고 보는 편이 맞다! 이러한 역전을 이해하려면 기업과 ‘투자자’ 사이에 자금 흐름이 양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투자자들은 기업의 주식 상장에 참여함으로써 규칙적으로 배당금(점점 액수가 증가하는)을 챙겨간다. 또한 주식 환매(buy-back)라는 방식도 있다. 주주자본주의에 ‘혁신’을 불러온 주식 환매는 기업이 자사 주식을 매입하도록 유도해 수익률을 높임으로써 주가를 상승시키는 방식을 일컫는다. 그 결과 주주는 더 큰 이익을 얻게 된다.

주식자본의 모순적 논리는 현재 한계에 부딪혔다. 기업은 주주가 강요하는 엄청난 수익성을 얻을 수 없다는 이유로 상당수 사업 프로젝트를 포기하게 되고, 그 결과 자본을 투자할 곳을 잃게 된다. 이 자본의 ‘정당한 주인’인 주주는 이들 기업을 ‘게으른 자본’이라고 비난하면서 돈을 돌려받으려 한다. 한마디로 “돈을 줘도 쓸 줄 모르는 기업에서 돈을 되돌려받겠다!”는 식이다. 이제 방향이 역전되어 기업이 주식시장에 자금을 대기 시작한다. 주식시장이라는 기관은 이러한 과정으로 자신의 존립 근거를 확고히 한다. 이제 기업이 조달하는 자본보다 주주가 가져가는 자본이 더 커졌다. 주식시장의 실질적 자금 조달 기여도는 마이너스가 되었다(프랑스의 경우 거의 ‘0’에 가깝고, 보편적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경우는 ‘0’에 한참 못 미친다).(5)

밝은 면만 봐도 밑지는 장사

이런 상황에서 주식시장에 유입되는 자본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그러나 겉으로는 모순적으로 보이는 이 현상은 생각보다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 새롭게 상장되는 주식만으로 흡수되지 않은 잉여자본은 흔히 ‘2차 시장’이라고 일컫는 유통시장(이미 상장된 주식이 유통되는 시장)에 투기자본으로 유입된다. 이 자금은 새로운 산업 프로젝트를 위해 쓰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유통 중인 주식 가치의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게 된다. 주가가 상승하고 주식시장은 활기를 얻지만 실물경제에 대한 자금 조달은 점점 힘들어지는 모순적 상황이 발생한다. 폐쇄된 공간에서 투기자본이 계속 자금을 불려나가며 2차 시장의 규모가 1차 시장(주식상장 시장)을 압도해버리는 것이다.

‘투기의 장’이 아닌 ‘자본 조달 제도’로서의 주식시장은 그 존재 이유를 잃게 되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기업이 가장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생산과 고용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비상장 중소기업만 여기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잠깐, 생산과 고용에서 큰 역할을 하는 상당수 기업이 주식시장의 도움 없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인수·합병이나 주식 공개 매입 등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대기업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가령 CAC40이나 다우존스에서 성적이 좋은 상위권 기업조차 자금이 필요할 때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린다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기업들은 채권시장으로 가거나 이제는 한참 구식이 되어버린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은행에서 돈을 꾸는 것이다! 이러한 재밌는 아이러니가 빚어지는 이유는 무슨 고상한 성찰의 결과 때문이 아니라 주주의 압력에서 기인한다. 주주는 새로운 주식이 상장되면 자본이 확대되어 자신의 주식 가치가 떨어질 것을 우려한다. 결국 주주가 기업으로 하여금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꼴이 되는 것이다!

주식시장 규제 완화 약속 덕택에 기업은 좀더 저렴한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하게 되었는가? 부채 비용의 경우는 정확한 계산이 가능하다. 가령, 매년 지불하는 이율로 계산하면 된다. 그러나 ‘자본 비용’(여기서는 자기자본 비용)은 정확한 계산이 힘들다. 주식 상장으로 출자된 자기자본은 부채와 달리 이윤 배당률이 미리 정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 가치도 가질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자기자본 가치는 그럼 어떻게 계산해야 할까? 금융이론이 ‘자본 비용’에 점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이 이론은 항상 주주의 입장에서만 그걸 고려한다! 이 자본 비용 이론은 기업이 채권시장이나 은행에서 돈을 꾸는 대신 주식 상장을 통해 자본을 조달할 경우 상대적으로 얼마의 비용이 발생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여기서 금융이론이 암암리에 내포하고 있는 관점이 드러나며, 이론 본연의 목적은 망각된다.

‘주식환매’로 기업 노예화

기업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세 가지가 있다. 기업은 이익배당금과 주식 환매 말고도, 주주 수익성에 대한 압력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투자 계획의 기회비용도 치러야 한다. 다시 말해 기업은 투자를 저지하는 주주의 압력 때문에 일부 수익을 단념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자율로 계산이 가능한 부채 비용과는 다르게 자본 비용은 쉽게 계산할 수 없다. 따라서 다양한 자본 간의 비교가 힘들어진다(가령 자기자본 vs 부채). 부채는 상환이 가능하지만 자기자본은 상환이 불가능하다는 게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주식으로 투자된 자금은 투자 사이클을 한 바퀴 돌고 나서 배당금 형태로 지급된다. 또한 주주는 채권자와 달리 주주총회를 통해 권한을 행사할 수도 있다(이 권한 행사도 가치의 일종이다). 직접적 비교가 불가능하다면 상대적인 비교를 해볼 수도 있다. 상대적으로 자기자본은 그 비율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예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주식 환매도 최근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배당금의 경우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이 1982년 3.2%에서 2007년 8.7%로 증가했다. 다시 한번 강조해서 말하자면, 이 모든 변화는 주주 권력의 압력에 따른 것이다. 또한 역설이게도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을 낮춰주겠다는 취지로 이루어진 주식시장 규제 완화 덕분이기도 하다!

많은 희생을 치러 마련된 규제 완화의 결과로 주식시장의 실질적 자금 조달 기여도가 마이너스가 되고 자금 조달 비용이 턱없이 비싸지게 되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식시장이 계속 존재하려면 무엇이 더 필요한가? 물론, 금융자본의 특정 이해관계를 제외한다면 주식시장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 대답은 새로운 위협과 새로운 약속이다.

자본조달도 시설투자도 “안돼”

그 위협 중 하나는 ‘자기자본 없는 경제’라는 유령이다. 이 유령은 특히 사채 규모가 통제 불가능할 만큼 커졌다는 불평이 쏟아져나오는 시기에 힘을 얻게 된다. 그러나 주식시장이 기업에 역기능만을 수행하는 상황에서 기업이 채권시장이나 은행으로 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 결과로 가계와 기업의 부채가 증가하고 은행에 모든 권한이 양도되는 것이다.(6) 이번 경제위기 때 우리는 이미 이러한 광경을 목격했다. 반면 주식시장 없는 경제가 자기자본의 사적 소유를 기반으로 한 경제를 뜻하는 건 아니다. 주식시장은 자화자찬에 정신을 판 나머지 기업의 자기자본 중 상당 부분이 외부에서 유입된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기업 역시, 회계에서 이월잔액이라고 부르는 방식을 이용해 이윤을 자본화한다. 매년 기업이 창출하는 이윤 중 일부가 대차대조표의 자본스톡 항목을 살찌우는 것이다. 이 돈이 주주에게 배당금으로 지불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기업의 상태가 악화되어 ‘이월잔액’ 등의 방법으로 내부에서 자기자본을 마련할 수 없는 경우에는 외부에서 유입되는 자기자본, 다시 말해 주주의 자본이 중요해진다. 어려움에 빠진 기업을 구하려면 자기자본을 투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결국 주주의 개입이 필요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기업 인수자들은 가능하면 적은 돈을 투자하려고 한다. 그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공적 지원금을 받는다든지, 장외거래 계약 일부를 매각한다든지, 법적 절차를 통해 부채를 조정하고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것이 그 예다. 대부분은 이 모든 방법을 적절히 혼합해 사용한다. 결국 주주 본연의 역할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방법들이다.

주식시장이 본연의 효용을 상실하고 악순환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마지막 절규가 들려온다. “벤처기업은 어떻게 할 것인가?” 벤처기업은 기술혁신을 선도하는 기업이다. 이 기술혁신 덕분에 우리는 지금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군사 목적으로 사용되던 기술과 연구자들이 개발한 프로토콜을 결합한 결과였다). 기술혁신은 또한 곧 우리에게 완전히 새로운 종자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주식시장 없이 벤처기업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물론 벤처기업의 가능성을 오인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벤처기업이 제시하는 가능성, 번영된 미래에 대한 약속을 믿자마자 모든 게 용서된다. 이미 평판이 나빠진 주식시장에 대한 비판 담론은 벤처기업 문제에 이르러 가장 큰 의심에 부딪히게 된다. ‘녹색성장’이라는 괴물과 친구가 된 환경론자나 좌파 공학자들,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만으로 우리가 이미 ‘지식자본주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성급한 주장을 펴는 사람들도 여기에 한몫하고 있다.

은행의 벤처 직접투자는 어때?

한편, 벤처기업이 전통적 방식의 금융 시스템, 특히 은행 시스템을 벗어나 있다는 건 확실하다. 벤처기업은 새로운 기술적 도전을 시도하는 신생기업이라는 성격상 투자자에게 자금을 끌어들이기가 쉽지 않다. 과거의 실적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비교자료 자체가 없는 것이다. 벤처기업에 대해 흔하게 하는 말 중 하나는 열에 아홉은 실패를 보고 하나만 성공을 거두어 주식시장에도 상장하고 큰 이익을 남기게 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처음에 투자했던 사람들, 즉 이른바 ‘비즈니스 에인절들’(business angels)에게도 큰 이익을 안겨주고 단순히 다른 아홉 개 벤처기업의 실패를 보상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신기술을 앞세운 벤처기업에 대한 이런 균등 조정 방식은 주식 상장이 필요불가결하다는 것을 증명하며 신용대출이 적합하지 않다는 걸 방증한다. 만약 열 개 벤처기업이 모두 은행에서 비슷한 금리로 대출을 받았다고 가정하면, 은행 입장에서는 실패한 아홉 개 벤처기업에서 원리금을 회수할 수 없게 된다. 성공한 나머지 한 기업에서 원리금을 회수한다고 해도 전체적으로 보면 은행 쪽이 손해를 입는 것이다. 결국 은행은 이러한 시도 자체를 처음부터 포기하게 될 것이다.

이 주장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그렇다고 대안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그 대안을 마련하자면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가령, 은행 대출이자를 고정시키지 않고 기업 활동의 첫 시기 동안 기업이 낸 이익에 따라 이자를 높이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 만약 이 방식이 효력을 드러낸다면, 은행도 주식시장의 비즈니스 에인절들처럼 균등 조정의 덕을 볼 수 있다. 벤처기업과 기술혁신에 대한 투자를 둘러싼 일반적 담론의 수사들을 조금만 걷어내도 그 진정한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가 밝혀진다. 벤처기업을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목적은 새로 기업을 일으키는 경영자들과 그들을 지원하는 에인절들에게 이익을 안겨주기 위한 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믿듯이 기술 진보에 대한 신념, 인류에 대한 물질적 공헌, 기업 경영에 대한 열정이 이들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은 가능한 한 빨리 큰돈을 마련해 일찍 퇴직할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주식시장이 제시하는 미래의 가능성을 제외하고 본다면, 용감한 벤처기업 창업자들은 참으로 험난한 테스트를 거쳐야 하는 것이다.

이 새로운 경제 전사들 중 서둘러 작은 사업을 일으킨 뒤 곧 되팔아 이익을 내겠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물론 경제주체가 이윤이라는 동기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자본주의의 본질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기업을 세움으로써 부를 축적하려는 욕망을 넘어서 단숨에 ‘큰돈’을 거머쥘 수 있는 조건에서만 창업을 하겠다는 생각이 퍼져 있다. 이런 사고는 이제 벤처기업 창업주들에게 거의 보편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여기서 노동에 대한 이익 분배라든지 기업 이윤을 통한 소득 향상이라든지 하는 것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로지 주식시장에서 한몫 잡겠다는 생각만 만연해 있는 것이다.

증시 폐장하고 노동을 보상하라

지금까지 한 말을 요약해보자. 주식시장은 더 이상 기업에 자본을 조달해주는 기관이 아니다. 기업은 캐시플로(현금 흐름) 경영을 위해서만 주식시장을 찾고 있다. 주식시장은 더 이상 ‘자기자본 경제’의 원천이 아니다. 기업은 이제 다른 곳에 가서 자금을 융통한다. 주식시장은 더 이상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벤처기업에 구원자가 아니다.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벤처기업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주식시장은 단지 큰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이렇게 말하고 나면 주식시장에 대한 비판은 끝나는가? 기존의 비판자들에겐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기본적 단계일 테지만 다른 이들에겐 지겨운 소리일 수도 있다. 주식시장에 대한 비판은 필연적으로 기업가들이 횡설수설하며 감추고 싶어하는 진정한 동기를 드러내 보여준다. 사실상 돈을 벌려는 욕망만이 이들을 지배한다. 고삐 풀린 물욕 앞에서 고뇌하는 기업가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무언가를 진정으로 건설하려는 이들은 다른 동기에 따라 움직이고 재산 증식이라는 동기 없이도 활동을 계속해나갈 수 있다(그러나 그들을 지나치게 신성화할 필요는 없다). 주식시장은 경제 엘리트들이 짧은 시간에 벌어들이는 큰돈은 정당한 보상이며 그들의 창조적 경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환상을 사회 속에 심어놓았다. 만약 이 엘리트들이 없다면 우리는 세상의 의인들을 잃게 되는 것이며, 경영활동을 비롯한 모든 활동은 멈출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식시장 폐쇄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주주의 횡포를 몰아낼 수 있는 방법일 뿐 아니라 일확천금에 대한 기대를 뿌리 뽑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런 기대는 이미 경제활동의 일반적인 동기가 되어버렸으며 ‘능력’을 가늠하는 척도로 기능하고 있다. 노동자 개개인의 이해를 중요시하는 관점에서 보면 주식시장 폐쇄는 노동을 거쳐야만 이윤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를 우리에게 확인시켜주는 작업이기도 할 것이다. 일확천금의 거울로서 주식시장은 상상의 방식으로 작동하지만 금전적 성공 기준을 바꾸어버림으로써 현실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이제 주식시장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은 야망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된다. 노동은 더 이상 금전적 성공의 길로 여겨지지 않는다. 온갖 경제적·상징적 폐해가 집중되는 장소일 뿐인 주식시장에 대해 무언가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까지 주식시장에 가한 비판만으로는 주식시장 폐쇄를 주장하는 근거로 충분치 않다. 비판이 실천으로 연결되려면 여전히 반박해야 할 역비판이 많이 남아 있다. 당장 주식시장을 폐쇄하자고 주장할 수는 없을지라도, 적어도 하나의 대안으로서 고려해야 할 것이다.

글•프레데리크 로르동 Frédéric Lordon

프랑스 경제학자이자 프랑스국립과학연구소(CNRS)와 유럽사회학연구소(CSE)에서 연구팀장을 맡고 있다. 저서 <언제까지? 금융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Jusqu’à quand? Pour en finir avec les crises financières)는 많은 관심을 받았다. 최근 저서로는 <넘치는 위기, 파산한 세계의 재건>(La crise de trop. Reconstruction d’un monde failli·2009) 등이 있다.

번역•정기헌 guyheony@ilemonde.com

<각주>
(1) Frédéric Lordon, <넘치는 위기, 파산한 세계의 재건>(Fayard·2009) 4장·5장 참조.
(2) 로랑 조프랭은 2008년 9월 20일 라디오 방송 <프랑스 앵테르>에서 “좌파들은 금융위기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3) ‘광기 어린 금융자본에 고삐 채우기: 주식이익 한정 인정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7년 2월호.
(4) ‘불안정한 주식시장: All day trading의 해악’, <르 디플로> 블로그 (2010년 1월 20일).
(5) 2003~2005년 프랑스 주식시장의 기업에 대한 자금 조달 실질 기여액은 몇십억 유로에 불과했다. 미국은 400억 유로에서 6천억 유로까지 증가했다. 그러나 금융위기로 집단적인 주식 환매 현상이 사그라졌다(2007년 프랑스 금융기관감독청 발표 자료).
(6) 이 경우를 통해 급진적인 변화는 부문별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연관관계를 가지는 부문 전체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금융구조 개혁은 주식시장뿐 아니라 은행 구조도 함께 개편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넘치는 위기, 파산한 세계의 재건> 3장을 참조할 것.

 


 

주주 입장에서 본 자본 비용

주주 입장에서 본다면, 자본 비용이란 한 경제주체가 자신의 자본을 다른 곳이 아닌 기업에 투자했을 경우 들어가는 비용을 말한다. 이 정의를 거꾸로 해석하면, 주주들이 기업에 자신의 투자 대가로 제시하는 비용이 된다. 이 비용은 무위험 이자율(risk-free rate)과 시장의 위험 프리미엄(위험보상 수익률)의 합으로 계산된다. 무위험 이자율은 보통 3개월 국채 이자율을 기준으로 계산하고, 위험 프리미엄은 해당 기업의 과거 주가 변동폭을 고려해 계산한다. 따라서 자본 비용이란 투자자가 자신의 자본을 국채에 투자하는 대신 리스크를 고려해 특정 기업의 주식에 투자했을 경우 그 기업에서 기대하는 수익을 일컫는다.

 


 


용어설명

* 시장금융 금리연동상품, 외환시장, 원자재 시장, 파생상품 등 통제가 없는 모든 종류의 투기적 활동을 일컫는다.
* 주식금융 기업으로부터 금융이익을 얻어내기 위한 메커니즘 전체.
* 주식 주식은 특정 기업에 대한 소유권 일부를 보장한다. 주식 상장을 통해 상환 불가능한 자산(자기자본)에 대한 소유권이 발생한다. 주주는 배당금과 같은 변동성이 있는 수익을 얻는다.
* 주식 환매(buy-back) 기업이 주식시장에서 자사 주식을 매입하는 것.
* 캐시플로(cash-flow) 일정한 기간 동안 기업에 유입·유출되는 자금액.
* 채권 부채와 이율이 명시된 권리. 채권자는 이율에 따라 고정된 수익을 얻는다.
* 1차 시장 주식 상장시장.
* 2차 시장 주식 유통시장, 다시 말해 이미 상장된 주식이 거래되는 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