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거리에서 화면으로

2016-10-31     플로랑스 보제

 미국의 페미니즘 운동은 여전히 활발하다. 그러나 페미니즘 운동이 너무 다양하고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나타나기에, “페미니즘 운동이 사라졌다”는 부당한 오해를 받기도 한다. 전미여성기구NOW와 에밀리스 리스트Emily’s List 같은 민주당 성향의 전통적인 대규모 여성운동조직 외에도, 수많은 비당파적 운동들이 인터넷 상의 소셜네트워크, 사이트, 블로그 등을 통해 꽃을 피우고 있다. “‘좋아요’ 버튼이나 자판의 클릭이 이전 세대의 데모와 시위를 대신해 버렸다. 커뮤니케이션이 정치적 방식을 대체했다”고 캘리포니아에 정착한 여성 작가인 캐롤린 버크가 확인시켜 준다.

이런 페미니즘 운동의 한 형태인 ‘뉴룩New look’이 ‘팝 페미니즘’과 더불어 음악무대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대표적으로 가수 비욘세가 이 뉴룩 페미니즘의 ‘요정’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런, 섹시하고 도발적인 ‘여전사’들의 방식이 만장일치를 끌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뉴룩에서 어떤 이들은 여성해방의 상징을 보지만, 또 다른 이들은 단순히 마케팅의 도구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들, 시리즈물들, 오락 방송들이 새롭게 등장한 페미니즘 운동의 매개물이 되고 있다. 코미디언이자 시리즈물 〈걸스Girls〉의 연출가인 레나 던햄이나 코미디언 배우인 에이미 포엘러는 젊은 세대에게 엄청난 환호를 받고 있다. 시리즈물 〈마스터스 오브 섹스Masters of Sex〉도 마찬가지인데, 이 시리즈는 교육적인 측면을 더 강조하고 있다. 아이리스 브레이는 1968~1970년의 급진적 여성투쟁을 무대에 올린 바 있다. “우리는 시청자가 과격적이지 않게 급진적인 시대를 발견할 수 있도록 시청자를 이끌고 있다”라고 〈섹스 앤 시리즈물Sex and Series〉의 작가인 브레이는 설명했다.1 이 프랑스계 미국 작가에 따르면 “현대의 중심 이슈는, 개인의 성이 생물학적 성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고를 옹호하는 퀴어이론Queer theory(성과 젠더에 관한 반본질주의적 이론으로, 인간의 성적 정체성과 젠더 정체성은 사회적으로 구성됐다고 주장)과 젠더 페미니즘 운동을 중심으로 전개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마존 비디오Amazon Video의 성공 시리즈물 <트랜스패런트Transparent〉는 성을 바꾸려고 결심한 가장의 ‘커밍아웃’을 다루고 있다.

뉴욕과 그 밖의 대도시들에서는 ‘시즈젠더Cisgender(신체성과 사회적 성이 일치하는 사람)’, ‘이성애 규범Hétéronormatif’ 등과 같은 새로운 단어들이 등장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그녀’와 ‘그’로만 정의되길 원치 않는다”고 작가이자 프랑스계 미국의 여성 운동가 카트린 텍시에가 이를 확인시켜 준다. 텍시에에 의하면, “성의 이분법은 산산조각 날 것이다. 스펙트럼이 가장 남성적인 것에서 가장 여성적인 것까지 다양해진다. 사람들은 더 이상 정해진 틀에 갇혀 있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교차성 페미니즘’2을 고려해야 한다. “페미니즘이란 단어는 더 이상 여성들의 투쟁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이 단어는 성 평등을 위한 나팔소리가 돼버렸다”라고 오리건 태평양 대학의 교수 마르타 램프턴이 지적한다. 1960년대부터 미국 페미니즘 운동의 화신으로 평가받는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흑인여성들이 젠더, 인종, 성적 취향, 사회계급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이중희생을 겪어가며 변화의 진정한 당사자들이 됐다”3고 생각한다.

2013년 경찰들의 폭력에 대응하기 위해 흑인 여성운동가들이 시작한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라는 운동이 이런 새로운 경향을 잘 보여준다.4 이 운동은 여성들과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와 트랜스젠더LGBT 공동체의 지지를 받았다. LGBT는, (힐러리 클린턴으로 대표되는) 이성애자들과 부르주아들이 주류를 이루는 ‘백인 페미니즘’ 운동에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몇몇 아프리카계 미국 여성들은 ‘페미니즘’이란 단어보다 ‘우머니즘Womanism’이란 단어를 더 선호한다.5 이들은 이 단어가 더 폭넓고 인간적이며, 보편적이고 조화롭다고 생각한다.

이 용어는 흑인 노예출신의 여성운동가 소저너 트루스를 기념하고 있다. 1851년, 오하이오 주州 애크런에서 열린 여성인권회의에서 과거 노예였던 트루수가 이 연설을 했다. 이때 그녀가 말한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6라는 문구가 널리 사용되며 유명해졌고, 역사에 남게 됐다. 훨씬 예전에 이 미국 페미니즘 운동의 선구자는 ‘여성’뿐 아니라 ‘흑인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간파했던 것이다.

글·플로랑스 보제

〈르몽드〉 기자, 정신의학자와 저널리스트의 두 직업을 넘나들다가 2000년 〈르몽드〉에 정식 입사해, 11년을 튀니지 등 마그레브 지역을 취재한 뒤에 최근에는 개발 도상국가들의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다.

1 아이리스 브레이(Iris Brey), 『섹스와 시리즈물. 여성성, 텔레비전 혁명』, 소아프 출판사, 미오네(Mionnay), 2016년.
2 교차성 페미니즘은 여성이 당하는 불평등이 젠더, 인종, 사회 계급 등 복합적으로 파생된 결과물이라고 본다. 한 사람의 사회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범주는 단일하지 않으며 다양한 측면이 상호교차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 예로, 흑인이면서 동시에 여성인 사람이 받는 차별을 들 수 있다.
3 힘 있는 고위직 흑인기업 여성들의 모임에서 이뤄진 선언, 포트 로더데일, 2015년 3월.
4 실비 로랑(Sylvie Laurent),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투쟁의 부흥’, 〈마니에르 드 부아〉 149호, 2016년 10~11월.
5 1980년대에 여성작가 앨리스 워커(Alice Walker)에 의해 도입된 개념이다. 앨리스 워커는 페미니즘이란 것이 ‘우머니스트(Womanist)’ 운동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이 단어는 프랑스어로 번역되지 않는다. ‘페미니튀드(여성고유의 특성)’에 가까운 의미로 추정된다.
6 “저기 저 남성이 말하는군요. 여성은 탈것으로 모셔 드려야 하고, 도랑은 안아서 건너드려야 하고, 어디에서나 최고 좋은 자리를 드려야 한다고. 아무도 내게는 그런 적 없어요. 나는 탈것으로 모셔진 적도, 진흙구덩이를 지나도록 도움을 받은 적도, 무슨 좋은 자리를 받아본 적도 없어요. 그렇다면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날 봐요! 내 팔을 보라고요! 나는 땅을 갈고, 곡식을 심고, 수확을 해왔어요. 그리고 어떤 남성도 날 앞서지 못했어요. 그래서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나는 남성만큼 일할 수 있었고, 먹을 게 있을 땐 남성만큼 먹을 수 있었어요. 남성만큼이나 채찍질을 견뎌내기도 했어요. 그래서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난 13명의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들 모두가 노예로 팔리는 걸 지켜봤어요. 내가 어미의 슬픔으로 울부짖을 때 그리스도 말고는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소저너 트루스의 연설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1851)의 한 대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