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에 대항하는 독일민중의 반기

2016-10-31     페테르 발

범 대서양 자유무역지대(TAFTA) 협상과 포괄적 경제무역협정(CETA) 비준 과정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유럽-북미 간 자유무역 협정에 반대하는 시위가 유럽 내에서 가장 크게 일어난 곳은 다름 아닌 세계 제3위의 무역대국 독일이다.(1) 2016년 9월 17일, 총 7개 도시에서 조직된 이 시위에는 주최 측 추산 32만 명(경찰 측 추산 19만 명)이 집결했다. 2015년 10월 10일에는 각지에서 온 시위대가 베를린에서 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참가자 수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라도, 유럽의 대외무역 정책에 대한 이런 반대시위는 일단 독일통일 이후 최대 규모의 집회였다. 여러 조사결과로 미뤄볼 때, 이는 곧 자유무역에 대한 여론이 뒤집어지고 있음을 뜻한다. 2014년 2월만 해도 범 대서양 자유무역시장을 찬성하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55%(반대 25%)에 달했다. 그러나 1년 후에는 찬반 비율이 비슷해졌으며, 2016년 6월에는 상황이 역전된다. 범 대서양 자유무역시장을 반대하는 사람의 수가 응답자 중 75%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이보다 뒤늦게 공론화된 포괄적 경제무역협정 역시, 찬성보다는 반대쪽이 우세하다.(2) 

자유무역에 반대하는 각양각색의 집단들

자유무역시장의 반대진영에는 상당히 폭넓고 다양한 집단이 포진해있다. 그린피스나 푸드워치 등 환경보호 단체나 소비자 보호 단체는 물론 국제금융관세연대 같은 대안세계화주의자들, 독일노총(DGB), 각계 단체나 문화위원회(연극, 오페라, 관현악단 같은 공연예술 단체 및 미술관 수호 연맹) 등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함께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3,400개 중소도시가 연합한 독일 자치구 연합(DST)은 “자치구에서 관할하는 기본 서비스, 특히 상하수도 공급 및 정화 서비스 같이 아직 민영화되지 않은 사업 부문, 쓰레기 처리 및 역내 대중교통 분야, 문화 부문의 모든 공공서비스를 비롯한 사회복지 서비스 등은 분명히 협상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는 주장을 2014년에 이미 제기한 바 있다.
독일 개신교연합인 복음주의교회 또한 교구회 결의안을 통해 협상의 투명성을 요구하고 나섰다. 복음주의 교회는 공공서비스의 민영화를 반대하는 한편, 사회 및 환경 관련 기준이 낮아지는 것을 경계했다. 가톨릭교회의 경우, 대체로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으나 “개도국의 이익이 고려돼야 한다”는 견해를 표명했고, 민간 중재재판소에 대해서는 거부하는 입장이다. 투자자들이 정부와 지자체를 고발할 수 있도록 하는 이런 특별재판소의 신설에 대해서는 모두가 한 목소리로 반대하고 있다.(3) 여기에는 독일 판검사협회(DRB) 또한 반발하고 나섰다. 판사들은 범 대서양 자유무역지대와 포괄적 경제협정 체결에 따른 재판소의 신설을 반대하는 한편,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새로이 구상된 개선안에 대해서도 마땅찮게 여기고 있다. 즉, 고등법원을 갖추고 전문 판사들로 구성된 중재법원이라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법관들은 2016년 2월 “사집단 전용의 특별법원을 창설하는 것은 잘못된 행위”라고 주장한다.
정치권에서는 더욱 대립각이 드러난다. 우선 하원 소속 정당들 가운데 야당 세력인 좌파 정당(Die Linke)과 녹색당은 즉각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고 나선다. 이들 정당에 속하는 수많은 당원들은 지자체 위원회 차원이나 역내 기반의 활동 등을 통해 의회 외부에서 적극적인 참여활동을 벌이고 있다. 자유무역 반대 운동에 대한 호응이 상당히 높아, 공영방송국을 비롯한 주류매체들도 골고루 발언시간을 안배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렇듯 다원적인 시각에서 사회적 논의가 다뤄지는 경우는 드물다는 차원에서, 자유무역 반대 운동은 상당히 흥미로운 선례 한 가지를 남긴다. 언론에서 시위대의 말을 곡해 없이 전할 때, 대대적인 사회 운동과 야당의 원외활동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준 것이다.  
이에 맞서는 반대 진영에는 기업 대표자들과 제도권 경제학자들 대다수가 포진해있다(특히 독일의 경우, 세계 다른 지역보다 더 신자유주의자들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연방 정부와 기독민주당(CDU), 바이에른 주 기독사회당(CSU) 역시 자유무역협정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범 대서양 자유무역지대의 형성에 따른 성장 가능성을 엿보는 독일산업총연맹(BDI) 또한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자유무역 협정이 “고용을 창출하고 임금 인상을 초래하며, 보다 나은 직업 수행의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자유무역과 관련한 두 협정에 대해 대대적인 반발여론이 형성된 것에 대해, 기업들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사측 연맹 지도부의 인고 크라머 위원 역시 “최근 다시금 고립주의적인 발상이 국내에 확산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유감의 뜻을 내비쳤다. 독일산업총연맹의 울리히 그릴로 회장도 이를 ‘반미주의’로 규정하면서 “자유무역에 관련된 현재의 논의는 단순화된 논리로 불안을 조장하는 방향으로 변질됐다”고 말한다. 십여 년 전부터 미국 및 캐나다와의 자유무역 협정 체결을 주장해온 앙겔라 메르켈 총리 역시 한결같이 자유무역에 찬성하는 태도를 보인다. 지난 9월에도 메르켈 총리는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범 대서양 자유무역지대 협상의 재개를 주장하며,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지지한다. 자유무역협정 또한 이를 실현할 수 있는 한 방편”이라고 주장했다.

자유무역 논의에서 드러나는 
사민당의 민낯

이렇듯 양측이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제1야당인 사민당(SPD)은 종잡을 수 없는 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사실 사민당 내에서는 범 대서양 자유무역지대 협상에 대한 반대여론이 빠르게 확산됐으며, 민간 중재재판소에 비판적인 하이코 마스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주요인물들도 이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내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특히 중요성이 부각되는 것은 사민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노조의 역할이다. 이에 따라, 라이너 호프만 독일 노총 위원장을 포함해 다수의 공직 인사들도 난처한 상황이다. 원칙적으로는 자유무역을 지지하지만, 지금과 같은 형태의 두 협정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것이 독일노총(DGB)과 단위노조들의 기본 입장이다. 
중간에 낀 사민당 대표 지그마어 가브리엘 부총리는 연정 체제 하에서 경제부장관을 겸임하며 독일의 대외정책을 이끌고 있다. 지난 2014년 가브리엘 부총리와 호프만 위원장은 내부 논의를 고려해 자유무역협정 승인의 조건을 정리한 문건을 작성했다. 원래의 기준을 낮추지도, 강제적인 규제 완화를 실시하지도 않으면서 국제노동기구의 규약을 준수하고, 독일의 공동경영 규정도 유지하는 내용이 주요 골자였다.
따라서 얼핏 보면 자유무역 반대 진영의 승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환상은 곧 깨진다. 2015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가브리엘 부총리가 자유무역협정 반대파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식의 표현을 썼기 때문이다. 기업 총수들과 미 대사가 보는 앞에서 그는 범 대서양 자유무역지대 협상에 대한 애정을 내비친 뒤, “염소 처리된 미국산 닭고기에 대한 이야기는 그렇게 많이 하면서, 지정학적 파급 효과에 대한 논의는 별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될 경우, 문제의 이 미국산 닭고기도 그 수출 판로가 열린다). 하지만 2016년 8월 28일 그는 범 대서양 자유무역 협상이 “비록 아무도 인정하지 않지만 사실상 실패”했다는 견해를 대대적으로 공표한다. 스스로를 공정 무역의 선구자로 칭하면서 경제부를 맡고 있는 가브리엘 부총리는 이렇듯 일단 한 발 뒤로 물러서는 전략을 채택한다. 지지부진한 범 대서양 자유무역 협상은 포기하는 한편, 캐나다와의 협상 체결을 도모하고자 한 것이다.
이에 당 지도부는 포괄적 경제무역협정마저 폐기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다. 9월 중순, 이미 협상이 끝난 원안을 개정하기로 한 가브리엘 부총리는 캐나다로 날아가 저스틴 트뤼도가 이끄는 자유주의 성향의 신임 정부로부터 상당히 상징적인 양보를 얻어낸다. 전문판사들을 선발한 후, 공소 제기 가능성을 제공하는 형식으로 위원회를 구성해 기존 안의 민간 중재 재판소를 대체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 해도, 애초에 민간 법정이 가지고 있던 편파적 성격은 전혀 해소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자유무역 반대 진영의 위르겐 마이어 환경 개발 포럼 사무총장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포괄적 경제무역협정은 무엇보다도 선진국들 내부에서의 투자자 보호 절차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결국 사측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 국내 법제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비대칭적 구조를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이어 여러 가지 쟁점들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이 제시된다. 제3국에 주소지를 둔 페이퍼 컴퍼니를 막기 위한 추가 의정서의 마련과 지방정부의 공공서비스 보호, 환경기준 보장 및 ‘협력 규정’의 완화에 대한 부분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 것이다(기존 안에서는 동 규정에 따른 입법권의 침해 소지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이 제때에 뒷받침되지 않아 반대파 진영에선 협정의 내용이 어떤 식으로 개선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에 녹색당의 시모네 페터 연방 대표도 지난 9월 “포괄적 경제무역협정을 폐기하고 협상을 원점으로 돌려야만 실질적인 개선이 이뤄지는 셈”이라는 견해를 표명한다. 
이런 의견은 안중에도 없는 사민당 지도부는 압도적인 다수로 합의안을 승인했다. 좀처럼 고집을 꺾지 않는 반대파 당원들에게 동 합의안을 설득시키고자, 당 지도부는 9월 19일 전당 대회를 소집했다. 대의원들로 구성되는 전당대회는 최고의 의결 기구이나 일반 당원들의 여론이 반드시 대의원들의 입장으로 이어지란 법은 없다.(4) 따라서 대의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특별히 초빙된 캐나다 통상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3분의 2에 해당하는 대의원들은 신규안을 승인한다.
지도부의 이 같은 강수는 상당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사민당은 아직 2017년 차기 총선의 수장을 선정하지 않았고, 만일 가브리엘 부총리가 포괄적 경제무역협정과 관련해 악수를 둔다면 그의 입후보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게다가 수많은 사민당원들은 비준 거부로 인해 EU의 위기가 확산되는 것을 우려하는 상황이었다. 동 협정의 비준 거부는 독일의 대연정 체제 또한 약화시킬 우려가 있었다.
그러므로 자유무역과 관련한 논의를 통해, 모순적인 사민당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날 듯하다. 사민당은 노동자를 위하는 척하면서 사실상 이들의 이해관계에 늘 반하는 결정을 내리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의 사민주의가 흔들리면서 정체성 위기에 처하고 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1998~2005) 총리 휘하에서 사회-민주-녹색 연합의 대연정에 따른 신자유주의 개혁이 실시된 이후, 사민당의 선거 기반은 차츰 약화돼 간다. 1972년 빌리 브란트의 약진에 힘입어 45%의 표심을 얻었던 사민당은 이제 그 지지율이 절반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대대적인 반대시위가 일어나고 사민당의 우호적인 제스처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유럽-캐나다 간 협정의 운명이 일단락되지는 않았다. 유럽연합은 각국 의회가 비준 절차를 마무리하기 전에 자유무역 협정의 시범 도입을 꾀하면서, 연내에 임시적으로나마 협정이 시행되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10월 11일, 19만 명의 시민이 제기한 집단고소에 대한 연방법원의 판결이 내려진다. 최종 판결이 내려지기까지는 아직 몇 달의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카를스루에 고등 법원에서 일단 조약의 임시 적용을 제한할 수 있는 규정들을 채택하고 나섰다. 판결에서는 유럽연합이 관세를 중심으로 독보적인 관할 권한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 자제해야 한다고 천명한다. 사실 포괄적 경제무역협정은 소위 ‘혼합 협정’이라 일컫는 협정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중재법원, 직무보호, 지적재산권 등을 포함해 관세의 영역을 벗어나는 모든 것이 각국의 의회에서 비준을 받아야 한다. 법원은 또한 내용에 관해 부정적인 판결이 내려질 경우, 연방 정부에 의한 모든 비준 절차가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점도 명시했다. 따라서 협정의 임시 적용 또한 취소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판결이 곧 자유무역 반대 진영의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하나의 첫 걸음이 될 수는 있다. 이는 곧 자유무역 협정이 상원(주 의회)과 하원 모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는 좌파 정당과 녹색당이 16개 주 가운데 12개 주에서 대연정으로 집권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 주 의회가 협정을 승인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사민당과 기독민주당, 기독사회당 등은 기독사회당이 집권한 바이에른 주를 포함해 4개 주 밖에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독일 내부의 이런 상황에서 자유무역협정이 의회의 벽을 통과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글·페테르 발 Peter Wahl
세계경제환경개발협회장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역대학원 졸업. 역서로 <22세기 세계> 등이 있다.


(1)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의 ‘범 대서양 자유무역지대’ 웹 특집 기사 및 피에르 콜러&세르바스 스톰의 ‘Rejet wallon du CETA, nouvel accroc pour le libre-echance’, ‘La valise diplomatique’, 2016년 10월 14일, www.monde-diplomatique.fr 참고.
(2) TNS 자회사이자 독일 최대 여론조사 기관인 Emnid에서 실시한 조사 내용. 
(3) 모드 벌로&라울 마크 제나, ‘국제중재라는 골칫거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6년 2월호. 
(4) 독일의 사민당과 결연을 맺은 오스트리아 사민당(SPÖ)도 모든 당원들의 의견을 묻기 위해 포괄적 경제무역협정에 관한 총투표를 조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