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SBC, 아편무역으로 세운 금자탑

2010-02-04     장루이 콘

아이티 지진 발생 직후 미국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지진 피해자들을 위해 100만 달러를 기부했다. 곧이어 발표된 골드만삭스의 2009년 경영순이익은 134억 달러에 이르렀다. 9분간의 투자 활동으로 얻은 수익 규모에 걸맞은 훌륭한 제스처였다. 하지만 금융기관의 사치스러운 외관 뒤에는 혼탁한 역사가 숨어 있기도 하다.

골드만삭스의 전직 간부가 탈세 혐의가 있는 고객 명단을 프랑스 국세청에 넘기면서 매일 신문 1면에 오르내리는 네 글자가 있다. 바로 HSBC이다. 이 넉 자가 감추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영국 은행’이라는 점일 것이다. 사실 HSBC는 ‘홍콩상하이은행’의 약자로, 오늘날 세계 최대 은행그룹 중 하나이며, 템스강변에 영국 본사가 있다. 중국 내 영국 상공인들에 기원을 둔 HSBC의 역사는 바다와 아편에서 시작되었다.(1)
 
페닌슐러앤드오리엔탈기사(P&O)는 19세기 초 대영식민제국의 수도인 런던에서 설립되었다.(2) 그러나 P&O사는 잇따라 시련을 맞았다. 1837년 9월 1일 첫 화물을 싣고 런던을 떠난 증기선 ‘산후앙’호가 수심이 얕은 바다에서 좌초되고 말았다. 다른 선박도 상당수 침몰했는데, 아부 누하스 산호초 주변에서 잔해가 발견된 ‘카르나틱’호도 그중 하나였다.

그러나 P&O사는 역경을 이겨냈다. 1839년 P&O사는 지브롤터와 몰타를 지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로 가는 우편물 수송 계약을 수주했다. 그리고 트랜스애틀랜틱기선사(Transatlantic Steamship Company)와 합병한 뒤, 1844년께 최초의 지중해 호화 유람선을 띄운다. 그로부터 10년 후, 까다로운 협상 끝에 P&O사는 독립성을 유지한 채 브리티시인디아기선사(British India Steam Navigation Company)와 합병했다. 브리티시인디아기선사는 인도 콜카타와 버마 랑군 사이 우편물 수송선을 운영하던 회사로, 당시 이 회사의 소유주였던 스코틀랜드 출신 식민지 관료인 제임스 매케이는 P&O사의 회장직을 맡아 브리티시인디아기선사와 통합한다.

매케이 회장은 1912년 1월 멸망한 중국 청나라 시대 교통부 장관인 성쉬안하이와 친분을 유지했다. 양국의 정치적·군사적 긴장에도 불구하고, 서양기술 도입에 적극적이던 성 장관은 상하이에 군사설비 및 기계, 엔지니어링 전문학교인 자오퉁대학 설립을 적극 후원하고, 홍콩에도 유사한 학교를 설립했다. 상하이 교육 개혁에 중대한 역할을 한 성 장관은 상하이를 중국 제1의 기술도시로 육성하려 했다. 1902년 성 장관과 매케이 회장은 중국과 영국 간 상표 및 특허 보호에 관한 협약인 ‘매케이 조약’을 체결한다.

이 시기, 또 다른 스코틀랜드 출신인 토머스 서덜랜드가 P&O사에 합류했다. 서덜랜드는 홍콩의 신항만 건설에 참여하면서 P&O사 간부로 취임하는 한편, 1863년 HWD(Hongkong & Whampoa Dock)사의 초대 회장직을 맡았다. 당시 인도에서 들어온 아편이 해운 화물의 70%를 차지했는데, 중국 정부의 극심한 반대에도 아편은 영국 중개업자들을 통해 중국인에게 판매되었다.

서덜랜드는 당시 상황이 상업은행 설립에 유리한 여건임을 재빨리 파악했다. 동업을 통해 그는 1865년 HSBC로 널리 알려진 홍콩상하이은행을 설립한다. 프랑시스 콤리가 의장을 맡은 HSBC의 이사회에는 창립자인 토머스 덴트의 이름을 딴 덴트상사(Dent & Co)가 참여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존경할 만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강직함과 탁월한 역량으로 명성이 높았던 중국 고위 관료인 린쩌쉬(임칙서)이다. 그는 중국 정부가 금지한 아편을 취급하던 덴트사의 아편 창고를 단속하기 위해 덴트 체포령을 내리는데, 이는 제1차 아편전쟁의 여러 원인 중 하나가 된다. 하지만 제1차 아편전쟁으로 1842년 8월 중국은 영국과 최초 불평등 조약인 ‘난징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제2차 아편전쟁(1856~60) 뒤 영국은 프랑스와 함께 중국으로부터 영토 할양을 받아내는 한편, 외국 상인에 대한 개항과 아편무역 합법화를 강요한다. 토머스 서덜랜드가 HSBC를 창립한 것은 전쟁 종결 뒤 5년이 지났을 무렵이다. 이 은행은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고 볼 수 있는데, 중국어로 HSBC의 일부 문자는 ‘축적하다’, ‘수확’, ‘부’를 의미한다.

HSBC가 초기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은 인도와 중국 윈난에서 반입된 아편에서 거둔 수확 덕분이었다. 1920년을 지나면서 HSBC는 마닐라와 방콕에 지점을 설립한다. 1949년 이후에는 홍콩을 중심으로 사업을 벌이다가, 1980년과 1997년 사이 미국과 유럽으로 진출한다. HSBC가 본사를 홍콩에서 영국으로 옮긴 것은 홍콩 반환(1997년) 직전인 1993년이었다.

1999년 HSBC홀딩스는 뉴욕 증권시장에서 3순위를 차지하며 상장된다. HSBC그룹은 현재는 HSBC USA에 합병된 리퍼블릭뉴욕사를 인수하는 한편, 룩셈부르크에선 사프라리퍼블릭홀딩스를 인수해 HSBC리퍼블릭홀딩스로 개명했다. 2007년 HSBC그룹은 세전이익 240억 달러라는 기록적인 수익을 달성했는데, 이 중 60%가 아시아와 중동, 라틴국가 신흥시장에서 거둔 것이었다. 사상 처음으로 중국에서 거둔 누적 수익이 10억 달러에 이른 것도 2007년이었다. 이러한 성공은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06년 3월 스티븐 그린이 HSBC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2008년 2월에는 빈센트 청이 HSBC은행 아시아 지역 지사장 자리에 임명되었다. 빈센트 청이 1995년에서 1997년까지 홍콩 정부의 최고 입법기관이던 중앙정책조 자문위원을 역임했고, 중국인민공화국 제11차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3) 소속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그의 취임은 놀라운 것이었다.

글•장루이 콘 Jean-Louis Conne
자유기고가. 주요 저서로 <티베트의 십자가>(Editions mondialis·Bex/Chiang·2009년 5월) 등이 있다.

번역•김윤형 hibou98@naver.com
파리3대학 통번역대학원 졸.

<각주>
(1) 이 기사는 스위스 지역 일간지 <르 누벨리스트> 2009년 12월 21일자에 처음 보도되었다.
(2) P&O는 2006년 39억 파운드(약 43억4천만 유로)에 두바이포츠월드에 다시 매각되었다. 두바이포츠월드는 세계 3위의 항만운영회사로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정부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두바이월드의 자회사이다.
(3) 자문기구이며, 연 1회 회의가 개최된다.

 


 

다국적기업 HSBC

HSBC그룹은 전세계 83개국에 1만 개 지점을 두고 있다. 중동에 196개, 터키에 242개, 아르헨티나에 248개, 캐나다에 313개, 중국에 448개, 프랑스에 833개가 있다. 또한 멕시코에는 1625개 지점이 있고, 미국 내 1651개, 브라질에 1722개, 영국에 1678개가 있다. 스위스에는 단 18개 지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파라과이(6개 지점), 카이만섬(15개), 버뮤다(16개), 콜롬비아(35개), 살바도르(68개), 파나마(83개), 앵글로노르만 군도(35개)에도 지점이 분포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