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임대주택난에 시달리는 시카고

2016-10-31     주디스 쉐트리
 
1995년 이후 미국에서는 매년 1만 개 이상의 공공임대주택이 사라지고 있다. 그동안 대부분의 대도시는 시카고 시를 본보기로 삼아, ‘계층 간 혼합거주’ 정책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실제로 이 정책은 그저 공공임대주택을 일반주택으로 전환시키며, 오히려 서민층을 도심 밖으로 내쫓는 데 일조하고 있을 뿐이다.
 
 
시카고 주민들이 지도를 펼쳐 래스롭 홈스 주택단지의 위치를 확인한 것은, 오래 전 이 단지의 난방시스템이 고장 나 하얀 김이 새어나온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였다. 지금은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창문에 갈색 커버가 쳐진 3~4층짜리 건물을 보게 되면 ‘아, 래스롭 홈스 주택가구나’하고 알아본다. 마치 속이 텅 빈 알껍데기 같은 36평 남짓한 래스롭 홈스 단지는 시카고 북서부,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 중인 세 동네의 교차점에 자리 잡고 있다. 그곳에는 ‘그레이스톤’이라고 불리는 우아한 현관문으로 장식된 시카고의 전형적인 잿빛 석조가옥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대개 족히 1백만 달러는 더 줘야 살 수 있는 집들이다.
1930년대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래스롭 홈스 지역에 건설된 공공임대주택은 모두 925호였다. 그러나 오늘날 세입자가 거주 중인 주택은 기껏해야 130호에 불과하다. 나머지 주택들은 텅 비었거나 심하게 낙후됐다. 2000년 이후 이곳에 거주허가를 받은 가구가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공공임대주택 공급난을 해결하기 위해 일반 주택단지 이전자에 대한 지원금, 일명 ‘바우처’를 지급하면서, 이곳 주민들은 지원금을 챙겨 하나둘 동네를 떠나가고 있다. 대개 그들의 주요 정착지는 시카고 남서부의 고립된 빈민가다. 
세월과 함께 동네는 형편없이 낙후됐지만, 롤리타 곤잘레스는 “월세 200달러에 가스와 전기까지 들어오는 집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은 상당한 행운”이라고 자위했다. 래스롭 홈스의 임대료는 세입자의 소득 수준에 따라 200~900달러까지 탄력적으로 운용된다. 반면, 도심에 위치한 일반 주택단지에 방 2개짜리 집을 구하려면 족히 1,800달러는 줘야 한다. 어머니, 그리고 형제자매들과 함께 레스롭 홈스에서 성장한 곤잘레스는 아직 이 동네에 머물고 있는 다른 주민들처럼, 타 지역으로의 이주를 원하지 않는다.
공공임대주택 거주 인구가 전체 가구의 단 2%에 불과한 미국 같은 나라에서(프랑스는 17%에 이른다), 인구 270만 명의 도시 시카고에서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사업을 관리하는 CHA(Chicago Housing Authority: 시카고 주택국)는 실로 거대한 공룡이다. 주택공급이 최절정에 달한 시기, CHA는 무려 4만 채의 아파트와 17개의 주택단지(미국에서는 ‘Projects’라고 불림)를 보유했다. 그 중 11개 단지는 이제는 너무도 낡아버려서 최빈곤층의 거주지로 쓰이고 있다.(1)
2000년 시카고 시는 대대적인 공공임대주택 재건축 사업을 시행했다. 20년 이상(1955~1976) 시카고 시를 이끈 리처드 J. 데일리의 아들이자, 본인도 직접 22년 간 시카고의 시장을 역임한 리처드 M. 데일리가 이 사업을 추진했다. 투자금 15억 달러 이상 규모의 재건축 사업에 따라, 시카고 시는 총 1만 8천개의 주택을 허물고, 2만 5천개를 리모델링하거나 다시 지을 예정이었다. 그 중 7천 7백개는 ‘계층 간 혼합 거주’에 할애할 계획이었다. 시카고 시는 부동산개발업자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민관협력사업을 추진해 업체에게 상당 수준의 세금공제혜택을 제공했다.
그러나 사회학자 로랑스 제르베(2)가 지적했듯, ‘시카고 민영화’ 바람의 일환으로 시행된 이 ‘혼합거주형 재건축’ 사업은 오히려 공공임대주택 공급량의 철저한 손실로 귀결됐다. 가령 시카고 시가 추진하는 래스롭 홈스 단지 재개발 사업은 본래 925개였던 공공임대주택을 400개로 줄였다. 한편 222개는 중간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으로, 294개는 시장가를 적용해 매매 및 임대 목적의 주택으로 할애할 예정이다.
CHA의 본청 관료들은 하나 같이 “래스롭 홈스를 활기 찬 계층혼합거주형 지역사회로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 그들의 계획은 시카고의 공공임대주택단지를 축소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학의 마크 조셉 교수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혼합거주형 재건축 사업을 장려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가령 혼합거주는 주민들이 다양한 삶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고, 거주환경을 개선하는 한편, 범죄를 줄이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게다가 일부 지역에서는 사회·정치적 자본의 확대를 통해 좀 더 체계적인 주민 활동을 조직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취약계층 몰아내는 공공임대주택 사업
 
그러나 마크 조셉 교수는 이런 주장에 대해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그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뒤섞이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조셉 교수는 시카고 혼합거주지의 거주민들을 대상으로 수백 회에 걸쳐 실시한 인터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일부 저소득층 가정은 혼합거주지역 내에서도 여전히 소외감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그들은 부유층 이웃과는 거의 왕래가 없다.”
저소득층 주민은 새 거주지에 배정 받기 위해 아주 길고도 험난한 선별 과정을 견뎌내야만 한다. 그 결과 2011년 시카고에서는 철거에 들어간 공공임대주택 거주민이 혼합거주형 재건축 주택으로 이주한 비율은 11%에 불과했다. 나머지 주민은 일반주택단지나 혹은 시카고 내 다른 공공임대주택단지로 보금자리를 옮겨갔다. 결국, 공공임대주택 재건축 사업이 취약계층을 다른 곳으로 쫓아내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여전히 래스롭 홈스에 남아 있는 100여 가구도 이런 현실을 우려한다. 비록 CHA는 틈만 나면 여러 지구에 분산시키더라도, 어떻게든 기존의 공공임대주택을 허물고 똑같은 건물을 다시 짓겠다고 공언한다. 그러나 경험상 그들의 말은 결코 믿을 수 없다. 래스롭 홈스의 거주민이었던 바바라 번스도 시카고 재건축 사업 위원회에 출석해, 그 자리에서 불신감을 드러냈다. “CHA는 집을 허물어 새로운 공공임대주택을 마련해주겠다고 입이 닳도록 약속해왔다. 본래 4천 4백개에 달하던 로버트 테일러 홈스 단지의 주택 중 800개를 신축하겠다고 큰소리를 쳐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재건축된 주택 수는 기껏해야 300개에 불과하다.” 2007~2010년만 해도 시카고 시의 신규 공공임대주택 수는 연간 700~900개에 달했다. 그러나 이후 경제위기가 발생하면서 재건축 속도는 한층 더뎌졌다. 2011년 재건축된 신규 공공임대주택 수는 고작 424개, 2015년에는 40개에 그치기도 했다.
52세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타이터스 커비는 1991년부터 래스롬 홈스에 거주해왔으며, ‘래스롭 홈스 지역 자문 위원회’의 대표를 맡고 있다. 커비는 거의 매일 위원회 사무실의 문턱이 닳아 떨어지도록 드나들고 있다. 이 날도 “래스롭 홈스의 세입자 누구도 공사기간 중에 이주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의 합의서 작성을 위해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하고 온 커비는 말했다.
“CHA는 불신을 조장했다. 그들은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남발했다. 주민들은 여전히 아무런 답도 얻지 못했고, 서서히 지쳐가고 있다.”
로건 스퀘어 지구의 입주민 권익 보호단체에서 주택문제를 맡고 있는 존 맥더모트도 한 마디 거들었다. “무엇보다 서면 약속을 받아야 한다. 그들은 시카고의 계층 간 분리를 조장하는 데 어마어마한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
2015년 주민들의 불만은 그대로 투표에 반영됐다. 인구 중 흑인이 33%, 히스패닉계가 29%를 차지하는 시카고에서는 흔히 지방선거가 열리면 무조건 1차 투표에서 민주당 후보의 당선이 결정된다. 그러나 올해, 오바마 대통령의 전 비서실장이자 이번에 퇴임하는 현역시장 람 이매뉴얼은 2차 투표까지 갔고, 천신만고 끝에 가까스로 재선에 성공했다. 
선거유세 기간 중 몇몇 단체는 주택문제를 주요의제로 만들기 위해, 공공임대주택 배정을 받지 못해 대기 중인 서민가구가 이토록 많았던 적은 처음이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2014년 말 공공임대주택 배정을 기다리는 대기자 수는 28만 가구 이상에 달했다. “랜스롭의 빈 집을 노숙자나 퇴역군인을 위해 쓸 수 있지 않은가. 빈 집을 활용하자!” 맥더모트가 분통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러나 15년이 지나도록 상황은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동네 주민들은 하나둘씩 떠나가고 있지만, 언제 공사가 시작될지는 아무도 알 길이 없다.  
 
 
글·주디스 쉐트리 Judith Chetrit
기자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Bradford D. Hunt, <Blueprint for Disaster: The unraveling of Chicago Public Housing>, 시카고 대학 출판부, 2009년.
(2) 로랑스 제르베, <시카고 민영화>, 파리소르본 대학 출판부, 파리, 201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