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시아니즘의 기원

2016-10-31     페리 앤더슨

 

건국 이후, 미국은 군사개입주의와 고립주의의 시대를 번갈아 경험했다. 이 두 가지 전략은 겉으로는 상반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예외주의’를 예찬하는 이른바 민족주의 이념과 맥을 같이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대외정책은 국내 정치시스템으로부터 상당히 자유로웠다. 미국의 정치시스템은 언제나 두 개의 유권자 진영으로 갈리곤 했다. 각 진영을 규정짓는 범위는 다소 유동적이었지만, 양측의 대립은 시대가 갈수록 더욱 격렬해졌다. 반면 외교정책의 경우는 달랐다. 외교정책에 있어서만큼은 모두 같은 비전을 가지고 같은 목표를 추구했기에, 양 진영 사이에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한 마디로 미국의 제국 관리와 국가 통치는 각기 다른 두 개의 세계를 형성했다.(1) 두 세계 간의 차이는 한편으로는 모든 자본주의 민주국가에 존재하는 두 부류의 차이와도 상응했다. 즉 외교계와 재계, 그리고 서민들 간의 차이에 부합했다. 사실상 외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서민 유권자보다는 은행가, 외교관, 기업 경영자, 사업가 등에게 더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그런 만큼, 실상 후자가 제시하는 해결책이 여러모로 훨씬 적절하고 한층 일관적이었다.
미국의 경우, 외교정책의 독자성은 미국의 고유한 두 가지 특성에서 비롯됐다. 첫째, 미국의 유권자는 다른 나라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편협성이다. 둘째, 미국의 정치시스템은 건국의 아버지들이 의도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행정부에 점차 전폭적인 수준의 외교정책수립 권한을 허용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미국 대통령은 국내정치에 있어서는 번번이 의회의 대립에 부딪혔지만 해외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운 정책적 자율성을 누렸다. 그 결과 20세기 중반 이후 미국에서는 대통령을 구심점으로 한 소수의 외교전문가 집단이 형성됐다. 그들은 국내정책에서는 볼 수 없을 만큼, 매우 특별한 미국 고유의 이념적 성향을 표방했다. 미국의 대외관계에 관한 ‘대전략(Grand strategy: 국가목표, 특히 전쟁의 정치적 목표 달성을 위해 국가 또는 국가군의 전 자원을 조정 및 통제해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역주)’도 바로 그런 전문가 집단을 통해 수립됐다.
1945년 이후 형성된 미국의 패권 질서는 그 역사적 유래가 매우 깊다. 상당히 보기 드문 사례지만, 18세기 북미 지역에 처음 미국이란 신생국가가 들어섰을 때부터 이미 제국 형성의 모든 조건들이 충족됐다. 즉 미국은 봉건적 구세계와 그 제약에서 자유로운 식민지 경제라는 장점을 지녔을 뿐 아니라, 두 개의 큰 바다에 둘러싸인 안전한 대륙에 자리한다는 이점까지 누렸다. 이런 이점들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가장 광활한 국민국가에, 막 태동한 가장 순수한 형태의 자본주의가 형성됐다. 이런 조건은 미국이 식민지 독립 이후 한 세기에 걸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탄탄한 물적 토대가 됐다. 그러나 미국이 누린 이점은 이러한 경제적, 지리적 조건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은 이에 더해, 미국민의 정신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문화적, 정치적 유산도 함께 누렸다. 먼저 미국의 국민은 초기 청교도 식민지 시절로부터 “우리는 신성한 소명을 띤 신의 은총을 받은 나라”라는 일종의 선민사상을 물려받았다. 또한 독립 전쟁을 거치면서 마침내 신세계에 자유헌법에 기초한 공화국을 설립했다는 신념도 물려받았다. 
 
이례적인, 그러나 세계의 모범이 될 국가
 
이렇게 네 가지 요인을 바탕으로, 미국의 민족주의는 순식간에 미국 제국주의의 이념적 토대를 형성하게 된다. 미국이 표방한 제국주의는 대극(對極)의 복합체(Complexio oppositorum)로 특징지어진다. 한 마디로 그것은 예외주의와 보편주의의 통합을 의미했다. 다시 말해, 세계 유일의 국가인 미국은 전 세계가 따라야 할 모범, 역사적으로 전례를 찾기 힘들지만 결국엔 모두가 따라야 할 질서로 간주됐던 것이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생각했던 미국의 번영은 무엇보다도 먼저 미주 대륙 내에서의 영토 확장을 의미했다. 토머스 제퍼슨은 1801년 제임스 먼로에게 말했다.
“현재의 이익 때문에 우리가 지금 현 국경선 안에 머물러 있을지라도, 먼 훗날을 기약한다는 게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먼 훗날 우리가 널리 번성해 현재의 국경선 너머로 영토를 확장하고, 그리하여 대륙의 북부는 물론 남부까지도 우리와 같은 법률에 의거해 같은 방식으로 통치를 받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로 뒤덮일 순간을 충분히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미국의 번영은 영토 확장에 국한되지 않았다. 미국은 더 나아가 정신적·정치적 영향력의 확대를 노렸다. 존 애덤스는 1813년 제퍼슨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렇게 썼다. “덕성 높고,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춘, 우리의 순수한 연방 공화국은 영원토록 지속하며, 세계를 지배하는 한편, 인간의 완성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시각은, 19세기 중반에 이르면서 하나로 통합됐다. 1845년 존 오설리번이 남긴 미국의 ‘명백한 운명’에 관한 글이 그 사실을 여실히 확인해준다. 이 글에서 오설리번은 “미국민은 명백한 운명에 따라, 지금의 영토를 더욱 확장해 자유와 자치 정부라는 위대한 실험을 위해 신께서 내려주신 대륙을 전부 다 소유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신의 손이 갓 빚어낸 이 강건한 나라”는 “세계 모든 나라들에 관여할 수 있는 신성한 소명”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체 누가 “한계를 초월한 어마어마한 미래가 곧 위대한 미국의 시대”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감히 의심할 수 있겠는가?(2) 3년 후 멕시코의 절반은 그렇게 미국에 병합됐다. 미국은 현 국경선까지 영토를 확장한 이후, 이번에는 영토가 아닌 무역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관심의 대상도 남쪽에서 서쪽으로 옮겨갔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국민들에게 말했다.
“여러분은 이미 미주대륙의 강자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만족하시겠습니까? 저는 여러분이 여기서 만족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세계와 무역을 원합니다. 당연히 대상지는 태평양 지역입니다. 가장 많은 것을 수확하고, 가장 많은 상품을 생산하고, 또 가장 많은 상품을 해외에 내다 파는 나라. 바로 그런 나라가 세계강국이 돼야 하고, 또 그렇게 될 것입니다.”(3)
말하자면 육지에서 ‘명백한 운명’과 멕시코 정복이 했던 역할을, 이번에는 해상에서 매튜 페리 해군 제독과 문호개방정책(4)이 대신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즉 미국은 동방에서 해상무역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그곳에다 자유무역과 기독교를 전파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기 시작했던 것이다. 곧이어 미국은 스페인과 전쟁을 벌였다. 고전적인 제국 간 갈등이었다. 이 전쟁으로 미국은 태평양과 카리브해 지역에서 식민지를 확보했고, 당당히 강대국의 대열에 낄 수 있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집권기(1901~1909)에 콜롬비아는 영토 일부를 미국에 빼앗겼다. 두 바다를 연결하는 통로에 위치한 파나마가 미국의 식민지가 됐다. 이제 미국의 국민과 그들의 소명에 대한 수사학에서는 인종(앵글로색슨에 대한 교육과 연대의식)만이 아니라, 종교, 민주주의, 무역까지 가세했다.
그러나 이런 과정 중에 반대의 목소리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매 단계마다 미국에서는 “명백한 운명”론이라는 과대망상증과 멕시코 강탈, 하와이 점령, 필리핀에서 자행된 학살극 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때로는 미공화국이 물려받은 반식민주의 유산을 배반한 모든 종류의 인종주의와 제국주의를 공격하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말하자면 병합이든 개입이든, 해외에서의 모험을 거부하는 행위는 결코 미국의 가치관에 어긋난 것은 아니고, 오히려 다양한 방식으로 그 가치관을 충실히 이행해내는 일이라는 시각이 존재했다. 
처음부터 예외주의와 보편주의의 결합은 잠재적인 불안정성을 내포했다. 미국은 예외성을 인정하는 순간, ‘훌륭한 모범국가’가 되기 위해 타락한 세계와는 다른 모습으로 남아야 했다. 반면 보편주의 쪽에 서는 경우, 세계의 구원자로서 메시아적인 적극적 행동주의에 나서는 것이 허용됐다. 결국 미국의 여론은 양극단 간에서, 다시 말해 앤더스 스테판슨이 말한 ‘분리(Separatioin)’와 ‘갱생을 위한 개입(Regenerative intervention)’ 간에서 수차례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글·페리 앤더슨 Perry Anderson
역사학자. 이 글은 필자가 쓴 <미국은 어떻게 자신과 비슷한 모습으로 세계를 창조했는가? 미국의 외교정책과 사상가들>(Agone·마르세유·2015)에서 발췌했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대선전 기간에는 일종의 관례처럼 언제나 현직 대통령의 외교정책이 지닌 취약점과 실책이 도마 위에 오르곤 한다. 그러나 새로 취임한 대통령은 항상 역대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그대로 고수했다.
(2) Anders Stephanson, <Manifest Destiny : American Expansion and the Empire of Right>, Hill and Wang, 뉴욕, 1995년.
(3) 같은 책. 온갖 기괴한 국수주의 주장들을 모아놓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반대 진영의 (대체로 격렬한) 반론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4) 문호개방정책이란 20세기 초 미국의 대중국 외교 정책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