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2016-10-31 실비 로랑
2년 전 미국에서 신세대 흑인 민권운동이 등장했다. “블랙 라이브즈 매터(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라는 슬로건 아래 결집한 그들은 경찰 폭력, 경제 불평등, 가부장제 등에 맞서 싸우고 있다. 그들은 새로운 형태의 민권운동에 매진하며, 인종 간 평등을 쟁취하기 위한 과거의 투쟁을 계승해나가고 있다.
인종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심각한 현실부정 증세가 미국의 공론장을 뒤덮곤 한다. 이를테면 저마다 “상호간의 갈등”을 해결하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거나, 심한 경우 어떤 이들은 부끄러움마저 잊은 채 시위자들이 바로 댈러스 경찰 저격사건(2016년 7월 댈러스 흑인총격살해 항의시위 현장에서 경찰관이 저격 살해당하는 보복사건이 발생했다-역주)의 공모자 내지는 주범이라고 떠들어대곤 한다. 그럴 때면 몇 가지 사실이 우리를 부정할 수 없는 진실과 대면하게 해준다. 가령 2016년 1월 1일 이후 경찰의 손에 죽음을 당한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최소 123명에 달한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반면 흑인에게 총격을 가한 경찰 가운데 감옥에 간 사람은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었다. 흑인 남성은 미국 전체 인구의 6%에 불과하지만, 2015년 무방비 상태로 경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한 민간인 가운데 흑인 비중은 무려 40%에 달했다. 백인 중산층이 모여 사는 평온한 외곽지대와 달리, ‘유색인종이 모여 사는 지역사회(Colored communities)’는 어디를 가나 항시 경찰이 순찰 중이다. 유색인종 거주지역은 1970년대부터 경찰국가체제의 감시와 처벌에 시달려왔다. 일견 식민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경찰국가체제가 흑인 게토지역의 ‘평화 유지’에 앞장서온 셈이다. 사실상 이런 종류의 광증은 과거 ‘흑표범단(Black Panthers·1965년 결성된 미국의 급진적인 흑인운동단체-역주)’의 활동에도 불을 지핀 바 있다.
흑표범단은 급진적 민권운동의 대안으로 1966년 창설됐다. 이 단체는 경찰의 폭력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매우 획기적인 전술을 내놓았는데, 총기를 휴대한 채로(캘리포니아주에서 총기 휴대는 합법이다) 오클랜드 거리를 순찰하며 경찰차를 감시하는 것이다. 그러다 혹 경찰이 흑인을 검문하려 하는 순간에, 십여 미터 떨어진 합법적인 거리에서 검문 장면을 면밀히 관찰함으로써 주위를 의식한 경찰이 행동거지를 조심하도록 압박했다.
흑인 민권운동의 부활
2016년, 여전히 오늘날의 세상도 경찰 감시가 필요한 시대다. 마틴 루터 킹, 말콤 X, 흑표범단의 자손들도 그런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과거 흑표범단이 있었다면, 지금은 비영리조직 ‘살인은 이제 그만(Stop the Killing Inc.)’ 회원들이 있다. 가령 루이지애나주 배턴루지 거리를 순찰하던 중 우연히 흑인 청년 알톤 스털링이 백인 경찰 2명과 실랑이를 벌이다 가슴에 총을 맞고 사망하는 사건 현장을 촬영한 것도 바로 그들이었다. 이 사건에서도 동영상 증거는 범죄 성립에 큰 역할을 했다. 최근에 흑인 민권운동가들이 새로운 무기로 내세우는 것은 바로 휴대폰이다. 휴대폰은 흑인 청년들이 무방비로 경찰 총격에 사망하는 장면을 직접 촬영해 순식간에 인터넷에 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심지어 실시간 라이브로 생중계까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서민가를 찾아가 매번 ‘인권감시미’를 경찰관 뒤에 세운다거나, 휴대용 카메라를 설치하다고 해서, 무조건 경찰에 의한 흑인의 총격 사망 사건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신세대 흑인 민권운동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한계점을 너무도 잘 알기에 그 힘을 결코 맹신하지 않는다. 또한 자신들의 무기가 미국 백인들의 무기에 비해 얼마나 형편없는지도 잘 안다. 미국의 백인 사회는 언제나 눈과 귀를 굳게 닫고 철저히 현실을 외면하곤 한다. 그러니 그들이 시민들의 닫힌 귀를 열도록 목청껏 구호를 부르짖고 용납할 수 없는 장면을 두 눈 앞에 똑똑히 꺼내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무조건 인종평등이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거리를 점거하고, 가두행진을 벌이고, 언론플레이에도 맞서 싸워야 한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한 그 구호를 연호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흑인에게도 살 권리가 있다!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블랙 라이브즈 매터!
‘블랙 라이브즈 매터’ 운동 탄생의 주역 알리샤 가르자는 흑표범단의 도시 오클랜드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우연한 사실이 아니다. 사실상 오클랜드는 캘리포니아주에서 가장 큰 흑인사회 들 중 하나가 자리하고 있는 도시다. 뿐만 아니라 흑인 지역 가운데 사회 참여도 가장 활발하다. 가령 2011년 사회운동가들과 흑인민권운동가들이 대대적으로 결집했던 ‘오큐파이 오클랜드’가 대표적인 예다. 한편 오클랜드는 그밖에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1980년대 초 니카라과 반군의 지원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마약 밀매를 묵인했던 장소이기도 하다.(1) 그 탓에 훗날 흑인 게토지역의 많은 주민들이 ‘마약과의 전쟁’으로 인해 큰 희생을 치러야 했다. 사실상 ‘마약과의 전쟁’은 흑인을 천생 범죄자로 낙인찍으며,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수감률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오늘날 캘리포니아주는 민영교도소 운영, 탁월한 계층 간 공간 분리, 긴축재정 등의 정책에서, 모든 미국 주의 모범이 되고 있다. 물론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소수인종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
가사도우미를 지원하는 (그는 현장에서 가사도우미들의 착취 현실을 자주 목도하곤 한다) 지역 민권운동가 가르자는 구조적인 인종차별이 의미하는 바를 잘 알고 있다. 물론 미국의 모든 사회 시스템이 소수인종 억압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 이미 산전수전 다 겪어 둔해질 법도 하지만, 그녀는 2013년 자율방범대원 조지 짐머맨이 무죄로 방면됐을 때 극도의 분노와 슬픔에 시달렸다. 백인 경찰이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난 것은 벌써 몇 번째인지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당시 배심원단은 흑인 소년 트레이븐 마틴이 플로리다주의 부촌인 스탠포드 대학가를 어슬렁거린 것은 충분히 검문의 대상이 될 만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범죄자로 추정되는 이가 고분고분 경찰의 말을 따르지 않고 저항한 것은 정당방위의 소지가 충분하다고 판결했다. 다른 많은 수백만 명의 시민들처럼 분노한 가르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우리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라는 말로 끝맺음을 하는 한 연대 메시지를 올렸다. 그녀의 두 친구,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패트리스 컬로어와 피닉스에 사는 오팔 토메티도 역시 그녀를 따라 #BlackLivesMatter(#흑인의생명도소중하다)라는 해시태그가 달린 문구를 남겼다. 이 해시태그는 저항자 공동체의 탄생에 모태가 되었다. 사실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매일같이 생명권을 침해받으며 살아가는 수백만 명의 흑인들에게 너무나도 절실한 그 한 마디. 사실상 ‘블랙 라이브즈 매터’는 금세 흑인 민권운동의 슬로건이 됐다.
처음에 본격적으로 ‘블랙 라이브즈 매터’ 운동이 시작된 것은 2014년 온라인을 통해서였다. 미주리주 퍼거슨시에서 발생한 마이크 브라운의 총격 사망 사건과 그로 인한 시민들의 분노가 ‘블랙 라이브즈 매터’ 운동의 방아쇠를 당겼다. 불과 1년 만에 BLM 조직이 전국적으로 확대됐고, 23개 지부가 설립됐다. BLM은 순식간에 ‘블랙 유스 프로젝트 100’, ‘드림 디펜더스’, ‘밀리언 후디스’, ‘핸즈업 유나이티드’를 비롯한 다른 여타의 조직들과 합세해 대규모 흑인저항운동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이들 조직들은 함께 손을 맞잡고 평화시위를 조직했다. 그들의 시위는 비록 평화적이지만, 동시에 정의와 평등을 요구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집요했다. 브라운을 쏴 죽인 대런 윌슨에 대해서는 대배심이 불기소 판결을 내린 반면, 퍼거슨의 시위대에 대해서는 경찰이 과잉진압한 사건은, BLM이 더욱 단단히 결의를 다지게 했고, 언론 역시 이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됐다. 그들은 결국 정부와 지역당국이 더 이상 ‘실수’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경찰의 행태에 대해 본격적으로 조사를 개시하도록 만들었다.
컬로어는 “우리는 수세기째 존재했던 흑인민권운동의 일부일 뿐이지만 예전과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 이제 미국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것이다”(2)라고 설명했다. 그는 BLM이 지난 250여 년 간 흑인교회가 훌륭하게 해온 역할을 따라 흑인고통의 집합소가 되는 것만은 결코 원하지 않는다. BLM 소속 활동가들은 이 단체가 상명하달식 위계서열 조직이 되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알 샤프턴이나 제스 잭슨과 같은 유명 민권운동가들의 영입에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지역분산조직인 BLM은 세 명의 여성이 사령탑을 맡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BLM 조직의 사유화(Personnalisation)에 반대하기에, 공적 발언은 주로 동성애자인 흑인청년 드레이 맥캐슨 등 다른 인물들의 입을 빌려 하곤 한다. 사실 가부장제, 제국주의, 경제 착취, 인종주의는 모두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 격의 재앙들에 해당한다. BLM의 활동가들은 주로 현장에서 과거 진보세력이 눈길을 주지 않던 부류의 유색인종에게 관심을 쏟고 있다. 가령 매춘부,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재소자, 불법체류자 등 한 마디로, 다른 어떤 유색인종보다 피부색의 대가를 한층 더 격심하게 치르고 있는 피억압자들 말이다. 말하자면 엔젤라 데이비스 등이 표방한 마르크스주의적 페미니즘이 바로 BLM에 새로운 길을 활짝 터준 셈이다.
2014년 가을 BLM은 대목 시즌을 맞아 미국 주요 쇼핑몰에서 점령시위를 벌였다. 당시는 많은 유통업체들이 최저임금 논란에 휩싸인 때이기도 했다. 한편 BLM은 대학캠퍼스를 찾아가 집권세력과 그들의 정책이 제기하는 인종차별적 행태에 대해 성토했다. 그들은 미국의 미완성 역사와 그 유산에 대해 깊이 반성할 것을 요구했다. 2015년 여름에는 주로 여성들이 주축이 된 젊은 민권운동가들이 대통령 선거 유세 중인 후보자들의 미팅 현장도 찾아갔다. 그들은 특히 민주당이 내놓은 인종평등 관련 공약의 진정성을 검증하기 위해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공개석상에서 재천명해달라고 경선 후보자들에게 요구했다. 대부분의 의원들은 궁색한 답변만 내놓는 데 그쳤다. 그러나 당시 서투르게 대답했던 버니 샌더스 의원만은 이후 선거전의 방향을 완전히 틀어 BLM의 요구를 담은 정책을 전격 도입했다. 가령 마약 복용 등 비폭력적인 범죄행위에 대한 형량 하한제를 철폐함으로써 소수인종의 과도한 감옥행을 막고자 했다. 사실상 샌더스 의원이 많은 야유에 시달린 것은, 모두 그처럼 경찰 폭력을 인종 불평등의 주된 양상으로 간주하는 BLM의 요구에 부응한 탓이었다.
‘블랙 라이브즈 매터’ 운동은 미국 사회를 총체적으로 분석하며, 과거 마틴 루터 킹이 그랬던 것처럼 사회의 근간을 다시 손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테면 전면적인 시장 논리에 대한 반성을 요구하는 식이다. 미국의 경찰은 표면적으로는 지자체의 관리를 받고 있지만, 실제로는 1970년대 전국적으로 퍼져 2001년 9월 11일 이후 극에 달한 어떤 이념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그것이 바로 인종질서 관리에까지 도입된 신자유주의 이념이다. 흑인 게토 지역이나 서민가에 배치된 경찰은 기업을 경영하는 방식으로 가난을 관리한다. 그들의 모습은 흔히 우리가 개인적으로 경찰에 대해 갖고 있는 일반적인 편견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BLM’이 공개적으로 주장하고, 많은 대학교수 및 민권운동가들이 비난하는 것처럼, 경찰이 유색인종을 괴롭히는 것은 그들 나름대로 긴축재정에 적응하는 한 방식이다. 특히 지속적인 조세감축으로 인해 지자체의 운영 자금이 부족해진 현실에 대응하는 나름의 자구책이다. 이처럼 경찰의 개입으로 취약계층에 대한 착취가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퍼거슨시에서 발생한 마이클 브라운의 총격 살인 사건은 경찰이 왜 그토록 흑인거주지역에서 제멋대로 범칙금을 물리지 못해 안달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가령 흑인은 변호사를 선임할 형편이 안 되고, 범칙금을 내지 않으면 곧장 법원에 소환되기 때문에 만만한 먹잇감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이처럼 경찰들이 흑인들에게서 범칙금으로 뜯어가는 코 묻은 돈은 2015년까지 퍼거슨시의 무려 두 번째 가는 짭짤한 소득원을 제공했다. 가령 교통범칙금(방향지시등이 파손된 상태로 자동차 운행, 횡단보도가 아닌 곳에서 무단횡단 등)을 물려 얻은 소득만 퍼거슨시 전체 예산의 21%를 차지했다.
순식간에 ‘블랙 라이브즈 매터’에 대한 반감이 이토록 커진 이유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3) 사실상 2014년에 들어서면서부터 ‘블랙 라이브즈 매터’의 대두를 막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맹렬하고 무시무시한 BLM 안티 담론이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가장 먼저 경찰노조가 BLM을 ‘인종차별적’인, ‘반경찰’ 조직으로 몰아세웠다. 또한 칼럼니스트들과 의원들도 ‘모든 이의 생명’이 소중하다고 거침없이 주장하면서도, ‘흑인의 생명’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어불성설로 치부하는 등 BLM 조직에 반기를 들었다. 윌리엄 클린턴 전 대통령도 공개적으로 BLM이 “코카인을 팔거나 흑인 아이들을 살해”하는 갱들을 비호한다고 비판했다. 국민들도 사회 분열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BLM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국민통합에 열성적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너무나도 열성적인 BLM 민권운동가들의 활동에 그만 지쳐버렸다. 역설적이게도 대통령이 인종문제 해결을 위한 투쟁에서 거둔 가장 큰 승리는 이 신세대 흑인 민권운동가들의 박멸이다. 사실상 이들 신세대 운동가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이룩한 포스트 인종주의 시대에 대한 커다란 환상을 마구 깨부수며, 선대의 투쟁을 계승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글·실비 로랑 Sylvie Laurent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교수. 주요 저서로는 <마틴 루터 킹. 일대기>(Seuil·파리·2015)가 있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은 레이건 대통령의 명령으로, 사회주의 산디니스타 정권, 한 마디로 잠재적인 반체제 정부에 대항하기 위해, 콘트라 반군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니카라과 반군이 마약(코카인) 밀매로 자금을 마련하고, 이렇게 마련한 자금을 미국과 분담할 수 있도록 은밀히 허용했다.
(2) ‘Black Lives Matter founders describe "paradigm shift" in the mouvement', 미국공영라디오, 2016년 7월 13일, www.npr.org.
(3) 사실상 ‘블랙 라이브즈 매터’는 암묵적으로 용인되는 경찰의 부정부패 행태, 그리고 경찰 폭력이 그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인 더욱 뿌리 깊은 인종차별의 근원 등을 비판해왔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