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의 승리

2016-10-31     장 미쉘 카트르푸앙

전 현직 장관 엠마뉘엘 마크롱, 플뢰르 펠르랭(한국인 입양아, 전 문화부장관), 나자트 발로 벨카셈, 일드프랑스 지역 도지사 발레리 페크레스, 기자 장마리 콜롱바니(<르몽드> 전 발행인)와 크리스틴 오크랑, 사업가 알랭 밍크(<르몽드> 전 감사), 은행가 마티유 피가스(르몽드 그룹의 지분 소유), 전 총리 알랭 쥐페, 이들 간의 공통점은 과연 무엇일까? 바로 ‘프랑스-미국 재단(French-American Foundation)’의 ‘영리더스(Young Leaders)’ 프로그램을 수료했다는 사실이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을 포함한 500여 명의 프랑스 유명인사들도 이 프로그램의 수혜자들이다.

미국에 우호적인 프랑스 인재 양성하기

1981년에 설립된 이 민간재단에서는 2년마다 세미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이 프로그램에 선발된 약 12명의 프랑스 청년들은 2년 동안 비슷한 연령대의 미국 청년들과 교류할 기회를 얻게 된다. 이 프로그램이 내건 공식적인 목적은 프랑스와 미국 간의 대화를 촉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향후 기업가, 정치인, 기자 등 프랑스 사회의 의사결정권자로 성장할 장래 유망한 청년들에게 영미식 세계화의 장점들을 이해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물론 니콜라 뒤퐁 애냥처럼 이런 ‘홀리기 작전’이 먹히지 않는 대상들도 간혹 있기는 하다. 그러나 대부분 이 프로그램을 거친 청년들은 정계와 재계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이고, 반미주의를 고집하지 않는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의 영향력 전략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이 전략은 최근 수많은 유럽의 엘리트들이 공직을 떠나 사기업에 자리를 잡는 현상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가장 최근 사례로는 골드만삭스(Goldman Sachs)로 이직한 조제 마누엘 바호주를 들 수 있다. 전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이제 EU 정치인들과의 두터운 인맥과 자신의 풍부한 경험을 골드만삭스를 위해 사용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유명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과거 그리스가 유로존에 가입할 수 있도록 회계장부를 조작했던 전력이 있다.
민간분야로 전향한 EU 집행위원은 바호주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닐리 크로스가 뱅크 오브 아메리카(Bank of America)로, 카렐 드 휴흐트가 거대 대서양 시장의 중개업체인 CVC 파트너스(CVC Partners)로 자리를 옮겼다. 마리오 드라기는 골드만삭스에 있다가 이탈리아 중앙은행 총재직을 거쳐 유럽중앙은행(ECB)의 총재가 됐다.(1)
민간분야와 공공분야를 활발하게 오가는 모습은 미국에서는 흔한 일이다. 빌 클린턴 대통령의 행정부에서 월스트리트의 요구에 따라 1933년 은행법의 폐지를 주도한 인물들은, 모두 유명 금융 기관으로 이직하는데 성공했다(1933년 은행법은 은행은 증권업무를, 증권사는 은행업무를 각각 금지하는 내용으로, 글래스-스키걸 법으로도 불린다). ‘빅 비즈니스’는 자신에게 도움이 된 이들에게 확실한 보상을 약속한다. 2006년부터 2014년까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는 은행들을 구제한다는 명목으로 8조 달러를 미국경제에 쏟아 부었다. 이후 그는 2015년 미국의 주요 투자회사들 중 하나인 시타델(Citadel)로 자리를 옮겼다. 같은 해, 클린턴의 최측근이자 오바마 행정부의 초대 재무장관으로도 일했던 티모시 가이트너는 세계적인 사모투자회사인 워버그 핀커스(Warburg Pincus)로 이직했다.

달콤한 제안이 쏟아지는 ‘로비의 시대’

재계 역시 앞으로 자신들의 이익과 입장을 대변해주고, 행정부와의 연결고리가 돼줄 인물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선다. 비단 미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이런 전략은 뇌물이나 돈 봉투를 무용지물로 만든다. 부정부패를 저지를 필요 자체가 없다. 시장을 확보하거나 정보를 얻기 위해 직접적인 공갈이나 협박을 하는 일도 더 이상 없다. 지금은 바야흐로 소프트파워, 즉 로비의 시대다.
프랑스에서 최초로 독직행위가 아닌 순수한 의미의 ‘영향력 전략’이 사용된 것은 1986년, 고위 공무원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던 시몽 노라가 65세의 나이로 훗날 리먼 브라더스가 된 종합금융회사 시어슨 리먼 브라더스(Shearson Lehman Brothers)에 합류했을 때였다. 1990년대에는 세계화 현상이 공직자들의 민간행을 부추겼다. 오늘날 프랑스와 유럽시장에 진출하려는 미국의 거대 금융기관들은 프랑스의 엘리트들을 놓고 쇼핑을 즐긴다. 재정분야의 ENA(프랑스 국립행정학교) 출신 고위관료들과 감독관들은 이제 은퇴를 앞둔 나이가 됐다. 이들이 프랑스에서 고위 공무원, 국영 은행의 간부, 대기업 임원으로 일하면서 받던 연봉은 실상 미국의 경우에 비하면 아주 형편없는 수준이다. 은행들과 투자 회사들은 단 몇 년 안에 평생 임금을 벌게 해주겠다고 달콤한 제안을 한다. 어떤 이가 혹하지 않을까? 게다가 시대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르는 듯한 느낌도 준다.
1989년에는 공무원 시절 부가가치세의 아버지로 불리다가, ‘소시에테 제네랄’ 총재를 역임했던 자크 메이유가 골드만삭스 파리의 대표가 됐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우선 필립 라가예트는 자크 들로르 정부의 경제‧재무‧예산부 장관, 국가예탁원(Caisse des dépô̂ts)의 총재직을 거쳐 1998년 JP모건(JP Morgan)에 합류했다. ENA를 졸업한 ‘좌파’ 성향의 공무원들도 정실자본주의의 유혹을 거부하지 못했다. 이들은 선택됐고, 엄청난 보수를 받는 대가로 행정부와의 가교 역할을 하면서 프랑스 기업들의 인수 합병을 도왔다. 
최근 몇 년간, LBO(Leverage Buy Out)방식의 인수를 통해 수백여 개의 기업이 새 주인을 찾았다. 이때마다 은행들은 수수료를 챙겼고, 프랑스의 간부들은 두둑한 사례금을 받았다. 프랑스가 탈산업화되고 있고, 자본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직원들은 해고당하고 있으며, 무역 적자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자본의 거대한 흐름에 편승해 한 몫 잡아야 한다는 사실 아닌가? 예전에 혹은 더 오래전에, 주요 정부기관에서 일하던 공무원들은 국가를 위해 봉사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1990년대부터는 사고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세계화 이후, 공무원들조차 사명감이 아닌 돈을 위해 일을 하게 됐다. 국가자본주의는 구속이 없는 자유분방한 자본주의에게 자리를 내줬다.

미국 엘리트를 닮아가는 
프랑스 엘리트들

이런 현상은 갈수록 심해졌다. 2004년에는 프랑스상업은행(CCF)의 총재이던 샤를르 드 크루아셋이 메이유의 뒤를 따라 골드만삭스에 입사했고, 국제고문직과 골드만삭스 유럽의 부지사장직을 맡았다. 현재 5대 미국 투자은행의 프랑스 지점장은 모두 ENA 출신이다.(2) 프랑스가스공사와 엔지(Engie)의 부사장, 자크 시라크 대통령 정부의 요직을 거친 장 프랑수아 시렐리는 블랙록(Blackrock)의 프랑스 및 베네룩스 지점에 합류했다.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블랙록은 5조 달러에 상당한 자산을 운용하는 세계 최대의 자산 운용사다.
또 한 명의 주목할 만한 인물은 바로 클라라 게이마르, 시라크 정부에서 장관직을 역임했던 에르베 게이마르의 부인이다. 그리고 역시 ENA 출신으로, 2003년 해외투자진흥청장으로 임명됐다. 클라라 게이마르의 수첩에 ENA 출신 고위 공무원들이 얼마나 빼곡하게 적혀있을지 짐작할 수 있다. 2006년에 GE는 클라라 게이마르에게 GE 프랑스 현지법인 대표직과 GE 인터내셔널 부대표직을 제안했다. GE 인터내셔널은 막대한 자금을 관리하고 정부와의 관계를 담당하는 회사이다. 그는 2014년 봄, 알스톰의 에너지 부문을 GE가 인수할 당시 GE와 프랑스 정부 간의 가교 역할을 했다. 인수가 마무리되자 GE의 회장인 제프리 이멜트는 갑작스럽게 그를 해고했다. 그러나 상당한 액수의 보상금이 그에게 지급됐을 것은 자명하다. 공직을 떠난 후 10년 간 게이마르는 프랑스 내에서 주요 미국통으로 통하며, 미국유럽일본 3국 위원회의 회원, 주불 미상공회의소 회장, 프랑스-미국 재단 이사회 회원으로 활약했다.(3)
매력적인 조건을 앞세워 은퇴를 앞둔 고위 공무원들을 영입하고, 프랑스 언론과 정계의 유명인사들을 집중공략하며,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들에게 투자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실행되고 있는 ‘소프트파워’의 비결이다. 청년들에 대한 투자는 알스톰의 경우에도 있었다. 프랑스 정부의 요청에 따라, GE는 3년 안에 프랑스에 1천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GE는 ‘리더쉽 프로그램’을 통해 그랑제콜을 졸업한 우수한 성적의 학생들 240명을 고용하는데 그쳤다. 이 학생들은 GE 내에서 고속승진을 거듭하면서 미국과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게 될 것이다. 뛰어난 인재를 사전에 확보하기 위한 고차원적인 전략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의 입장에서는 유능한 인력의 해외 유출이 가속화될 것이다. 자본의 유출은 곧 인력유출이기 때문이다. 고학력 청년들이 미국을 비롯해  영국, 싱가포르 등 다른 나라로 계속 유출될 것이다. 또한 ‘기업가’라는 새로운 카스트에 소속된 자녀들의 경우 부모의 인맥 덕분에 다국적 기업의 요직을 손쉽게 차지할 수 있다. 오늘날처럼 세계화된 세상에서는, 프랑스의 엘리트들도 미국의 엘리트들과 같은 행동방식과 야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글·장 미쉘 카트르푸앙 Jean-Michel Quatrepoint
기자, 주요 저서로 <Alstom, scandale d'Etat(알스톰, 국가적 스캔들)>(Fayard, Paris, 2016) 등이 있다.

번역·김소연 dec2323@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비키 칸, <EU의 부조리한 낙하산 정책>,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5년 6월호
(2) Cf. Jean-Pierre Robin, <Créer son fonds d’investissement, ainsi font font font les petites marionnettes>, Le Figaro, Paris, 2016년 10월 17일
(3) 1973년 데이비드 록펠러에 의해 설립된 3국 위원회는 미국, 유럽, 일본 간의 관계를 긴밀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참고 : Dian Johnstone, <Une stratégie “trilatéral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1976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