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모스크바가 알레프 전투에 참가하다

2016-10-31     자크 레베스크

 

시리아에서의 직접적인 군사개입에 의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예기치 않은 성공을 거뒀다. 전장에서 지하디스트들을 패퇴시키는데 있어서, 미국보다 유리한 입장에 있는 러시아는 근동에서 의제를 설정하는 키플레이어로 등장했다. 그러나 알레프 전투에서 기어코 우세를 차지하려는 의지는 이런 외교적 성공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
 
2015년 9월 시작된 러시아 군사개입의 첫 번째 목표는 쉽고도 빨리 성취됐다. 그 목표는 당시 여러 달 전부터 영토를 빼앗겼던 시리아 정부의 군사적 패배를 막는 것이었다.(1) 그러나 러시아 공군의 참여는 마찬가지로 시리아 영토의 비행 금지구역 지정을 불가능하게끔 했다. 그리고 2013년 이미 러시아는 시리아로부터 화학무기를 포기하겠다는 다짐을 받아냄으로써,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 체제에 대한 서구의 개입 구실을 제거해 버렸다.(2) 2015년 9월 28일 유엔 연설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이 발표한 목표는 거대하고 야심만만했다. 그것은 미국과 서구의 동맹국들에 대한 도전으로 표명됐고, 미국과 서구 동맹국들을 수세에 몰아넣고자 했다. 그런데 타이밍이 결정적이었다. 유럽에서 시리아 난민 문제가 절정에 이르렀고, 시리아로부터 조직된 IS 테러가 극성을 부리던 때였기 때문이다.
 
푸틴의 권유, “차악(次惡)을 선택하라”
 
푸틴은 알아사드 정부군과 쿠르드족만이 ‘테러’에 용감하게 맞서 싸우고 있다는 점을, 그리고 러시아의 행위는 시리아 정부의 요청에 따라 이루어진 일이므로 서구의 폭격과는 달리 국제법을 준수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동시에 리비아에서 실시된 비행금지구역과 반군에 대한 지원이 무아마르 카다피 체제를 제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모든 국가기구를 파괴해 결과적으로 IS(이슬람국가조직)가 뿌리내리는데 유리한 부식토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시리아가 전략적으로 중요성을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알아사드 체제의 군사적 패배에 의해 똑같은 효과가 급속히 파급될 것이라고 푸틴은 주장했다. 그는 히틀러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1941년 6월부터 소비에트연방, 미국, 영국이 함께 뭉쳐 만든 거대 연합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푸틴은 “서구의 지지를 받아 ‘온건 시리아 반군’으로 불리는 반군 멤버들이 마찬가지로 근본주의 진영을 확대시킬 것”이라고 강조하며 ‘이슬람 세계를 지배하고자’하는 IS의 위험을 분쇄하기 위해 예전과 유사한 연합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푸틴의 이 모든 주장은, 서구를 향해 두 개의 악 중에서 “차악(次惡)을 선택하라”고 권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서구를 향해 시리아에서 IS만 제외하고 모든 전투세력 사이에 휴전할 것을 제안함과 동시에, 자신과 더불어 공동으로 정치적 해결책을 찾자고 제안했다. 서구 지도자들은 오랫동안, 알아사드의 퇴출이 모든 분쟁 해결의 선결조건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런 생각에 놀랄 필요가 있을까? 이런 합의를 깬 최초의 유럽 지도자는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이었다. 2015년 9월 23일, 이 독일 총리는 “알아사드를 포함한 수많은 당사자들과 대화해야 한다”라고 단언했다.(3) 이런 견해에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즉각 동의했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결국 동의했다. 그러나 2015년 11월 13일 파리에서 테러가 발생하자 프랑스 외무장관 로랑 파비우스는 그런 조건을 포기한다. “통합된 시리아는 정치적 과도기를 가지게 마련이다. 바샤르 알아사드가 과도기 이전에 떠나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미래를 위한 보장이 필요하다.”(4)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다른 국가 관계자들은 처음부터 러시아 공군이 IS 기지들에 대해서는 폭격을 거의 하지 않고, 다른 반군 단체들의 기지를 폭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첫 번째 목표는 IS가 아닌 다른 반군 단체들에 의해 위협을 받는 시리아 정부의 지위를 강화시키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 목표가 특히 다가올 협상을 목적으로 시리아 정부를 더 나은 정치적 입장에 위치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서구 파트너들과 서구의 동맹국들에게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12월 18일 러시아는 정치적 해결책과 ‘완벽한 권한을 가진 과도정부의 수립’을 요구한 미국이 제안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해결책에 서명했다. 이런 토대들 위에서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매우 어려운 국제적 협상이 성사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알아사드 정부는 당연히 이 해결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러시아는, 국제적 협조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자국이 시리아 정부에 제공할 수 있었던 군사 원조가 시리아 정부로 하여금 모든 시리아를 다시 통제하게 하거나, 심지어 서구가 지원하는 반군이 장악한 지역들조차 다시 통제하게 할 만큼 충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경건한 소망으로 남은 ‘거대 연합’
 
러시아가 적극 제안한 거대 연합은 경건한 소망으로 남아있다. 차라리 2015년 11월 중순, 러시아 외무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Sergueï Lavrov)와 미국 국무장관 존 케리(John Kerry)가 공동 주재한 ‘비엔나 협상’의 틀에서 함께 모였던 두 개의 연합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러시아가 이끈 연합에는 (현장에서 레바논 헤즈볼라의 지지를 받은) 이란과 이라크가(이라크는 두 번째 연합에도 가입해 있다) 포함돼 있다. 훨씬 더 많은 국가가 포함된 미국의 연합은 50여 국가를 결집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연합에는 훨씬 다양한 국가들이 섞여있다. 특히 터키와 사우디아라비아처럼 휴전 프로세스에 완강히 반대하는 국가들도 포함돼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게 있어서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시리아에서도) 가장 중대한 위험요소는 이란이다. 그런데, 이란의 알코드(Al-Qods) 여단이 시리아 군인들과 교전하고 있다. 터키는 사실상 시리아에서 독립하는 쿠르디스탄(Kurdistan) 국가가 출현할까봐 걱정한다. 그래서 자국 국경 남쪽의 쿠르드족 영토의 병합을 막기 위해 2016년 8월 말 군사 개입을 단행했다. 미국의 압력 하에 비엔나에서 이란과 같은 테이블에 앉은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유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차원은 물론 지역적 차원에서도 정치적 해결책을 찾는 방안은 계속 시도됐다. 러시아와 미국의 공동 압력을 받아, 현장의 교전 당사자들의 ‘포럼’[IS, 알카에다의 분파인 알-노스라 전선(Front Al-Nosra)은 제외]이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특별대표에 의해 제네바에서 개최됐다. 유엔특별대표는, 휴전뿐만 아니라 분쟁의 단계적 해결조건들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당사자들을 여러 차례에 걸쳐 따로따로 만났다. 그러나 성과는 보잘 것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과 러시아 간의 협력은, 2015년 11월 13일 터키 군에 의한 러시아 폭격기의 격추를 견뎌냈을 뿐만 아니라, 레세프 타이이프 에르도간 터키 대통령의 북대서양조약기구에의 원조 요청 시도를 막아냈다. 2016년 3월 14일 푸틴은 놀랍게도 러시아 군의 점진적 철수를 선언했고, 철수는 신속하고 눈에 띠게 시작됐다. 러시아 군의 철수는 무엇보다 알아사드를 향한 메시지였다. 러시아의 군사원조로 시리아 대통령은 잃어버린 영토의 일부를 되찾을 수 있었고, 시리아 제 2의 도시 알레프의 완전 재탈환을 시도하면서 획득한 이점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려 했다. 그것은 2월 27일 러시아와 미국 대표들 사이에 힘들게 체결된 휴전협정을 위반한 것이었다.
확실히 러시아는 자국의 동맹국인 시리아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알아사드는 러시아가 근동에서 영향력을 다시 확보하려고 하고, 시리아가 근동에서 유일한 러시아의 정박지점이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푸틴은 러시아의 개입조건들을 자신이 결정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했다. 알레프 점령은 시리아 인국의 70%가 거주하는 영토에 대한 통제를 시리아 정부가 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알레프 점령은 알아사드에게 자신의 입장을 끝까지 견지하게 해주고, 그리고 반군과의 협상을 실패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러나 알레프 점령은 실현되지 않았고, 새로운 임시 휴전협정이 체결됐다. 푸틴은, 거리를 두기로 선택함으로써, 자신이 시리아에서 추구해왔던 최고의 목표를 위태롭게 하지 않으려 했다. 다시 말해 비록 미국과 유럽에 비해 힘이 약하지만, 러시아가 그들의 불가피한 파트너라는 사실을, 그리고 러시아의 이익이 고려된 협상에 의해서만 중대한 국제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시켜 준 것이다.

휴전협상 파기, 
현재의 비극적 상황을 낳다
 
러시아와 미국의 협력은 휴전협정을 맺고자 하는 과정을 통해, (비록 이런 저런 동맹국들에 의해 이 휴전협정이 어김없이 위반됐지만) 여러 달 계속됐다. 2016년 6월 말, 우리는 오바마가 러시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들었다.(5) 시리아 공군이 지상에 머물러 있고, 시리아가 사우디아라비아와 걸프 만의 군주국들, 터키의 지지를 받는 다른 저항단체들과 휴전을 한다는 약속을 러시아가 시리아로부터 얻어낸다는 조건 하에, IS 뿐만 아니라 ‘알-노스라 전선’을 격퇴하기 위한 공동 군사작전을 실시하겠다는 소식이었다. 케리 국무장관에 의해 전달된 이 제안은 미국 행정부 내에서, 특히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의 강력한 반발을 받았다. 애슈턴 국방장관은 이 제안이 러시아와 시리아에게 지나치게 이득을 준다고 평가했다. 왜냐하면 알-노스라 전선이 단연코 가장 중요한 반군세력인 반면, 온건하다고 간주된 다른 30여 개 그룹은 최대치로 계산해도 전체 투쟁세력의 15%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한편, 카터 장관은 러시아와의 군사정보 공유에 대해 반대했다. 카터는 공개적으로 러시아를 미국의 주요 적대국으로 지칭했는데, 오바마와 케리는 이런 견해를 드러내길 꺼려했다.
<워싱턴포스트>에 의하면,(6) 푸틴이 “우크라이나에서의 군사개입 이후 맞게 된 외교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특히 고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카터가 근거를 대면서 확인시켜줬다. 그 대응으로 펜타곤은 폴란드와 발트 해 공화국들 내에 4천 명의 병력을 새로이 배치함으로써, 냉전이 끝난 후 예외적으로 NATO를 강화시켰다.(7) 이런 견해차와 모순성 때문에 미국이 임무를 수행하기 어려워졌다.
시리아 정부군이 9월 4일부터 지속적으로 알레프 동부를 포위공격하는 동안, 러시아도 오바마의 제안을 받아들이기 위한 자신의 조건들을 제시했다. 러시아는 미국에 다음과 같이 요구했다. 미국의 보호 하에 알-노스라 전선의 부대들과 동행 및 협력하는 전투부대를 제외시키라고 한 것이다. 러시아의 작전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러시아 측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볼 수 있다. 러시아와 미국이 서로 보장할 수 없는 조건들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여기서, 2016년 9월의 휴전협정의 기반이 된, 이전의 불완전한 협상의 취약성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휴전협상의 파기는 현재의 비극적 상황을 낳았다.
대부분은 아니더라도 상당수의 제3전투부대들은 반군 지역 어디에나 존재하는 알-노스라와 분리될 수도 없고, 분리되길 원하지도 않는다. 알아사드 체제의 패배가 이들의 최우선 희망사항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알-노스라 전선은 즉각적으로 제3전투부대들의 적으로 돌아설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제3전투부대들이 알-노스라와 멀어지도록 노력했다. 2016년 8월, <뉴욕타임스> 특파원에 의하면,(8) 제3전투부대 대표들은 사우디아라비아를 통해 미국이 공급하는 상당량의 무기들이(이 무기 중 일부가 알-노스라에게 재판매되거나 건네짐) 현저하게 감소했다고 불평했다. 케리 장관은 대화에서 이 조직들 중 2개가 알-노스라의 ‘하부조직’이라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아 비난 받았다.(9)
라브로프와 케리가 협상해 9월 13일 발효된 휴전기간과 조건은 아주 임시적이고 애매모호해서 48시간마다 수정돼야 했고, 심지어 공개조차 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휴전이 며칠이라도 지속된다면 놀라운 일이다. 그보다 놀랍고, 또 비극적인 일은 휴전이 시리아군에 대한 미국의 공격에 의해 깨졌다는 사실이다. 이 공격으로 6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알아사드는 당연히, 미국의 발표처럼 그것이 실수였다고 믿지 않았다. 그는 미국의 공격을 빌미삼아 전방위에서 공격을 개시하고, 알레프의 완전한 재점령을 시도했다. 휴전이 끝난 지 몇 시간 후, 유엔의 인도주의 물품 호송단이 도시 서쪽에서 폭격을 당했다. 미국은 러시아와 그의 동맹국 시리아를 이 공격의 ‘직접적인 책임자들’로 간주했다. 이 공격으로 2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폭격이 인도주의적 재앙을 야기하고 있을 때도, 러시아는 명백한 유보조항 없이 알아사드를 지지함으로써 상당한 위험을 무릅쓰게 됐다. 러시아는 전투중지를 요구하는 프랑스의 결의안을 막기 위해, 10월 8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비토권을 행사해야만 했다. 베네수엘라만 러시아에 동조했고 중국은 기권했다. 푸틴은 정치적 해결책을 찾기 전에, 자신의 동맹국들의 입장을 받아들이도록 만들기 위해 미국의 상대적 쇠락과 오바마 임기의 종료를 이용할 작정이다. 그러나 푸틴이 협상을 재개하는 수단을 찾아내지 않는다면, 러시아의 신뢰성과 미국 및 유럽과의 미래 관계는 훨씬 험난할 것이다.  
 
 
글·자크 레베스크 Jacque Lévesque
몬트리올 퀘벡 대학 정치과학과 명예교수
 
번역·고광식
파리 8대학 언어학박사로 대학에서 프랑스 언어를 가르치고 있다. <르몽드 세계사 3> 등의 역서가 있다.
 
(1) 알렉세이 말라첸코(Alexey Malachenko), “모스크바의 시리아에서의 도박”,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5년 11월.
(2) 자크 레베스크, “러시아가 국제무대에 복귀하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3년 11월.
(3) <아장스 프랑스-프레스>, 2015년 9월 24일.
(4) <르 프로그레>와의 대담, 리옹, 2015년 12월 5일.
(5) 조시 로진(Josh Rogin), “버락 오바마가 시리아에서 러시아와 더불어 새로운 군사동맹을 구상하다”, <더 인디펜던트>, 영국, 2016년 6월 30일. 
(6) 가레스 포터(Gareth Porter), “시리아 전쟁에 대한 전략 너머의 새로운 싸움”, Consortiumnews.com, 2016년 7월 8일.
(7) 미카엘 클래어(Michael Klare), “대규모 분쟁에 대한 워싱턴의 다양한 시나리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6년 9월.
(8) 마크 마제티(Mark Mazzetti), 앤 버나드(Anne Barnard), 에릭 슈미트(Eric Schmitt), “시리아에서의 군사적 성공에 의해 푸틴은 미국의 대리전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다”, <뉴욕타임스>, 2016년 8월 6일.
(9) 조시 로진(Josh Rogin), “러시아가 시리아 반군 그룹에 선을 대고 있다는 점을 케리 장관이 극구 칭찬하다”, <워싱턴포스트>, 2016년 7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