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에 놓인 북아프리카

2016-10-31     물레이 히캄 엘 알라위

지난 2010년 말, 북아프리카에서 ‘아랍의 봄’이 시작됐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당시 튀니지 독재정권의 붕괴와 함께 연쇄적으로 나타난 수많은 민중 봉기들이 북아프리카 전 지역을 휩쓸었다. 그런데 이러한 변혁의 역사적 전조 또한, 북아프리카에서 이미 나타난 바 있다는 사실은 대부분 잊고 있다. 1988년 10월, 참혹한 내전으로 이어지기 전 알제리 곳곳에서 일어난 대규모 폭동들은 민주주의의 문을 열 가능성을 보여줬던 것이다.

외부의 관점에서는 북아프리카 즉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가 체제와 경제, 외교 등의 측면에서 각기 다른 입장을 지닌 듯 보인다. 그러나 이 세 국가 모두 분쟁 위험과 잠재적 민주화 사이의 역사적 전환점에 다다른 상태다.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의 공통점

세 국가의 공통점은, 북아프리카가 아랍이슬람 세계에서 문화적, 사회적, 지정학적으로 다른 국가들과 다분히 동떨어진 국가들로 여겨진다는 것과 연관돼 있다. 여기서의 ‘문화’는, 엄격한 가치와 행동의 폭을 지칭하는 개념과는 다르다. 물론 언어나 음식에 이르기까지 겉으로 드러나는 유사성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실제로 북아프리카와 근동지역을 “주식으로 쿠스쿠스를 먹는지 쌀을 먹는지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화는 무엇보다도, 공통의 기억과 관습을 심어 체제에 대한 동일한 사고방식을 가지게끔 하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북아프리카 국가들은 자신들의 독립을 중앙집권적 국가기관을 기반으로 이룩했는데, 이는 과거 프랑스 식민정치와 지리적인 특징으로부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태초부터 불안정한 효율성을 지닌 민간 관료주의가 사회와 경제를 제어할 수 있다는 관념과 국가통치원칙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세 국가는 이처럼 유사한 국가제도를 바탕으로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아랍국가들에 비해 민족적·종교적 대립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이라크나 바레인을 뒤흔들고 있는 수니파와 시아파 간 대립도 없고, 레바논의 경우처럼 종파갈등으로 정치가 분열되고 제도가 마비되고 있지도 않다. 물론 모로코와 알제리의 경우, 베르베르인으로서의 정체성 문제가 고질적인 협상주제로 여겨지고 있으며, 알제리 내전(1992~1999)은 언제 어디서든 폭력이 터져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국가들에서는 국가, 민족, 종교 등을 둘러싼 동족잔상의 참극을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북아프리카는 전 세계적으로 독특한 지정학적 입지를 지니고 있다. 다른 아랍국가들은 대부분 미국이나 영국과 관련이 있는 반면, 북아프리카의 국가들은 지금까지도 프랑스로부터 폭넓은 영향을 받는다. 오늘날에는 많은 북아프리카인들이 서유럽에 거주하며, 지중해를 가로지르는 사상, 인적자원, 재화의 왕래를 풍부하게 만든다. 이들은 아랍권을 뒤흔들고 있는 전쟁들과는 상대적으로 먼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에는 합의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으로 인해 특별한 영향을 받고 있지는 않다. 페르시아 만 국가들과 이란 간의 대립이나, 시리아와 예멘을 피로 물들이고 있는 대리전쟁 속 광신적인 이념적 소용돌이의 영향은 더더욱 받지 않는다. 모로코의 경우, 이란과 동맹국들에 대한 아랍 및 서구국가 간 연합에 동참하고 있다. 또한, 예멘 반군에 대항하는 유혈작전에도 참여했고 알제리 역시 리비아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개입을 외교적으로 막기 위해 러시아와 중국 쪽에 손을 들어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경제적, 군사적으로도 막대한 비용을 수반하지도 않고, 정치적 자치권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수준이다.
북아프리카 국가들이 지닌 또 다른 공통점은 여느 아랍국가와 마찬가지로 전제적 권력이 정권을 잡고 있다는 것과, 이들이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일정 수준의 전략적 적응력만을 유지한 채 점차 벙커화 됐다는 것이다. 각국의 지도자들은 국가전체의 번영보다 자신의 생존에 관심을 쏟고 있으며, 모든 형태의 다원주의적 주장을 억압하기 위해 강제권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근동지역 국가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결사조직을 통하거나 정치판에 나서 기꺼이 목소리를 내려는 국민들이 언제나 있었다는 것이다. ‘아랍의 봄’이 북아프리카에서만 두 차례 나타난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이는 정부가 민중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가 현 상태에 반론을 제기할만한 힘과 의지를 겸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북아프리카 국가들은 모두 특수한 난관에 부딪혀있다. 세 국가를 비교하면서 살펴보면, 북아프리카가 어떻게 그토록 유망한 민주화의 잠재력을 지닐 수 있는지, 또한 이들의 필수과제인 정치적·경제적 개혁에 왜 점점 더 큰 비용이 드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북아프리카의 정치여론의 역할은 본질적인 문제이며, 큰 기대를 받고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튀니지가 쟁취한 개방적 민주주의와 모로코, 알제리의 폐쇄적인 체제 간에 존재하는 거대한 격차를 확인할 수 있다.

모로코와 알제리의 경우

‘아랍의 봄’ 이후 지금까지 약 6년의 세월동안 모로코와 알제리의 권위주의 정권은 서로 닮아가는 양상을 보였다. 물론 국가독립의 역사는 서로 다르게 시작했다. 모로코는 400년 전부터 최고 권력을 주장해온 알라위트 왕조에 의한 군주제 형태를 띠고 있으며, 그보다 비교적 근대에 세워진 알제리의 정치체제는 민선에 의한 군부독재로 이루어져 있다. 이 두 정부는 자신들의 정당성을 서로 다른 기반에 두고 있다. 모로코의 국왕은 ‘신자의 사령관’, ‘지상에 드리운 신의 그림자’라는 종교적 위치를 통해 절대 권력을 형성했다. 반면 알제리의 경우, 군부가 독립투쟁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알제리 군부는 프랑스의 식민지배로부터 독립을 이뤄낸 투사들의 직속 후계자들로 구성돼 있어 이론의 여지가 없는 국가의 수호자로 여겨지고 있다. 또한 1990년대 이슬람주의 운동을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 제거해야 할 위험으로 간주하며, 이러한 특징을 강력하게 내세운 바 있다.
그러나 이토록 다른 두 체제가 오늘날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먼저 알제리의 경우, 불투명성과 부패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군부 및 민간 지도층의 권력이 새롭게 정치권에 출현하는 신흥 경제 주체들에 의해 위협받기 시작했다. 왕궁을 둘러싼 일종의 복합적 엘리트 집단인 모로코 정부의 모습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 알제리 대통령은 위기가 일어날 때마다, 체제의 기반은 내버려두고 자신을 지지해줄 새로운 인물들을 편입시키는 방식으로 전략을 바꿨다. 지난 2015년 알제리의 절대적 보안기관이었던 정보국(DRS, 구 보안대)의 해산도, 이런 전략 변화에의 거대한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이와 동시에 알제리 시장경제의 발전은 군부세력과 연결된 민간 경영인 계층을 새롭게 만들어냈다. 이 충신들은 과거의 혁명적 이상의 수준에 따라 평가 받았던 이전 세대들과는 달리, 그들이 가진 즉각적인 물질적 유익에 따라 평가됐다. 과두제는 점점 확대됐다. 그리고 국가의 수장은 그저 ‘동급자들 중 첫 번째(Primus inter pares)’에 불과하게 됐다. 대통령직의 역할은 마침내 모로코 국왕의 경우처럼 보수를 나눠주고, 경쟁적 이해관계를 중재하는 수준이 돼갔다.
반면 모로코의 경우, 의사결정 과정이 불투명해졌다는 점에서 알제리를 닮아가고 있다. 모로코의 국내정치는 전통적으로 공조사실을 숨기지도 않는 국왕과 내무장관 간의, 집중적이지만 예상 가능한 핵심관계가 이끌어왔다. 그런데 경제가 점차 자유화되면서, 신규 비즈니스 계층에까지 권력의 범위가 확대됐다. 이는 알제리의 경우와 같다. 로비가 활발해지면서 지배권력은 더욱 확장된 지지기반을 가질 수 있었다. 또한 국왕 역시 ‘동급자들 중 첫 번째’가 됐다. 즉,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일방적 권력이 이제는 그의 영향권 안에서 경쟁하는 여러 파벌들 사이를 중재하는 수준으로 축소된 것이다. 이러한 권력의 다각화는 의사결정과정의 은폐를 조장했다. 그 결과 모로코 국민들로서는 국가 수뇌부에서 정치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또한 그 과정을 책임지는 주체가 누군지 더 이상 명확히 알 수 없게 됐다.
이 변화의 핵심요소는 엘리트층의 ‘상호의존’이다. 모로코 왕정의 절대성 약화와 알제리의 정보국 해산은 이 신규 지배계층의 재정적·정치적 영향력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평소 이들은 서로 치열한 경쟁에 전념하지만, 위기 시에는 체제보호를 위해 늑대무리처럼 서열을 강화한다. 모로코의 경우 이미 1999년 하산 2세 국왕의 사망 이후, 2003년 테러 이후, 그리고 2011년 곳곳에서 대규모 민중시위가 열렸던 ‘2월 20일 운동’ 이후에도 같은 상황들이 펼쳐졌었다. 알제리의 경우도 만약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병세를 이기지 못하게 돼 군부가 새 대통령을 뽑는 상황에 닥친다면 그와 같은 단결력이 나타날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알제리에는 정권계승 과정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불안도가 더 높을 것이라는 정도다.
이처럼 유사한 논리가 나타난다는 것은, 모로코와 알제리의 엘리트층에게 장기적 관점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현제의 체제와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 전념하고 있어서 다른 정치적 질서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반란이 일어나 새로운 체제가 도래할 경우, 이에 적응하기 위한 대비도 전혀 돼있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모로코는 알제리와 달리 석유수출을 통한 수익이 전혀 없고, 군주제를 통해 왕정을 중심으로 단결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알제리보다는 분명 나은 상황이다.

국민주권의 가능성을 보여준 튀니지

반면 튀니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튀니지의 경우 2010년부터 2011년까지 이어진 반란을 통해 오랫동안 군림해온 전제정권이 신속하게 무너졌다. 공무원들을 포함해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 전 대통령 정부와 연관이 있는 모든 엘리트층은 혁명 이후 구성된 새 정부에서 단 한 자리도 차지할 수 없었다. 민주주의 시대의 도래와 함께, 거리로 뛰쳐나온 국민들의 목소리가 국가정치의 정의(定義)는 물론 국가재건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국가공무에 공동으로 영향을 미친 드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언론노조나 노동총연맹(UGTT) 등 튀니지 시민사회의 주요 조직들도 이슬람주의 성향의 엔나흐다 당을 비롯한 모든 정당들이 투명성을 지키도록 지속적인 압력을 가했다. 또한 모로코나 알제리와는 달리, 튀니지의 의회는 단순한 등록기관이 아닌 집행부에 정당성 증명의 의무를 가하는 진정한 입법 및 감독기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게다가 전체 의원 중 여성의원의 비율은 31%에 달해 오늘날 아랍권 및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며, 여러 서구 국가들보다도 앞서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14년 당시 과거 정권의 인권 훼손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설립된 ‘진실과 존엄 위원회(TDC)’도 대부분 자립적인 인사들로 구성돼 있다.
물론 튀니지의 민주주의도 아직 확립된 수준은 아니다. 그리고 이슬람주의와 네오데스투르 당을 잇는 민족주의 노선 간의 대립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나, 튀니지야말로 북아프리카도 선출된 제도 내에서 국민주권을 이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살아 숨 쉬는 사례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유권자 앞에서의 투명성과 책임의 원칙 면에서도 튀니지는 주변 북아프리카 국가들뿐 아니라 대부분의 아랍국가들보다 훨씬 명확하게 확립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손대지 못한 정치권 내 종교문제

한편 북아프리카는 이슬람 세력의 정치적 개입과 관련해서도 광범위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아랍정치권 내 종교의 입지가 좁아지지 않았으며, 앞으로의 국가 안정성은 타협과 개방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각기 다른 사례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모로코의 경우는 오해를 일으키기 쉽다. 모로코의 대표적 이슬람 조직인 정의개발당(PJD)은 2011년 총선 당시 승리를 거머쥐었다(2011년 총 의석 395석 중 107석을, 최근 2016년 10월 총선에서는 125석을 차지했다). 그러나 정의개발당은 모든 민주적 개혁 시도를 차단하며 기존체제의 원칙을 따를 뿐이고, 이념적으로도 변화 보다는 기존 질서를 따르려는 모습을 보였다. 정의개발당은 국가제도 내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나, 제도 내에 새로운 관행을 정착시키지 못한 채 기존 군주제의 절대적 필요성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알려진 것과는 달리 정의개발당이 기존 권력에 전혀 도전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의개발당의 정치 참여가 ‘정치적 이슬람(Political islam)’의 무게를 덜었다고 볼 수는 없다.
 이러한 현상은 모로코의 종교가 지닌 독특한 역할을 반영하는 것이다. 정의개발당은 국왕의 종교적 권력을 부정하지 않았다. 종교와 관련해 알라위트 왕조가 가진 역사적 영향력에 감히 도전할 수 없었던 것이다. 모로코 왕정은 코란학교, 이슬람 지도자들, 모스크 사원 등에 대해 엄격한 규제를 가했다. 정의영성운동(JSM)이나 여러 근본주의적 살라피스트 단체 등 과거 이러한 관행에 문제를 제기했던 이슬람 조직들은 정계에서 퇴출당했다. 결국 정치권 내 종교문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진지하게 다뤄진 적이 없었던 셈이다. 이후 모로코 내 민주주의가 마침내 쾌거를 이룰 때, 이 문제는 날카롭게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하지만 외부에서 바라볼 때 모로코의 이슬람은 과격주의에 대항하는 처방과도 같은 세 종파 즉 말리키파, 아슈아리파, 수피파가 뒤섞여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 세 종파는 인간적 판단에 큰 부분을 할애할 뿐 아니라, 비교적 온건주의에 중점을 두는 풍부하고 오랜 지식적 계보를 따르고 있다. 모로코는 이런 이슬람이라면 프랑스를 비롯해 서구 공화국들이 중시하는 세속적 원칙들과 양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내세우며 유럽에까지 이 이미지를 계속 투사하고 있다.(1)
1990년대 구 이슬람구국전선(FIS)을 떠올리게 할 만큼, 근본주의적인 행위와 과격주의적 언사들이 다시 나타나는 상황 속에서도 정치적 이슬람의 유혹에 알제리가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2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던 공포스러운 내전의 기억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모로코 왕정과 달리 알제리 정부는 근본주의 논쟁에 부응할만한 종교적 제도도 기관도 없다. 폭력에 대한 두려움 덕분에 알카에다 북아프리카지부(AQMI)와 같은 대규모 엄격주의·과격주의 조직에도 맞설 수 있었던 것이다. 국가 조직 내에 녹아든 모로코의 이슬람과 달리 알제리에서는 20여 년 전부터 이슬람이 정치판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처럼 폭력과 이슬람이 묶여있는 탓에, 알제리의 이슬람 조직들은 사회적 가치보다는 다시 정치판에 들어가는 데만 온 힘을 쏟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관련 병력 재배치나 의회 내 복귀 등 조직적 개편에 대한 공약들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러한 목표를 이룰 가능성은 매우 낮다. 특히 이들은 외교정책을 충분히 구사할 수 없다. 따라서 국가상황이 불안정한 말리나 붕괴 직전에 놓인 리비아 등과 맞닿아있는 국경지역의 안보문제에 대해서는 기존 정권에게 일임하고 있는 상황이다.
튀니지는 또 한 번 종교문제에 있어서도 새로운 가능성들을 실현하고 있다. 최근의 튀니지 역사는 이슬람주의 운동이 민주주의 체제에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 뿐만 아니라 특히 민주주의의 기능과도 융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튀니지의 이슬람주의 엔나흐다 당과 베지 카이드 에셉시 대통령의 니다투니스 당을 비롯한 여러 세속주의 성향 정당들 간의 연합과 협정들이 튀니지 정치의 핵심이 되고 있다. 초기에는 두 진영 모두 헌법 및 샤리아법(이슬람법)에 대해 전혀 타협하지 않았으나, 혁명을 위해 모인 군중들 속에서 양측 모두 붕괴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경험한 후 서로 정치적 요구를 완화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시민의 자유, 여성의 권리, 국가의 비종교성 등 근본적인 문제들과 관련해 공통분모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수십 년에 걸친 추방과 억압의 역사 끝에 마침내 이룩한 이 협상 덕분에, 튀니지의 사회와 정치 전반에서 이슬람의 참여를 형식화할 수 있었다. 이는 여러 측면에서 튀니지의 이슬람주의는 점차 세속화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기도 한다. 엔나흐다 당은 살라피스트를 비롯한 근본주의 단체들과 거리를 유지하고, 종교적 관념보다는 구체적인 정치적·경제적 활동을 우선시해 새로운 혼합적 정체성을 만들어냈다. 오늘날 엔나흐다 당은 과거 실용주의 이슬람을 표방했던 터키의 정의개발당(AKP)보다는, 의회라는 틀 안에서 종교적 원칙과 정치적 목표를 잘 융합하고 있는 독일의 기독민주연합(CDU)과 비교되고 있는 상황이다.

세 국가의 공통적인 약점

이와 같은 미세한 차이들에도 불구하고, 세 국가는 같은 약점을 가지고 있다. 갑작스러운 경제적·정치적 위기에는 한없이 취약하다는 사실이다. ‘아랍의 봄’ 이후 급히 불을 끄듯 군중들을 해산시킨 상황이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불씨들은 언제든 연쇄폭발을 일으켜 과연 국가가 국민을 지속적으로 제어할 역량을 지니고 있는지 다시금 문제 삼을 수 있다.  북아프리카 사회 자체는, 물론 특히 이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북아프리카 청년층은 현재 빵, 자유, 존엄성 세 가지를 갈망하고 있다. 빵 부족으로 대표되는 경제문제는 세 국가 모두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여러 경제문제들 중에서도 불평등, 빈곤, 실업률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특히 가스 및 석유 수출 의존도가 높은 알제리의 경제는, 최근 유가폭락 이후 재난 수준에 이르렀다. 또한 청년실업문제는 튀니지와 모로코 역시 심각한 상황이다.
 튀니지의 경우, 국가경제의 중요한 역할을 해온 관광업계가 2015년 테러 이후 큰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일자리 부족에 분노한 군중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자유주의 정부가 맺은 협약들은 빈곤층에 대한 무관심에서 나온 것”이라고 끊임없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튀니지 정당들이 지속가능한 민주주의 체제 확립에 열중한 나머지, 한계에 다다른 수입-수출구조 경제의 재정비라는 긴급과제에 대해 등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이미 민주화 과정을 거친 국가들이 부딪혔던 난관이기도 하다. 한편 모로코는 비교적 독립 이후 신중한 선택들을 해왔고, 비교적 나은 법적 환경을 지니고 있어 알제리보다는 경제발전의 도구들을 잘 갖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인재개발이나 교육분야에 있어서는 모로코 역시 재난에 가까운 수준이다.
발전에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필요한 개혁들을 당장 시행한다 해도, 민간분야가 청년층에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기까지 몇 년은 걸릴 것이다. 그 때까지 경제무대에서 제외된 이들 모두에게 방향성과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자유와 존엄성의 원칙들을 존중한다면, 위기를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 있어 모로코와 알제리는 안타깝게도 심각하게 낙후된 상황이다. 정치적 의사결정과정은 점점 불투명하게 분열되고 있는 반면, 행정권 자체의 성격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행정권이 어느 때보다도 자신들의 정당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용인하지 않는 제한적 집단의 손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의회는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도 못하고 있다. 아무리 공정하게 진행된 선거라 해도, 그 선거를 통해 정치적으로 무기력한 행정부와 보안조직의 활동에 대한 실질적 감시권조차 없는 국가기관을 만들어낸 것이다. 특히 알제리는 국가 수뇌부 내에서 끊임없는 내부적 전쟁을 치르고 있어, 투표를 통해 선출된 대표의 역할이 무의미한 수준이다. 그나마 모로코의 경우는 의회를 구성하는 이념과 조직의 다양성이 어느 정도는 존재하며, 입법부가 논의와 조사 과정을 완전히 감추고 있지는 않다.
선거 자체에 대한 청년층의 외면도 하나의 불안정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선거 기권율도 점점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최근 10년간 알제리와 모로코의 선거 참여율은 전체 유권자 중 40%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수백만 명이 유권자 명부에 아예 등록조차 돼 있지 않은 상황을 고려한다면 실질적인 참여율은 30% 정도까지 내려갈 것이다.

사회적 불만, 권위주의로는 풀 수 없다

반면 언론의 자유와 관련해서는 두 국가가 정반대의 변화를 겪고 있다. 알제리의 경우, 1988년 당시 일종의 ‘빅뱅’과 함께 생겨난 자유언론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아 정상화되는 데 그럭저럭 성공했다.(2) 반면 모로코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시작된 억압정책이 점진적으로 확대되면서, 정권의 언론탄압이 심각해지고 있다. 초기에는 겁 없이 경제적·정치적 논쟁을 자극한 정기간행물에 제재를 가하는 수준이었으나, 이후 모든 비평지와 인터넷 사이트의 소소한 잘못에도 해당 언론사를 파산시킬 수준의 막대한 벌금을 매기는 등 보다 직접적인 공격을 시작했다. 급기야는 언론시장에 가짜 언론매체를 등장시키며 그나마 남아있는 표현의 자유에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왕궁을 포함한 모든 보안기관에서 각각 고유의 언론매체를 만들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매체들은 마치 독립적 플랫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명예훼손에 가까운 지저분한 공격들을 퍼부어 거슬리는 목소리를 차단해버리기 위한 방책이나 다름없었다. 국가의 최고 권력층에 의해 이러한 작업들이 교묘하게 추진됐으며, 이제는 편집장, 기자, 발행인 등에게 지시할 뿐 아니라 보안기관의 감시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부작용을 불러일으킨다. 정권이 사회에 대해 불만표현의 경로를 차단하게 되면, 사회적 압박이 결국은 더더욱 제어하기 어려운 형태로 터져 나오게 되기 때문이다. 모로코와 알제리의 경우 국민들의 존엄성 요구가 점점 커져지는 상황인 만큼, 매우 위험한 게임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정치스캔들, 부패사건, 권력남용, 국제적 의무의 위반 등 다양한 문제들 속에서 현 정권은 권위주의적 압력을 통해 국민들의 권리를 끊임없이 짓누르고 있다. 결국 비민주적 정부에 대한 불신은 커져갈 것이며, 국민화합을 호소한다 해도 소용없게 된다.
게다가 모로코 왕정은 서(西)사하라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상태다. 서사하라 지역에 대해 폴리사리오 해방전선은 독립을 주장하고 있으나, 모로코는 자국의 영토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는 현재까지 모로코 측을 달래왔고, 앞으로도 가능한 오래 그 상태를 유지하려 할 것이다. 그런데 서사하라 측의 원망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어 마침내 지금의 상태가 뒤집히게 될 수도 있다. 이처럼 국가 전체를 뒤흔드는 위기가 올 때마다 모로코는 또다시 궁지에 몰려 재타협을 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한다. 더욱 위험한 것은 모로코 왕정이 항상 이 문제를 이른바 ‘신성한 단결’을 해야 할 문제로 여겨왔다는 데 있다. 이 전략은 스스로를 덫에 빠뜨린 것이나 다름없다. 국가의 실책을 자체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이런 민족주의적 담론을 반복해 왔는데, 서사하라에서 새로운 분쟁이 발발할 경우 결국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과거 모로코가 선동해온 애국심은 오늘날 천대를 받고 있으며, 이는 모로코 사회 내 여러 긴장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이 일도 존엄성의 문제와 다를 바 없다. 이런 문제들은 정부가 주장하는 논거들(이 경우에는 역사적 권리와 국민주권의 수호)과 관련이 있기 보다는, 정치체제의 실질적인 민주화 없이는 난관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사실과 더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또 한 번 튀니지만이 유일하게 벗어난 권위주의의 한계가 드러난다. 사회적 불만을 키우는 근본적인 문제들은 오로지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그런데 권위주의 정권은 자신들이 한 발 물러설 경우 경쟁세력에 의해 쫓겨날까 두려워 바로 이 대화와 타협을 철저하게 배척하고 있다. 또한 정부 스스로에게 사회에 해명할 의무를 지우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고 계속해서 몸을 사린다면, 심각한 위기가 찾아올 경우 국민들은 이 위기를 자신들의 분노가 낳은 결과라고 여기게 될 것이다.
세 국가의 문화적, 사회적, 지정학적 강점을 고려한다면 북아프리카의 미래가 근동지역보다는 상대적으로 어둡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튀니지의 지도층은 새로운 민주주의 체제를 통해 다가오는 도전과제들에 대해 알제리나 모로코보다는 훌륭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근원적인 불평등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튀니지는 평화와 안정을 쟁취하기 위한 진정한 기회를 얻은 셈이다. 반대로 모로코와 알제리 지도층은 마치 방화를 저지르는 소방관 같은 모습이다. 사회적 위기와 혼란에 즉각 소화기를 들고는 있지만 진정한 소강상태에 이른 적은 없는 것이다. 이들은 민주주의로의 변화는 거부한 채 자신들의 문제를 다른 희생양들에게 전가시키고 있다. 결점을 고쳐가기보다는 이를 반복하고 심지어는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북아프리카는 협력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를 얻는 것만으로도 틀림없이 경쟁국들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서사하라 문제로 환경, 상업, 교육, 에너지, 보건 등의 문제를 둘러싼 지역적 역학관계를 가로막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이를 통해 서로 간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지역 안정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글·물레이 히캄 엘 알라위 Moulay Hicham El-Alaoui
하버드 대학교 연구원, 저서로는 <Journal d'un prince banni. Demain, le Maroc(추방당한 왕자의 일기, 내일은 모로코다)>(Grasset, Paris, 2014)가 있다.

번역·김보희 sltkimbh@gmail.com
고려대 불어불문과 졸업.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역서로 <파괴적 혁신>등이 있다.

(1) Charlotte Bozonnet & Youssef Ait Akdim, ‘Mohammed VI se voit en chantre de l’islam modéré 무함마드 4세 국왕, 온건 이슬람을 예찬하다’, <Le Monde>, 2016.8.23.
(2) Dale F. Eickelman & James Piscatori, <Muslim Politics>,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4, second ed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