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전쟁에 휩쓸리는 아프리카의 뿔

2016-10-31     제라르 프뤼니에

아라비아반도와 맞닿아 있는 아프리카의 뿔은 많은 이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지역이다. 전략적으로 유리한 항구와 유전들이 위치해 있으며, 화물·무기 운송과 사람들의 왕래가 합법적으로, 또는 불법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서방국가, 중국, 다국적기업, 산유국 그리고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를 필두로 하는 지역 열강들이 이곳에서 예멘 분쟁으로 불거진 위험한 세력 다툼을 벌이고 있다.

지난 6월 12일, 동이 트기 전 에리트레아의 국경에 침입했던 에티오피아 군대의 정찰 부대들이 에리트레아 정찰대와 마주치는 상황이 발생했다. 수십 킬로미터에 이르는 양국 전쟁(1998~2000)의 옛 전선 중 일부가 단 몇 분 만에 불바다가 됐고, 포격, 탱크 기동, 연속 사격이 24시간 가까이 지속 됐다. 에리트레아는 이것이 ‘공격행위’라고 규탄했으나 에티오피아는 어색한 침묵을 지켰다. 6월 14일이 돼서야 에티오피아 정부 대변인은 자국이 “에리트레아를 상대로 총력전을 벌일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호전적인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2000년 알제리에서 두 교전국이 정전 협정에 탐탁지 않은 서명을 한 이후, 국경에서 이미 유사한 분쟁이 십여 차례 벌어진 것을 고려하면, 이런 일반적인 충돌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수준의 위협이었다. 그러나 에티오피아의 분노한 외침은 보기보다 훨씬 더 심각한 긴장 국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6월 18일, 워싱턴에서는 에티오피아 정부의 요청으로 긴급 비밀회담이 열렸고, 21일에는 에티오피아의 무력 도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각국에서 제네바로 모여 시위를 벌였다. 정부가 모든 반대 운동을 금지시킨 에티오피아에서는 시민들의 어떠한 반대 시위도 없었다. 멜레스 제나위 전 대통령의 인민혁명민주전선(FDRPE)당은 하원 의석 527개 가운데 472석을 차지하고 있고, 2015년과 2016년, 에티오피아에서 오로모족과 암하라족 사람들의 반란은 유혈 진압된 바 있다.
2016년 6월의 정치-외교적 움직임은 군사적 전개가 이뤄지던 시기에 시작됐다. 지난 5월 이스마일 오마르 겔레 지부티 대통령과 체결한 협정에 따라, 에티오피아 군인들은 6월 6일부터 지부티 공화국의 타주라 지역에 주둔하고 있다. 지부티군 참모총장은 이 협정에 따라 에티오피아 군대가 사전 허가 없이도 지부티 영토에 진입할 수 있으며, 자국 군 시설을 이용할 수 있고, 작은 공화국인 자국의 내부 분쟁에까지도 개입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협정은 이웃나라 소말릴란드 정부가 (프랑스 그룹 볼로레를 제치고) 두바이포츠월드(DPW)사와 베르베라 항구 개발 계약에 서명했다고 발표한 이후 황급히 체결됐다. 1998년에서 2000년까지 이어진 전쟁 이후 에티오피아는 바다로의 접근이 불가능해지며 완전한 내륙국가가 됐다. 그리고 지부티에는, 2008년 6월 두메이라 섬의 영유권을 두고 발생한 에리트레아와의 국경 충돌 이후 에리트레아군을 견제하기 위해 에티오피아 군대가 주둔하고 있다. 두 나라의 군대는 2010년 6월 양국의 공동 요청에 따라 파병된 카타르 군대에 의해서 아슬아슬한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에티오피아군은 에리트레아 아사브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아파르 지역에도 주둔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가 예멘에 맞서 심해에 전쟁 항구를 건설하려는 순간에도 에티오피아군이 그곳에 주둔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요인을 통해 아프리카의 뿔 지역 내 혼란스러운 지정학적 풍경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다. 먼저, 에티오피아에는 다음과 같이 요약되는 공포가 세습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사방이 아랍의 적들에 의해 포위돼 있다. 이들 아랍의 적들은 우리의 또 다른 적인 에리트레아를 아프리카 진입을 위한 교두보로 만들 수도 있다.” 옛 아비시니아 왕국에 대한 무슬림들의 기나긴 위협의 역사를 생각하면 이런 편집증적인 생각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도 한다. 에티오피아의 이런 두려움은, 최근 나일 강에 건설하려고 하는 르네상스 댐과 관련한 이집트의 전면적인 적대감 표출을 통해 더욱 굳건해졌다.(1) 댐의 저수지(670억㎥)를 채우기 위해서는 7년이 소요되고 그 동안 나일 강의 유량이 25% 가량 감소된다. 이에 이집트는 댐의 파괴까지 고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입장이었기도 하다.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 군대가 에티오피아를 공격하는 일은 상상할 수 없지만, 이집트 군대 특히 공군이 아랍 연대라는 미명하에 아사브 신기지를 위협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 경우, 만일 예방 차원의 선제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생각을 한다면, 안보를 다루고 있는 FDRPE정권의 앞길은 아주 제한된 악순환의 고리 속으로 향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에티오피아가 최대 군사 강국이긴 하지만 각종 군사 동맹이나 경제적, 외교적 보복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두 번째 요인은 바로 에리트레아와 에티오피아를 대립시키는 오랜 분쟁의 약점이 지부티 공화국이라는 점이다.(2) 고전적으로 긴장이 끓어오르는 지역에서 평화의 안식처로 여겨진 이 작은 국가는 이 지역 패권을 다투는 장이 됐다. 이 작은 나라 지부티에는 식민시대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 군사 기지가 여전히 남아있고 그곳에 2천4백 명의 군인이 주둔하고 있으며, 프랑스는 매해 이를 위해 3천만 유로의 비용을 치르고 있다. 1999년부터는 미국 역시 6천만 유로의 비용을 들여 4천명의 군인을 지부티에 주둔시키고 있는데, 덕분에 미국은 예멘과 소말리아의 ‘타깃’에 드론을 보낼 수 있다. 일본은 몇 백 명의 군인과 낡은 해양 감시용 록히드 항공기 두 대를 지부티에 주둔시키며 2011년부터 소말리아 해적을 추격하고 있다. 매해 2천만 유로의 비용으로 1945년 이래 처음으로 해외 군사 기지를 다시 보유하게 된 것이다. 독일과 스페인의 경우 군사 기지를 두고 있지는 않지만 켐핀스키 호텔에 수십 명의 군인들이 단순 거주 중이다. 2016년 12월에는 중국이 서방국가들과 멀리 떨어진 타주라 근처에 5천~1만 명의 군인과 항공모함 한 대를 수용할 수 있는 군사기지 건설을 발표했다. 연간 주둔 비용은 아직 국가 기밀이지만 중국이 항구와 공항을 건설해주느냐 마느냐에 따라서 2천5백만 유로에서 8천5백만 유로까지 달라질 수 있다. 이미 1차 시공 건물들은 건설 중에 있다. 러시아도 이에 뒤지지 않기 위해, 비공식적인 접촉을 통해 이 ‘군사 관광 클럽’에 가입하고 싶다는 의지를 꾸준히 피력하고 있다. 
작은 영토를 가진 지부티에는(슬로베니아와 같은 면적인 2만3천㎢) 곧 자국군보다 외국 군인이 더 많아지게 됐다. 그렇다면 지부티가 진짜 국민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 2004년 위키리크스 문서에서 한 서방국가의 외교관은 “지부티는 상업 도시국가일 뿐 국가가 아니며, 이스마일 오마르 겔레 단 한사람에 의해서만 지배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지배력은 2016년 4월 8일 대선에서 86.59%라는 지지율로 다시금 절대적인 것으로 남았다. 1977년부터 겔레 가문과 마마산(Mamasan) 부족이 지배해온, 이사(Issa) 부족 가문의 세습 공국에서 군사정책은 핵심적인 지배 수단이다. 이웃나라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처럼 독재 정권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지부티는 인권수호단체의 감시대상이기도 하다.(3)
세 번째 요인은, 항구를 둘러싼 지역 내 국가들의 싸움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점이다. 지부티에서 모든 것은 항구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항구에서 국내총생산(GDP)의 76%가 나온다. 그리고 항구에서 이루어지는 경제활동의 80%가, 1998-2000년 전쟁 이후 에리트레아의 아사브 항구로의 접근이 막혀버린 에티오피아 고객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5월 8일 미승인 국가인 소말릴란드(4)가 세계 3위 업체인 아랍에미리트 국영기업 두바이포츠월드(DPW)와 통상협정에 서명을 한 것이다. 이 협정으로 베르베라 항구는 지부티 항구와 직접적인 경쟁에 돌입하게 됐다. 지부티 대통령의 주요 적수이자 두바이에서 망명 중인 압델라만 보레는 아랍에미리트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06년 DPW를 지부티 쪽으로 돌아서게 만든 것도 다름 아닌 압델라만 보레였다. 2013년 아랍에미리트 정부가 압델라만 보레의 인도를 거부하자, 겔레 대통령은 DPW의 항구 사업권을 취소하고 다른 경쟁 회사에 이를 넘겼다(해당 사건은 현재 런던 법원에 계류 중이다). 2016년 4월 이후 지부티와 아랍에미리트의 외교 관계가 단절될 정도로 상황은 악화됐다. 

지부티 독재자의 근심

보레를 등에 업은 DPW가 소말릴란드의 베르베라 항구에 등장하자 지부티는 몹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베르베라항은 영국 식민시대의 오래된 항구로 오랜 시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었고, 연간 컨테이너 통과량도 4만 건에 불과해 연간 90만 건을 처리하는 지부티항과는 비교가 안 됐었다. 그러나 에티오피아가 베르베라 항구에 자국 수송량의 30%를 이전시키겠다고 발표했고, DPW는 소말릴란드의 연간 예산을 훨씬 웃도는 4억 유로를 이곳에 투자하겠다고 나선 상황이다. 이에 지부티 대통령은 서둘러 에티오피아에 ‘안보 협정’을 선물하고 에티오피아 군대가 지부티에서 마치 점령지처럼 작전을 수행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2014년에 이미 에티오피아는 “에티오피아와 지부티 공화국을 하나의 유일한 영토로 여기고자”하는 속내를 밝힌 바 있다. 지부티로서는 일종의 ‘제한된 주권’을 가지게 된 셈이다. 
너무 훤히 들여다보이는 보레의 수작 때문에 지부티 독재자의 근심은 더욱 깊어졌다. 보레는 소말릴란드의 독립 25주년 기념행사에 자신을 공식 초청해 줄 것을 요청했는데, 신중했던 이 미승인 국가 소말릴란드 당국은 이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소말릴란드의 한 당국자가 우리에게 털어놓은 바에 따르면 “이는 지부티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긴장은 고조된 상태다. 보레의 어머니가 이사 부족의 하위 부족인 유니스 무사(Yoonis Moussa) 부족 출신인데, 이 부족이 지난 2015년 12월 21일 지부티의 도심 한 가운데서 일어난 대량학살 사건의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정확한 사건 정황이나 사망자수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유니스 무사 족은 지부티군 병력의 60%를 차지하고 있고 타주라만 북쪽 마블라 산맥에서 통일민주회복전선(FRUD)의 아파르(Afar) 반군과 맞서 싸우기 위해 주둔했다. 그러나 12월 21일의 학살 사건 이후 이들의 전투 의지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겔레 대통령은 소말릴란드 정부에 대항하는 가다부르시족 출신의 반군 지도자 아부바카 엘미 와바르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며 이 상황에 맞서려 하고 있다. 하지만 겔레 대통령은 사실, 동맹과 위협이라는 모순적인 커다란 게임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겔레 대통령은 에티오피아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에티오피아는 DPW의 베르베라 항만 사업만큼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고 있고, 그래서 지부티 대통령은 예멘 전쟁에 동참하기 위해 지부티에 군사 기지를 두고자 하는 에티오피아의 아랍권 적들까지 상대해야 하는 실정이다. 
네 번째 요인은 예멘이라는 화염덩어리이다. 예멘과 아프리카는 바브엘만데브(눈물의 문) 해협을 사이에 두고 고작 30㎞ 떨어져 있다. 예멘에서도 ‘아랍의 봄’ 열풍에 휩싸여 2012년, 1978년부터 국가를 철권 통치했던 독재자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권좌에서 쫓겨났다. 하지만 2011년의 봉기보다 한참 전부터, 친서방 국가 성향의 독재 권력은 알카에다 아라비아 반도 지부(AQPA)라는 지하디스트 뿐만 아니라 사다와 암란 지방에 집중되어있는 자이드파의 반란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결국 2011년의 ‘민중 혁명’은 최우선 목표가 딱히 민주적이지만은 않은 이들 두 집단의 움직임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2004년 전투 중 사망한 자신들의 역사적인 지도자이자 설교자인 후세인 알 후티의 이름을 딴 ‘후티’ 반군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자이드파군은 예멘의 수도이자 옛 독재자 살레와 동맹을 맺었던 사나를 순식간에 점령했다. 2015년 3월 25일, 사우디아라비아는 수니파 국가의 연합에 개입하기로 결정한다.(5) 시아파의 한 분파인 자이드파 후티 반군은 갑자기 홍해 연안에서 이란의 ‘5번째 기둥’으로 지목받기 시작했고, 납득하기는 어렵지만 살레의 후임자인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는 민주주의 부흥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이렇게 아프리카의 이웃들이 아랍의 소용돌이에 함께 휘말리게 된 것이다. 내전 초까지만 하더라도 예멘은 유럽으로 향하던 아프리카의 뿔 지역 정치적 난민 및 경제적 난민의 주요 경유지였다.
2015년 4월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의 공격이 있은 지 며칠 뒤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 에리트레아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걸프협력회의(GCC) 군사동맹과 전방위적인 협력 협정에 서명을 했다.(6) 이에 따라 아랍에미리트가 사우디아라비아의 폭격기가 출격할 공항을 짓기 위해 아사브항에 상륙했고, 아사브 항구는 아주 빠르게 제 모습을 되찾았다. (조촐한) 에리트레아의 첫 파견 부대가 예멘 전선에 투입되었고, 협력은 오마르 알바시르 대통령이 이끄는 수단 정부로까지 확대되어 수단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의 대규모 재정 지원을 대가로 군대를 파견했다. 이 기회에 에리트레아는 자국에 체류 중이던 예멘 반대파 인사들을 자국으로 추방했다. 

놀라운 민주주의

이러한 강력한 정치·군사적 활동은 당연히 에티오피아의 우려를 낳았다. 에티오피아로서는 영원한 숙적인 에리트레아가 아랍 강대국들과 긴밀한 연맹을 맺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꽤 불안한 상황이었다. 그것은 미국이 시아파 이란과 맺었던 핵협상에 대해 수니파 아랍세계에 사과하고 확신을 주기 위해, 동맹에서 완전히 비켜선 것과 비견할 만 했다. 걸프협력회의의 개입으로 에리트레아는 이제, 지금까지는 자국 내 인권침해 상황을 이유로 경험할 수 없었던 미국의 관용을 경험할 수 있게 됐다. 2016년 6월 8일, UN 조사위원회에서는 “1991년 이후 에리트레아에서 노예제도, 감금, 고문, 강간, 살인 등의 반인류 범죄가 자행됐다고 믿을만한 타당한 이유”가 존재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미국은 걸프협력회의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이 지역에서 점점 더 의심스럽고 합의와는 동떨어진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2015년 7월,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는 망설임 없이 소말릴란드의 아흐메드 모하무드 시라뇨 ‘대통령’을 초청했다. 아직 국가가 승인되지 않은 탓에 소말리란드의 대통령은 이런 종류의 제스처에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들의 만남은 모든 배우가 완벽히 자신의 역할을 연기하는 그림자 인형극처럼 이뤄졌다. 이들은 시라뇨 대통령에게 군 병력 파견과 베르베라 항구의 사용을 요구했다. 시라뇨 대통령은 ‘No’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팔짱을 끼고 지켜보고만 있었고, 걸프협력회의의 지도자들은 이를 모르는 척 했다. 서로 체면은 세운 셈이다. 
지부티 대통령 역시 예멘 문제와 관련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걸프협력회의 연합에게 한 곳의 기지를 개방하고(추가로 하나 더!) 예멘에 군대를 파병하라는 요청에 대해, 지부티 대통령은 시라뇨 대통령처럼, 거절도 수락도 하지 않았다. 결국, 사우디아라비아 화물기의 자국 경유를 허가하는 것에 그쳤는데 직접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전투기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지부티와 소말릴란드 정권은 홍해의 항구들과 관련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이들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군대의 예멘에서의 전쟁과 관련해서는 암묵적으로 신중함을 공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요인을 들여다보면 이 지역의 지정학 관계가 명확해진다. 바로 소말릴란드라는 물음표다. 소말릴란드는 25년 동안 실제로 존재해왔지만 여전히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승인 국가인 소말릴란드는 거의 아무런 해외 원조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어떤 국제기구에도 속해있지 않다. 그럼에도 정부와 (비무장)경찰, (상당히 제대로 갖춰진) 군대와 존중받는 사법체계를 가지고 있다. 소말릴란드는 20년 째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이웃 아프리카 국가들과는 다르게 명백한 민주주의적 절차에 따라 국가가 기능을 하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평화적인 선거를 치르고 있다. 소외되었지만 매우 놀라운 이들의 민주주의는(7) 영국령 소말릴란드의 보호령에서 비롯됐다. 소말릴란드는, 시아드 바레의 몰락과 함께 소말리아를 덮친 1981-1991 내전 직후 독립을 이뤄냈다. 신중하게 그리고 소심하게 운영되어온 이 평화로운 국가는 외교적 열세와 저개발로 위협을 받고 있다. 소말릴란드가 정치적으로 성공한 반면 소말리아는 내부 분쟁으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2006년, 소말리아 과도 연방 정부는 아프리카 연합의 지원을 받은 에티오피아 군대 덕분에 반군 지도자들과 이슬람 부족 연합으로부터 모가디슈를 탈환할 수 있었다. 소말리아는 또한 이슬람 민병대 알샤바브로부터 테러 위협도 받고 있는데 6월 25일에도 수도 모가디슈의 한 호텔에서 알샤바브가 공격을 감행해 사상자가 나오기도 했다. 반면 소말릴란드는 ‘국제 사회’가 가하는 소외감으로 고통 받고 있다. 
2016년 5월 8일 DPW와의 협정은 소말릴란드로서는 패를 다시 준비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소심한 이 ‘국가’는 동요하는 이 지역의 ‘온전(溫戰)’의 장에 내던져진 상태다. 허나 협정의 효과는 복합적이고 궁극적으로는 불안정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 협정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지부티에게는 위협이 되기 때문이고, 좋든 싫든 간에 이번 협정으로 이 연약한 국가가 아랍에미리트의 세력 범위에 들게 됐기 때문이며, 또한 소말릴란드 내부의 안정을 위태롭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직 잠들어 있는 베르베라 항구는 사실 매우 가난한 소말릴란드의 경제를 끌어올려 줄 유일한 희망이었다. 이사크(Issaq)의 하브르 아월(Habr Awal) 부족에 속하는 이사 무사 분파의 세력 범위인 베르베라 항은 지역 주민을 먹여 살릴 만큼 수입이 상당하다. 하지만, 이제 지역 주민들은 그 수입을 빼앗길 두려움에 사로잡혀있다. 소말릴란드가 지난 25년간 억제시켜왔던 부족 간 전쟁의 위험도 다시 부활할 위기에 처했다.
소말릴란드는 10년간 지속된 국내 내전과, 5년간 지속된 지역 내전 그리고 20년간의 가난과 국제사회의 멸시를 견디고 살아남았다. 소말릴란드는 다시금, 자신이 변수를 제어할 수 없는 불균형한 재정적 돌발 상황과 외교적이고 군사적인 노출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혼란한 지역에서 소말릴란드는 무엇보다도 물음표로 남아있다.
거대 열강들의 제국주의는 위기를 맞고 있다. 소제국주의의 다양성에 부정당하고 공격당하며, 이용당하거나 추월당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들의 제국주의는 이제 소제국주의와 타협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 미국, 프랑스, 러시아의 영향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소인국 사람들에게 공격당한 걸리버처럼, 이 거인들은 확신 없는 한 발짝을 내딛고 있다. 이는 방해만 되는 동맹국들과 반쪽짜리 적수 때문에 이들의 발걸음에 족쇄가 채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많은 이들이 분쟁을 조장하며, 단호한 만큼이나 이론의 여지가 많은 적극적 행동주의를 펼치고 있고, 이런 그들의 행동은 그들 앞에 우뚝 선 거대 열강들의 위험한 움직임만큼이나 우려스럽다. 더 난처한 것은 이들의 음모가, 지정학적 문제보다는 내부 문제를 더 걱정하면서 수동적으로 이끌려가는 여론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서 궁지에 몰려있다. 에리트레아와 (경제제재 철회를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는) 수단을 제외하고는 이 지역에서 공식적으로 미국의 ‘우방’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나라가 단 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 이집트는 무슬림 형제들의 목을 조르기 위해 열중하고 있고, 에티오피아는 중국에 아주 큰 관심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변함없는 동맹으로 남아있다. IMF의 추천을 받을 수만 있다면 악마까지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지부티는 글로벌화된 세계 자본주의의 추종자 역할을 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는 미국에 불만을 드러내고 있지만 딱히 미국을 대체할 대부를 찾지는 못했다. 소말릴란드의 경우, 존경받는 인물들에게 일말의 동정심을 간청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 가운데 유일하게 에리트레아만이 불평이 가득하다. 물론, 자국의 경제 붕괴와 청년 인구 유출 때문에 늘 강대국들 앞에서 애걸하는 상황으로 끝이 나지만 말이다. 
미국은 자신의 허락 없이 전쟁을 벌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음모를 꾸미고 있으며, 미국의 비호를 무시하는 것도 모자라 마음대로 이용하는 이 ‘우방’들 모두를 화해시키지 못하고 있다. 특히나 걸프협력회의 연합의 경우가 그러한데, 그들은 전쟁을 지속하기 위해 10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군수품 지원을 받고 있지만 실상 미국은 이 전쟁에 대해 시들하다. 미국은 에리트레아에 자금 지원을 해주며 에티오피아와 멀어졌고, 자신의 고객들과 동맹국들을, 직접적으로 중국의 품속으로 던져 주고 있지는 않지만, 그들이 서로의 대항에 일어나도록 만들고 있다.  


글·제라르 프뤼니에 Gérard Prunier
대서양위원회(Atlantic Council) 연구원.

번역·김자연 jayoni.k@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다음 기사 참조. 하비브 아예브, ‘누가 나일강의 물을 차지할 것인가? Qui captera les eaux du Ni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3년 7월호.
(2) 다음 기사 참조. 장루이 페니누, ‘아프리카의 뿔, 전략적 군사 재편성 Un redéploiement stratégique dans la corne de l’Afriqu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1년 12월호. 
(3) Cf. 인권 수호자들의 범아프리카 네트워크 Réseau panafricain des défenseurs des droits de l’homme, www.protectionline.org
(4) 다음 기사 참고, ‘아프리카. 지옥과 엘도라도 Afrique. Enfer et Eldorado’ 중 ‘소말릴란드에서의 평화로운 나날 Jours tranquille au Somaliland’, <마니에르 드부아> 143호, 2015 10-11월.
(5) 다음 기사 참조. 로랑 본푸아, ‘예멘전쟁, 무엇을 위한 것인가?Au Yémen, une année de guerre pour rien’,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6년 4월호.
(6) 다음 기사 참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아랍에미리트까지, 군주정치라는 신기루 De l’Arabie saoudite aux émirats, les monarchies mirages’, <마니에르 드부아> 147호, 2016년 6-7월.
(7) Cf. Robert Wiren, <소말릴란드, 소외된 국가Somaliland, pays en quarantaine>, Karthala, Paris,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