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생명존중 인식, 어디까지 왔나

2016-10-31     서국화
     
지난 10월 4일, 서울시청 지하 시민청은 ‘동물과 함께 사는 세상’으로 변했다. ‘세계 동물의 날(World Animal Day)’을 맞이해 서울시와 사단법인 ‘카라(KARA)’를 비롯한 7개 동물보호단체가 ‘동물과 함께 사는 서울’ 행사를 개최한 것. 10월 4일부터 7일까지 나흘간 열린 ‘동물과 함께 사는 서울’에서는 동물보호 도서전, 채식빵 시식, 동물관련 퀴즈 등 ‘동물권’ 인식 제고를 위한 체험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졌다. 이제 시 단위로 며칠씩 행사를 할 만큼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확대된 것이다. 윤리적 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은 ‘동물실험 안 한 화장품’을 찾기도 한다. 작년 11월에는 ‘화장품 동물실험 금지법’이 통과됐다. 7년 전 잔인한 동물실험으로 악명높았던 ‘로레알’까지 동물실험을 대체할 인공 피부를 개발 중이라고 한다. 실험의 고통으로부터 동물들을 해방시키려는 인식과 노력은 어디까지 와있을까.


우리나라는 인간 외 동물에 대한 생명존중 인식이 아직 미약한 편이고, 이와 관련한 법제도 마저 매우 미흡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국내 동물보호법은 1991년 5월 31일 제정돼 같은 해 7월 1일 처음 시행됐는데, 이는 상당히 늦은 출발이다. 미국이 1871년 동물복지법을 제정한 데 비하면 120년, 영국의회가 1822년 동물학대를 금지하는 ‘딕 마틴’법안을 의결한 데 비하면 무려 169년이나 늦게 출발한 것이다.

그나마도 제정 동기의 타율성 탓인지, 내용 측면에서도 추상적이고 권고 차원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1) 그 중 동물실험에 관한 규정에는 단 1개의 조문이 존재했는데, 이 역시 동물실험 과정에 있어 지켜야 할 원칙에 대한 간략한 선언 정도에 그쳤다. 동물보호법은 그 제정 이후, 16차례의 개정을 거듭하며 47개 조항으로 늘어났다. 그에 따라 내용적인 면에서 구체성을 기했으며, 농장동물의 복지를 위한 규정 및 영업규정을 추가하는 등 나름대로 규범력을 높이고자 노력했다. 

드디어 ‘화장품 동물실험 금지법’ 통과, 그러나…

그러다가 2007년 1월 26일 개정 동물보호법에서는 동물실험의 원칙을 선언하면서,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설치 등’에 관한 조문을 추가했다. 그에 따라 2008년 3월 28일에는 실험동물 및 동물실험의 적절한 관리를 위한 「실험동물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실험동물에 관한 별도의 법제정 논의는 2002년부터 있었다. 그러나 16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17대 국회 막판에 이르러서야 통과됐다. 「실험동물에 관한 법률」은 “실험동물 및 동물실험의 적절한 관리를 통해 동물실험에 대한 윤리성 및 신뢰성을 높여 생명과학 발전과 국민보건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하는 법률이다. 즉 동물실험의 실행을 전제로 ‘윤리성’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물실험의 존재 의미, 필요성 등을 근본적으로 논하기 위한 바탕으로 삼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동물실험법에 있어 가장 획기적인 사건은 작년 11월 일명 ‘화장품 동물실험 금지법’이 통과됐다는 것이다. 식약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은 2007년부터 화장품 안전성 평가에 필요한 동물시험을 대체하기 위해 「화장품 독성시험 동물대체시험법 가이드라인」을 발간해 제공해 왔는데, 「화장품법」에서 화장품 동물실험 금지규정을 두게 되자, OECD에서 신규 제정한 피부감작성 동물대체시험법 「In Chemico 펩타이드 반응을 이용한 피부감작성 시험법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추가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일정한 예외를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동물실험을 실시해 제조한 화장품 등의 유통·판매를 금지하려는 ‘화장품 동물실험 금지법’의 제정. 물론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동물실험 화장품을 유통·판매한 경우 그 처벌은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그치고 있기에, 과연 실효성 있는 제재가 가능할 것인지가 의문스러울 따름이다.
사실 이는 ‘실험동물’뿐 아니라 ‘동물’에 관한 우리나라 제도가 전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다. 동물보호에 관한 ‘일반법’이라고 볼 수 있는 「동물보호법」조차 동물의 복지를 제대로 보장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대표적으로 「동물보호법」이 정하는 동물학대의 처벌 수위가 형법상 “타인의 물건을 망가뜨린 경우”보다 가볍게 규정돼 있다. 엄연한 생명체인 동물을 재물보다 낮게 취급하고 있는 셈이다.
반려동물, 농장동물, 실험동물, 동물원 동물 등 사람이 동물을 대하는 행태에 따라 분류된 동물들 중 열악하지 않은 환경에 있는 동물이 없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동물에 관한 법과 제도 정비를 위한 논의를 마치 ‘사람 문제를 해결한 후’에나 논할 만한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해온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헌법적 차원에서 
‘동물보호의무’를 명시하라

그런 점에서 동물보호 및 동물복지 정책공약을 전면에 내세운 녹색당이 원내 진입에 실패한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녹색당은 “동물을 단순히 이윤추구의 대상, 물건으로만 취급하는 관점을 지양하고, 동물도 인간과 함께 공존하는 생태계의 구성원으로서, 고통과 쾌락을 느끼는 생명으로 존중하는 국가적 차원의 정책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정책기조 하에, -헌법적 차원에서 국가의 의무로 ‘동물보호의무’ 명시 -동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생태적 도시 정책 마련 -공장식 축산업을 동물복지 기준으로 전환 -동물학대 제로 사회 실현 -야생동식물 서식지의 보존 및 복원 -모든 고래류와 보호대상 해양생물 보존방안 마련이라는 공약을 내세웠다. 또한 위 6대 분야에서 시행할 구체적인 정책 23개를 발표하는 등 원내 진입에 성공한 다른 정당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상당히 섬세한 동물권 공약을 내세웠다. 
20대 국회에 들어서면서 각 정당이 동물권 정책공약을 꽤 다양하게 내놓기는 했다. 새누리당의 경우, “-반려동물 관련 TF를 통한 반려동물산업 육성 기반 마련 -지방자치단체 직영 유기동물보호센터 설치 지원 확대 및 운영비 지원 방안 검토 -반려동물 문화센터 건립을 위한 지원방안 검토 -동물보호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교육·홍보 등 지속 추진”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또한 더불어민주당은 “-지자체별 반려동물 전용 놀이 공간 설치 -대중교통에 반려동물 동반 탑승 공간 마련 -유기동물보호소 각 지자체 직영 운영 강화 -유기동물 보호소 및 의료진 확충 -‘종견장(강아지공장)’에 대한 사육환경 및 동물복지 기준 강화를 위한 ‘허가제’ 실시 -동물원에 대한 관리 규정 및 사육동물의 복지 보장을 위한 ‘동물원법’ 제정”등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그리고 국민의당의 경우, -지자체 직영 유기동물보호소를 대폭 확대 -지자체 유기동물보호소 수의사 상주 추진 -동물 상습학대범 단속 강화 등을 약속했다. 

동물실험 금지법, 
시민의식 성장의 결과물

 
우리나라 헌법은 ‘동물’에 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해 환경에 대한 의무를 규정하고, 환경의 일부인 동물도 보호해야 한다고 선의로 해석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동물’에 대한 제도가 활발히 논의되길 바라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시민들의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과 요구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요구들이 모여져 정책변화를 이뤄내고 있다. ‘화장품 동물실험 금지법’은 동물실험 화장품의 유통·판매를 금지하고, 위반자를 처벌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도 물론 크다. 나아가, 무엇보다 “동물들의 불필요한 고통을 원치 않는다”는 소비자들의 의식이 반영된 결과라는 의미가 더욱 크다고 본다.
최근 정부의 정책기조나 행정의 방향은 ‘규제 완화’와 ‘산업화’의 명목 하에, 생명의 존엄성과 생명을 위한 복지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더 많은 동물들이 착취와 학대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동물에 대한 인간의 월권행위를 자각하고 비인간동물도 ‘생명’임을 깨달아가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모든 법과 제도가 자본과 기업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현 시스템 속에서, ‘동물’관련 제도에서는 의식 있는 시민들에 의한 상향적 정책을 형성해 온 것을 볼 때, ‘고통 없는’ 제품을 위한 제도 보완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낙관해본다.  


글·서국화
변호사.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KARA) 법제이사를 맡고 있다. 녹색당 당원이자 녹색법률센터 운영위원이며, 서울지방변호사회 법제위원이다. 2006년부터 ‘비덩주의자(생선과 육류 덩어리만 먹지 않는 채식인)’로 살고 있다.

(1) 벌칙으로 ‘동물학대의 경우 2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