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종견 콤플렉스’ 탈피하는 브라질리아

2010-02-04     라미아 우알랄로

정치·경제 세력으로 부상한 브라질이 이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의석을 노리고 있다.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라틴아메리카의 ‘급진적’ 대통령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이란의 핵 프로그램 개발 권리를 지지하는 동시에 미국과도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브라질이 폭압적인 독재정권의 원수를 맞이하다니 당혹스럽습니다. 독재국가들과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이들 국가의 원수를 우리 안방으로 불러들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1)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의 반대 세력 가운데 대표적 인물인 조제 세하 상파울루 주지사는 지난 11월 23일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의 브라질 방문을 두고 이렇게 평했다. 막강한 인기를 누리는 룰라 대통령을 세하 주지사가 이렇게까지 맹공격한 것은 드문 일이다.

대외정책은 사회 프로그램과 더불어 룰라 대통령이 변화를 가져온 대표적 부문이다. 룰라 대통령은 금융자본에 굴복하고 경제 프로그램을 일부 포기(제2집권기에 부분적으로 재추진)하기는 했지만 엘리트 기득권 계층과는 관계를 단절했다. 19세기 영국 제국의 가르침을 추종하던 이들 엘리트는 오늘날에는 ‘자유세계’의 승리를 위해 투쟁하는 미국의 보호 아래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러한 룰라 대통령의 정책이 그의 이념적 태도를 반영한다고 하기는 곤란하다. 비록 그의 두 주요 측근인 세우수 아모링 외무부 장관과 마르코 아우렐리우 가르시아 국제문제 특별자문은 뚜렷이 ‘좌파’를 표방하고 있지만 말이다. 기껏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확고한 경제 실용주의와 대중적 정부를 그가 선호한다는 사실이며, 노예제도의 과거 때문에 브라질이 아프리카에 역사적 빚을 지고 있다는 믿음을 엿볼 수 있는 정도다. 더불어, 브라질이 스스로 발언권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른바 ‘잡종견 콤플렉스’를 벗어버리려 한다는 확증을 찾아볼 수 있다.

노조주의자 대통령의 윈윈 전략

룰라 대통령은 2003년 1월 1일 열린 취임식에 참석한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열렬히 환대했다. 그리고 그 뒤 수개월 동안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거리낌 없는 화목을 과시해 브라질 노동당 활동가들을 절망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룰라 대통령은 무엇보다 노조주의자다. 즉, 그는 누구와도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하며 격론이 오간 뒤에라도 확실한 합의만 이루어지면 양쪽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다고 확신하는 지도자다.

제1집권기가 시작된 이래 그는 모두 399일을 국외에서 보냈으며(2) 대부분 다수의 기업인들이 수행했다. 방문지에는 우선순위 1위로 부상한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인도·중국·러시아 등 주요 신흥개발도상국뿐 아니라 중앙아메리카와 중동까지 포함됐다. 2005년 5월에는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처음으로 라틴아메리카와 아랍 국가들의 정상회담이 개최됐다. 옵서버 자격을 요구했던 미국은 배제됐다. 이듬해에는 나이지리아의 아부자에서 아프리카 국가들과 자리를 함께하기도 했다.   

기업가들은 브라질 회사들의 팽창에 도움이 되는 룰라 대통령의 대외정책에 환호했다. 석유회사인 페트로브라, 광산업체 발레, 건설부문을 이끄는 오데브레시, 카마르고 코레아, 육류업계를 선도하는 JBS 프리볼, 대표적인 닭고기 회사 BRF, 항공기 제조사 엠브라에르, 이타우 은행, 그리고 수백 개에 이르는 에탄올 및 콩 생산업체 등의 수출과 국외 투자는 가히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게다가 대규모 해저 유전까지 발견되면서 브라질의 수출 사명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중국 당국은 페트로브라에 100억 달러를 빌려주면서 장차 이 회사의 석유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받기도 했다. 올해 중국은 최초로 미국을 제치고 브라질 제품의 수출 대상국 1위로 부상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브라질의 정치와 사업이 가장 훌륭한 동반 효과를 발휘하는 지역은 라틴아메리카다. 이웃 국가인 베네수엘라의 수요 급증으로 가장 먼저 이득을 본 것도 브라질이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이제 빈곤층도 육류, 우유, 소형 가전 소비의 맛을 알기 시작했으나 제대로 된 농업·공업 분야가 없어 처음에는 콜롬비아에서 수입을 했다. 그러나 점차 이곳 당국과 관계가 악화되면서 브라질로 눈을 돌렸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브라질 기업 암베브가 전설적인 맥주회사 킬메스를 인수해놓고 이 사실을 현지 국민이 알지 못하게 쉬쉬하고 있다. 이곳의 주요 육류 생산업체들도 국적이 브라질로 바뀐 상태다. 우루과이의 상황도 마찬가지로, 특히 쌀 분야의 핵심기업들이 브라질 기업의 손에 넘어갔다. 볼리비아의 경우 브라질 기업이 콩과 가스 분야를 중심으로 경제의 5분의 1 이상을 장악했다. 파라과이에서는 알토파라나주, 산페드로주, 콘셉시온주, 아맘바이이카닌데유주의 비옥한 토양에서 브라질 콩이 재배되고 있다. 브라질 국립개발은행은 브라질 기업이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금융 지원을 해준다.(3)

이러한 상황은 갈등을 낳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브라질 공산품들의 공세에 대한 불만이 자자하며, 에콰도르에서는 오데브레시가 부당 이익을 취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볼리비아 동부의 농지에는 브라질 대지주들이 자리를 잡고 에보 모랄레스 정권의 반대파와 동맹을 과시하고 있다. 룰라 대통령은 사업과 선린관계를 조화시키기 위해 여러 차례 단호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의 결정은 대부분 지역 통합이라는 명분을 표방했으며, 언론이 요구하는 보복 조치들을 막는 것이 관건이었다.  미국 정부가 애착을 갖고 있던 미주자유무역지역(FTAA) 창설 계획이 사장된 후, 브라질 정부는 라틴아메리카 통합을 정책의 중심축으로 삼았다.  룰라 대통령은 2006년 5월 페트로브라가 개발 중인 볼리비아 가스 매장지를 국유화하기로 한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의 결정이 ‘최고의 주권’을 보여준다며 높이 평가했다. 브라질은 또한 파라과이와의 국경에 건설된 양국 공동의 대형 수력발전소 이타이푸의 경영 조건들을 재검토하기로 지난 7월 결정했다. 이 조건들은 그간 파라과이 쪽에 불리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리하여 브라질은 파라과이와의 오랜 분쟁을 종결했다. 이는 파라과이의 페르난도 루고 정권의 안정을 위해 중요한 조치였다.

주변국 결집하며 미국과 대립각

파라과이의 루고 대통령과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대통령이 브라질 엘리트와 미국 당국의 기분을 거스르고는 있지만 가장 눈엣가시 같은 존재는 아무래도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다. 룰라 대통령은 차베스 대통령과 견고한 동맹관계를 맺었다. 둘은 ‘두 개의 좌파’론에 매몰되기를 거부했다. ‘두 개의 좌파’론이란, 한쪽에는 책임감 있고 현대적이며 금융 균형에 관심을 갖는 좌파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급진적이고 대중주의적이며 미국에 반대하는 좌파가 있다는 주장으로, 전자는 브라질이 주도하고 칠레·우루과이가 포함되며 후자는 베네수엘라와 쿠바가 이끌며 볼리비아·에콰도르·니카라과가 속한다고 본다.

두 나라의 동맹관계는 최근 몇 년간 출범한 주요 라틴아메리카 기구들의 핵심을 이룬다. 가장 중요한 기구인 남미국가연합(UNASUR)은 미주기구(OAS)를 대체한다는 목표로 2008년 5월 브라질리아에서 탄생해 남미 12개국이 가입되어 있다. 미주기구는 본부 소재지가 워싱턴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 미국 정부에 의존적이다. 반면 방위위원회를 두고 있는 남미국가연합은 아직 취약하기는 하나 이미 에콰도르와 콜롬비아 간 긴장을 완화하기도 했고, 2008년 9월에는 모랄레스 대통령의 집권 정당성을 재천명하며 볼리비아 야당이 주도한 불안정화 시도를 무산시키기도 했다. 두 차례 모두 미국 정부의 개입은 없었다.

콜롬비아에 주둔한 7개 미군 기지를 두고 브라질이 강력히 항의한 것도 남미국가연합을 통해서였다. 브라질 정부는 남미에 분쟁이 발생할 경우 외부 개입 없이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2008년 4월 남미와 카리브 해역 순찰을 위해 미 해군 제4함대가 부활하자 룰라 대통령이 이를 비난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브라질과 미국의 불화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계기는 온두라스 사태였다. 지난해 6월 28일 쿠데타가 발생하자 남미국가연합은 마누엘 셀라야 대통령이 임기 말까지는 집권할 것을 주장했다. 2009년 9월 21일, 축출된 국가원수가 브라질 대사관을 거처로 삼으면서 룰라 대통령은 사태의 최전선에 서게 되었다. 아우렐레우 가르시아 국제문제 특별자문은 격분해서 이렇게 말했다. “브라질은 가능한 모든 제재와 압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미국이 취했을 만한 조치에 비하면 보잘것없다. 우리도 미국이 가진 압력 수단들을 보유했더라면 미국처럼 했을 것이다.”

미국에 대한 분노가 한층 거세진 것은 지난해 11월 말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1월 29일 온두라스 쿠데타 정권이 실시한 선거를 인정하기로 한 자신의 결정을 정당화하는 내용의 서한을 룰라 대통령에게 보냈다. 이 서한에서 그는 또한 세계무역기구 협상 및 코펜하겐 기후정상회의에서 브라질에 대해 미국이 공공연하게 취한 부정적 태도의 타당성도 역설했다.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브라질을 방문하기 전날 전달된 이 서한은 룰라 대통령에게 이란의 인권유린 상황과 핵 프로그램의 위험도 아울러 상기시켰다.

룰라 대통령은 핵무기 보유국들의 태도를 위선적이라고 평가하면서 분노했다. 12월 초 그는 “다른 국가가 핵무기를 보유하지 못하도록 요구할 만한 도덕적 권위를 갖추려면 자신이 먼저 이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을 밝히면서 브라질 헌법은 핵폭탄 개발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음을 환기했다. 그러나 사실 이란의 민간 핵기술 개발은 브라질 당국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라며 룰라 대통령의 측근들은 속내를 털어놓는다. 개발 금지는 브라질에 위태로운 선례를 남길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룰라 대통령은 브라질의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의석 확보에 일종의 강박증을 갖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국제통화기금(IMF)의 개혁도 그의 관심사다. 주요 신흥국가들은 국제통화기금에 막대한 규모로 기여를 하면서도 정작 투표권의 비중은 초라하기 그지없는 실정이다.

룰라 대통령이 쥔 마지막 카드는 브라질의 중동 평화협상 테이블 진출이다. 11월 말 룰라 대통령은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에 이어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과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방문을 맞이했다. “브라질이 미국의 노선에 전적으로 동조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면 정직한 대화 상대자로 인식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미국 컬럼비아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토머스 트리배트 수석연구원은 말한다. 이번에도 ‘룰라 선수’는 브라질을 말 그대로 강대국으로 만들어줄 기회의 문이 자신의 협상 능력에 힘입어 열리기만을 기대하고 있다. 

글•라미아 우알랄로 Lamia Oualalou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거주하며, 온라인 신문 <메디아파트>(Mediapart)에 국제관계 기사를 기고하고 있다.

번역•최서연 qqndebien@ilemonde.com

<각주>
(1) Jose Serra, ‘Visita indejavel’, <Folha de Sao Paulo>, 2009년 11월 23일.
(2) ‘Como o Brasil e visto la fora’, <Zero Hora>, 2009년 11월.
(3) 브라질 개발·산업·무역부 산하 은행
(4) 2008년 3월 콜롬비아는 에콰도르 영토 내의 게릴라 캠프에 폭격을 가하면서 기본적 주권 원칙을 위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