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유령’과 진보·개혁의 계보학

[진보좌파의길] 지방선거 연대론의 스펙트럼

2010-02-04     최원

‘민주대연합’ 대 ‘진보대연합’ 20년 논쟁 재현
세종시 문제에서 ‘노무현 교집합’ 찾아내야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당 간 연합 전략을 둘러싼 논의가 한창이다. 논의의 중심에는 민주 대연합이냐 진보 대연합이냐 하는 질문이 놓여 있다. 1987년 대선에서 출발해 20년 가까이 이어지는 ‘비판적 지지론’에 대한 찬반 논란을 반복하는 듯이 보이는 이러한 대립 구도는 계속되는 공방에도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는 실정이다. 민주 대연합을 주장하는 쪽은 반한나라당의 기치를 들고 야당 간 차이를 덮어둔 채 힘을 모으자고 말한다. 반대로 진보 대연합을 주장하는 쪽은 그러한 반한나라당 전선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문제 삼고, 야당 간 차이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자고 말한다. 이러한 답보 상태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 글은 진보·개혁 세력의 계보를 따져보고, 우리가 다시 노무현의 ‘유령’을 불러낼 필요가 없는지 묻고자 한다.

탐욕인가 견해차인가

우선 민주 대연합과 진보 대연합의 차이점부터 살펴보자. 어떤 차이가 문제인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노동 유연화, 해외 파병 등 일련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현격한 견해 차이가 있다. 이 세 정책은 알다시피 모두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추진되었고, 이명박 정권에 그대로 ‘계승’되었다. 따라서 이 쟁점들이 부각되는 것을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달가워할 리 없다. 지지 기반이 유사한 창조한국당도 같은 입장이다. 이들은 이명박 정권이 민주화 이전으로 역사를 되돌리고 있으며, 단지 고문이 없을 뿐 과거 군사정권과 다를 바 없는 독재를 행하고 있다고 보면서, 민주 대연합을 통해 이를 막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역설한다.

이러한 견해는 위에서 언급한 ‘개혁 3당’뿐 아니라 진보 진영 안에까지 깊숙이 포진해 있다. 민주노동당은 얼마 전 ‘진보 대통합을 위한 로드맵’을 제시하면서 진보 대연합을 당론으로, 그것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그러나 당내 소수 정파인 ‘다함께’ 정도를 제외한다면, 민주노동당 내 다수는 진보 대연합을 민주 대연합으로 가기 위한 사전 준비쯤으로 해석하고 있을 뿐이다.(1) 민주노동당이 이렇게 표리부동한 모습을 보이는 까닭은, 지난해 10월 재보선 이전에 민주노동당 노선이 원래 ‘민주 대연합’이었다는 데 있다. 한때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의 당 대 당 통합 주장까지 등장했으며, 여기에 대해 민주노동당도 싫지만은 않은 기색을 내비친 바 있다.

하지만 안산 상록을 재보선에서 진보 진영이 공동 추대한 임종인 후보를 민주당이 막판에 거부하고 한나라당 입당설까지 나 있던 김영환 후보를 택하자, 민주노동당은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독자 강화’ 노선을 표방하고 나섰다. 그러나 토라져서 한 말을 다 믿을 수는 없다. 여전히 ‘민주 대연합’에 대한 미련은 민주노동당 안에 진하게 남아 있다. 최근 ‘희망과 대안’ 및 ‘민주넷’ 초청 연합전략 토론회에서 이정희 의원이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을 향해 “우리가 먼저 연합을 깨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계약서도 쓰기 전에 도장부터 넘겨준 것은 이러한 심정의 솔직한 표현이다.

반면 비교적 일관되게 진보 대연합을 주장하는 진보신당은 반성이 전제되지 않은 반한나라당 전선은 의미가 없다는 입장이다. 신자유주의를 통해 사회를 양극화로 몰아넣고 서민의 삶을 극도로 불안정하게 만든 김대중·노무현 두 정권에 대한 국민의 엄혹한 평가는 이미 내려졌다. 국민은 이들 정권에 ‘무능력’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주고 ‘유능한’ 기업가 출신의 이명박 정권을 택했는데, 반성도 없이 민주주의라는 옛 노래를 부르며 무작정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유고집에서 부분적으로 시인했듯이, 과거의 실책이 신자유주의에 있었음을 인정하고 서민의 삶을 향상시킬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국민이 표를 줄 리 만무하다. 집권 3년차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40%를 안정되게 상회하는 것은 민주 대연합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인식이 고립된 자기들끼리의 인식에 불과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이는 민주주의가 의미 없다는 말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새롭게 ‘발명’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더는 대중의 가슴속을 펄펄 살아 헤엄치는 물고기가 아니라 시장 바닥에 버려진 죽은 물고기라는 뜻이다.

그러나 파트너가 되어줘야 할 민주노동당의 전선 이탈로 인해 진보신당은 진보 대연합을 실현할 수 있는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작 자신의 입장과는 상반되게, 민주 대연합을 추진 중인 ‘5+4 모임’(5개 야당과 4개 시민단체 모임)에는 참여하면서 진보 대연합을 위한 테이블은 따로 마련하지 못하는 한계를 내보이고 있다. 우선 이것은 입장의 정당성 여부 이전에 객관적 힘 관계상 진보신당이 자신의 구상을 실현하기 힘든 처지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진보신당이 그나마 발휘할 수 있는 힘을 제대로 다 발휘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예컨대 한-미 FTA 등 전국적 이슈를 구태여 지방선거에 가지고 들어와 분란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는 국민참여당 유시민 당원의 비판에 진보신당은 그리 효과적인 대응 논리를 펴지 못했다. 기껏해야 그러한 쟁점이 지방선거와 관련이 없지 않다는 변명을 할 수 있었을 뿐이다. 물론 진보신당으로서는 이러한 야권 연합이 단지 지방선거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적어도 2012년 대선까지 규정하는 만큼, 지방선거에 관련된 쟁점만 논의하자는 것은 근시안적이고 정치공학적 접근일 뿐이라고 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만 말할 수 없었던 이유 또한 분명하다. 진보신당이 지방선거에 밀착된 자신만의 독특한 입장과 정책을 가공하지 못했다는 점을 자인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 민주 대연합이냐 진보 대연합이냐가 이번 야권 연합 전략 논의의 유일한 쟁점은 아니다. 민주 대연합을 주장하는 쪽에서도 ‘지역주의’ 문제를 둘러싼 묘한 긴장이 형성되고 있다. 특히 국민참여당은 ‘호남 지역에서의 비민주당 연대’를 주장할 만큼 이 문제에 민감하다. 정책 방향만 보면 국민참여당은 민주당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정당의 운영 방식에서 좀더 당원들의 참여를 보장한다는 점을 내세우지만, 그것은 당 정책 전반에 이미 찬성하는 당원들의 참여 문제에 불과하기 때문에 형식주의적 측면이 강하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실제 차이는 지역적 지지 기반의 차이에 있다. 민주당이 호남의 옛 민주화 세력을 대표한다면, 국민참여당은 영남의 옛 민주화 세력을 대표한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가 얼마 전 예리하게 지적했듯이, 영남이 보수·우익 세력을 대표하고 호남이 민주화 세력을 대표한다는 것은 왜곡된 역사관에 기초한 것이다.(2) 대구·경북이 전통적으로 보수·우익의 지역적 거점이었던 것은 맞지만, 부산·경남은 오히려 1979년 부마항쟁으로 대변되는 민주화 세력의 거점이었다. 이러한 전통과 구도가 김영삼이 노태우와 손잡은 3당 통합으로 인해 영남-호남 지역주의 대결 구도로 대체되었던 것이다. 노무현은 3당 통합에 반대해 부산에 내려가 민주화 세력의 계보를 이어가려고 했던 예외적 정치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노무현에게서 이것만큼은 높이 사줄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후 그가 ‘바보 노무현’이라는 명예로운 별명을 얻으며 신바람을 일으킨 것도 사실 이러한 역사적 선택에 도움받은 바 크다.

그러나 현재 노무현을 계승한다고 공언하는 국민참여당이 영남 지역에서 예전과 같은 힘을 발휘하리라고 보기는 힘들며, 이 때문에 이번 지방선거에서 호남 지역으로의 진출은 자신의 쪼그라든 입지를 확장하기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토론회에서 유시민 당원이 민주노동당보다 더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이는 여전히 세 불리기를 위한 ‘정치적 계산’에 지나지 않으며, 국민참여당이 ‘노무현 정신’을 이어받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유시민 당원은 지난 총선에서 대구 수성을 지역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셨는데, 선거 전에는 “낙선하더라도 몇십 년 만에 맺은 대구 지역과의 인연을 바꾸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선거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주민등록증을 파서 서울로 올라가버렸다. 대구 지역에서 민주화운동을 해온 김태일 영남대 교수는 이 일을 회상하며 “유시민에게는 노무현의 역사의식이 없다”고 일갈했다.(3)

그렇다면 여기에는 어떤 틈새가 있으며, 진보 진영 쪽에서 봤을 때 단지 호남 지역에서 민주당으로부터 몇몇 자리를 양보받겠다는 식의 천박한 ‘흥정’을 넘어서는 정치적 입장을 가공할 수 있는 여지, 곧 (이명박에 의해 계승된 신자유주의적인) 어떤 노무현에 끝까지 반대하면서도 (지역주의에 대항해 투쟁한 정치가로서의) 또 다른 노무현의 유령을 계승하는 정치적 입장을 세워낼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한다.

야권 내 연합 논쟁에서 잠시 눈을 돌려 전체 판을 바라보면 지역주의에 관련된 세종시라는 또 다른 이슈가 현재 지방선거 정국을 지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문제에서 현 정부와의 싸움을 주도하는 것은 민주당도 국민참여당도 아닌, 여권 내 박근혜 계열이다. 사실 야당들은 들러리나 서서 이 폭풍이 빨리 지나가주기만 바라는 형편이다. 친박이 주장하는 것은 이명박의 수정안에 반대해 세종시 ‘원안’을 사수하자는 것인데, 여기서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현재의 행정부처 분할 이전안이 사실은 노무현의 ‘원안’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노무현의 원안은 오히려 ‘수도 전체’의 이전이 아니었던가? 관습법 운운한 헌법재판소의 이해할 수 없는 ‘정치적 판결’에 의해 그 길이 막히자 타협책으로 들고 나온 것이 현 세종시 안이다. 문제는 ‘서울 지역주의’인데, 다시 수도 전체의 이전이라는 노무현의 원안을 생태주의 및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더 급진적으로 재해석할 여지는 없는가?

지역과 계급의 고차방정식

물론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뒤집는다는 것은 곧 ‘개헌’을 의미하는 만큼, 진보 진영은 이 문제를 조급하게 종결짓지 말고 장기적인 국민적 논의 대상으로 만들자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과열된 친이계와 친박계의 권력싸움에 지친 국민에게 새로운 활로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한나라당 대 민주당의 양당 체제를 떠받드는 영호남 지역주의와 서울 지역주의(특히 부동산 벨트)의 두 축을 해체하지 않는다면 진보 정당이 대안세력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그만큼 제한돼 있는 만큼, 진보 정당은 이 문제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봐서는 안 될 것이다. 종전처럼 지역 문제를 계급 문제로 돌파하려고 하기보다는 지역 문제와 계급 문제가 복잡하게 얽힌 양상을 분석하고, 정밀한 대안을 전국 차원과 지역 차원에서 동시에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진보 정당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 놓여 있어야 할 것 같다.

글•최원
뉴욕 뉴스쿨대 철학과 석사. 현재 시카고 로욜라대에서 철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번역서로 에티엔 발리바르의 <대중들의 공포>가 있으며, 블로그 ‘지연효과 After-Effect‘(marxpino.textcube.com)를 운영하고 있다.

<각주>
(1) 김하영, ‘진보 진영의 연대·연합 어떻게 할 것인가?’, <마르크스21>, 4호(2009년 겨울호).
(2) 손호철, ‘부마항쟁이 홀대받는 이유, PK의 정신분열?’, <프레시안>, 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015174421 &section=01.
(3) 김태일, ‘유시민에게는 노무현의 역사의식이 없다’, <프레시안>, 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00112122147&section=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