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패배의 근본원인은 무엇인가
2016-12-02 제롬 카라벨
“로날드 레이건은 리처드 닉슨도 빌 클린턴도 하지 못한 방식으로 미국을 변모시켰으며, 근본적인 변화의 길로 미국을 이끌었다.”(1)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10개월 앞둔 시점, 버락 오바마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오바마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민주당 경선 라이벌인 힐러리 클린턴과 달리, 자신은 ‘변화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러나 8년이 지난 지금, 미국에서 근본적으로 변화한 건 아무 것도 없다. 1930년대 이후 가장 심각한 경제위기가 미국에 불어 닥쳤을 때 백악관에 입성한 오바마는, 우선 전반적인 붕괴를 막는 데 힘썼다. 8천억 달러 규모의 경제활성화 대책을 내놓으면서 재정긴축 도그마는 탈피했으나, 신자유주의 정통노선의 다른 근본원칙들은 지키려 애썼다. 이른바 ‘기업의 신뢰’를 해칠 만한 조치는 조금도 실시하려 들지 않았고, 금융기관 지원에도 적극 나섰다. 이 금융기관들 중에는 위기의 주범들도 포함돼 있었다.
2015년 4월 힐러리 클린턴이 대선 출마를 선언할 당시에는 이미 곳곳에 경고등이 켜져 있었다. 민주당은 2010년과 2014년 중간선거에서 참패했고 경제는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며, 우파의 티파티(Tea Party)와 좌파의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가 들끓는 불만을 반영하고 있었다. 이처럼 점차 불만이 고조되는 가운데 전직 퍼스트레이디이자 전직 뉴욕 상원의원, 그리고 전직 국무장관이자 현상유지주의의 현신인 힐러리 클린턴이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클린턴은 민주당 엘리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당 상임위원, 후원자, 슈퍼대의원(의회 의원 또는 민주당전국위원회 위원) 등 모든 이들은 클린턴이 백악관에 입성할 자격이 있다고 오래 전부터 확신했다. 오바마는 조 바이든 부통령의 출마를 만류했다. 그리고는 버니 샌더스와 민주당 경선에서 맞붙어 힘겨운 싸움을 벌이던 클린턴을 지지했다. 지난 11월 8일의 청천벽력 같은 결과는, 국민들의 분노가 팽배함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클린턴 후보에게 매달리기로 결정한 것과 떼어놓고 이해할 수 없다.
힐러리 클린턴의 고문들은 “도날드 트럼프라는 걸림돌만 제거하면 백악관 입성은 따 놓은 당상”이라며 기뻐했다. 트럼프는 공화당 경선 캠페인 내내 수많은 인종차별, 외국인혐오, 성차별 발언을 쏟아냈고, 유권자들은 그가 예측 불가한 기질 때문에 대통령이 되기에 ‘부적합'하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아니 적어도 민주당 전략가들이 구축한 표적집단은 그렇게 장담했다.
어떤 전략도 상쇄할 수 없었던 ‘메시지 부재’
그러나 트럼프나 샌더스와 달리 클린턴은 슬로건 하나 마련하는 것에도 애를 먹었다. 85개 이상의 시안을 검토한 끝에 선택한 것이 고작 “함께하면 더 강하다”라는 무미건조한 문구였다.(2) 그 정도로, 클린턴 후보에게는 콘텐츠가 없었다. 심지어 2016년 2월 클린턴 캠프의 여론조사 담당고문 조엘 베넨슨이 선거대책위원장 존 포데스타에게 메일을 보내, “대체, (클린턴이) 전하려는 주된 메시지가 무엇인지, 짐작이라도 가시는지요?”라며 하소연까지 했을 정도다.(3)
2012년 대선 당시 오바마는 자신의 경쟁자인 공화당의 미트 롬니가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해외로 돌리기에 급급하다며, 그를 매정한 금권정치가라고 평했다. 이러한 공격노선에 힘입어 오바마는 백인노동자들의 표를 획득할 수 있었고, 덕분에 오대호 연안 ‘러스트 벨트(Rust belt)’의 낙후한 공업지대를 이루는 펜실베니아 주, 위스콘신 주, 오하이오 주, 미시건 주에서 승리를 거뒀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거리낌 없이 불법이민자들을 고용하고 소규모 기업들을 압박하던 억만장자 트럼프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공격 대상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힐러리 클린턴의 개인 사업이 다국적기업들의 자금 덕분에 번창했다는 것이었다. 2013년 1월부터 2015년 1월까지 클린턴은 92차례의 강연을 하고 2천170만 달러를 챙겼는데, 그 강연의 대부분은 대기업 간부들을 상대로 이뤄졌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돈줄인 월스트리트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선거캠페인은 벌일 수가 없었다.
세계화와 탈산업화로부터 소외된 계층을 사로잡는 데에 클린턴 후보가 역부족임을 깨달은 선거본부는 정체성에 주안점을 둔 전략을 택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라틴계, 아시아계, 25~35세, 백인 여성 등 5개 목표집단에 초점을 맞추어 오바마의 다인종 연대를 새롭게 구축하기로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선택은 2016년 3월 17일 존 포데스타 선대위원장이 작성한 메모에도 드러난다. 여기에서 그는 잠정적인 부통령 후보들을 언급하면서 “대략적인 <식품군>에 따라 이름을 정리해놓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도 정치적 메시지의 부재를 상쇄할 수는 없었다. 2012년 대선 당시 오바마에게 승리를 안겨준 집단들이 2016년에도 클린턴 후보에게 표를 던지기는 했다. 하지만 그 비율은 줄어들었다. 2012년에는 93%의 흑인이 오바마에게 투표했으나 2016년에는 88%만이 클린턴을 지지했고, 라틴계는 71%에서 65%, 아시아계 역시 71%에서 65%, 25~35세는 60%에서 55%로 떨어졌다. 예외를 보인 집단은 여성으로, 2012년보다 1%p 늘어난 55%를 기록했다. 여성혐오주의자라는 낙인에 성추행으로 비난까지 받은 트럼프가 전체 백인여성 중 53%의 표를 얻었는데 특히 대졸 미만 여성의 67%가 그에게 표를 던졌다.(4)
목표집단 동원전략은 나머지 집단에서 지지 하락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한데, 트럼프는 그 덕을 봤다. 그리고 전국적 차원에서는 힐러리 클린턴의 다인종 연대가 그럭저럭 효과를 봤다. 트럼프보다 최소 1백만 표는 더 획득했으니 말이다.(5) 그러나 미국 대선에서는 주별 승패가 중요하다. 주별로 살펴보면 클린턴의 패배지는 오하이오 주, 위스콘신 주, 펜실베니아 주, 미시건 주로 대의원수를 합하면 64명에 달한다.
그런데 트럼프가 ‘러스트 벨트’를 이루는 이들 4개 주에서 승리를 거둔 건 그가 명확하고도 위력적인 메시지를 전했기 때문이다. 그는 공화당 정통노선에 등을 돌린 채 자유무역협정과 기업 해외이전을 줄기차게 공격했다. 또한 그는 국내에 수백만 명의 불법체류자들이 존재하는 현실, 그리고 국경을 방어해내지 못하는 미국의 무능함을 비난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이 이라크, 시리아 등지에서 불필요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도 비판했다. ‘위대한 미국의 부활’이라는 그의 슬로건, 미국우선주의를 구현하자는 끊임없는 호소, ‘소외된 미국인들’에 대한 반복적 언급은 백인노동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에 안성맞춤이었다.
많은 평론가들은 백인서민계층의 외국인혐오와 인종차별주의 때문에 클린턴이 패배했다고 진단했다. 물론 이런 점이 어느 정도 원인으로 작용하기는 했다. 실제로 여러 연구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이 다른 후보 지지자들에 비해 외국인 혐오성향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줬다.(6) 하지만 2008년과 2012년 대선에서는 앞서 언급한 4개 주에서 버락 후세인 오바마라는 이름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승리를 거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당시 오바마는 백인노동자들이 주민 대다수를 이루는 여러 카운티에서 여유 있는 격차로 앞서곤 했다.
올해 선거의 경우 이들 주 모두에서 민주당에 투표한 흑인의 비율이 줄어들었다. 반면 대졸 미만 백인 남성 가운데 트럼프를 지지한 이들의 비율이 펜실베니아 주는 71%, 오하이오 주는 70%, 위스콘신 주 69%, 미시건 주는 68%에 달했다. 대졸 미만 백인 여성의 경우 펜실베니아 주에서는 58%, 미시간 주에서는 57%, 오하이오 주에서는 55%가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다.
신뢰할 만한 진보적 대안은 존재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바로 이들 유권자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선거유세기간 동안 위스콘신 주에는 단 한 번도 들르지 않았으며, 40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노동자계층의 생활여건에도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1975년에서 2014년 사이 대졸 미만 백인 노동자들의 중위소득은 20% 이상 감소했는데 특히 2007~2014년에만 14%나 급락했다.
백인 서민계층과 민주당의 단절은 비단 경제적 차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문화적 차원이 추가된다. 많은 백인 노동자들이 진보성향 엘리트들에게 느끼는 근거 있는 모멸감이 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은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들과 함께 뉴욕에서 가진 모금행사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하며, 이런 감정을 부추겼다.
“트럼프 지지자의 절반은 개탄스러운 인간 집단이라 부를 수 있죠. 그렇지 않나요? 그 사람들은 인종차별주의자, 성차별주의자, 동성애 혐오자, 외국인 혐오자, 이슬람 혐오자 등등이에요.” 그러고 나서 “일부 지지자들은 구제불능”이라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지난 11월 8일의 민주당 참패 이후, 공화당은 백악관, 하원, 상원을 점령했고 조만간 연방대법원까지 차지할 전망이다. 뿐만 아니라 50개의 주지사 자리 가운데 35개, 그리고 주 상원 31개, 주 하원 32개를 공화당이 장악했다. 그런데 이러한 정치적 역전은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이뤄질 수 있다. 1964년 대선에서는 민주당의 린든 존슨이 공화당의 배리 골드워터를 23%p 차로 꺾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그로부터 4년 후,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이 민주당의 조지 맥거번을 역시 23%p 앞서며 승리를 거뒀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2016년은 민중봉기의 해였다. 논설가 존 주디스는 “주요 정당들이 평가절하하거나 도외시한 중요한 문제들을 조기에 탐지하는 시스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이런 민중운동이라고 봤다.(7) 그러나 좌파의 봉기와 우파의 봉기는 근본적으로 구별된다고 그는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좌파의 봉기는 ‘엘리트에 저항하는 민중’을 수호하려는 것이다. 반면, 우파의 봉기는 ‘이민자, 무슬림 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같은 제3의 집단을 애지중지하는 엘리트에 저항하는 민중을 수호’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트럼프의 경우가 바로 우파 봉기의 성공에 해당한다.
그러나 여러 유럽국가의 경우와는 달리, 미국에는 사실 신뢰할 만한 진보적 대안이 존재했다. 그리고 이를 구현한 이는, 다름 아닌 버니 샌더스 후보였다.
글·제롬 카라벨 Jerome Karabel
사회학자,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 교수. 저서로 <선택된 자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의 수용과 배제의 숨겨진 역사>(Houghton Mifflin·보스턴·2005) 등이 있다.
번역·최서연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졸업.
(1) Chuck Raasch, 'Obama aspires to a transformational presidency', <USA Today>, McLean (Virginie), 2009년 4월 16일자에 인용.
(2) Matt Flegenheimer, 'When Hillary Clinton tested new slogans – 85 of them', <The New York Times>, 2016년 10월 19일자.
(3) Maureen Dowd, 'Obama lobbies against obliteration by Trump', <The New York Times>, 2016년 11월 12일자에 인용.
(4) General election exit polls', CNN.com, 2016년 11월 9일.
(5) 최종 개표결과는 12월 19일에나 발표될 예정이다.
(6) Zack Beauchamp, 'These 2 charts explain how racisme helped fuel Trump’s victory', <Vox>, Washington, DC, 2016년 11월 10일자.
(7) John Judis, 'The Populist Explosion. How the Great Recession Transformed American and European Politics', <Columbia Global Report>, New York,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