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를 반대하는 폴란드 카톨릭
2016-12-02 오드리 르벨
10월 초 폴란드 여성들의 대규모 시위에 굴복한, 폴란드 여당 ‘법과 정의당(PiS)’은 기형아 임신이나 강간의 경우에도 낙태를 전면금지하는 법안을 결국 포기했다. 폴란드는 1993년 이미 낙태를 금지시켰다.
“지난 1월 2일. 우리를 인솔하기로 한 여성은 새해맞이 파티의 여파로 여전히 술에 취해있었다. 운전수는 남성이었고, 운전석 옆에 앉은 그녀가 길을 가르쳐주었다. 우리 셋은 술 냄새가 그득한 창문도 열리지 않는 열악한 자동차 뒷자리에 앉아있었다.”
다른 수많은 폴란드 여성들처럼, 30세의 마르타 시르비드는 2천 즐로티(약 460유로)를 내고 슬로바키아 병원에서 낙태를 하기 위해 여행길에 올랐다. 폴란드 일간지 <가제타 비보르차> 기자인 그녀는 2016년 1월에 겪은 이 끔찍한 경험담을 위와 같이 신문에 게재했다.(1) 돌아오는 길에 통화한 남자친구의 말을 생각하면 아직도 어안이 벙벙하다. “남자친구에게 여행의 열악함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살인자들은 짐승처럼 대해야한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뇌가 기형이지만 다리가 움직인다”
1956년부터 1993년까지 폴란드에서 낙태는 합법이자 무료였다. 하지만 가톨릭 교회와 신자의 압력으로, 현재는 아일랜드와 함께 유럽에서 가장 엄중한 낙태 금지법을 가진 국가이다. 낙태는 다음의 세 가지 경우만 허용된다. 산모의 건강이 위협받는 경우, 태아가 병에 걸렸거나 기형아일 경우, 강간이나 근친상간으로 인해 임신했을 경우다. 이 셋 중 하나에 해당되더라도 낙태를 하러 가는 길 곳곳에는 함정이 깔려있다. “합법적으로 공립병원에서 무료로 낙태수술을 받을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하더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결국 낙태수술을 받을 수 없게 된다”고 크리스티나 카크퓨라 여성인권과 가족계획 연맹(Federa) 간사는 설명한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양심을 운운하며 합법적 낙태기간인 22주까지도 낙태수술을 해주지 않는다. 의사들은 불필요한 추가검사를 요구하고, 알릴 의무가 있는 환자의 권리도 알려주지 않는다. “의사들은 임산부가 생각을 바꾸도록 심리적 압박을 가한다. 태아의 병이 심각해도 축소해서 ‘당신 아기는 뇌가 기형이지만 다리는 움직인다’라는 식으로 말한다. 의사들은 ‘낙태한 의사’로 낙인찍히는 걸 두려워한다. 낙태수술을 집도했다는 이유로 자가용이 파손된 경우도 있다. 인터넷에는 ‘이 의사한테 가지 말라. 살인자다’라는 글이 올라온다. 가톨릭 신자들은 병원 앞에서 참혹한 사진을 들고 시위를 벌이기에 남부의 일부 도시에서는 낙태수술을 시행하는 병원이 없다”고 카크류라는 말한다.
공식 통계에 의하면, 인구 3,850만 명의 폴란드에서 합법적인 낙태 건수는 1980년대에 약 13만 건이었으며, 최근 2천 건으로 크게 감소했다고 한다. ‘생명의 권리를 위한 단체(Fundacja Pro)’는 이 수치도 여전히 높다고 말한다. 이들은 7월 초 합법적 낙태가 가능한 예외적인 경우마저 낙태를 금지시키기 위한 법안을 상정시키기 위해 50만 명의 서명을 모았다. 이 법안에서는 산모의 목숨이 즉각적으로 위험에 처할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하도록 남겨뒀다. 이 법안에 의하면, 유산의 경우에도 의사들은 경찰에 의무적으로 알려야 하며, 낙태 행위가 입증된 여성은 징역 5년형에 처해진다. 주교단은 공식적으로 이 법안을 지지했다. 단, 낙태한 여성을 징역형에 처한다는 조항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우리의 질문에 응답하도록 지명된 대변인 마그달레나 코르제크바는 “가능한 한 빨리 법을 바꾸어야 한다. 아직 태어나지 않았어도 모든 아이들은 보호받아야만 한다”고 말했다. “강간으로 인해 임신된 아이일지라도 살아갈 권리가 있다. 비극적인 형태로 잉태된 것은 그 아이의 잘못이 아니다.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그 아이도 숭고한 생명이다”라고 그녀는 덧붙였다. 합법적인 낙태를 받을 수 있는 경우의 주요 사유에는 핸디캡이 있다. 누구를 살릴지는 우생학적 형태에 달려있다는 점이다.
의회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법과 정의당(PiS)은 9월 23일, ‘낙태 전면 금지법’ 초안을 투표에 붙였다. 그러나 폴란드의 주요 도시에서 수만 명의 여성들이 검은 옷을 입고 시위를 벌인지 3일 째 되던 10월 6일 상황이 급변했다. 폴란드 총리 베아타 스지들로는 자신의 유권자를 진정시키기 위해, 그리고 생명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정보제공 정책을 펼치고, 기형아 진단을 받은 태아임에도 낙태를 하지 않기로 결심한 여성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을 펼칠 것을 알렸다. 민주주의수호위원회의 창립자 마테우스 키조브스키는 “이번에 폐기된 법안은 시민사회에서 제시한 법안이다. 법과 정의당은 기형아 임신 등의 경우에도 낙태를 금지하는 새로운 법안을 만들 것이라고 발표했다.”
현재 장애인 자녀를 가진 부모는 어떠한 복지혜택도 받지 못한다. 한부모 가정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 중 1백만 명은 아버지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아이들은 18세 미만의 청소년 중 14%를 차지한다. “국가에서 지급하는 식량 지원금이 있지만, 아버지가 무능한 경우에는 한 달에 5백 즐로티(114유로)에 달하는 지원금을 받기도 어렵다”라고 바르샤바양성평등연구소의 사회학자 마우고자타 드루시아레크가 말했다. “정부지원을 받는 아이는 33만 명에 불과하다. 어머니가 직업이 있고, 극빈층이 아닌 경우 어떤 지원금도 받을 수 없다. 입에 풀칠하기 위해 수많은 여성들이 2~3가지 일에 동시에 종사한다.”
무지와 두려움을 악용하는 ‘낙태 사기꾼’
‘생명을 위한’ 운동의 공상가들은 불법낙태의 실태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들은 불법낙태의 수치가 과장돼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여성운동과 가족계획 단체는 매해 15만~20만 건의 불법 낙태가 행해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정보력 있는 여성들은 ‘여성들의 사이트(Kobiety w sieci)’ 또는 ‘나는 낙태가 필요하다’(2)라는 사이트를 통해 긴급 낙태약을 구할 수 있는 장소 등 믿을 만한 정보를 얻는다. 금전적 수단이 있는 일부 여성은 슬로바키아, 독일, 체코의 개인병원을 이용한다. 그러나, 가난하거나 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들은 어떻게 할까?
“이런 여성들의 처지를 악용하는 의사들이 많다. 공식적으로는 낙태수술을 거부하지만 신문이나 인터넷에 ‘모든 부인과 서비스 실시’ 또는 ‘생리 되살리기 시술’같은 작은 광고를 올린다. 여성의 무지함을 악용하는 의사들도 간혹 있다. 단지 생리가 며칠 늦어진 것뿐인데, 임신이라고 믿게 만들어, 적지 않은 돈을 받고 낙태수술을 한 척 한는 것이다”라고 전 국회 부의장 완다 노비차는 말한다.
폴란드 암시장에서 불황이란 없다. 불법 낙태비용은 3~4천 즐로티(690~915유로)로 한 달 급여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폴란드의 중위소득은 4,100즐로티(약 1천 유로)다.(3) 불법 낙태수술은 마취 없이 행해지는 경우도 있고, 수술 후 조치는 거의 전무하다. 마르타가 친구의 예를 들려줬다.
“한 친구가 어떻게 낙태수술이 이뤄지는지 이야기했다. 몰래카메라를 통해 그 실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여성들을 태운 승합차가 크라쿠프에서 카토비체로 간다. 카토비체에 도착한 여성들은 병원까지 데려다줄 차를 직접 찾아야한다. 여성들은 운전수가 알아 볼 수 있도록 신문을 들고 서서 기다린다. 낙태수술 몇 분 후 아직 마취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내 친구는 병원을 나왔다. 그녀는 크라쿠프에 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 눈 속에서 1km를 걸어서 역에 가야만 했다.”
기소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불법으로 수술한 의사들이나 이를 돕는 사람들은 징역 2년형에 처해진다. 폐기된 전면금지 법안은 5년형이었다. 여성들이 협박당하는 일도 빈번하다. 그래서 마르타를 제외한 다른 여성들은 익명으로도 증언을 거부했다. 너무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불법 낙태로 생명을 위협받는 여성들
절망에 빠진 일부 여성들은 수의사를 찾거나 관절약을 먹기도 한다. 관절약을 과용할 경우 유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불법낙태로 인해 여성의 생명이 위협받는 걸 과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라고 페미노테카(Feminoteka)협회에서 가정폭력 피해자를 돕고 있는 나탈리아 쇼크지라스는 단언했다. “그런 경우는 없다. 낙태시술자들의 날조다”라고 가톨릭의 대변인 코르제크바는 반박하며 “법이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면 보호할수록 여성들이 불법 및 합법적 낙태수술 때문에 위험에 처할 일도 줄어든다”라고 덧붙였다.
‘여성인권과 가족계획 연맹’에 의하면 건강이 악화되거나 사망한 여성의 수는 수십 명에 이른다고 한다. 알리샤 티지아크가 대표적인 경우이다.(4) 2007년 3월 20일, 유럽인권법원은 세 자녀를 둔 알리샤가 시각장애인이 될 태아를 낙태하는 것을 거부한 폴란드 정부를 규탄했다. 2012년 10월 30일 유럽인권법원은 인권에 관한 유럽 협정 8조를 위반한 혐의로 다시 폴란드 정부를 규탄했다. 유럽 협정 8조는 사생활과 가족생활 존중에 관한 조항이다. 알리샤 이외에도 14세 소녀 루블린의 경우, 강간으로 임신을 했지만 여러 병원에서 낙태수술을 거부당했고, 낙태반대단체는 그녀를 괴롭히기까지 했다.
공산주의의 몰락 이후, 폴란드 사회는 종교를 매우 중시하게 됐다. 프랑스국립과학연구센터 중앙유럽 전문 사회학자 프랑수아 바프왈은“1993년 낙태법은 사회적으로 큰 변화를 겪고 있는 와중에 사회적 갈등해소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타협물이다”라고 말했다.(5) 바프왈은 다음과 같이 설명을 이어갔다.
“폴란드가 분할돼 있던 시절, 가톨릭은 국가의 역사, 영토, 사상을 통일시키는 역할을 했다. 가톨릭은 두 번의 세계대전 동안에도, 나치 통치하에서도 공산주의체제 하에서도 이러한 역할을 했다. 가톨릭은 폴란드 정체성의 정신적 지주였다. 독립 후 폴란드가 변혁을 거듭하는 와중에도 90년대까지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에도 그 위상은 여전하다.”
가장 최근 만들어진 낙태 법안에서, 복음절이나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이 인용된 것도 놀라울 것이 없다. 교황 바오로 2세가 태어난 국가인 폴란드인 대부분은 가톨릭 신자이다. 체제가 바뀐 이후, 1989년 가톨릭은 학교에서 종교수업을 하게 하는데 성공했다. 1973년부터 시작된 성교육 수업이 사라지고 신부가 강의하는 ‘가족의 삶’ 수업이 생겼다. “그들은 비디오를 통해 손과 머리가 있는 아기형태의 배아를 보여주며 낙태수술을 하면 아기가 잘리게 된다고 가르친다”고 쇼크지라스는 이야기한다.
낙태는 금지되고, 피임은 어렵고…
그럼에도, 출산율은 늘지 않는다!
1993년 1월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이 투표에 부쳐졌다. 같은 해 9월 정권을 차지한 좌파는 ‘어머니가 사회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경우’라는 예외조항을 덧붙여서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 법안에 대해 대통령 레흐 바웬사는 거부권을 행사했고, 1995년 법안이 시행된 이후에는 헌법 재판소의 불신임에 부딪쳐서 1997년 폐지됐다.
오늘날 폴란드에서는 피임조차 쉽지 않다. “대도시에서는 경구피임약을 처방 받거나 피임도구를 사는 것이 비교적 쉽다. 사람들 속에 섞여서 구입하면 된다. 그러나 지방의 의사들은 치료목적일지라도 피임약 처방전을 써주기를 거부한다”라고 카크퓨라는 지적한다. 프랑스 출신으로 폴란드 남자와 결혼해서 6년 전부터 바르샤바에 살고 있는 쉬리스텔 F(6)는 궁여지책을 써야만 했다.
“내가 쓰는 경구피임약 세라제트(Cerazette)는 폴란드에서는 금지돼 있다. 폴란드 의사들 말로는 불임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프랑스에 사는 어머니가 우편으로 피임약을 보내준다. 폴란드인 친구들은 프랑스나 영국에 여행가서 사재기를 한다.”
사후피임약은 약 1년 전부터 처방 없이 구매할 수 있게 됐다. 그녀는 예전에 사후피임약을 구매하려 했을 때의 쓰라린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약국만 9군데를 방문했다. 노보비에즈스카 대로에 위치한 유명한 약국에서는 사후피임약이 없다고 냉담하게 말하며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야한다!’며 설교했다. 다른 약국은 사후피임약이 끼칠 부작용 때문에 약을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정가의 두 배인 80유로를 내고 샀다.”
완다 노비차는 “지난 25년 이래 폴란드 여성들에겐 현재가 최악이다”라고 단언했다. 최근 몇 달간 민주주의수호위원회의 촉구아래 바르샤바에서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법과 정의당의 결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1989년 이후 처음으로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10만 명의 사람들이 ‘여성들을 위한 여성(Dziewuchy dziewuchom)’ 단체에 모여들었다. 이 단체는 6월 18일 행진을 주도하고 10월 3일의 ‘여성들의 총파업’ 시위를 조직했다. 같은 날 로지 주교는 “이 검은 행진은 죽은 문명에 대해 항거하는 엄청난 시위다”라고 대답했다.(7)
51세의 영화 제작자 에바 버건스카는 “나는 의료 보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나왔다. 이 시위의 주도자들은 페미니스트나 운동가가 아니다. 그러나 낙태전면금지 법안은 너무 심각하다. 단지 몇 마디로 사람들을 움직일 줄 안다는 것이 바로 우리의 힘이다”라고 했으며, 완다 노비차는 “사회 일부가 깨어났다”며 기뻐했다.
마테우시 키조브스키는 “사람들은 시위를 통해 성취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거에는 낙태 관련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적이 없었다. 그러나 현 상황은 너무나 심각하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산전 검사조차 제한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폴란드의 인구 전망은 부정적이지만, 낙태를 금지하는 것은 사실상 출산율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폴란드의 출산율은 1989년 이후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 가임여성 한 명당 1.3명의 자녀로 유럽에서 가장 출산율이 낮은 국가 중 하나다.
글·오드리 르벨 Audrey Lebe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김영란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졸업. 공역서로는 <22세기 세계>가 있다.
(1) 마르타 시르비드, ‘Polki jadą po aborcję na Słowację’, Gazeta Wyborcza, 바르샤바, 2016년 1월 28일.
(2) 낙태가 금지된 국가의 여성들을 돕기 위해 레베카 곰버츠가 2006년도에 네덜란드에 설립한 국제기구 www.womenonweb.org
(3) 전문 사이트 Wynagrodzenia,pl 인용
(4) 비올렌 뤼카, 바바라 빌렌, ‘여성들의 위한 최고의 유럽’,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8년 5월.
(5) 그는 연작 ‘폴란드’, Fayard-CERI, 파리, 2007년 시리즈를 총괄했다.
(6) 가명
(7) Agence France-Presse, 2016년 10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