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빌라, 국제형사재판소의 심판대에 설까?

2016-12-02     사빈 세수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아프리카가 권총 형상을 띤다면, 방아쇠는 다름 아닌 콩고이다.” 1960년 콩고 독립 이후 반세기가 지났을 무렵 프란츠 파농이 했던 말이다. 이 말은 아직도 유효하다. 중부 아프리카의 경제 강국인 콩고민주공화국은 세계 최대 콜탄 자원국이자 세계 4위 구리 매장국이다. 때문에 전 세계 산업의 전략지로 통한다. 작가 ‘인 콜리 진 보판’은 호주, 캐나다, 중국, 남아프리카, 미국 등지에서 몰려온 광산회사들을 ‘영리적 관광객’이라고 표현했다(1). 2003년 이래 수많은 유엔 전문가들이 콩고민주공화국  동부지역의 분쟁에 대한 경제적 이유를 분석한 결과, 민병대가 외국기업을 위한 ‘전략적 광물채굴’에 관련된 사실이 밝혀졌다(2). 여기서 전략적 광물이란, 핸드폰과 같은 특정 전자기기 생산에 반드시 필요한 광물자원을 가리킨다. 이러한 관행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미국은 자국이 사용하는 모든 광물자원의 원산지 확인에 힘쓰고 있다. 2010년 도드-프랭크법 도입 이후에는 북부-키부 지역을 포기했다. 이 법에 따르면, 미국증시 상장기업은 제품에 사용된 특정 원자재(주석, 탄탈, 텅스텐, 금)의 원산지를 공개해야 한다. 콩고민주공화국이나 그 주변 9개국에서 채굴된 광물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기 위해서다. 반면, ‘분쟁광물’ 미사용 정책에 얽매이지 않는 중국회사들이 관련 지역에서 미국기업의 자리를 꿰차고 있다. 지난 5월, 미국의 프리포트-맥모란은 중국의 몰리브데넘에게 텐케 풍구루메 광산을 260만 달러에 넘겼다. 카탕가 지역에 위치한 콩고민주공화국은 최대 구리·코발트 광산이다.
 
이러한 게임은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벨기에가 그 대표적 예인데, 한 유럽 외교관의 평가처럼 “순수한 지정학적” 이유에서다. 이 옛 지배국은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망명 온 야권인사들을 기꺼운 마음으로 수용하고 있다. 벨기에 경찰이 콩고민주공화국 독립영웅 파르티스 루뭄바를 암살한 지 55년이 지난 현재, 벨기에 총리이자 외무장관인 디디에 레인더스가 카빌라 대통령에게 역사상 최초의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요구하고 있다. 콩고민주공화국의 미래는 워싱턴, 뉴욕, 런던, 파리와도 관련돼 있기에, 이들 국가는 이 전략지정학적(?) 불어권 국가를 끊임없이 모니터하고 있다. 르완다와 우간다도 마찬가지이다. 잠비아, 앙골라, 우간다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치안정과 원치 않는 콩고민주공화국 난민의 유입 문제가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주변 아프리카 국가 중 카빌라 대통령의 확실한 동맹국이라 할 만한 나라는 없다. 1990년대 중반,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과 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은 조셉 모부투를 몰아내기 위해 로랑-데지레 카빌라를 지지했었다. 그러나 이후, 두 국가와 국경을 접하는 콩고민주공화국의 북부-키부 지역에 반군을 키운다는 비난을 받게 된다. 2013년 10월, 이들이 지원하던 반군 M23은 패배를 맛본다. 유엔평화유지군(MONUSCO)의 지원과 남아프리카 공수부대의 비공식적 지원을 받은 콩고민주공화국 정부군이 M23을 격퇴한 것이다.(3)
 
우간다와 르완다는 여전히 자국 군사력을 걱정하고 있다. 그들에겐 콩고민주공화국이 약소국으로 남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2015년, 카빌라 대통령은 수년의 냉랭했던 시기를 뒤로하고, 독재정치 때문에 ‘국제사회’와 관계가 좋지 않은 카가메 대통령과 교묘히 접촉을 재개한다. 한편에서는 이 때문에 북부-키부에 또 다른 소요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대선 연기의 구실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1999년 11월에 콩고민주공화국에 파견된 MONUSCO는 유엔 사상 최대 규모의 군투입이었지만(2만2,400명, 이 중 1만9,400명이 군인), 그리 효율적인 방책은 아니었다. 카빌라 대통령은 유엔군 퇴각을 수차례 요청했지만, 유엔안보리는 매년 MONUSCO 임무를 연장시켰다. 유엔군은 주로 콩고민주공화국 동부에 배치됐는데, 학살을 막기는커녕 무장세력 확산도 막지 못했다. 그나마 수도 경비군은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 2016년 8월초, 경찰과 시민이 충돌하던 날 밤에 야권인사 에티엔느 치세케디의 자택을 지키기도 했다. 그러나 심각한 충돌이 발생하면 재빠르게 사라지다는 이미지를 남기기도 했다. 2007년, 킨샤사에서 정규군이 야권인사 장-피에르 벰바 전 부통령의 자택을 공격했을 때처럼 말이다. 국제사회의 압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까? 스페인 출신의 조제 마리아 아나라즈 유엔인권위원회콩고민주공화국 지부장은 이렇게 단언했다. “여기서 우리가 실패할 수는 없다. 제도를 조작하고 억압하는 체제는 큰 변동을 겪게 되리라 의심치 않는다. 국제사회가 선거분쟁을 해결해주지 못했던 부룬디의 경우처럼 말이다.” 2010년, 유엔은 5년이나 뒤늦게 치러진 코트디부아르 대선을 ‘인증’해주었지만, 이후 뒤따른 심각한 위기까지는 막지 못했다.(4) 콩고민주공화국에 대해서는 이 같은 부담을 지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평화유지 때문에 1999년부터 쏟아 부운 돈이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유엔은 콩고민주공화국에 매년 13억 달러를 투입했는데, 이는 콩고민주공화국 GDP의 2%에 버금가는 금액이다.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콩고민주공화국에 대한 ‘극도의 감시’도 성공적이었다고는 할 수 없다. ICC는 2004년에 콩고민주공화국의 인권침해 조사를 개시, 지난 6월 장-피에르 벰바에게 전쟁범죄 및 인권범죄 혐의로 18년 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이는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저지른 소행 때문이지, 콩고민주공화국에서 했던 일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카빌라 대통령의 공공연한 반대자만 건드린 이 판결은 결국 ICC가 콩고민주공화국 정부에 호의적이라는 인식만 남겼다.  이제는 카빌라 대통령이 ICC 심판대에 설 차례이다. 혐의는 시위대에 가한 폭력이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ICC의 권한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남아공, 감비아, 나미비아에 이어 10월 16일에 남아공이 ICC를 탈퇴하기로 결정했다.  
 
 
글·사빈 세수 Sabine Cessou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이보미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인 콜리 진 보판느In Koli Jean Bofane, ‘Congo INC. Le testament de Bismarck’, <Actes Sud>, 아를, 2014년
(2)Cf. 전문가 그룹의콩고민주공화국  관련 최종보고서, 뉴욕, 2015년 1월 12일, https://monusco.unmissions.org
(3)‘Jours d’après-guerre au Congo’,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1월
(4)블라디미르 카뇰라리Vladimir Cagnolari, ‘Croissance sans réconciliation en Côte d’Ivoir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5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