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매체, 변신하면 살 수 있을까?

기존 언론 위기 속 대중의 여론 민주주의는 오히려 성장
유료화도 성공 불투명… 정보 공공재 성격은 강화될 것

2010-02-04     마리 베닐드

2006년 스트라스부르의 프랑스 언론협회 총회에서 BNP파리바(프랑스 최대 은행-역자)의 한 금융전문가는 초청 연사로 나와 언론인이 1970년대의 제철업과 같은 상황에 놓였다고 선포해 파란을 일으켰다. “언론인은 사라질 운명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이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치를 보면 그의 말이 옳은 듯하다. 2009년 말 프랑스에서는 2300명이 넘는 기자들이 해고되는 등 미국 언론계와 비슷한 위기를 겪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2만4500명 이상이 실직하면서 10년 전 41만5천 명에서 30만 명으로 기자 수가 줄었다.(1) <워싱턴포스트>는 수도 워싱턴만 빼고 지부 사무실 문을 모두 닫아야 했고,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시카고트리뷴>과 마찬가지로 파산보호 관리 상태에 놓이게 됐다. 프랑스에서는 <레퀴프>를 제외한 모든 일간지가 적자를 냈다.

인쇄매체로 대표되던 기존 언론계의 쇠락은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컨설팅업체인 ‘베인 앤드 컴퍼니’에 따르면 전세계 문화산업 수익에서 인터넷이 차지하는 비율은 10년 만에 4%에서 22%로 도약했으나, 같은 기간 인쇄매체 비율은 40%에서 14%로 급락했다.(2) 이 밖에 다른 매체들의 수익성은 현상 유지를 하거나 오히려 나아졌다. 우리는 흔히 인쇄매체의 광고 예산이 인터넷으로 옮겨가는 현실을 고발한다. 언론인 베르나르 풀레는 “19세기 중반 대중매체 등장 이후 최초로, 이제 광고주들은 정보 매체 없이도 소비자에게 상품을 알릴 수 있게 되었다”고 썼다.(3)

언론 엘리트들의 업보

대중 또한 언론 엘리트가 제공하는 유료 콘텐츠에 무관심해졌다. 그동안 언론 엘리트들은 편파적이었고, 권력에 맹종했으며, 구독료를 받으면서도 독자를 중시하지 않았다. 그 예로 2009년 프랑스 신문기자들은 대중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언론심의위원회의 창립을 거부했다. 미국의 저명한 블로거 제프 자비스는 그의 저서 <구글식 경영>(What would Google do?)에서 다음과 같이 대중과의 관계를 강조했다. “고객에게 권력을 넘겨라. 곧 그들이 권력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권력을 행하지 말라. 당신은 권력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통신사 AFP의 전략팀장 에리크 슈레가 강조하듯이, 기자의 권위는 진정한 공익성을 창출하는 디지털 혁명에 의해 도전받고 있다.(4) 언론의 위기 상황에서 기존 신문사의 투자 역량은 위협받아도 대중의 민주적 의사 표현이 후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반대로 참여적인 웹(즉 2.0)에서는 전체 독자가 정보를 획득해 그들 자신이 사진과 비디오뿐만 아니라 시사 논평이나 분석의 생산자가 된다. 아시아를 강타한 쓰나미, 런던이나 뭄바이 테러, 이란 폭동 등 일련의 사건에 대해 기존 미디어와 블로그 및 소셜 네트워크가 함께 증언·자료·의견을 모으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정보 유통은 더 이상 기성 언론매체의 전유물이 아니며, 네티즌의 반향에 따라 한 사건의 중요성을 규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로 옮겨가고 있다. 인터넷은 이처럼 일정하게나마 미디어 어젠다를 결정한다.

이제 신문은 눈에 띄는 콘텐츠로 웹상에서 차별화를 시도하기보다는 유비쿼터스(편재성)와 신속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를 위해 블로그, 비디오, 사진, 검색 엔진 조회,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웹 커뮤니티 등 인터넷에 산재한 모든 플랫폼과 표현 수단에 항상 노출되어 있어야 한다. 2010년 언론 편집인들은 프랑스에서만 200만 명 이상이 가입한 애플의 아이폰 같은 스마트폰의 출현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모바일 인터넷 사용자에게 비용을 지불토록 하자는 것인데, 공짜에 익숙해진 네티즌에게 돈을 받기는 어렵다. 가능한 애플리케이션 10만 개 중 90%가 무료인 마당에 모바일 언론 사이트 접속에 왜 비용을 지불한다는 말인가?

요즘처럼 수많은 매체를 통해 ‘정보 이용’이 가능한 적은 일찍이 없었다. 반면 ‘정보 생산’은 최대의 위협에 직면했다. 유료 언론의 위기로 해외 상주 특파원 수는 줄어들고, 장기간의 밀착취재와 설문조사는 제한되며, 편집인과 교정 인력은 감원된다. 이에 맞서기 위해 기성 언론매체들은 알랭 베유 그룹(<라 트리뷘> <RMC> <BFM TV>)과 같은 값싼 정보 공장과 연합하거나 결탁한다. 이들 정보 공장은 저임금을 받으며 단순 정보 공급책 노릇을 하는 젊은 기자들로 분주하다.(5) 그렇다면 내일은? “오늘날 신문마다 콘텐츠가 같기 때문에 상호 부조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을 것”이라고 <현대자본주의와 정보사회>의 저자인 알랭 밍크는 강조한다. 결국 오늘날의 언론은 광고주를 유인하려고 일종의 편집 통속화를 부추기더니, 이제는 필리프 메를랑의 지적대로(6) 콘텐츠의 ‘모방 경쟁’을 통해 언론 산업의 집중화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의 종착역은 편집진의 무산계급화와 정보의 질 저하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독자와 더욱더 멀어져 유료 신문의 쇠락을 앞당길 뿐이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는 탈산업화인가? 편집자들은 종이 매체의 중단으로 신문 제작 및 배포 비용을 줄일 수 있으니 미래에는 실질적 수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희망한다. 그러나 웹상의 편집 비용 절감이 불가능한 현실과 맞닥뜨리게 된다. 광고가 넘치는 인터넷 공간에서 정작 독자의 광고 주목도는 예전만 못하고, 온라인의 기술적 중개를 이용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한 언론 사이트가 애플의 모바일 서비스에 노출되려면 광고 수익의 30%를, 구글이 사업 파트너가 되면 그 반을, 전자책 태블릿인 아마존의 킨들에 접근하려면 70%를 지불해야 한다. 키워드로 창출된 수익에 대해 콘텐츠 편집인에게 단 한 푼도 주어지지 않는 검색 엔진은 거론할 필요도 없다.

“테크놀로지를 쥔 자들이 (우리 콘텐츠의) 가치를 말 그대로 집어삼켰다”(7)고 <리베라시옹> 이사회 공동 회장인 나탈리 콜랭은 개탄한다. 이렇게 언론의 탈물질화(온라인화)는 대가를 치르게 한다. 그러나 다른 방안이 있을까? <월스트리트저널> <타임스>와 <뉴욕포스트>의 소유주인 루퍼트 머독은 2010년 중반까지 구글에서 자사의 기사를 모두 거둬들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이 인터넷 거인(구글)이 수익을 나누지 않겠다면 말이다. 더 나아가 언론인 컨소시엄을 만들어 인터넷의 독자가 돈을 내게 하자고 호소한다. 그러나 아무도 환상을 품지 않는다. 머독은 다른 경쟁업체가 똑같이 하지 않는 한 자사 신문을 웹상에서 철수하지는 않을 것이다. 머독은 웹상에서 제대로 보호될 수 없는 시대의 정보 가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걸 안다. 구글은 언론 사이트를 통해 얻는 이익이 미미하기 때문에 이런 대결 국면에서 강력한 우위에 선다. 이들 언론 사이트가 구글 전체 검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3%에 그칠 뿐이다.

그렇다면 언론의 미래는 유료 독자에게 달려 있는가? 온라인 기사 유료화와 함께 언론 콘텐츠 배포 태블릿 PC를 출시한 애플은 2010년 하나의 희망을 상징한다. 그러나 온라인 신문 구매가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에 따르면 54%의 프랑스인들은 온라인 정보, 특히 지역 신문에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다고 한다. 단 매월 3유로(약 4천 원)를 넘어서면 안 되는 조건이다. <메디아파르>(Mediapart·<르몽드> 출신 기자들이 창간한 유료 온라인 신문)와 같은 유료 사이트가 생존을 위해 그 3배를 요구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턱없이 낮다. 무료 관행은 너무 오래되어 되돌리기가 어렵다.

이러한 상황의 책임은 인터넷 이용자보다는 신문 기자들에게 있다. 종이 매체에서 광고 시장이 원하는 무미건조한 편집을 따른 것은 바로 기자들이다. 또 진정 대안(절충안)을 찾으려 노력하지 않은 채, 무료 사이트를 당연시하게 만들고 게임과 복권을 동원해 독자를 현혹하면서 광고 수익에 매달린 것도 바로 그들이다. 그러나 오늘날 광고 사정이 나빠지면서 오히려 좋아진 것도 있다. 신문사 간부들이 광고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남으로써 독자에게 되돌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소유주들이 더는 수익을 거둘 수 없게 된 언론에서 손을 떼게 된다. 기자들은 이제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기자들은 전문기자를 자극하며 시사 이슈의 ‘공동 생산자’가 될 온라인 독자 및 전문가들과 시너지적 결합을 이뤄낼 수 있을까? 젊은 세대에게 미디어 브랜드란 정보 자체의 정당성보다는 정보를 얻는 커뮤니티 네트워크와 관련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네티즌을 언론으로 이끌기 위해서도 이들의 ‘커뮤니티’를 더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인들은 이미 하루의 17%를 인터넷 블로그와 소셜 네트워크에 사용하며, 온라인 신문 사이트에는 0.56%를 쓰고 있다.

 

‘정보 비만’-‘엄선된 정보’ 양 갈래

신규 정보 사이트들의 수익 모델은 수입원을 다각화하고 확대하는 것이 중요함을 보여준다. <메디아파르>는 유료 독자를 겨냥하고, <뤼 89>(Rue 89)는 온라인숍뿐 아니라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광고 수주를 시도하고 있다. 앞으로는 네티즌이 미국의 프로퍼블리카(Pro Publica)나 스폿US(Spot. US) 같은 비영리단체의 조사 연구에 기부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8) 문서화된 정보의 공공재적 개념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언론 생산물의 운영을 시장의 손에 맡긴다는 생각은 이성적이지 못하다”라고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쓰고 있다.(9)

디지털 사회에서 정보는 더욱 널리 공개되어 자유를 증진시키고 소외를 막는 데 기여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개개인이 인터넷 정글에서 길을 찾을 줄 알 때만 가능하다. 앞으로 온라인 정보는 이중적으로 발전할 위험이 있다. 한쪽은 에리크 슈레가 말하듯이 ‘정보비만’인 과잉 상태로, 분류도 의미도 없이 흥미 위주의 자투리 공짜 정보가 끝없이 밀려드는 바다다. 다른 한쪽은 높은 가격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 엄선된 정보다.

실제 사회적 효용성을 가진 정보의 ‘공공재’라는 미래의 성격은 미디어 소유주라든지 머독과 구글의 싸움 결과에 좌우되지는 않을 것이다. 희소성에서 가치를 찾는 정보가 어떻게 유통될지 태생적으로 예측이 불가하다. 1845년 <뉴욕 헤럴드>의 창립자 제임스 고든 베닛은 이미 통신기에서 신문에 치명타를 가할 ‘지식의 새로운 유포 방식’을 보았다.(10)

글•마리 베닐드 Marie Bénilde
주요 저서로 <뇌를 살 수 있는 시대>(On achète bien les cerveaux·Raisons d’Agir·2007) 등이 있다.

번역•박지현 sophile@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국제단체 남극보호연합 한국지부 담당관. 주요 역서로 <녹색희망> 등이 있다.

<각주>
(1) <월스트리트저널>에 게재된 미국 노동통계국 발표 수치.
(2) 2009년 11월 아비뇽 포럼에서 발표된 베인 앤드 컴퍼니의 조사 자료.
(3) 베르나르 풀레의 <신문의 종말>(La Fin des Journaux), 갈리마르 출판, 2009.
(4) 에리크 슈레, AFP-Media Watch ‘미디어의 글로벌 전망’(Observatoire mondial des médias) 7호 2009~2010 가을·겨울호.
(5)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7년 6월호, 마크 앙드벨의 기사 ‘일률적인 정보 생산라인’(Des chaénes “tout info” bien peu dérangeante) 참조.
(6) 필리프 메를랑과 뤼크 샤텔의 ‘미디어와 권력 견제의 실패’(Médias,lafaillited’uncontre-pouvoir) Fayard, 2009.
(7) 2009년 12월 4일 www.observatoiredesmedias.com에서 실시한 ‘구글은 경쟁자인가, 파트너인가’라는 주제의 토론 참조.
(8) 프로퍼블리카와 스폿US는 시민 주도형 비영리 뉴스 제작 단체로 네티즌과 뜻있는 기업, 단체의 기부를 받아 운영한다(역자).
(9) 2007년 5월 22일자 <르몽드>에 실린 하버마스의 글 ‘양질의 언론을 구해야 한다’(Il faut sauver la presse de qualité) 참조.
(10) 2009년 12월 17일자 <이코노미스트> 기사 ‘네트워크의 효과’(Networks Effects)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