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연합과 민주적 정당성
2016-12-02 안 세실 로베르
“유럽의 프로젝트를 구하려면 그 어느 때보다 유럽 통합 이론에서 벗어난 새로운 구상이 필요하다.”
외교관 출신의 프랑스 좌파 정치인 위베르 베드린이 비판적이고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는 그의 저서(1)에서 한 말이다. 프랑스 외무부 장관을 지낸 베드린은 유럽연합(EU)이 해체될 수 있다며 ‘존재적 위기’에 처해 있다는 진단을 내린다. 2005년 유럽헌법조약을 지지하는 베드린은 유럽 공동체 프로젝트를 방해하는 치명적인 적(敵)보다는 오히려 프로젝트를 부추기는 요인들을 비판한다. 실제로 유럽연합이 오만함 때문에 회원국 국민들로부터 반감을 샀고, 증오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냉철하게 스스로를 평가해보기는커녕, 작은 비판에도 날을 세우는 엘리트층과 지도층은 국민투표나 의회를 통해서도 유럽 연방제를 위한 민주적인 길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국민들과 역사에 남을 화해를 이뤄야 한다.”
예를 들어, 베드린은 무리한 통합을 위한 노력을 잠시 접자고 말한다. 그리고 이대로 모험을 계속하고 싶은 회원국들은 모두 스스로를 평가해보고 미래를 생각하라고 제안한다. 그는 유럽연합과 회원국들이 다시금 능력을 발휘하려면, 브뤼셀의 기구들이 아니라 회원국의 정부들이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고문으로 활동했던 베드린은 “유럽위원회, 유럽의회, 사법재판소로 이루어진 법적‧관료적 집합체는 오랜 시간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 집합체는 톱니바퀴 장치를 작동시키지만 결국 민주적 정당성과 멀어지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라고 지적한다.
베드린은 유럽 연방주의를 포기하는 대신, 유럽 내 국방문제에서 나토의 역할을 강조하고 유로존의 경제 방향을 지지한다. 그러나 이는 그리스의 코스타스 라파비차스 의원과 독일의 경제학자 하리너 플라스벡은 동의하지 않는 방식이다. 특히 플라스벡은 그리스 사태를 가리켜 ‘경제와 통화 연합의 실패’라고 주장하고 있다. 라파비차스와 플라스벡은 프레데리크 로르동 등과 함께 쓴 공동 저서(2)에서 그리스에게 유로존을 탈퇴하는 시나리오, 나아가 긴축정책에 집착하는 이데올로기를 포기하는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두 저자는 다양한 수치자료를 제시하며, ‘사회와 국가 쇄신’ 프로그램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내놓는다. 같은 책에서 프랑스 경제학자 로르동도 그리스 사태를 좀 더 넓은 범위에서 생각한다. ‘왜 유로인가?’, ‘유럽은 민주적인 정치 공동체가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이 책은 독일 화폐의 특이성을 비난하며 경제와 화폐 통합을 구상하고 이어갈수록 이익을 얻는 독일 화폐의 특수성을 비판한다. 베드린은 <유로, 플랜 B>의 저자들과 마찬가지로 유럽협약 재정비를 국민투표에 붙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브뤼셀 자유 대학에서 국제관계 교수로 있는 마리오 텔로는 최근의 지역주의 변화라는 프리즘, 즉 전 세계에서 블록화 단위로 체결되는 지역 협약의 프리즘을 통해 유럽연합의 위기를 연구한다.(3) 다극체제의 등장과 2008년 금융위기로 나타난 새로운 지정학적 변화 속에서 지역적 협력은 “불안정하고 잡음이 생기고 좀 더 정치적이고 경쟁적이고 애매해지기도 할 것이다.” 텔로는 유럽연합 외에도 아프리카 연합, 동남아시아국가 연합,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도 상세히 검토한다. 이들 블록의 미래는 헤게모니의 재편성(유럽연합은 미국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세계적인 민주적 정당성 구축에 달려있을 것이다. 저자는 좀 더 비교적인 관점에서 현대를 ‘매우 정치적인 시기’라고 강조하면서도, 국민들의 역할은 ‘참여’로 한정시킨다. 그러나 참여만으로는 빼앗긴 힘을 되찾을 수 없다. 시장과 현대 관리통제사회에 이익을 안겨줄 뿐이다.
글·안 세실 로베르 Anne-Cécile Ro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파리8대학 유럽학연구소 조교수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번역위원
(1) Huber Vedrine, <Sauver l'Europe! (유럽을 구하자!)>, Liana Levi, 파리, 2016년
(2) Costas Lapvitsas, Heiner Flassbeck, Cédric Durand, Guillaume Etiévant, Frédéric Lordon, <Euro, plan B. Sortir de la crise en Gréce, en France, en Europe (유로, 플랜 B : 그리스, 프랑스, 유럽에서 위기 탈출)>, Éditions du Croquant, 뷜렌 쉬르 센, 2016년
(3) Mario Télo, <L'Europe en crise et le monde (위기의 유럽, 그리고 세계)>, Éditions de l'université libre de Bruxelles, 'UBlire' 총서, 브뤼셀, 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