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는 시적일 때 가장 빛난다

한 편의 시가 언어 예술품이 되기 위해선
글로, 소리로, 귀로 그리고 내면의 눈으로 쓰여야 한다

2010-02-04     자크 루보

시(詩)는 우리가 해 질 녘 대중 앞의 시 낭독 현장에서나 예술가의 무대공연 등에서 보려고 애쓰지만 보이지 않는 장르이며, 또한 시인과의 만남 같은 언어 소통의 자리에서 보이지만 보지 않으려고 애쓰는 장르이기도 하다. 경제적 효용성의 무가치는 시를 나락으로 내몰고 있다. 하지만 시를 다루는 글 모음집, 잡지, 웹사이트 등은 지속적으로 번창하고 있다. 왜 대중은 시에 애써 눈과 귀를 바싹 대려 하는가? 

시가 외면받는 현실

21세기 들어, 시의 영역은 신문지상에서 날로 줄고 있다. 신문이 한 해 동안 서평란에 신간 현대시집을 단 한권도 소개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심지어 대부분의 서점들은 시집 매장을 아예 철수해버렸으며, 텔레비전(지난 세기에도 이미 그랬지만)은 시집에 관심이 없다. 최근까지 프랑스 문화 당국은 이런 사회현상이 미칠 결과에 대한 예측을 내놓으려 하지 않고 있다. 문화 당국이 수수방관하는 것은 어쩌면 이런 현상을 인식하지 못해서인지도 모른다.

문화 당국의 이런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두 선례가 있다. 첫째, 최근 멕시코를 ‘파리 도서박람회’에 초대한 문화 당국은 일련의 멕시코 작가들을 영접했지만, 시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둘째, 지난해 봄 문화 당국이 미국에 보낸 오늘날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 중에도 시인은 한명도 끼지 못했다. 또  노벨상 심사위원들이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프랑스 소설가(전적으로 영예로운 선택이긴 하지만)(1)를 선정한 것을 두고, 사람들은 생존한 프랑스 시인 중 가장 위대한 시인인 이브 본푸아를 무시한 처사라고 지적한다.

시가 경제적 부가가치를 거의 내지 못하거나 혹은 그럴 위기에 처하게 된 것도 당국의 이런 태도 때문이다. 어쨌든 시가 처한 현 상황이 그렇다. 시가 팔리지 않으니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더 이상 중요하지 않으니 팔리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물론 유독 시 부문만 현대 문화현장에서 ‘시장점유율’이 약해진 것은 아니다. 소설 및 일반문학, 심지어 도서시장도 타격을 입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시는 극심한 몰락을 맞고 있다.

누구의 잘못인가?

사람들은 거의 한 세기 전부터 이런 상황에 대한 책임을 줄기차게 시인에게 전가해왔다. 시집의 판매 부진에 대한 해명과 합리화를 위해 항상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예컨대 동시대 시인은 어렵고, 엘리트주의자들이다. 시 쓰는 일은 진부하고 고답적이다. 시인은 자기애가 강하고, 실제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다. 이들은 인질을 구하거나, 테러와의 전쟁에 개입하고 사회 분열을 해소하지도 못한다. 이들은 지구를 구하는 데 수수방관만 한다. 이들은 모든 이들이 쓰는 언어를 쓰지 않는다 등등. 그런 연유로, 사람들이 시집을 읽지 않는 것이니, 시인은 스스로를 탓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이런 비난에 일고의 논평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가령 시에 관심이 있고, 위고·보들레르·랭보·아폴리네르·엘뤼아르·아라공·사르 그리고 미쇼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상당수 사람들은 동시대 시인이 어렵게 여겨져 이들의 책을 읽지 않고, 이들이 왜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글을 쓰는지 이해하지 않으려 한다. 어쩌면 이들은 심각한 병에 걸려 한 달째 병상에 있다가 회복기에 가까스로 보행을 시도해보지만, 결국 서 있기조차 힘든 환자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위인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시를 읽는 독자가 시를 끊었을 때의 증상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읽지 않으면 않을수록, 어쩌다 읽으려 해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 시이기 때문이다.

국제 자유시의 등장

위에서 거론한 시에 대한 부정적 상황들이 시인에게 영향을 끼쳤다. 필자가 일일이 밝히진 않겠지만, 여러 측면에서 시인에게 영향을 끼쳤다. 오래전부터 성급하게 변형되기 시작한 시의 형식이 ‘시의 몰락’을 부추긴 주범이다. 1960년대 초현실주의자들은 운율과 음절에 맞춰 쓰던 전통적인 시를 ‘광적인 자유운문시(VLE)’로 바꾸었다. 대표적 인물이 프랑스의 드니 로시다. 이어 다른 많은 문화예술처럼, 미국에서 이보다 더 자유로운 ‘국제 운문자유시’(VIL)가 확산되면서 전통시가 몰락했다. VIL은 일명 ‘국제자유시’로 불리면서, 운문이지만 운율은 물론 주어진 언어 속에서 시가 지닌 전통적 특성까지 무시했다. 국제자유시는 강한 톤의 통사론적 급변을 피해 ‘붓 가는 대로’ 쓰면 된다. 사람들은 거의 모든 언어로 국제자유시를 쓸 수 있다. 그게 무슨 장점이 있을까? 출판사와 역자가 ‘번역 판권’ 문제로 골머리를 앓을 필요가 없다. 국제자유시는 붓 가는 대로 쓰면 되니 별 어려움 없이 그런 문제를 피할 수 있는데다, 세계화 시대에 우리가 ‘국경 사투리’ 속에 갇히는 끔찍한 사태를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국제자유시는 여전히 모든 국제 시선집이나 잡지 페스티벌 같은 세계의 시 현장에 많이 등장한다. 국제자유시가 요구하는 시의 형식은 거의 없다. 이런 현실이 점점 더 눈에 띄게 시의 형식을 변화시켜 시를 붕괴 직전까지 몰고 갔고, 이제 사람들이 시 자체를 더 이상 필요 없다고 간주하는 단계에 까지 이르렀다. 이런 성향은 이미 1990년대에 나타났다. 필자는 시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많은 시인들이 시를 낭송하는 방식에서 자주 감지한다. 이들은 시를 마치 산문, 즉 수사로 장식한 산문을 낭송하듯 했다. 국제자유시가 시라는 것을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 왜 사람들은 그냥 산문을 쓰지 않았을까? 당시에,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프랑스나 미국의 유명한 시인들은 시를 짧은 산문체로 썼지만, 서술적인 면은 없었다. 이런 분명한 서술적 맥락의 부재가 국제자유시의 존재 이유가 된 셈이다.

우리 스스로 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럼 왜 시를 쓰는 사람들은 사회적 경시에도 불구하고, ‘시인’을 고집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변은 종종 모순되고 모호하다. 시가 경제적 면에서 취약하기 때문에, 이 세상은 시를 쓴다고 감히 말하는 사람들에게 경멸을 내비친다. 시인도 다른 사람들처럼 경제활동이 우선시되는 사회 풍토에서 그런 경멸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시는 사방에서 발생하는 유쾌하지 않은 사건에 잘 개입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것은 시의 역할이 아니다. 하지만 만약 우연한 기회에 시가 그런 역할을 할라치면, 사람들은 그 시에 대해 스탈린이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는 교황에게 했을 법한 대응을 했을 것이다. “바티칸? 그게 몇 사단이야?” 사실, 사람들이나 ‘신문의 서평란’은 시인을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취급하지 않던가!

사람들은 시가 더 이상 시인만 쓰는 고상한 것이 아니라고 여긴다. 그래서 시인은 고상한 대접을 받지 않는다. 시는 도처에 있다. 노래에도 있고, 석양에도 있고, 소설 속에도 있고…, 우리는 시가 없는 곳을 상상하기 힘들다. 이런 현상을 야닉 리롱의 말을 빌려 국제자유시적으로 표현하면 ‘유령효과’(l’effet-fantome)라고 할 수 있다. 시는 실제 생활에서 종말을 맞았지만, 그 아우라는 남아 있다. 그래서 시를 가령 ‘기업문화’에 어떤 형태로든 활용하려면, 가능한 한 시인이 쓴 시라는 걸 눈치채지 못하게 한다.

시를 대체하는 상품들

하여 오늘날 많은 시인이 시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을 뭔가 우스꽝스럽고 심지어 부끄러운 일로 여기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이렇듯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느낌과 사회적으로 합당한 대접을 받고 싶은 욕망이 어우러진 시인의 명백한 자괴감 때문에, 많은 시인이 자신의 책을 시집으로 소개하길 꺼리거나 시가 아니라고 부인한다. 하지만 이들과 이들의 책을 발간한 출판사는 문화부 ‘시’ 선정위원회에 지원금을 요청하고 있다. 또한 훌륭한 시인들이 소형 출판사에서 혹은 자비로 발간한 책이 1~2년을 기다려도 판매되지 않고 언론의 침묵 속에 호응을 얻지 못해 상처를 받으면서 소설·연극·영화·오페라 쪽으로 영역을 넓혀 진출하는 일이 필연적인 것이 됐다.

시는 사교생활에서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요컨대 많은 소시민이 시는 팔리지 않고, 한물갔고, 시대에 뒤처지고, 유행에 뒤떨어진 언어 활동이며, 사양길에 접어든 문학 장르이기 때문에 사라져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시를 대신할 고리타분한 문학의 족쇄에서 해방된, 예컨대 ‘완전히 현대적인’ 새로운 대체상품이 요구되고 있다. 이전에 스스로를 전위예술가로 선포한 자들이 시에 ‘텍스트’를 도입하며 써먹은 방식이다. 얼핏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그 전위예술 텍스트가 최근에 ‘시적 문서’(document) 형태로 다시 부활하고 있다. 이 ‘시적 문서’는 새로운 텍스트 형태를 의미한다. 이것은 외관상 거의 과학에 가깝던 과거의 텍스트에 비해 덜 형이상학적인 적정 수준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것은 1960년대 기존 전위예술가들이 사용했던 텍스트에 비해 덜 급진적이어야 한다. 전위예술 창시자들은 전위예술을 ‘시적 전위예술’로 치장하기 위해 ‘시적’이라는 형용사를 텍스트로 활용했다. 이들은 이 형용사가 모든 사람에게 시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텍스트를 이걸로 치장하는 것을 정당화하려 했다. 이들은 이 형용사는 수세기 전부터 유럽의 모든 언어로 존재하고, 어원을 따져도 그게 정당하다고 여겼다. 프랑스 작가 장 폴랑은 그의 저서 <어원상으로 따져본 증거>(2)에서 과거 일부 철학자도 전위예술가들이 활용한 바 있는 그런 종류의 해학적 성격을 띤 어원에 기반을 둔 추론을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런 추론은 가능성이 희박한 가설에 기초하고 있다. 요컨대 어떤 용어의 의미가 세월과 함께 진화하지만, 원래의 뜻은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가설이다. 이를테면 ‘시적 문서’의 경우, 어원인 ‘시’에서 나온 형용사 ‘시적’이 원래 ‘시’가 지닌 유령효과를 ‘문서’에 부여하고 있다.

인터넷 시대 시의 필요성

위에서 거론한 정황들로 미뤄, 이제 시의 운명은 다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더 이상 시를 읽지 않거나 혹은 거의 읽지 않는 대중과, 심지어 길이가 길수록 외면하는 대중한테 시가 완전히 매력을 잃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폴 푸르넬의 저서 제목인 <자전거의 필요성>(3)에 빗대어 ‘시의 필요성’을 언급할 수 있다. 이는 기술 발전이 저비용 출판을 가능하게 하고, 특히 비약적인 기술 발전과 함께 웹사이트와 블로그가 확산돼 시 쓰기가 용이해졌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컴퓨터 화면으로 시에 소설보다 훨씬 쉽게 접근하는 것은 시가 지닌 특성인 겸손함 때문이다. 예를 들어 컴퓨터 화면으로 프루스트의 저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이미 읽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사람들은 여러 해 전부터 정기적으로 우리에게 전자책에 대한 밝은 미래를 약속했다. 하지만 전자책은 아직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 그렇다고 필자는 전자책에 대한 성급한 판단을 내리진 않겠다.

세계를 지배하는 초강력의 ‘시장’이 전자책 도입을 준비하면서, 공공도서관에서 책들이 사라지고 있다(갈수록 인터넷 판매가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들이 웹상에서 많은 시를 접하고 있기 때문에, 웹상의 시가 팔리지 않는 시집보다 더 많은 독자에게 보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아울러, 시 낭송회와 시인과의 특별한 만남이 확산되고 있다. 이 모임들에 참석한 청중은 보통 시인을 존중한다. 하지만 이런 현상에도 경제논리가 작용한다. 많은 지자체들이 가수나 오케스트라 혹은 발레단을 초대하는 것보다 시인 한두 명을 초대하는 것이 비용이 저렴하다는 걸 알고 시인을 초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시의 필요성’은 (따귀  한 대로 고요한 감정을 뒤흔드는 것처럼) 시의 원래 표현 방식인 ‘슬램’(Slam)을 찾은 셈이다.

대중의 감정을 뒤흔든 ‘슬램’

‘자전거의 필요성’은 텔레비전에서 자전거 경주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를 시청할 때보다, 실제로 자전거를 탈 때 더 잘 느껴진다. 파리의 공공 임대 자전거 시스템 ‘벨리브’(Velib)의 성공이 이를 입증한다. 마찬가지로 ‘음악의 필요성’에 따라 가라오케 및 콘서트에 참여하며 불황을 타개할 활로를 찾아보지만, 분명한 것은 합창단이나 록그룹이 음악의 필요성에 적극 참여할 때 더욱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게 된다는 점이다.

적어도 ‘슬램’을 창작하는 사람은 모두 잠재적 시인이라는 분명한 전제가 있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시인 행세’를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슬램을 “카페 혹은 모임 장소 같은 공공장소에서 미팅이나 웅변대회 형태로 실시되는 대중적인 낭독 표현예술”이라 칭했다. 슬램을 소개한 글을 보면 단어 ‘슬램’은 영어 ‘문을 꽝 하고 닫다’에서 따온 용어로 ‘따귀’(claque) 혹은 ‘충격’을 의미하는 은어다. 대중에게 시를 낭독한다는 것은, 청중의 옷깃을 잡고 단어와 이미지로 이들의 ‘따귀’를 때려 감정을 뒤흔들고 동요시키는 행위다. 슬램운동의 창시자인 마크 스미스는 2005년 낭트에서 개최된 ‘프랑스 전국 그랜드슬램’에서 다른 방식으로 이 용어를 설명했다. 그는 이 용어를 테니스 및 농구, 카드놀이의 일종인 브리지 게임 등 스포츠와 재미를 의미하는 ‘슐렘’(chelem)에서 따왔다고 했다. 

프랑스에서 실시되는 슬램의 여러 특성을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슬램은 구두(口頭)다.
둘째, 슬램이 최우선하는 것은 예술행위가 아니다. 이 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은 그 이유로 슬램이 지닌 ‘민주적’ 특성을 내세운다. 필자가 보기엔 스미스가 슬램을 창안한 목적은 “시의 질에 대한 개념을 파괴하기 위한 것”이었다. “몇 명의 심사원들이 임의대로 자신의 주관적 취향에 따라 시를 평가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인터넷에서 읽고 듣는 슬램주의자들이 쓴 수많은 습작시는 일반적으로 사상적 궁핍의 결정판이다(그렇다고 평소 우리가 말하는 시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셋째, 슬램은 원칙적으로 즉흥예술이다. 아울러 슬램은 전통 민요시와 맥락을 같이한다.
넷째, 슬램의 목적은 “오래된 문학 장르인 프랑스 랑그도크 지방의 중세 음유시인의 논쟁시(tenson), 즉 두 명의 시인이 미리 정한 상반된 주제를 가지고 시로 벌이는 경합”을 부활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명망 높은 논쟁시의 계보를 부활시키겠다는 것은 오해에서 비롯됐다. 음유시인의 ‘논쟁시’는 매우 지적이고, 청중도 이것을 감상할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했기 때문이다. 즉흥 민요시 역시 예부터 내려오는 복잡한 제약 조건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전반적으로 시가 어떻게 쓰였고, 쓰이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논쟁시에 적용했던 모델을 시에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슬램’시에서 고전시의 조건인 길이와 리듬이 빠진 시의 파편들만 보게 되는 것이다. 시의 운율이 긴 잠에서 깨어났다지만, 아직은 초등학교의 시작(詩作) 시간을 지배하는 정도로 선잠에 빠져 있는 상태다. 사람들은 흐릿한 학창 시절의 추억을 시로 발표한다. 특히 연속극이 제공하는 감동과 식별되지 않는 그런 감동을 선사하는 지극히 평범한 감정을 시로 표현하고 있다. 이런 슬램의 ‘의미론’적 면은 마치 랩의 변형과 퇴화로 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랩을 시라 주장하지는 않는다. 이전에 록 또한 재즈의 변형에서 탄생됐다.

부릉부릉, 구두시(口頭詩)

분명한 것은 슬램은 기초적인 시 쓰기 작업에 큰 위험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필자가 여기서 언급한 ‘부릉부릉(구두시(口頭詩)’ 현상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고성능 시’로 지칭되는 슬램이 시의 영역을 침공하는 현상이며, 또 이것이 대중적이거나 사적인 ‘문화 요소’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라이브 공연’에 열을 올리며, 글로 쓰는 시를 배제한 채 구두로 표현하는 시의 형태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갈수록 ‘국제 시 페스티벌’ 같은 시 행사에서 시인이 대중에게 시라고 선보이는 활동을 보면, 말은 한마디도 없고, 계단 아래서 구르거나 무대 위에서 두꺼운 전화번호부 책자를 찢고, 전자 장비의 지원을 받아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음향 효과를 내는 퍼포먼스들이다. 이런 활동에서 활용되는 언어는 팝이나 록, 그 밖의 많은 노래에서 음악을 삭제했을 때처럼, 대부분 보잘것없는 시 텍스트에 대한 논평이 고작이다.

이런 이벤트 활동이 존경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감동스럽고, 때로는 예술성이 거의 없지만(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의문스러운 것은 이런 이벤트 행사를 왜 ‘시’ 행사라 부를까 하는 점이다. 왜 이것을 음악, 에어로빅, 공중 오페라 서커스쇼, 스케치, 노래, 발레 혹은 스트립쇼라 부르지 않는 것일까? 시 발전에 힘쓰는 사람들이 상징적 작품으로 거론하는 작품 중 하나인 독일 작가 쿠르트 슈비터스의 저서 <낭독 퍼포먼스>(Ursonate)는 시를 노래처럼 소개하지 시처럼 소개하지 않는다. 우리는 시가 실물경제를 중시하는 세태 속에서 거의 무용지물로 전락해 이런 웃지 못할 현상이 빗어지고 있다는 가설을 내릴 수 있다. 만약 시를 쓰는 대신 소리만 내는 ‘시인’이 음악 분야에서 활동하고 싶다면, 치열한 경쟁을 겁낼 필요도 없다. 노래가 아니라 낭독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읽기와 말하기

필자는 예언가가 아니다. 그래서 ‘부릉부릉’이 유일한 시 형태로 인식될지 아닐지 예언할 수는 없다. 이런 극한 상황까지 가는 일은 없겠지만, 필자가 볼 때 구두시가 책과 심지어 화면을 밀어내고 시 영역을 전부 장악하게 될 것 같다. 하여 시는 파멸하고 퇴행할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현재 프랑스에서는 훌륭한 시들이 존재한다. 이것들은 어렵건 쉽건 간에, 당신의 얘기와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줄 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창작하고 갱신해 사람들을 매혹시킨다. 우리는 이런 시를 책, 잡지, 녹음테이프 혹은 비디오로 접한다. 우리는 시를 소개하고, 지지하고, 포기하지 않고 판매하고 있는 서점(아직 시집을 판매하는 서점이 있다)에서 시를 만난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시를 읽고, 베끼고, 외워라.

필자가 위에서 거론한 것들은 다음과 같은 관점을 옹호하기 위해서다. 언어 속에 한자리를 차지한 시는 단어로 이뤄진다. 단어가 없는 시는 시가 아니다. 한 편의 시는 네 가지 측면을 지닌 언어 예술품이어야 한다. 이를테면 한 페이지 위에 글로, 소리로, 귀로 그리고 내면의 눈으로 쓴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시를 읽고 말해야 한다.

번역•조은섭 chosub@ilemonde.com
파리7대학 불문학 박사. 주요 역서로 <착각>(2004) 등이 있다.

<각주>
(1)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
(2) <필요한 시간>, Cognac, 1988.
(3) Seuil, 파리, 2002.


자크 루보(Jacques Roubaud·1932~)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의 수학과 연구주임 및 프랑스 <포에지>(Poèsie·시) 편집위원. 그는 현존하는 프랑스의 가장 위대한 시인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1990년에는 프랑스 시 부문 그랑프리, 2008년에는 프랑스 아카데미의 폴 모랑 문학상 그랑프리를 받았다. 프랑스의 대시인 루이 아라공의 눈에 띄어 12살의 나이에 첫 시집 <젊은 날의 시들>(1944)을 낸 뒤, 1952년 두 번째 시집 <야간 여행>을 펴내 주목받았다. 그의 시는 수학자답게 음과 운율이 정교한 조화를 이룰 뿐 아니라 패러디와 아이러니의 기법을 담고 있어 프랑스 전통시의 리듬을 현대적으로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요 시집으로 <캄캄한 무엇>(Quelque chose noir·1986), <멜랑콜리한 에로스>(2009) 등이 있다.

 

 

 


음절과 운율이 모두 무시되다! 

19세기 말,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1842~98)는 “시 영역을 완전히 지배했고, 지금까지도 시에서 불가결한 부문으로 간주되는 운율과 음절을 맞춘 운문시(韻文詩)(12음절과 8음절 시가 주를 이뤘다)가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1)

제1차 세계대전 때까지 가능성을 모색하던 새로운 형태의 운문시는 이후 초현실주의자의 주도 아래 ‘표준 운문 자유시’(VLS)란 형식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그 후 VLS는 ‘광적인 자유운문시’(VLE)에 이어 ‘국제 운문자유시’(VIL)로 발전한다. 흔히 VIL은 국제자유시로 불린다.

표준 운문 자유시의 4가지 특성은 다음과 같다.

    1) 음절을 맞추지 않는다.
2) 운율을 맞추지 않는다.
3) 페이지에 구애받지 않고 ‘붓 가는 대로’ 쓴 활자체다.
4) 거의 모든 고전 운문시가 그렇듯, 시의 끝 구절이 주요 구문의 끝과 일치한다.

그렇다고 고전 운율(특히 12음절 시구)이 종적을 감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운율은 세 종류로 나뉘었다. 폴 발레리는 12음절 시구를 고수하며, 케케묵은 10음절 시구도 썼다. 아폴리네르는 확고한 12음절 시구를 썼고, 그의 뒤를 루이 아라공이 이었다. 레몽 크노는 12음절 시구를 변화시켰다.

1960년대 초반, 드니 로시는 VLS를 무력화하고 VLE를 고안해냈다. VLE는 VLS의 특성 중 3번과 4번을 없앴다. 예컨대 이 운문시의 목적은 낱말 속에 있지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VLE는 잠시 모습을 보였다가 대부분의 시인이 VIL을 선호하는 바람에 금세 사라졌다.

 

 

 

<각주>
(1) 말라르메의 저서 <운문시의 위기>, 파리, Ivrea,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