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와 시티,전성기 끝났는가?
금융위기로 몰락… 일자리 감소, 자본 품귀, 영향력 상실
1980년대에 불어 닥친 탈규제 정책에 힘입어 월가와 시티는 신자유주의 정책까지 추진하는 주관자 역할까지 떠맡았다. 대형 투자은행과 종합금융회사, 로비스트, 미국 재무부의 보호막 뒤로 피신한 골드먼 삭스의 고위직들을 흉내 내며 정치인으로 변신한 은행가 등 모두가 한 목소리로 자본 거래의 자유화와 자유무역을 역설했고, 결국 이루어냈다.1)
서브프라임 '쓰나미' 밀어닥치다
중개인에서 금융 시장의 역사 전문가로 변신한 영국의 조지 블래키는 "이런 성공은 시티와 월가를 스스로 무적이라 생각하는 큰 착각에 빠뜨렸다"고 말했다. 부당 이득, 화려한 골든 보이, 현실 경제와의 단절 운운의 수사가 뒤따랐다. 그러나 2007년 2월 환갑 잔치에 300만 달러를 썼다는 블랙스톤 그룹의 최고 경영자 스티븐 슈워츠먼 만큼 이런 일탈적 변화를 적절하게 설명해주는 예가 있을까? 서브 프라임이란 쓰나미가 세계 금융을 뒤엎어버릴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월가의 거물들은 그런 잔치를 즐기고 있었다.
마침내 공포에 질려 살 길을 모색해야 할 때가 닥쳤다. 어제까지만 해도 생각조차 할 수 없던 일이 시작됐다. 미국과 영국 정부는 금융계 전체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 몇몇 금융 기관을 국유화하기로 결정했다. 시장을 지배한지 20년 만에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월가를 떠받치던 강력한 무기 중 하나가 사라지면서 월가에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 6개월 사이에, 모든 대형 투자은행이 뉴욕에서 사라졌다. 베어 스턴스는 3월에 JP 모건에 넘어갔고, 리먼 브라더스는 파산했다. 메릴 린치는 9월에 뱅크 오브 아메리카가 사들였다. 골드먼 삭스와 모건 스탠리도 투자은행이란 지위를 포기하고 상업은행으로 변신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변화로 미국과 영국 정부는 예전의 지배력을 되찾았다. 이는 결국, 월가와 시티는 다른 지역, 특히 신흥 산업국에서 본받을 만한 모델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 9월 23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런 급격한 변화를 '월가의 종말'이란 표제 기사로 다루었다.
뉴욕과 런던은 앞으로도 옛날만큼 자본을 끌어들일 수 있을까? 많은 전문가가 두 지역의 쇠퇴를 예상하지만, 대다수의 전문가가 금융의 중심지로 두 지역을 대체할 만한 곳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제네바, 프랑크푸르트, 싱가포르, 도쿄, 홍콩, 두바이 등 꽤 많은 곳이 거론되지만, 그 지역들은 뉴욕이나 런런의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회사들을 끌어들일 만한 역량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외환 시장과 석유 시장 등과 같은 중요한 거래는 앞으로도 두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금융 체제는 아직 성숙되지 못해 취약하다.
일자리 감소 등 국가 경제에 직격탄
월가와 시티의 곤경은 미국과 영국의 경제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뉴욕에서만 금융 산업이 약 32만 명을 직·간접적으로 고용하고 있다. 지난 9월 말 현재, 약 29만 명의 고용 효과를 가진 런던보다 약간 많은 숫자다. 이는 뉴욕시 고용 인구의 5%에 불과하지만 임금은 전체의 25%(약 630억 달러), 시가 징수하는 각종 세금의 10%, 미국 경제의 6%를 차지한다. 한편 시티는 영국 국내총생산의 10%, 런던시 임금의 약 14%를 차지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피터 크레츠머는 "금융 위기로 수천 개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경제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진단했다. 뉴욕과 런던 등에서 2만 5,000명을 고용하던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3,000명의 직원이 해고될 것으로 예상된다.
옵션스 그룹의 최고 경영자 마이클 카프는 "힘든 시기가 될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은행가와 금융계 고위직은 개인적 역량 덕분에 아시아와 걸프 지역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는데 어렵지 않겠지만, 하위직 직원들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월가가 기침을 하면 비서들과 회계 보조원들은 독감에 걸린다. 군살빼기는 언제나 밑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덧붙였다.
뉴욕시 금융국장인 토머스 디 나폴리는 월가에서 적어도 4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며, "금융권에서 일자리 하나가 사라지면, 금융권에 의존하는 다른 경제권에서 일자리가 셋이나 사라진다"고 우려했다. 고급 상품점, 고급 식당, 화랑은 물론이고, 부동산까지 시장 침체로 고통을 받기 마련이다. 재취업 알선 회사인 챌린저 그레이 앤 크리스마스에 따르면 뉴욕 금융권에서 사라진 일자리 수는 2007년 이전까지 4만 4,000개였고, 올 가을까지 5만 4,000개를 넘어섰다. 한편 런던 상공회의소는 2009년 상반기가 끝날 무렵엔 시티의 사무실 중 15%가 비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한 2012년 런던 올림픽에 맞춰 시작된 공사 현장 중 여러 곳에서 공사가 중단될 전망이다.
경제경영연구센터(CERB)도 시티에서 2008년에 2만 8,000명, 2009년에는 3만 4,000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예상했다. 파생 시장에서 시작된 위기가 금융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목숨을 구명한 은행가와 중개인도 임금이 크게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연말 보너스 문제로 미국과 영국에서 여론이 크게 악화되면서, 정치권도 금융 재벌에 대한 반감을 감추지 않았다. 영국 보수당의 2인자인 조지 오즈번은 지난 9월 버밍엄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은행가에게만 비난의 화살을 돌리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들에게 책임을 반드시 묻고, 그들이 예전처럼 지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없애주겠다"고 단언했다.2)
금융그룹 간부 고임금'위기 원인'
고든 브라운 총리도 시티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보수 체제를 고쳐야 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경고했다. 브라운 총리는 특히 연봉의 절반에 육박하는 연말 보너스를 언급하면서 "거액 보너스 시대는 끝났다"고 단호히 말했다.3) 뉴욕에서도 연말 보너스가 의회의 심판대에 오르면서, 거액 보너스의 시대는 종언을 고한 셈이다.
영국 금융 심장부의 삶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금융 인터넷 사이트(www.hereisthecity.com)의 운영자인 빅 대니얼스는 "보너스의 재검토, 혹은 보너스의 대폭 삭감이 시티의 운영에 공권력이 개입하는 첫 사례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CERB'의 보고에 따르면, 시티에 쏟아질 보너스는 2009년엔 67% 삭감된 35억 파운드(약 45억 유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평균 80억 파운드(약 100억 유로)였던 데 비하면 엄청나게 줄어든 것이다.
금융권의 보수 체제를 법적으로 규제하라는 여론을 의식해 은행가들은 자세를 바짝 낮추고, 그 입법화를 막기 위해 은밀히 로비를 벌이고 있다. 영국 은행가협회의 안젤라 나이트 회장에 따르면, 시티의 보너스와 금융 위기 간에는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다. 미국에서도 <월스트리트 저널>이 사설을 통해, 일부 탐욕스런 사람들의 횡포 때문에 임금 체제 규제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기업 지배구조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미국의 정책 연구소인 코퍼레이트 라이브러리의 연구원 폴 호지슨은 이런 식의 변명에 분노했다. "금융 위기는 월가 기업들의 임금 정책과 직접적 관계가 있습니다. 보너스 시스템이 단기적인 성과에 치중하는 문화를 낳았고, 그 결과 수익성은 높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무척 위험한 금융 상품에 몰두하게 된 것이죠."
당국 '최선' 다짐… 시민 '범죄' 우려
끝으로 금융 위기는 정책적 차원에서도 두 도시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런던 신임 시장에 당선된 보수당원 보리스 존은 "시티의 붕괴를 막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며, 올림픽을 위한 공사도 예정대로 완공될 것"이라고 확언했다. 뉴욕에서는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이 "2001년 9월 11일의 테러보다 더 위급한 상황"이라고 주장하며, 시위원회에 그의 재출마를 막는 법을 폐기해달라고 촉구하고 나섰다.4) 2010년에 세 번째로 시장에 도전하는 꿈을 가질 만한 상황이 조성된 셈이다.
블룸버그는 이런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데 비해, 많은 뉴욕 시민은 월가의 몰락으로 범죄율이 급증할까 염려하고 있다. 미주리 세인트 루이스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1950년 이후로 증권 시장이 폭락할 때마다 뉴욕의 범죄율이 급증했다.
1) 헨리 폴슨(2006년 이래 미 재무부 장관), 로버트 루빈(클린턴 정부에서 1995년부터 1999년까지 재무부 장관, 현재는 버락 오바마의 경제 고문), 닐 캐시카리(폴슨 장관의 보좌관, 구제금융안을 제안)는 차례로 골드먼 삭스의 사장, 골드먼 삭스의 공동 사장, 골드먼 삭스 샌프란시코 부사장을 지냈다.
2)'토리당이 시티와 거리를 두다'(Les Tories prennent leur distance avec la City), <르 피가로>, 2008년 9월 29일.
3) <레 제코>, 2008년 10월 10~11일.
4)'마이클 블룸버그, 위기의 뉴욕을 구하기 위해 세 번째 임기를 꿈꾸다'(Michael Bloomberg brigue un 37맟me mandat pour sauver New York de la crise), AFP, 2008년 10월 2일.
이런 예측이 맞는다면 블룸버그는 첫 임기 이후로 수천 명의 경찰직을 없앴기 때문에 무척 곤혹스런 입장에 처하게 될 듯 하다. 일자리의 감소, 자본의 품귀, 영향력의 상실로 2008년은 자본주의를 밝히던 두 등대가 긴 침체기에 들어서는 첫 해가 될까?
번역 | 강주헌 2nabbi@ilemon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