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

2010-02-04     세르주 카드루파니

보이지 않는 명령이 이탈리아 반도를 지배한다. 이민자들이 폭력에 희생되고, 사악한 시민은 힘없고 나약한 사람들을 쫓아낸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유적지들은 무지막지한 불도저에 의해 힘없이 파괴된다. 이 나라를 휩쓰는 개발 광풍은 어디에서 불어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고대 로마제국의 발상지 라티움 왕국 북부의 사비니에서 로마인들이 사비니 여인들을 납치한 일화는 수많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제공했다. 이탈리아 수도에서 35km 떨어진 사비니 지역은 여기저기 도시화가 진행된 흔적이 있음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풍광을 간직하고 있다. 이곳 토스카나 구릉지는 카롤링거 왕조 시대의 수도원을 감싸고 있는 테베레 강변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200ha에 걸친 이곳 언덕의 아름다운 경관이 개발업자들에 의해 파괴되고 있다. 이들은 구릉지를 깎고, 그 자리에 600만㎥의 흙을 퍼날라 대규모의 물류창고를 건설하는 중이다. 10ha에 이르는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깔고, 지하수층 훼손의 위험을 무릅쓰고 물을 퍼 올린다. 이 지역 지하수는 로마 상수원의 80%를 차지한다. 현재 건설 중인 파소 코레세 물류기지는 자연유산의 가치를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의 수많은 보고서는 이 지역의 풍요로운 고고학 자원을 강조한다. 이 지역에는, 아마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로마시대 건축물들이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수km의 낡은 배수로를 따라 연결돼 있다.(1)

이제 곧 이곳에 파라오 시대의 건축물을 연상시키는 물류기지가 들어설 것이다. 대형 화물트럭들이 하역작업을 하고, 그 화물들은 좀더 작은 차량에 실려 다른 곳으로 실려가게 될 것이다. 파소 코레세 물류기지는 어떤 화물도 철도를 통해 로마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계획에 따른 것이다.  속내는 수익성 높은 부동산 사업에 있다. 철도-도로를 잇는 ‘운송 복합물류센터’를 위해 또 다른 200ha가 추가됐다.

발터 벨트로니 당시 로마 시장도 이 계획이 생태학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인정한 바 있다. 당시 이 지역의 중도좌파 피에로 마라초 지사 후보는 2005년 3월 6일 이 지역 주민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계획은 위의 지시에 의한 것이다. 이 계획은 이곳 자연경관을 능욕하고 있다. 당신들은 이 계획에 반대할 권리뿐 아니라 의무도 가지고 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그런 선언만으로는 산을 깎고 흙을 나르는 이 공사를 막지 못했다. 모든 사업권(개발사용권 99년간 연장 가능)을 갖게 된 사비나 산업단지는 특이하게도 민간자본이 97%에 이른다. 나머지 3%는 주 정부와 사비니 개발 컨소시엄,(2) 그리고 지역 행정구들이 투자해 전체적으로는 준공영적 면모를 갖춘 동시에 민간기업에 적용되는 행정적 통제를 피할 수 있다. 이 계획으로 거둬들일 경제적 수익은 불확실하다. 없어지는 농민의 일자리는 농업이 아닌 다른 일자리를 만들어 간신히 대체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창고의 막대한 저장량이 100% 활용되리란 보장은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용도인가?” 이 계획에 적극 반대하는 한 단체는 이 질문에 “누군가를 부자로 만드는 데 사용된다”고 단적으로 대답한다. 사회적 지위나 정치적 노선으로 볼 때, 분명 이 계획의 반대투쟁 선봉에 서야 할 사람들이 나서지 않는다는 사실에도 의문이 생긴다. 그 답은 이 계획이 시작될 때부터 이 지역 유명 역사학자나 고고학자가 컨소시엄의 행정직을 제의받았고, 녹색당 지역지도자가 자연공원 운영자직을 맡게 된 이후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처음 이 계획에 반대하는 발언을 했던 마라초 지사가 점차 수동적 태도를 보인 것에 사람들은 놀라워했다. 2009년 10월 23일, 성추문이 터져 그가 사임하자 모든 것이 명백해졌다. 언론은 그가 성매매를 하는 트랜스젠더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고, 부패 경찰관으로부터 협박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수많은 기사들이 지겹도록 이 사건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마라초 지사가 교황에게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쓰는 동안 그의 성추문 상대자는 수수께끼 같은 화재 사건으로 사망했고, 사비니 지역 일부 사람들은 마라초 시장이 임기 중에 은밀한 외압을 받은 게 아닌지 의심하게 됐다. 경찰 조사 결과, 마피아 집단 카모라에서 가장 강력한 계파인 카살레시파가 1년 전부터 이 지역에 투자한 것으로 드러나, 그런 의심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 사건에서 의회의 어떤 편에 속하느냐는 큰 의미가 없다. 이는 이탈리아 사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경제적·환경론적·국가유산의 차원에서 부조리한 사업이 권력과 마피아의 공갈과 사탕발림 속에 얽히고설켜 진행되는 것이다. 정치 책임자들이 적법성과 민주주의를 들먹이며 기뻐하는 동안, 시민들은 스스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도무지 정체를 확인할 길 없는 권력과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글•세르주 카드루파니 Serge Quadruppani
저서로 <고양이 눈의 심연>(메탈리에·파리·2006), <새턴>(메탈리에·2010년 발간 예정) 등이 있다.

번역•김계영 canari62@ilemonde.com

<각주>
(1) 마리아 피아 무치올리의 보고서 ‘사비니 경영-이탈리아의 양상’(Cures Sabini - Forma Italiae), Leo S. Olschki Editore, Firenze, MCMLXXX. 로마 주재 브리티시스쿨 고고학자 그룹의 보고서 ‘Sabinensis Ager Revisited’, Papers of the British School of Rome, LXX, 2002.    
(2) 주(州) 컨소시엄이 이 프로젝트를 기안했고, 경쟁 입찰도 거치지 않은 채 이 사업을 사비나 산업단지에 위임했다.